[289호 거꾸로 읽는 성경] 욥기 3장에 나타난 욥의 애통과 세월호 유가족

욥기 3장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 3~10절에서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생일)을 저주하고(재앙을 당한 그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1~16절에서는 태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차선으로 태어나자마자 죽기를 희망하고, 마지막으로 17~21절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죽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죽는 게 좋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욥은 죽음을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욥기 3장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일까? 달리 말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된다. 자살 심리를 신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더구나 3장에 나오는 이런 욥의 모습은 1~2장과 너무 대조된다. 욥은 세 번이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되었다(1:1, 18; 2:3).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사탄의 시험에서도 승리하지 않았던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찬양했다. 몸에 욕창이 나고 아내마저 자신을 버렸을 때에도 그는 부정적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3장에서 욥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 듯하다. 이런 욥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학자들은 3장의 욥(impatient Job)과 1~2장의 욥(patient Job)을 대조하면서, 본래는 욥기의 산문 부분과 운문 부분이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었던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해결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1~2장과 3장을 유기적 통일체로 전제하고, 욥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3장의 직전 문맥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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