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호 김기석 목사의 욥기 특강] 제4강 욥기 3:1-26

욥기의 독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욥을 보며 이중적 감정을 느낍니다. 하나는 ‘아, 믿음의 사람은 역시 범인들과 다르구나!’ 하는 경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흔들림조차 없다는 게 말이 돼?’ 하는 일종의 저항감입니다. 여하튼 2장까지의 욥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존재로 다가왔습니다만, 3장에 이르면 어조가 달라집니다. 물론 문학적 형식도 달라집니다. 

앞서 이야기 했었지요? 2장까지가 산문체 문장이라면 3장부터는 운문체 문장이라고요. 산문은 내러티브를 중시하지만 운문은 글의 속도감, 리듬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압축과 생략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시는 읽기 어렵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시가 어렵다는 편견은 대개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시 교육의 폐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와 친해지고, 은유적 언어에 맛들이기도 전에 우리는 ‘밑줄 좍!’ 긋고 그 단어 혹은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받아 적어야 했으니 시와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시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외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입으로 중얼중얼 외우는 동안 언어의 리듬을 익히게 되면 각각의 단어들이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시인들은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도 허투루 찍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 역시 시는 어렵구나’ 하는 편견을 강화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