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호 곱씹어 보는 영화] 영화 <암살>이 기억하자 하는 것

기억 위기 사회, 한국영화는 바쁘다
<화려한 휴가>(2007)의 이요원은 오월의 광주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기억해 주세요!” <명량>(2014)의 수군들은 전투를 마친 후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알랑가 몰라.” “모르믄 호로자식이재!!” 

<암살>(2015)에서 오달수는 전지현에게 “어이, 삼천불. 우리 잊지 말어”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사라졌고, 의열단 김원봉 역의 조승우는 김구 앞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죽었어요. 황덕삼, 추상옥… 사람들에게 잊혀 지겠죠? 미안합니다.” 

이 영화들처럼 직설로 기억을 종용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베테랑>(2015) 역시 재벌의 ‘맷값’ 폭행이나 조현아의 ‘땅콩회항’ 같은 대중의 최근 기억에 의존한다. 

할리우드가 기억의 불완전함(<메멘토> (2000))을 말하고, 그것의 시공간으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거나(<인터스텔라> (2014)) 기억과 감정의 매커니즘을 발랄하게 상상할 때(<인사이드 아웃>(2015)), 이 시대 한국영화는 이처럼 정색을 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과 사건들을 역사와 현실로부터 족족 소환하고 있다. <실미도>(2003)부터 <국제시장>(2014)까지, 그간 천만 관객의 역사를 쓴 한국영화들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중 대다수가 근현대사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문화적 기억의 위기 순간에 예술이 발생한다고 보았던 알라이다 아스만에 따르면, 이는 위기의 방증이다.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이 상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사회가 그 기억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거나  내팽개쳐버리고 싶어 할 때 예술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위안부 생존자가 47명뿐이라는 위기의식이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재촉하고,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시와 노래와 그림과 영상으로 활발하게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역사이자 정치적 실천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영화들은 기억과 망각의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고(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시공간을 살며 더러는 기억을 두려워하고 더러는 망각을 두려워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으로 공적인 기억과 기록으로서의 역사마저 흔들리는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역사가 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언론도 되고 정치도 되고 역사까지 하느라, 영화는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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