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대중문화 짚어주는 남자]

   
 

‘수방사.’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올린 건 서울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였다. 하지만 케이블 XTM 채널에서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수방사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수방사는 수컷인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빼앗긴(?) 자신만의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 아내 몰래 집을 개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서울을 지킨다면, 수방사는 남편의 공간을 지킨다는 설정인 것이다. 그렇게 4회에 걸쳐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2톤의 바닷물을 채워 넣은 낚시터, 40포대의 자갈이 깔린 캠핑장, 최첨단 컴퓨터에 방음 처리가 된 피시방, 그리고 타격 연습이 가능한 야구장이 그 공간으로 등장했다.

수방사는 (방송에도 나오듯) “첫회부터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다분한 프로그램이었다. 남편이 가족과 상의 없이 집을 개조하면서 오로지 수컷인 자신의 방을 사수한다며 인테리어를 바꾼다는 발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주거 공간을 더 쾌적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개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이 스스로를 약자로 자처하며 아내를 적으로 삼고 전쟁을 벌이듯 진행하는 태도 또한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어도 매우 고약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수방사는 (물의를 일으켰다기보다는) 남성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파일럿 방송 3회 만에 정규 편성을 확정지었다. 주 타깃 연령층인 25~44세 남성 시청률은 1회 방송 이후 열 배로 뛰었다. 남성 시청자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집에서 설 곳이 없다’는 수컷들의 의뢰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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