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3책] 예수 새로 보기 / 마커스 보그 지음 / 김기석 옮김 / 한국신학연구소 펴냄

교계 기자 시절인 1996년 4월초, 어느 신학대학 도서관 정기간행물 코너를 어슬렁거리다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최근호 표제에 꽂혔다. “Who Do Scholars Say That I Am?”(학자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표제 기사는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모임인 예수 세미나 소속 학자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신문 해외면에 그 기사를 번역해 소개했다.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로버트 펑크, 존 도미니크 크로산, 마커스 보그 같은 학자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후 틈나는 대로 그 학자들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 그들은 내가 예수와 관련해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 솔깃하면서도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그들의 급진적인 주장과 나의 오랜 믿음 사이의 심리적 거리 때문이었다. 특히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시신이 들개들에게 먹혔을 가능성을 제기할 때는 그의 책을 내던진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계속해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갖게 해준 책이 마커스 보그의 《예수 새로 보기》였다. 보그는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 중 비교적 온건한 편이다. 적어도 그는 보수적인 신앙인들의 귀를 크로산처럼 날카롭게 후벼 파지는 않는다. 이 책 초반에서 그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가 “신앙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임을 강조해서 밝힌다. 그가 말하는 역사적 예수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전통에 속한 사람, 즉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고서 당대의 문화적 세계에 도전했던 현자, 유대교 내부의 재활성화 운동의 창시자, 그리고 위기에 처한 세상을 향한 예언자였다.

보그는 예수가 당시의 유대 사회와 계속해서 갈등했던 주된 이유를 정치적 지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 유대 사회는 엄중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룩의 정치학”을 택하고 있었다. 유대 사회의 지도층은 거룩의 정치학이야말로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로마제국과도 불화하지 않으면서 그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은 무고한 죄인들을 양산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킬 뿐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에 근거해 “자비의 정치학”을 주장했다. 예수는 유대 사회가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롭게 되는 것뿐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자비를 예시했다.

유대 사회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수의 이런 주장은 사회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보그는 예수를 죽인 자들을 희화화하거나 조잡한 악인들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예수만큼이나 진지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제시하는 길이 자신들이 믿는 인습적인 지혜의 길과 너무 다르고 위험해 보여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보그는 넌지시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들은 어떠하냐고. 예수에 관한 온갖 가르침들을 쏟아내고 있는 당신들은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과 다른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느냐고.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 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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