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커버스토리]

밥의 부활
유월절 양 잡는 하루 전 닛산월 13일(성 목요일)에 이루어진 유월절 만찬에는 유월절 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조각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은 유월절 양을 잡는 14일에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 유월절 어린양은 ‘하부라’(밥상 공동체)에게 출애굽의 에너지를 주시는 특별식으로서의 밥이었으며, 문설주에 발랐던 그 피는 생명의 약속을 보증하는 언약의 피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밥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별세의 삶으로 탈출하는 에너지가 되며, 그분의 보혈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모두에게 영생을 보증하는 언약의 피가 됩니다.

그분의 몸 조각은 우리의 밥이 되어,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우리 안에서 온전한 그리스도로서 부활합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 주님의 생명 말씀은 이렇게 우리 안에 들어와 죽음을 비롯한 모든 얽매임에서 풀어줍니다.

대속을 의미하는 뤼트론(λύτρον)은 ‘풀다’ ‘자유케 하다’는 뜻의 뤼오(λύω)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이 단지 ‘대신 속죄하다’는 의미만을 포함한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누군가에게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속죄 제물이 될 경우 하나님은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율법주의자이심을 드러내고 자기처벌을 통해 스스로 대가를 지불한다는, 자승자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공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체다카’(צדקה)는 율법이 존재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부여되었던 ‘의’(義)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다 늙은 아브라함에게 모래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황당무계해보이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공감하는 것을 믿음이라 평가하셨고 그것을 “체다카”로 여기셨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구약학자가 동의하듯 체다카는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결코 율법의 완벽한 추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체다카는 범인(凡人)이며 신앙 초보자였던 아브라함에게도 가능했던 범주의 의였던 것입니다. 인간이 충족하기 불가능해서 하나님이 대신 완성해야 하는 완벽한 율법의 의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쏟으심이며, 결코 다함이 있을 수 없는 그 생명의 영원성은 부활로 다시 채워져 우리와도 함께하시는 영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대신해서 체현해 보이신 영생의 길입니다. 믿고 실천함으로 따를 수 있는 영생의 길입니다. 믿고 따른다는 것은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의 밥’이 되어 그의 죽으심에 참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말씀 안에서의 섬김과 실천을 통해 그분의 몸이 될 수 있으며, 말씀이신 그분의 몸은 부활과 영생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스스로 깨뜨려진 향유 옥합이 되었고, 그 향기를 마시는 자마다 다시 깨어질 향유 옥합이 되어 그분의 영원한 향기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박보영 시인이 잘도 말했듯, 비바람에 흩어지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혀도 향내만 낼 뿐인 꽃잎처럼 영생의 열매를 위한 십자가의 향기는 때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대속에 관하여 조금 더 덧붙이자면, 잠언 21:18에 오히려 “악인이 의인의 대속이 된다”고 했습니다. 악인의 악함을 품어주는 십자가적 섬김과 용서와 사랑을 통해 우리가 악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인신공희(人身供犧) 또는 제물적 대속의 충분한 대가성 공로를 힘입는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자유케 하는 영생의 길인 십자가를 따르는 섬김과 용서의 삶이 다른 이들의 밥이 되어, 날마다 그들 안에서 예수님이 부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밥의 부활이요, 사랑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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