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호 3인 3책]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두란노 펴냄 / 2012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대선 정국에서 교회가 엉뚱한 역할을 했다. 많은 국민들이 무너진 정의를 세워보겠다고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던 상황에서, 일부이기는 하나 교회 지도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났다. 연초에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들른 서점에서 팀 켈러가 쓴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얼른 집어 들었다.

켈러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는 대학 시절에 시민권 운동에 휩쓸리면서 정의에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만났던 백인들 대부분이 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했다는 것과, 자신이 곱지 않게 보아왔던 흑인들이 사실은 당연한 권리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들어간 신학교에서 한 흑인 학생과 가까이 지냈다. 미국의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중에 그 친구가 켈러에게 비수를 던졌다. “넌 어쩔 수 없는 인종차별주의자야!” 그는 켈러가 얼마나 백인의 관점에 물들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켈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이후 그의 뇌리에 정의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켈러에 따르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른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공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고 계신 일들의 핵심이다.” 실제로 “모세율법 조항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나날이 커지는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은 약자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정도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적 행동이 포함될 수 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나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을 끝장낸 게 구슬프고 감상적인 이야기들이었는가, 아니면 대단히 직접적인 정치 행동이었는가?”

켈러의 주장은 시스템에 관한 발언으로 이어진다. 그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채 바른 삶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정의를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우리 시대의 부정이 약자들에게서 기회를 박탈하고 강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한 심령 한 심령이 변화되면 사회도 변할 것”이라고 여기며 복음 전하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모자랄 만큼 순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법률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구조에 저항하고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켈러의 주장 중 흥미로운 것은 정의로운 행동의 원천에 관한 것이다. 그는 정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여긴다. 즉,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웃 사랑을 베풀기 전에 우선 그 사랑을 받아야 한다. 내내 적대시했던 분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아야 세상에 나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게 된다.” 그렇다면 혹시 오늘의 교회가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지 못하고 안으로만 침잠하는 것은 아직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이 책에서 켈러는 몇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은혜가 인간을 정의롭게 한다.”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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