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호 3인 3책] 리부팅 바울 / 김진호 지음 / 삼인 펴냄 / 2013년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그리고 독서모임 동료들과 함께 바울서신을 공부했다. 주로 복음주의권 학자들이 쓴 바울서신 관련 주석들을 읽었다. 한데 작년 이맘때쯤에 문득 비복음주의권에서는 바울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마침 다니던 도서관에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가 쓴 《리부팅 바울》이라는 책이 있기에 빌려다 읽었다.

저자는 바울서신을 교리가 아니라 그것들이 쓰인 상황의 측면에서 분석해 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바울의 활동 무대인 디아스포라 회당 공동체들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는 광활한 영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각 지역의 사적(私的) 결사체들에 의존했다. 그런 조직들은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안전망이자 복지센터였다. 디아스포라 회당 공동체는 그런 결사체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고, 그런 까닭에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개종’하여 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개종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디아스포라 회당 공동체의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율법을 앞세워 이방인 개종자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가난한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결국 율법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요구는 가난한 이방인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바울의 의인론이 그런 상황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즉 이신칭의는 신자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입어 구원에 이르는지에 대한 ‘진리 담론’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논쟁 담론’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에 관한 민중신학적 관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꽤 설렜다. 한데 이 원고를 위해 그 책을 다시 읽는 동안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주장 자체는 여전히 흥미로운데, 그런 주장을 위한 논거가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울서신의 최초 수신인들이 여전히 디아스포라 회당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전제한다. 과연 그랬을까? 만약 그 무렵에 이미 그들이 회당과 실질적으로 분리된 상태였다면, 따라서 그들의 회심 또는 개종이 회당에 소속되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저자의 주장은 모래성 같은 것 아닌가? 또한 저자는, 의인론 논의와는 별도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호기금을 전달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기금에 대한 요청을 받은 때로부터 실제로 그것을 전달한 때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그렇다면 바울이 전달한 돈은 긴급한 구호기금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그 돈이 로마에 맞서 일어선 묵시적 하나님 나라 운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종의 군자금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주장 역시 타당한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으나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결론에 이른 경우다.

신학에서 새로운 주장은 늘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주장을 대체하려면 충분한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성장한 나는 종종 비복음주의권의 낯선 주장들에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 또한 종종, 이번 경우처럼, 그런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논거 부족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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