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호 커버스토리]

정교회,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
한국에서 ‘그리스도교’를 지칭할 때면, 개신교와 가톨릭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교의 반쪽, 즉 서방교회 전통만 기억하는 동시에, 나머지 반쪽인 동방교회를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방교회만을 통해서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사실 그 기원이 동방에서 유래되었고, 근동 지방의 셈족 문화와 종교라는 토양에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서유럽과 신대륙으로 진출하기 전 혹은 거의 동시에 근동 지방의 여러 민족과 페르시아, 인도, 그리고 나중에는 동유럽의 슬라브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에게 전해졌고 심지어는 중국과 한국에까지 그 선교의 흔적을 남긴 동방교회였다. 이렇듯 교회 역사에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11세기 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전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각 전통이 지닌 특수성, 감수성의 차이, 인식과 실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본질적 일치 안에서 예배와 영적 삶을 서로 공유하고 교류해 왔다. 하지만 1054년의 분열 이후 두 교회가 각자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서방교회 역사에서 동방교회는 잊혔고, 한국에서는 그 존재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방교회가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초대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 전통을 2,000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보존하고 지켜 온 진리의 파수꾼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정통 그리스도 교회, 즉 정교회라는 명칭은 단성론(monophysitism,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실제로는 신성 하나만 있다는 주장-편집자)을 비롯한 이단들에 대하여 정통 신앙을 수호한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명칭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포함하여 사도들이 전해 준 정통 신앙 교리를 보존한 정통파 교회에 고유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후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면서 로마 교회가 스스로를 가톨릭교회라 부르자, 정통 그리스도교 즉 정교회라는 명칭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의 정통 그리스도 교회인 비잔틴 교회의 고유한 명칭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비잔틴 정교회는 발칸지역의 여러 민족들, 즉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그리스도교화 하고 이어서 장차 러시아 대제국을 이룰 슬라브 민족들을 그리스도교화 한다. 비잔틴 정교회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제국에 함락되면서 50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 아래서 생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비잔틴 정교회의 본질은 발칸 민족들과 슬라브 민족의 정교회 안에 뚜렷하게 새겨졌다. 이리하여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비잔틴 정교회의 영성은 비잔틴 제국의 경계 너머에서 그 찬란한 영화를 지켜 간다.

비잔틴 정교회의 선교는 하나의 동일한 사도적 신앙과 예배와 영성 전통을 바탕으로 하지만 각 민족의 문화와 감수성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 통일성과 다양성의 공존이야말로 정교회가 가진 또 하나의 놀라운 신비인데, 진리와 전통에 대한 강한 열정은 통일성을 만들어 내고, 그 전통을 표현하는 대담한 자유는 다양성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각각 독립된 정교회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들을 가진 민족들로 분리되어 있고 형식적인 면에서 자치와 독립을 누리지만, 내용 면에서는 공통된 신앙과 전례와 수도 영성으로 일치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정교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를 가든 그 민족의 고유한 감수성과 문화와 언어 속에 녹아 있는 동일한 신앙의 진리와 예배와 영성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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