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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논쟁’보다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세요”
[322호 커버스토리 ] 미국 메노나이트교회에 다니는 홈스쿨 10학년의 셀프 인터뷰
[322호] 2017년 08월 25일 (금) 13:47:04 허린 마운틴뷰 메노나이트교회 goscon@goscon.co.kr
   
▲ 미국 메노나이트교회를 다니는 필자. (사진: 허린 제공)

―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01년생으로, 현재 홈스쿨 10학년이에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살면서 메노나이트 교단 소속 목사인 부모님을 따라 마운틴뷰 메노나이트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부엌에서 좋아하는 요리책을 읽거나 완벽한 초콜릿칩 쿠키를 만들기 위해 조리법을 연구해요. 때때로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방에 누워서 시를 읽으며 소리 없이 울기도 해요. 국제 정의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요.

― 그동안 참여했던 성찬식 경험을 들려주시겠어요?
초등학교 때였어요. 주일마다 30여 명의 사람들이 작고 비좁은 우리 집에 모여 예배를 드렸어요. 예배 마지막 순서에는 꼭 성찬을 했고요. 성경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웃고 떠들면서 넘어질 듯 말 듯 방으로 들이닥치면, 어른들은 빈자리를 만드느라 서로에게 바짝 다가서야 했죠. 교인 모두가 큰 원을 만들고 조용해지면 아이들도 장난을 멈추고 성찬을 나눴습니다. 제 친구가 아토피가 심해서 밀가루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빵 대신에 찹쌀떡 같은 것을 떼었죠. 아빠와 다른 한 분이 찹쌀떡이 놓인 접시와 포도주스가 담긴 잔을 들고 서 있으면,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떡을 떼어 주스에 담갔다 꺼냅니다. 아버지는 떡과 주스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고 상기시켜 주셨죠. 그리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기다립니다. 모두가 주스에 담갔던 떡을 손에 들면, 동시에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기도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는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는 짧은 기도를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아래, 앞에, 뒤에, 옆에, 그리고 안에 계십니다. 평화 가운데 가십시오.” 그게 다였어요. 그리고는 성찬의 연장으로 점심을 함께 만들어 먹었어요. 아빠는 그게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이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제가 살아온 날들 중 대부분은 성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전혀 흥미로운 주제도 아니었어요. 초등학생 시절, 성찬은 어른들이 기도하고 묵상하는 동안 아이들끼리는 조용히 눈 장난을 치는 그저 판에 박힌 예배 순서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요. 힘들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고, 아이들에겐 그저 따라야 하는 어떤 것이었죠. 당시 제가 이해한 성찬은 단순히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어요.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성찬으로 우리가 함께하는 예배를 마친다는 것은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성찬을 통해 우리는 각기 다른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 함께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모두를 포용하는 성찬을 하기 위해 교회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게 우리 교회가 하는 방식이었어요.

― 성장하면서 다른 성찬식도 경험했을 텐데, 그 이야기도 들려주겠어요?
부모님이 새로운 교회로 청빙되시면서 교회와 성찬에 관한 제 관점도 변하게 되었어요. 그때가 홈스쿨 6학년 때였죠. 교인들도 이전 교회와는 180도 달랐고, 교회에 대한 저의 이해도 그만큼 달라졌어요. 젊은 한국인들로 구성된 가정교회를 할 때와는 달리 이 교회 구성원은 주로 백인 노인분들이에요. 저와 오빠, 동생을 제외하면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요. 대다수 메노나이트 전통에서 자라셨고, 오랜 기간 서로 알고 지내시는 분들이죠. 또 다른 점은 성찬을 한 달에 한 번 한다는 거예요. 성찬을 할 때 둥그렇게 둘러서지 않고, 일렬로 늘어선 의자에 앞 사람의 등을 보고 앉아있고요. 일어나 앞으로 나오기 힘든 분들 때문에 제 부모님이 접시와 잔을 들고 앉아 계신 분들 앞으로 가서 빵과 주스를 나누어 드려요. 이분들에게 빵과 주스는 개개인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없고 조용하죠.
모든 메노나이트교회들이 다 이전에 다니던 가정교회와 같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어요. 성찬의 형식과 의미가 교단마다 다르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요. 어떤 교회들은 세례 혹은 침례 받은 사람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대요. 또 어떤 교회들은 한 달 혹은 1년에 한 번 성찬을 하는데, 와플과 조그만 주스 컵들을 사용한다고 해요. 성찬의 의미도 교회가 갖고 있는 가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해요. 메노나이트교회의 성찬을 서술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지역교회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메노나이트교회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제게 새겨진 성찬의 의미와 형식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메노나이트적일지도 모르겠어요.

― 메노나이트교회에서 성장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성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제가 참여하는 교회에서 성찬의 목적은 각각의 개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성찬을 문자 그대로 이해합니다. 영어 ‘communion’(성찬)과 ‘community’(공동체)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고, 그 의미는 ‘교제’ ‘연합’ ‘함께함’ 등인데요. 거기에 기초할 때, 성찬은 모든 교인이 함께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도록 돕는 의식이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그래요.

   
▲ 성찬의 연장 식사(potluck). potluck은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와서 나누는 식사다. (사진: 허린 제공)

― 누가 성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최소한의 자격요건 같은 게 필요할까요?
개인적으로 제가 믿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알고 그 신앙의 표현으로서 성찬에 참여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 앞에서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 같은데, 전에 가정교회에서 성찬을 할 때는 아빠가 잔과 접시를 들고 초대를 하셨어요. “오늘 말씀에서 나누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고요. 성찬의 참여 자격 여부는 성도들 개인의 선택이 된 거죠.

― 지적장애인들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지적장애가 있다면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인식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는 이들이 성찬에 참여해도 되는 건지 종종 논쟁하는 것 같아요. 전에 어떤 부모님이 자기들의 자녀가 하나님을 영접하기를 너무 원해서 그 자녀에게 목사님이 물어보면 무조건 “예”를 하라고 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그게 신앙은 아니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어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이 하나님을 정말 모를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셔서 그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실 수 있다고 믿어요. 지적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이 하나님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그분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 LGBTQ+와 사회적 약자들은 성찬에 참여해도 될까요?
솔직히 말해서 이 주제가 어떤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저같이 젊은 세대에게는 꽤 불만이에요. LGBTQ+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건, 교회에서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더 불경건한 것 아닌가요? 만약 이 주제가 어떤 사람들에겐 ‘생명을 좌우하는’(make or break) 것이라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종종 기독교인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성적 지향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 같아요. 어쨌든, 만약 어떤 사람이 교인이 되어 성찬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그들이 거절당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포용(inclusion)과 평화에 강조점을 두는데요. 이것은 공동체의 중요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성찬은 단지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만 일어나는 어떤 것인가요,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어떤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건가요? 사실, 지금 저는 깊은 공동체 삶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성찬이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그에 대한 기대도 없어요. 공동체가 없는 교회와 성찬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공동체 없는 교회와 성찬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제가 어렸을 때는 친밀한 공동체의 일부로 성찬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을 몰랐지요. 이제 좀 자라서 성찬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공동체의 부재를 느껴요. 성찬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채 자랐는데, 이제는 진정한 공동체의 성찬에 목이 마른 거죠.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할 때, 그저 재미있고 신선한 방식에 집중하느라 얄팍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으면 좋겠어요. 성찬과 같이 이미 교회 안에 존재하는 전례와 실천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세요. 성찬에 대한 논쟁이 아닌 의미 있는 전례를 통해 우리가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 친교를 누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게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 아닌가요?

※ 원고는 영어로 쓰였으며 필자의 아버지 허현 목사(마운틴뷰 메노나이트교회)가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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