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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와 회심
[324호 교회 언니, '종교와 여성'을 말하다]
[324호] 2017년 10월 27일 (금) 15:31:41 양혜원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저자 goscon@goscon.co.kr

공부를 늘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맥을 잡으면 깊이 매료되곤 했다. 특히 나를, 인생을 설명해주는 글을 만나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 한참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그 공부의 맥을 두 번이나 끊었다. 대학 졸업 때 학부 논문상을 받았는데, 그때 학과장님은 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느냐고 하셨다. 학부 졸업 논문은 다분히 형식적인 거라 다들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한 논문에 그래도 상이 주어질 정도의 정성을 들였다는 건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한 잘 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하신 질문이었을 것이다.

공부를 더 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불문학은 내 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분과가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는 더 하고 싶은데, 무엇을 더 공부하고 싶은지 분과를 정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로 그냥 회사에 취직하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8년 후,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박사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석사 종합시험도 다 치고 논문을 준비하다가 그만두었다. 당시의 가정 상황이 공부를 더 이어가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다른 거 다 제치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딱히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8년이 흘렀다. 아마도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기까지의 16년은 이것이 내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글쓰기, 몸으로 공부하기
2013년에 작고한 일본의 소설가 타카하시 타카코(高橋たか子, 1932-2013)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거나 글을 쓸 때, 그 과정에는 나의 온 몸이 관여합니다. 저는 이게 남성 작가의 접근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때에도, 그 지적인 구성에 육체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서구의 지성사에서 몸은 언제나 열등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도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들은 몸과 분리될 수 없는 일들이고 이러한 일들을 마치 본능처럼 해내는 여성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자연의 상태에 자주 비유되곤 했다. 그러나 타카하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교토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았다. 범상한 여성들의 삶과는 다른, 어떻게 보면 그나마 (엘리트) 남성이 누리는 삶에 비교적 가까이 간 것 같아 보이는 이 여성도 자신의 글쓰기 작업에 몸이 개입한다고 했다. 물론 그도 남편과 같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남편이 먼저 작가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여러 가지 임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남편이 성공하고 난 후에는 한편으로는 자기 글을 쓰면서도 옆에서 ‘아내의 역할’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남편이 서른 후반의 이른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을 때는 옆에서 극진히 그를 간호했다. (발병 1년 만에 남편은 결국 사망했다.)

남성들이 하는 일이 다 몸과 분리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타카하시가 말하듯, 같은 것을 말해도 남자가 말하는/쓰는 것과 여자가 말하는/쓰는 것에는 무언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여성 산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내던 아이를, 겸자를 사용해서 꺼내며 거기에 의술과 과학의 이름을 붙이는 게 남자들의 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여성들이 몸의 경험을 가지고 사유하는 것은 사소하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남성들이 어려운 말로 풀면 몸철학이 되는 식이라고나 할까. 여성이 하는 철학은 난해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대상을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성차보다 개인차가 클 수도 있고, 그래서 내 공부 방식이나 사유 방식이 반드시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취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머리로 알 때는 작은 기쁨을 느끼는 반면 그것이 삶과 통할 때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삶과 통하는 앎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믿는가
흔히 ‘박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것에서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양가적인 감정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한편으로는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박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박사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구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박사는 더 이상 누가 이러더라 저러더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다라고 말하고 그 근거는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그 근거로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끌어오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입장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입장은 지적 확신인 한편 믿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에도 여러 가지 입장이 있고 이론들이 있다. 박사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는 그러한 여러 입장들을 섭렵하는 위치였다면, 이제는 그중에서 나는 어떤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했다. 물론 그러한 입장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무게가 달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 이론/주장을 가지고 밥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믿는가. 그리고 내가 믿는 게 뭔지 아는가. 이것은 단지 성경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아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삶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래서 그것이 인간에 대한 나의 신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 앎과 신념은 한 번 정하면 그대로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때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박사는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의 지도교수는 매우 해박한 분이셨지만, 자신이 연구한 선에서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나머지는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공부를 해보니 그분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다. 그래서 오히려 공부하기 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말하게 된다.

한편 내가 믿는 것을 안다는 것은, 편견을 포함한 나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여기에는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욕망과 나 자신도 읽지 못할 수 있는 복합적인 정치적 관계들과 문화적인 의미의 망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복합적 지형과 상관없이 나는 순수하게 이것을 알고 믿고 표방한다고 말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러한 연구자의 입장과 위치에 대한 성찰은 여성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여성주의는 여성주의 내부의 문제에 칼을 들이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차별 극복이라는 힘겨운 싸움에서 안 그래도 늘 역풍을 맞기 바쁜데, 내부 분열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버틀러를 다시 만나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는 알다시피 동성애자이다. 그는 퀴어 이론의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젠더 트러블》(문학동네)을 다시 읽으면서 어려운 이론이 아닌 개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왜 이 세상은 이성애 규범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가. 그것이 진정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면, 동성애자인 그는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으며, 문제적인, 결함을 지닌, 비정상적인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했다. 삽입 중심의 성 논의는 레스비어니즘, 즉 여성 동성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80년대부터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논의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흑인 여성과 노동 계급 여성들의 페미니즘 논의가 발전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어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범주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범주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의 반복적인 젠더 행위를 통해 물리적인 몸과 여성이라는 개념적 범주가 마치 동일한 것인 양 자리잡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아예 해체했다. 그것은 여성주의 정치학에 위협이 되는 행위로 여겨졌고, 또 그만큼 비판도 받았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퀴어 이론 자체보다는 그가 자신의 존재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믿는 것을 아는 것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내가 그의 이론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보다는 그 이론에 동의하게 만드는 혹은 유보적이게 만드는 나 자신의 위치와 신념은 무엇이냐를 묻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이론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그 옆에 같이 줄을 설지 말지는 나 자신이 아는 것과 믿는 것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박사 시험과 박사 논문은 그것을 보는 과정이다. 많은 이론을 꿰는 걸 보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너는 어떤 입장이며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주장하느냐를 본다. 나 개인의 특성일 수 있지만, 나는 이 관문을 통과하면서 내가 정말로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을 느꼈고, 그만큼 부담도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여성주의가 더 깊이 삶의 문제로 다가왔고, 이념을 벗어나 여성 자체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념을 벗어날 용기를 얻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의 테두리를 벗어나다 
1948년 C. S. 루이스는 성공회 내의 여성 안수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도로시 L. 세어즈에게 당신만큼 문학적 자질과 평판이 확실하고 변증의 능력을 가진 성공회 여성도 없으니 부디 이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하나 써달라는 편지를 썼다. 그는 세어즈도 자신과 같은 입장일 거라 생각했다. 이에 대해 세어즈는 자신의 입장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고 하면서, 사제가 예수를 대리하는 역할이라면 각본상 남자가 그 “배역”을 맡는 게 더 적합하겠지만, 예수가 남성이 아닌 모든 인류를 대변하는 한 여성 안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블레셋의 딸들”이 이러한 자기 입장을 엿듣지 못하게 조용히 있는 게 자기로서는 최선이라고 했다.
세어즈는 페미니즘으로 표방되는 것들과 거리를 두었는데, “‘여성의 관점’ 하면서 요란을 떨면 떨수록 여성의 관점은 다르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데, 솔직히 나는 여성의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직업의 경우는 그렇다”고 했다. 탐정물 작가였던 세어즈는 이성(理性)의 차원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다고 보았고, 그 이성에는 성별이 없다고 보았다.

한편 박완서 선생도 페미니즘을 지지하기보다는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휴머니즘의 입장이었지만, 세어즈와는 달리 남자와 여자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흥미롭게도 공지영 작가나 타카하시 타카코도 모두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입장이다. 세 사람 모두 페미니스트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쓴 유교 문화권 여성들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입장에는 다분히 서구와는 구분되는 여성들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적 문화적 경험만큼이나 개인의 경험도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 정리에 큰 몫을 한다.

학생운동 이력이 있는 공지영은 자신이 딱히 페미니스트 소설을 쓰려고 해서 쓴 게 아니라 당시의 여성들이 약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대변하는 글을 쓴 거고, 그것이 노동자나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었다면 마찬가지의 글을 쓸 거라고 했다. 그는 남성과 같아지려는 경쟁 모델로서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고 가장 여성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반면에 타카하시는 작품에서 여성들 간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부정적인 묘사가 많았는데, 간혹 제시하는 우호적인 관계도 성차별이라는 여성들의 공통 경험에 기반한 여성 연대의 표현이기보다는, 개인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종교적인 여정에 있는 사람들이 맺을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표현이었다고 한다. 박완서 선생은 가족을 단순히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서 이루는 집단이 아닌 유교의 가르침에 기반한 영적인 양육 공동체로 보았고, 따라서 그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조화롭고 책임 있는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처럼 비슷한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자신이 택하는 입장에 대한 설명은 다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성차별 혹은 억압을 정치적 여성 주체 형성의 중요한 기반으로 보았다. 인종, 계급, 문화, 역사, 경제 및 정치 구조, 성적 지향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해온 그리고 경험하는 억압의 역사가 있다고 보았고 그것이 여성주의 정치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보았다. 나아가서 비슷하게 억압을 경험하는 다른 소수자 그룹들과 연대를 해나갔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집단과는 거리를 두는 여성들을 보면 거기에는 그들과 동질적 그룹으로 엮이려 하지 않는 저항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그룹에 대한 편견으로 여성 개인을 보는 오류를 계속해서 지적했다. 여성을 무엇보다도 잠재적인 어머니이자 아내로 보고 그밖의 사명이나 개인적 욕망은 없는 것처럼 모든 여성을 대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제 역으로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을 잠재적 페미니스트로 보고 또 하나의 동질 그룹으로 엮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위의 여성들을 연구하면서 하게 된다. 또한 열혈 페미니스트인 싱글 중산층 백인 여성친구가 속으로는 은밀하게 다른 유색인종 여성들로부터 역차별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차이에도 불구하고’를 주장하는 여성주의 정치학의 현실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념은 구원의 약속도 없이 사람을 금욕주의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각자가 풀어야 할 개인의 아포리아
페미니즘이 갑자기 화두가 되면서 모든 사람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한마디 하거나 무엇을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나 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페미니즘이 공부로 알 수 있는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동성애를, 이혼을, 낙태 등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러한 질문은 그것이 자기 삶에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들이 물을 수 있는 질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인 사람이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고 있겠는가. 자기 존재의 문제를 끌어 안고 버틀러처럼 씨름하면서 ‘살지’ 않겠는가. 이혼이 현실로 다가온 사람이 이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겠는가. 앞으로 먹고 살 문제와 친구 및 친지 관계와 사회적 평판과 자녀의 안녕을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지 않을까. 어찌어찌하여 덜컥 생긴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여성이 낙태에 대한 자기 입장을 정리하고 있겠는가.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기 자신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라고 반드시 이혼, 낙태 등을 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택했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념은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문학이 이념 그리고 종종 종교와 거리를 두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해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존재의 문제를 끌어 안고 씨름하지 않은 사람이 몇 권의 책으로 공부한 페미니즘으로 과연 얼마나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몇 달 전에 했던 ‘교회와 여성’이라는 강의에서 어떤 남성이 내 강의가 남성들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직한 질문이다. 나는 내가 남성으로 살지 않아서 그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나도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다면 왜 가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남성이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을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 앎을 묘사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남녀의 성관계를 묘사하는 단어와 같다고 들었다. 만약에 페미니즘이 이 앎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게 모든 사람의 도구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 삶의 아포리아(aporia․난제), 즉 매듭은 자신이 풀어가야 하고 거기에 도움이 되는 여러 도구를 가져다 쓸 뿐이다. 

 

양혜원
본지 해외편집위원.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1997년부터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존 스토트, 톰 라이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 주요 기독교 저자들의 책을 번역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올해 9월부터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진 피터슨 읽기》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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