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호 스무 살의 인문학]

▲ "알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의 육체성을 두고 타인의 시선과 협상합닌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낙원의 아담과 하와>(1533).

영원한 회귀
인간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태를 가르며 태어난 그는 울부짖으며 어머니와의 철저한 분리를 선언하지만, 그 연약한 육체는 갓 맞이한 실존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생명과 실존의 그 광활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사고와 이념을 파악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언어와 사고와 이념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만, 어떤 사람도 방금 태어난 인간에게 그것들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그는 다른 사람이 준 음식조차 먹을 수 없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옷을 입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는 인간이라도 입을 수는, 최소한 입혀질 수는 있습니다. 의복을 통한 모방은 인간이 생명에서 실존으로 내딛는 첫 걸음이며, 한 인간의 사회화라는 장대한 서사시의 첫 구절입니다. 어머니의 태를 갈랐던 패기는 간곳없고 다른 이들을 감쌌던 강포에 뉘인 어린 인간은 몸을 감싼 사물을 거부하지만 이내 그것와 사랑에 빠지고 집착합니다. 옷과 이별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기억을 더듬으면 먹지 않은 하루, 잠들지 못한 하루는 찾을 수 있으나 한 올의 옷도 입지 않았던 하루는 좀처럼 떠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나지만, 출생은 곧 ‘옷’이라는 또 다른 자궁에의 영원한 착상을 의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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