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호 3인 3책] 톨스토이 단편선 / L. N. 톨스토이 지음 / 박형규 옮김 / 인디북 펴냄 / 2003년

부모님이나 인생 선배들이 우리 인생에 도움을 주고자 어떤 충고를 해줄 때 “왜요?”라고 물으면 그 이유를 명확히 듣기란 쉽지 않았다. 간혹 “그 이유는 말야~”라며 성의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해” 아니면 “어허, 일단 해보라니까!” 정도로 반응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도 꼴불견이지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귀찮거나 할 말이 없어서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누군가 “왜요?”라고 내게 묻는다면 ‘내 생각을 제대로 세세히 알려주리라!’ 결심했었다. 상대가 행동하길 원한다면 자세히 설명하는 게 늘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세상엔 설명 없이 해야 할 일들과 행동 후에 이유를 알게 되는 일들도 있었다. 또 누군가 (내가 원하는 대로) 상세히 자기 생각을 알려주니 오히려 일의 의욕이 떨어지고 지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피실험자인 내 아이들을 보면, 이유를 알려줘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고 가르쳐주려 하면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물론 부모의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지만 먼저 행동했을 때 납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전이다! 그래서 스스로 물었다. 언제나 모든 설명이 납득과 행동의 동기가 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있는가? 개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한쪽으로 치우친 ‘정답’만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고민과 더불어 교회를 생각해본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작정 믿는 분위기에 설득력이 떨어져서, 혹은 지적인 갈망을 채우기 위해 교회는 ‘알려주기’ 시작했다. 귀납적으로 성경을 연구/파악하여 설명하고, 그분과 나와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일들이 주를 이루고, 예수를 믿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말이 더 잦아졌다.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먼저 행동하길 독려하고 혹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단순함도 함께 가야지 않을까?

《톨스토이 단편선》은 평소 농민들의 소박한 삶과 생각에 매료된 톨스토이가 농민들을 위해 쓴 우화들을 모은 책이다. 회심 후 내세보다는 이 땅에서의 실천적인 구원에 관심이 많았던 톨스토이는 너무 복잡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거역한 죄로 인간 세상에 떨어진 천사가 자신을 도와준 가난한 농민 부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평소 예수님 만나기를 소망하던 구두 수선공이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이웃들에게 기꺼이 사랑을 나누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등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이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소박한 사람들(주로 농부들과 그 가족)의 삶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을 생각하고(책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라고만 나온다) 그냥 사랑을 행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그 단순한 생각과 실천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움직였다.

너무 명확하고 너무 단순한 것은 성의 없어 보일 수도, 반감을 일으킬 수도, 무엇보다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 경우도 언제나 옳지만은 않다. 복잡하고 세세한 설명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설명 없이 ‘그냥’ 하는 행동도 종종 필요하다. 말은 많지만 사랑과 실천은 없는 기독교에 실망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천지삐까리’고, 어떤 복잡한 말과 설명보다 톨스토이의 이 단순한 우화 속 주인공들의 행동이 하나님을 더 믿고 싶게 만드니까.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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