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에디터가 고른 책] 감탄과 가난 / 모리스 젱델 지음 / 이순희 옮김 / 성바오로 펴냄 / 15,000원

묵직한 책 제목에 먼저 끌렸고, 저자의 ‘신비한’ 이력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저자 모리스 젱델(1897-1975) 신부는 철학박사이자 시인이다. 전례 전문가이자 ‘신비가’로도 불린다. 책은 1963년 룩셈부르크의 베네딕토회 수녀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인데, 말하려는 바가 매우 보편적이어서 큰 이질감 없이 읽혔다.

“그리스도교는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가 복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길을 가던 사람이 우연히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존엄에로의 초대, 인간의 위대성에로의 초대입니다.” (23쪽)

거의 모든 인류가 ‘갑질’ 횡포에 노출된 이때, 존엄으로 초대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교회가 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노동자 계급이 교회를 회피하는 것은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노동자 아닌가요? 이처럼 교회의 사제나 주교가 특권을 가진 이들, 예컨대 왕을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통행증을 발급해 주는 사람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복음의 중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51쪽)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예수처럼 가난의 신비, 자아 포기의 신비, 헐벗음의 신비로 가는 길뿐이다. 이를 설명하며 저자는 ‘삼위일체’ ‘신성과 인성’ ‘교회론’ 등 신학 교리를 인류의 보편적 소명과 촘촘하게 연결 짓는 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교황 무오설’ ‘성체성사’ 등에 관한 역설적 해석도 접할 수 있어 유익했다.

“글을 모르는 여인일지라도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성체를 영해 주는 사제보다 훨씬 더 뜨겁게 주님과 일치할 수 있으며, 공의회의 메시지나 교황청의 결정을 교황이나 주교들보다 더 깊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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