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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어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당신들, PK
[334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2014)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6:10:53 최은 goscon@goscon.co.kr
   
 

사람들은 그에게 ‘주정뱅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피케이(아미르 칸)는 외계에서 왔습니다. 도민준(〈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나 무려 ‘신(김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깨비(〈도깨비〉의 공유)처럼 사정상 21세기 지구에 잠시 표류하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들만큼 폼 나거나 우아하지는 못했죠. 벌거벗은 채 말도 못하는 상태였거든요. 그나마 변태 색마라는 오해 끝에 한 여성의 손을 여섯 시간 붙들고 앉아 밤을 새면서 피케이는 힌디어를 ‘입력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하게 되자 이 남자는 신이 자신을 잘 알아보게 하겠다고 노란 안전모를 쓴 채 노란 색 종이에 “신을 찾습니다”라고 쓰인 전단지를 돌리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고 다녀요. 신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요. 본디 그의 행성에서는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언어도 이름도 필요 없다는데요. 여하튼 사람들은 그를 ‘피케이’라고 불렀습니다. 힌디어로 ‘술 취한’이라는 뜻인 모양입니다.

피케이를 흥미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방송국 말단 기자 자구(아누쉬카 샤르마)입니다. 자구는 벨기에 유학시절 파키스탄 청년 사프라즈(서샨트 싱 라짓트)와 안타까운 이별을 한 후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귀국했어요. 인도의 상류층 여성과 가난한 파키스탄 무슬림 남성의 사랑이었습니다. 자구의 부모가 추종하는 힌두교 사제(사우라브 슈클라)는 일찍이 사프라즈가 자구를 배신할 거라고 예언을 했죠. 어릴 때부터 의존해 온 종교와 신은 자구에게도 큰 근심이었습니다. 물론 절대 권력인 그 사제도요. 그런 자구의 눈에 피케이가 들어왔던 거지요. 영특하고 천진한 얼굴로 쉴 새 없이 신과 세상에 관해 엉뚱한 질문들을 내쏟는 피케이는 자구가 취재 중이던 우울증에 걸린 강아지보다는 확실히 핫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자구는 피케이를 힌두교 사제와 함께 방송에 출연시킬 결심을 합니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2014년 인도에서 제작된 영화입니다. 〈세 얼간이〉(2009)로 잘 알려진 배우 아미르 칸이 주연했습니다.

   
 

잘못 알려진 번호, 잘못 전달된 편지
그런데 지구에 알몸으로 떨어진 외계인이 왜, 어떻게 신을 찾아 나서게 되었을까요? 탐사를 위해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피케이는 우주선을 다시 부를 수 있는 리모컨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누군가 훔쳐서 달아났기 때문이죠. 리모컨의 행방을 묻고 다니는 이 이상한 남자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신에게 물어보라”고 하거나 “신께 기도하라” “신이 도우시길” “내가 신이냐?”라고 답합니다. 피케이는 그래서 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믿고 찾아 나섭니다. 그 와중에 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모든 신을 다 믿어보기로 하죠. 어떤 신이 도와줄지 모르니까요. 피케이의 지구 여행은 그때부터 오로지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됩니다. 존재의 근원을 향해 길을 찾는 것. 말 그대로 ‘구도’(求道)의 은유입니다. 길 잃은 외계인의 시선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를 낯설게 보는 거지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보던 피케이는 잘못 걸린 전화를 장난으로 받아치는 자구를 보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신에게 거는 전화번호가 잘못되었는데 누군가 중간에 장난을 쳐서 계속 그 번호로 전화하도록 한다고 말이지요. 장난질하는 그들은 바로 ‘종교’라는 외양을 강요하는 이들입니다. 진짜 신이라면, 진짜 아버지라면, 자신의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땅을 몇 번 구르라고 시키지 않을 거라고 피케이는 말합니다. 진짜 신이라면 또 우유 수백 통으로 목욕을 하고 오라고 말하지도 않을 거라고 하지요. 당신의 수많은 굶주린 자녀들에게 그 우유를 나누어주고 오라고 하겠지요. 피케이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고 난 후 방송국에는 “Wrong Number”에 관한 신도들의 제보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결국 자구는 피케이와 사제를 생방송 ‘끝장토론’에 나란히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피케이는 두 종류의 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편협하고 뒷돈을 받고 헛된 약속을 하고 부자들은 빨리 만나주고 가난한 사람들은 기다리게 하는” ‘인간이 만든 신’ 대신 ‘우리를 만든 신’을 믿겠다고 선언을 하지요. 궁지에 몰린 사제는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의 신을 지킬 방법을 알아”라고 말합니다. 두둥. 신을 지키다니요? 피케이가 다시 묻습니다. “우주에는 지구보다 큰 행성과 은하계가 수도 없이 많은데, 이 작은 곳에 앉아서 우주를 창조한 신을 당신이 지켜주겠다고요?” 고백하자면, 이 대목에서 살짝 은혜 받을 뻔했습니다. 쿨럭.

우리가 하나님을, 교회를 ‘지킬’ 수 있을까?
사실 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한 편의 유쾌한 풍자극이고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자구는 피케이가 지구에서 뭔가를 배웠고, 또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하는데요, 인도 영화답게, 인물들이 갑자기 부르는 노래 중 “사랑은 시간 낭비”라는 노래가 있어요. 자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들키자 피케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시간을 낭비할 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말하자면, 피케이는 이 행성에서 거짓말하는 법을 배웠고, 지구인들에게는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을 무엇이라 부르든, 지금 우리에게도 우리의 PK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예멘에서 온 사람들이라든지, 제주도에 온 이방인들이라든지, 난민 가족들이라든지….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아직 ‘입력’하지 못해서, 혹은 입력해줄 손 하나 붙잡지 못해서 엉뚱한 걸 자꾸 물어올지 모르는, 어쩌면 백지 상태로 우리별에 온 손님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주정뱅이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가 ‘성범죄자’와 ‘이교도’와 ‘테러범’으로 이름 붙인 그들이 혹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그들의 질문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그 질문들이 구구절절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요?

반면 질문을 듣기도 전에 답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들로부터 교회와 하나님과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이들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의 두려움이 창조주 하나님을 지켜 낼 수 있을까요? 피케이의 질문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지킴’을 필요로 하실까요? 아니, 원하기는 하실까요? 마침 오늘은 교회를, 엄격하게 말하자면 교회의 ‘명성’을 지키겠다고 교회법도 하나님의 법도 무시한 어느 교단 총회 재판국의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교회의 ‘깨어짐’은 뭘까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쌓아놓은 재물과 기업체일까요, 자존심일까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식의 천박함과 한국교회의 바닥을 드러내는 사건들을 연일 마주하고, 고민이 깊어집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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