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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그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 자유와 춤, 그리고 조르바
[335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희랍인 조르바〉(1964)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7:32:03 최은 goscon@goscon.co.kr
   
 

“일이야 당신 바라는 만큼 해주겠소… 하지만 산투르(악기) 말인데, 그건 달라요… 분명히 해 둡시다. 나한테 강요하면 그 때는 끝장이에요.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중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의 주인공 그리스인 조르바는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희랍인 조르바〉에 나오는 앤서니 퀸을 보고 나면 각진 얼굴에 건장하고 우직해 보이는 그가 아닌 다른 조르바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죠. 도자기 만드는 데 자꾸 방해가 된다고 제 손가락 하나를 도끼로 찍어 내는 성질의 사내라면, 그 정도 가슴팍과 근육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되어버리는 거라고나 할까요.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아.”

1964년 영화 〈희랍인 조르바〉(마이클 카코야니스 감독)는 ‘나’(앨런 베이츠)의 여행으로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인 ‘나’는 아버지가 남긴 갈탄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떠나는 길이었어요. 배를 타기 직전 ‘나’는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하는 키 큰 사내 조르바(앤서니 퀸)를 만납니다. 조르바는 샌님 같은 ‘나’와는 여러 모로 대조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광부에서부터 참전 군인, 잡상인 등 허다한 세상 경험을 갖고 있고, 호탕하고 술과 여흥(과 여자)을 즐기는 데도 스스럼이 없습니다.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나’에게 조르바가 말합니다.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해요. 그게 문제예요.”

원작에서는 그 출발이 약간 다릅니다. 크레타로 여행을 떠나기 전 화자인 ‘나’는 바로 그 항구에서 절친한 친구와 이별을 경험하는데요. 친구는 “위험에 처한 동포들을 구하러” 카프카스로 가면서 주인공에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나’는 그의 요청을 외면했지요. 친구가 돌아서며 차갑게 말합니다. “다시 보자, 이 책벌레야!”

“책벌레” “자네는 설교에나 소질이 있지” 이런 말들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팠겠지요. 주인공이 신화와 거짓말과 욕망의 섬 크레타 행을 결심한 것은 그러므로 다소 충동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갈탄 광산을 임차하고 무작정 떠나기로 하지요. 몸으로 부대끼는 일도 좀 하고, 사회주의적인 이상과 자본의 미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기도 했고, 여튼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이요. 그렇다고 해서 쓰고 있던 글과 책들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책벌레’답게 주섬주섬 미완성 원고를 가방에 챙겨 담습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고, 카잔차키스가 멋지게 써두었군요.

이처럼 갈탄 광산 사업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음을 염두에 두고 있자면, 비로소 영화에서 주인공이 조르바의 기행과 낭비에 대해 어떻게 그토록 너그러울 수 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의 실수와 사업 실패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겠지요. 

   
 

신드바드와 책벌레의 모험: 그 섬에서 그들이 본 것
조르바는 그렇게 광산의 책임자가 되고, 섬에 도착해서 곧 사업에 착수하는데요. 수도원 소유의 숲을 매입해서 광산의 목재를 충당하고 목재소 사업까지 병행한다는 원대한 목표도 새로 생겼습니다. 숲에서 목재를 내리기 위해 고가 케이블을 설치하는 것이 관건이었지요. 한편 일을 마친 저녁에는 자유롭고 충만한 사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르바는 곧 마을 여인숙의 주인인 호텐스 부인과 연을 맺습니다. 카바레 무용수였던 그녀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의 제독들과 동시에 사랑에 빠졌던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는 여인입니다. 조르바는 터키에 맞서 싸운 여성 영웅의 이름을 따 ‘나의 부블리나’라고 부릅니다.

‘나’에게도 마음이 가는 여인이 생겼습니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젊은 과부예요. 이 여인은 마을 모든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입니다. 특히 스무 살 청년인 파블리는 그녀를 공개적으로 갈망했는데요. 그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도 미워하는 거라고, 조르바가 알려줍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그들의 희망과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크레타섬에서 그들이 본 것은 인간의 욕망과 추함이었지요. 가장 먼저는 그들이 숲을 매입한 수도원과 수도승들의 탐욕과 비리가 있었고요. 부블리나와 젊은 과부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은 특히 절망적입니다. 죽어가는 부블리나의 집 앞에 모여 마을 사람들은 임종만을 기다립니다. 가족 없는 이 이방인 여인의 재물과 음식과 가재집기들을 노렸던 거죠. 이교도인 그녀에게는 최후의 미사를 베풀 명분도 자비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젊은 과부의 최후는 또 어떤가요. 그를 연모하던 파블리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진 이후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는 이 여인에게 집약되어 결국은 그를 돌로 치고 목을 베는 참사를 일으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한참 미사를 드리고 있는 교회의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예요. ‘정조’를 버린 과부 여인에게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기도 하구요.

춤이 ‘나’의 언어가 되다
이 모든 일의 끝에 케이블 가동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사제가 세 번이나 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을 타고 내려오는 통나무는 그들의 꿈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맙니다. 실패였던 거죠. 굉음과 함께 위력적인 폭파의 순간이 오자 모두가 혼비백산 도망하고 조르바와 ‘나’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그 마지막 순간에 웃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지요. ‘나’가 먼저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조르바에게 춤을 추자고, 춤을 추어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춤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던 것이 인상적입니다. 언젠가 조르바는 자신의 세 살바기 첫 아이가 죽었을 때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춤을 출 수 밖에 없었어요. ‘나’가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도 그는 춤을 췄죠. 그에게 춤은 가장 자유로운 언어였습니다.

이 영화 〈희랍인 조르바〉에서 앤서니 퀸이 큰 몸을 움직여 춤사위를 시작하고, 이내 둘이서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영화사의 명장면입니다. 카메라가 하늘 저편으로 물러나고 마침내 해변에 두 사람이 작은 두 개의 점으로 남아 흔들리기까지 화면은 그들을 놓지 않죠. 신의 눈으로 본 피조세계의 작은 점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그렇게 손을 붙잡은 채 흐느적거리고 있습니다.

신을 ‘똑똑한 악마’ 쯤으로 여겼던 그리스 사람 조르바의 믿음을 따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모든 종류의 절제가 미덕이 아니고 위선이며 회피라고 조롱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험한 풍상과 고통을 겪은 끝에 조르바가 도달했던 자유와 춤의 언어를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나’인가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머리로 꾸는 많은 꿈과 당위로 습득한 자비의 ‘말과 말들’에 지칠 때면, 끝내 도망치지 않고 주저앉지도 않고 그대로 해변에 남아 춤을 추던 조르바와 ‘나’를 떠올려 보아야겠습니다. 그 인간다움과 자유로움을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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