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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갑질’에 대하여
[332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스탠리의 도시락〉(2012)과 〈우리 선생님을 고발합니다〉(2016)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6:34:51 최은 goscon@goscon.co.kr
   
 

한심한 식탐 대마왕, 〈스탠리의 도시락〉
스탠리(파토르 A. 굽테)는 재주 많은 소년입니다. 얼굴에 멍이 들어 등교한 날 걱정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스탠리는 시장에서 만난 건달들과 싸웠다며, 실감 나는 영웅담을 연기해서 한바탕 웃음을 줍니다. 하지만 아이가 얼굴에 멍이 들어 등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게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스탠리는 빵을 사 먹으러 간다며 슬쩍 사라집니다. 어느 날 스탠리는 수돗가에서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친구에게 들키고 마는데요. 친구들은 스탠리를 놀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자고 말합니다. 한데 의외의 복병, ‘식탐대마왕’ 베르마 선생(아몰 굽테)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고 학생이고, 맛있는 도시락을 노리는 베르마 선생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특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잣집 아만(누만 쉐이크)의 번쩍번쩍한 4단 스테인리스 도시락입니다. 스탠리가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된 베르마 선생은 마치 자신의 도시락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성을 냅니다. 선생으로부터 스탠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은 매번 도시락 먹는 장소를 바꾸어 그를 속이는데요. 급기야 베르마 선생은 스탠리에게 도시락 없이는 학교에 오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그날 이후 스탠리는 정말 학교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코 묻은 도시락을 뺏어 먹는 선생이 진짜 있을까 싶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단지 ‘도시락 전쟁’만이 아닙니다. 영화 초반의 애니메이션 영상이 암시하듯이, 이 영화는 일종의 우화입니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베르마 선생에게 (알고 보니 가난한 홀아비였다든지 하다못해 당뇨 같은 병을 앓고 있다든지 하는) 흔한 사연 하나 부여하지 않았어요. 베르마 선생은 그저 아이들만도 못한 탐욕스러운 어른일 뿐입니다. 도시락 크기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힘없는 아이들을 착취하는 거대한 힘이고 구조인 거지요.

〈스탠리의 도시락〉은 결국 스탠리가 그 힘에 맞서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순수하고 유쾌한 스탠리답게, 복수나 혈투가 아니었습니다. 스탠리는 다시 친구들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악을 부끄럽게 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뒤늦게 우리는 스탠리가 부모를 일찍 여의었고 삼촌이 경영하는 음식점에서 일하며 주방 한구석에 기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소년들의 도시락을 다 자기 것으로 여겼던 베르마 선생과 삼촌 식당의 남는 음식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손을 댈 수 없었던 스탠리의 모습이 멋지게 충돌합니다.

달콤한 권력과 짭짤한 침묵, 〈우리 선생님을 고발합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아직 ‘체코슬로바키아’였던, 1983년의 이야기입니다. ‘프라하의 봄(1968)’ 이후 체코슬로바키아가 오히려 더 강력하게 소련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 마리아 드라즈데초바(주자나 마우레리)라는 선생이 부임을 하는데요. 드라즈데초바 선생의 권력은 아이

   
 

들 너머 학부모들에게까지 미쳐 있습니다. 담임이 된 첫날부터 아이들을 호명하며 부모의 직업을 묻는 것으로 이 선생의 ‘갑질’은 시작되었습니다. 한데 말뿐인 줄 알았던 드라즈데초바의 호구조사는 실행력까지 갖춘 권력이었습니다. 전직 미용사였던 엄마를 찾아가 공짜로 파마를 하는가 하면 실직한 아빠에게 새벽부터 식료품점에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 오게 하고, 한밤중에 조명등을 수리해내라고 부모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최근에 남편상을 당했다는 이 선생의 ‘가련한 미망인 코스프레’에 부모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무엇보다 부탁을 들어준 부모들에게는 그가 시험 문제 정보를 흘려 자녀의 점수를 보장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거침없던 드라즈데초바의 ‘꼬리’가 잡히는 데는 단카(타마라 피셔)라는 소녀의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항 행정실에 근무하는 단카의 아버지에게 선생은 소련에 있는 언니에게 케이크를 보내야겠다며 불법 운송을 부탁합니다. 슬며시 거절도 해보고 직접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지만 돌아온 것은 단카의 낙제 점수였지요. 결국 체조선수 지망생인 단카는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심신의 병을 얻게 됩니다. 이 일로 교장과 교감이 단카의 부모에게 탄원서 쓰기를 제안해서 학부모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여기서 부모들끼리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는데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까지 동원한 드라즈데초바의 비리와 만행이 낱낱이 폭로됩니다.

드라즈데초바 선생의 비행은 어른들의 ‘침묵’ 때문에 베르마 선생의 경우보다 더욱 문제적입니다. 선생에게 공조하여 혜택을 본 아이들의 부모는 도움이 선의였고 평가는 공정했으므로 선생은 잘못이 없다고 말해요. 그런데 여기에는 학교 내 권력뿐 아니라 외부 세계의 권력까지 작동하고 있습니다. 드라즈데초바 선생은 학교의 공산당 대표당원이어서 교장보다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된 남편은 군 장교였고,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언니도 무시할 수 없는 배후였어요. 선생을 몰아내는 일은 따라서 교장과 교감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죠. 이 복잡한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아이들이 폭력과 차별의 희생양으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악의 순환을 끊어내는 균열
이 두 영화는 각기 ‘도시락’과 ‘(선의의) 봉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불의와 폭력을 고발합니다. 〈스탠리의 도시락〉이 구체적인 제안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려 했던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토요일과 방학 중에 촬영되었다. 각 촬영은 두 번의 휴식을 포함하여 5시간을 넘지 않았고, 아이들은 단 하루도 학교에 빠지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의 자막입니다. 이어서 영화는 인도에서는 가족들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약 5천만 명의 아동이 노동시장에서 희생당하고 있다고 폭로했어요. 영화 초반 노래의 가사처럼, 〈스탠리의 도시락〉은 영화 안팎으로 “어딘가에 살고 있을 또 다른 스탠리들”을 위한 작은 실천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우리 선생님을 고발합니다〉는 못된 선생 하나 쫓아냈다고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인 안의 순환과 건재함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경종을 울립니다. 영화 말미에 다시 드라즈데초바 선생이 등장하는데요. 교장, 교감과 단카 부모를 포함한 반대파들이 멋지게 승리한 것처럼 보였던 결말은 이 선생의 재등장으로 반전을 맞습니다. 시간이 흘러 1991년에서 1992년 어느 시점이 되어 있구요(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협정에 의해 1993년에 분리됩니다). 바뀐 지도자의 사진 앞에서 드라즈데초바 선생은 자신이 슬로바키아어, 영어, 종교와 윤리(!)를 가르칠 거라고 말합니다. 1983년 그가 가르친 과목은 러시아어와 슬로바키아어와 역사였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부모의 직업을 묻습니다.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가 남의 나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곳곳에서 불의가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여, 침묵을 끊어내는 ‘을’들의 목소리와 ‘고발’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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