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호 무브먼트 투게더]

많은 모태 신앙인이 그러하듯 교회가 제 놀이터였고 제2의 집이었으며, 저는 거기에 더해 말씀 공부와 여러 수련회를 거쳐 신앙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독 대안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어머니 또한 교사로서 평생을 헌신적으로 가정과 학급 아이들을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평소 부모님을 비롯한 ‘교사선교회’ 선생님들께서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고, 그렇게 양육받은 아이들을 세워 재양육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자라온 저는, 자연스럽게 그 양육 과정을 함께 밟으며 성장해왔습니다.

태어날 당시 2kg이 채 되지 않았고, 숨을 쉬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저는 매번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였고, 집에서 책을 읽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성경을 열 번 이상 통독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요. 그만큼 만화 성경이든, 글로 된 성경이든 저에게는 인물 하나하나가 친숙했고 친구 같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신앙 언어’와 ‘세상 언어’의 간극이 안겨준 질문들
그런 저에게 성경만큼 가깝던 책이 과학책이었습니다. 그 또래 아이들은 공룡을 매우 좋아하는데, 온갖 과학책들을 읽은 후에 당시 주일학교 선생님께 질문하곤 했습니다. “선생님, 창세기에 지구나 공룡을 만든 이야기는 없는데 왜 그런 건가요?”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선생님은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질문 자체는 칭찬하셨지만요. 저는 그때 성경과 학교의 가르침 사이에 무언가 틈이 있다는 사실을 크게 느꼈습니다. 아울러 문제에 대한 답은 눈앞에 주어진 것 같다가도 다시 멀어지고는 했습니다. 집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낡은 창조과학 책을 보며 모종의 답을 얻었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더 깊은 질문들에 의해 답이 깨어지고는 했습니다.

당시 제가 세상에서 느꼈던 당혹감은, 지금에 와서야 다름 아닌 ‘공공신학의 부재’와 관련 있는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덮어놓고 믿는 것이라는 말이 암묵적으로 적용되는 영역들이 늘어갈수록, 신앙은 개인적이거나 신앙공동체 안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신앙적 콘텐츠를 찾지 못한 채, 대학까지 가는 동안 율법에 매여 끊임없이 자신을 정죄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개인 신앙문제에만 골몰하는 사람이 되어갔지요. 물론 저는 몸이 아플 때마다 제 아픔을 기도로 아뢰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선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전인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저는 다시 학교에서 조금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교회와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청년들은 신앙과 세상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머물곤 합니다. 물론 더 위험하게는 신앙을 세속화하고, 독선적 성경 해석으로 세상을 재단할 수도 있습니다. 세속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많은 부분 신앙과 학문을 건강하게 통합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베리타스 포럼의 강연자로 오시는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 교수님에 따르면, ‘세속시대’란 이성적인 관점에서 ‘비-종교적인 중립성’을 추구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신앙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는 얼마나 떨어져 있고,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대답하는 공동체, 베리타스포럼
그러던 중 대학에 들어와 발견한 사실은, 제가 품었던 과학 분야의 질문들이 비단 과학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학, 신학, 그리고 사회학적 현상들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나를 그 안에서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 변증이라는 도구에 관심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프란시스 쉐퍼의 전집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고, 강영안 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전기인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복있는사람)를 읽으며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개혁주의 신학의 깊이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또 해석학이라는 학문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으며, 우종학 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어린 시절 가졌던 과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어떠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붙잡고 있던 말씀은 고린도전서 3장 15절이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세상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며 모든 지혜와 지식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어느 곳에서나 발견하는 일이 저에게는 제가 가진 소망의 이유를 대답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예수전도단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베리타스포럼은 저와 같은 고민을 먼저 했던 분들, 즉 질문하는 영성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기독교 대학이 아닌 고려대학교에서 베리타스포럼과 같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모두 대상으로 하는 지성의 향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학생 스태프로서 베리타스포럼을 함께 조직하고, 기도하며 교수님들과 학생들 사이에 서서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사전 북토크 행사의 포스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베리타스포럼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이고,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1회 베리타스 포럼의 강사로 오셨던 오스 기니스 박사님, 강영안 교수님, 우종학 교수님의 책을 읽고 공부하며 수많은 기독 지성인들이 앞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제1회 베리타스포럼 때 이틀에 걸쳐 고려대학교에 모인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위안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베리타스포럼에서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고민했을 법한 문제들을 다룰 뿐 아니라, 후속 모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듣고 각자의 물음을 쏟아놓을 수 있었지요. 특히 제가 속한 로뎀나무교회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교회들의 후원과 서포터즈 학생들의 귀한 참여가 모여서 행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담대케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포럼 이후에 톰 라이트의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IVP)를 함께 읽고 깊은 나눔을 했던 시간을 통해 악의 문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은혜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악을 다루는 문제는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악을 다루는 참된 기초이고 소망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볼 수 있었지요.

   
 

새로운 질문을 향하여
베리타스포럼의 스태프로 활동하던 시기는 제 진로를 놓고 기도로 씨름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가기로 하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저는 7월에 있는 시험과 5월의 포럼 행사를 함께 준비해야 했습니다. 무리한 일정이었지요. 또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서, 한 번의 시험을 통해 평가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법학전문대학원에 가게 된다면 왜인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베리타스포럼을 통해 경험하는 시간과 공동체, 배움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법학적성시험과 자기소개서, 면접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가 보낸 시간은 개인적인 물음과 사회적인 물음이 씨실과 날실로 엮어져 펼쳐지는 퍼즐과도 같이 펼쳐졌습니다.

얕은 수준에 머물렀던 법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고, 기독교인으로서 법조인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데는 베리타스포럼에서 만난 웨슬리(Wesley Wentworth) 선교사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웨슬리 선교사님은 베리타스포럼을 계기로 처음 뵙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별무리학교에도 몇 번이나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웨슬리 선교사님의 발자취를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폴 투르니에의 《고통보다 깊은》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던 중 추천사를 쓰신 정동섭 목사님의 글에서 웨슬리 선교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을 읽기도 했고, 신국원 교수님의 《니고데모의 안경》(이상 IVP)에서도 웨슬리 선교사님의 문서 선교가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웨슬리 선교사님은 저에게도 ‘질문하는 영성’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찾아갈 때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셨고, 기독교 세계관과 법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CLF(기독법률가회)와 IVP가 함께 펴낸 《다시 찾은 법률가의 소명》과 같은 책을 통해 신앙과 전문 영역을 통합하려는 제 질문에 대해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이미 기독교 세계관을 기초로 법률가의 길을 갔던 외국의 많은 사례와 한국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베리타스포럼에 참여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올해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제가 품어온 질문을 구체화하고 새로운 질문들을 던질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말씀과 기도로, 또 학문에서의 공교함으로 저를 채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28일과 29일 양일에 걸쳐 열리는 ‘제2회 베리타스포럼 고려대’에 오시는 제임스 스미스 교수님의 저서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추구하는가, 혹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모두가 가진 질문입니다. 또 그것의 구체적 실천으로서, 문화적 예전을 탐구하고 우리의 습관을 돌아보는 일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계속 질문하며 하나님께 구할 때 그에 맞는 응답으로 신실하게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질문하는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 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베리타스포럼 고려대와 후속 모임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고 욕망하며, 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며 여러분 모두를 베리타스포럼으로 초대합니다. 아직 최고의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박지명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 중이다. 베리타스포럼 고려대 실무자로 섬기고 있으며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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