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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제도는 난민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343호 커버스토리]
[343호] 2019년 05월 27일 (월) 16:17:00 이일 goscon@goscon.co.kr

2018년의 혐오 광풍 속에 난민들이 공론장에 끌려 나오다

작년 한 해를 거치며, 한국 사회 안에 살고 있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난민들이 공론장으로 갑자기 끌려 나오게 되었다. 단일성이 강력히 지배하고, ‘국민’의 테두리를 벗어난 인간의 권리에 대해 깊이 숙고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서 난민들에 대한 (어찌 보면 수긍할 수 있는) ‘낯섦’은 난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반감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혐오 표현으로 진행했다.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관통하는 적대적 집단행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문제를 타자성이 있는 소수자 집단에 투사하는 것은, 특히 난민과 같은 외국인들에게 투사하는 것은 오래된 극우 정치 이념 중 하나였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는 별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7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동의한 ‘난민법 폐지 촉구 취지 청와대 청원’은 반(反)난민을 주창하는 극우적 이념의 표밭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정치인들에게 줬고, 일부 정치인들은 여기에 응답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적폐세력을 탄핵’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민주적 시스템 ‘국민 청원’ 제도가 ‘국민의 이름으로 비국민인 난민을 추방한다’는 적대적 움직임에 활용되는 이 역설, 촛불이 만들어낸 정권에서도 난민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기이한 역설, 초창기 청원 답변을 위해 필요한 20만 명의 청원자 수를 나흘 만에 넘어서며 바로 ‘무슬림은 범죄자다’ ‘한국을 이슬람화할 것이다’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신앙적 결기를 품은 일부 기독교인들의 조직적 동원이 있었다는 역설도 짚어봐야 한다.

   
▲ monument statue church tent sculpture art (사진: pxhere)

 
한편,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의 대동소이한 주장이 있었으니, 한국에 ‘난민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의 난민제도가 너무 잘 되어 있으니 ‘난민들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급속한 경제 발전의 이면 속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의 형성은 생각하기 어려웠고, 당신에게도 너그럽지 않게 느껴지는 한국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당신 아닌 난민에게는 유독 너그러운 얼굴로 등장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런 ‘가상의 박탈감’을 이용한 사람들, 정말 그런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뭐라고? 나도 어려운데 대한민국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로는커녕 아무런 도움을 나한테 안 주는데 뭐? 난민들에게는 생계비를 지급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당신도 한국 정부의 얼굴을 정말 그렇게 오해했는가? 이해하기 쉽게, ‘사고실험(experiment thought)’을 해보자.

당신이 만약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다면?  
당신이 가상의 국가 A에 살고 있다고 해보자. 당신은 한국을 찾아온 많은 예멘 국적 난민들처럼 결혼한 남성이며,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A국에 전쟁이 발생했고 정부군과 반군은 서로 당신을 징집하려고 한다.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은 당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총을 겨누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친구들 중 일부는 폭격으로 사망했고, 징집당한 이후에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나는 전선에서 먼 곳으로 피신하려고 몸을 옮기지만, 수많은 검문소를 통과할 뇌물과 비용을 마련하기 어렵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 해외로 피신시켜주겠다고 여행사인지 브로커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사람들이 방법을 알려주고, 비행기 표를 파는데 그 가격이 전쟁이 발생하기 전의 10배이다. 도무지 가족의 표를 다 구할 방법이 없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험이 임박한 당신만 우선적으로 해외로 피신하기로 했다. 전쟁이 터지자 비자 없이는 어느 나라도 들어가기 어렵다. 급한대로 난민제도가 없는 나라로 피신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같은 가격에 난민제도가 있다고 하는 한국으로 피신할 길을 택했다. 브로커의 말이 사실인지 알기 어렵지만 표를 구매하고 믿어보기로 한다. 유럽으로 가는 길은 비자가 중단되서 막혔고, 난민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 

환승의 환승을 거쳐 드디어 한국의 공항에 도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해서 난민 신청을 하러 왔다고 하니 갑자기 출입국 공무원의 표정이 안 좋다.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한국어와 영어로 된 서식만 있다. A국 언어는 없는데 어떻게 작성하느냐 물으니, 전화 통역을 통해서 어쨌든 적으라고 한다. 잘 모르는 영어로 겨우겨우 20장 넘는 서식을 채웠다. 그리곤 어떤 방으로 데려가, 기다리라고 한다. 우연히 만난 같은 나라 사람과 대화하며 며칠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긴 시간 동안 공항 난민 심사를 받았다. 곧장 입국할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취조당하듯 질문을 받고 핸드폰도 제출하고 페이스북 계정도 열어서 보여 달라는 말에 불현듯 두려워졌다. ‘혹시 입국을 안 시켜주면 어떻게 하지?’ 다시 돌아가면 전쟁 한복판으로 끌려가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로 7일을 기다렸다가 겨우 난민 심사 기회를 주겠다는 결정을 받고 입국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같은 방에 있던 C국에서 온 사람은 거절되었다고 한다. 그는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사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송환대기실로 끌려갔다.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나에게 외치는 걸 들었는데 입국하느라 만나지 못했다. 내가 그나마 전쟁터에서 왔다는 게 다행인가. 

한국에 덩그러니 입국했는데, 손에 쥔 돈은 200불뿐이다. 난민 신청자들이 묵을 숙소가 있느냐고 입국할 때 물어봤는데, 80명이 묵을 수 있는 정부 운용 센터가 인천에 있단다. 그러나 들어가려면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오늘은 어디서 잘까? 한국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아는 이도 없다. 우선 공항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온 택시기사가 “이태원?” “외국인?” 그런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택시에 올라탔는데, 이태원에 도착하자 100불을 달라고 한다. 뭔가 속은 느낌인데 기사가 화를 내니 말도 안 통하고 방법이 없다. 이태원에서 헤매고 다니는데 ‘숙소를 찾느냐’고 물어보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따라가니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이 하룻밤에 50불이라고 했다. 노숙할 수는 없으니 우선 함께 입국한 같은 나라 사람과 함께 지친 몸을 누인다. 인터넷이 잘 되는 것 같아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가족과 통화를 하는데, 그쪽 사정 때문인지 자꾸 끊긴다. 한국에 잘 도착했다고 설명하면서도 뭔가 조금만 믿고 기다리면 데려올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자신이 없다. 

다음날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공항에서 출입국 공무원이 말하기를 6개월 전에는 취업을 하면 안 되고 불법 취업을 하면 구금된다고 했다. 그런데 남은 돈이 50불밖에 없는데 어떻게 할까. 아무런 안내를 받은 게 없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 ‘난민’이라고 검색해보니 NGO들이 몇 개 검색되었다. 겨우겨우 NGO들을 찾아갔다. 다행히 쉼터를 운용하는 NGO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속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취업을 할 수 없고. NGO 활동가가 통역인을 데려오면서 한국의 난민제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들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난민 면접을 받기까지 최소한 반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1년 넘어도 소식이 없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난민 인정률은 2%도 안 되어서 대부분 기각되고 소송할 변호사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도 나는 전쟁터에서 왔으니 아마 인도적 체류는 기대해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집에 연락해서 돈을 보내 달라고 하고, 아는 친척들한테 돈을 빌렸다. 공항에서 만났던 친구는 공장에라도 취업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1년 6개월을 기다리느냐며 직업소개소를 찾아 떠났다. 나는 NGO 활동가의 설명에 따라 생계비를 신청하려고 어렵사리 만든 한국 통장을 들고 출입국사무소에 갔다. 잘하면 월 40만 원의 생계비가 나오니 그럼 잘 곳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웬걸,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설명하기를 생계비 심사는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지난주에 심사가 끝났으니 지금 신청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남성 혼자 오면 점수가 낮아 생계비는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먹을 것과 누울 곳이 필요한데, 한국은 물가도 정말 높다. 손에 든 50불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다시 NGO 쉼터로 돌아와서 내일의 계획을 세우려고 인터넷을 켰는데, 성난 한국 사람들의 시위 모습이 보인다. ‘Refugee’라는 글씨가 보여 반가워서 NGO 활동가에게 무슨 시위냐고 물어봤더니 답을 피한다. 다시 물어보니, 난민을 반대하는 시위라면서 미안하단다. 구호 내용을 들어보니, ‘A국에서 온 사람은 가짜 난민이다’ ‘난민법 폐지하라’ ‘가짜 난민 추방하라’ ‘A국 사람들은 우리 딸들을 강간할 것이다’ ‘A국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다’라는 내용이란다. 말문이 막혔다. 오전에 거리를 다니면서 느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생각났다. 나를 피하는 것 같았고,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NGO 활동가가 설명해주길 카페에서 A국 말로 너무 크게 말하면 수상하다고 경찰을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외국인들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쟁을 피해 여기까지 왔는데, 왜 그럴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믿는 것은 시위대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인 것 같다. 정부에서 A국 난민들에 대한 대책을 발표한다는 것을 듣고 기대하며 뉴스를 봤는데, 법무부장관이라는 사람이 뉴스에 나와서는 결연한 얼굴로 ‘국민들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엄정한 난민 심사를 통해 가짜 난민을 신속히 가려내는 절차로 난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8개월이 지나자 출입국에서 전화가 왔다. 이틀 후에 면접이 잡혔다는 것이다.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쫓아갔는데, 같은 나라 통역인이 앉아있었다. 뭔가 비밀을 얘기했다가 정부에 흘러 들어갈까 불안해서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었다. 힘겨운 심사 과정을 거치고 한 달 후에 다시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얘길 들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찾아간 출입국에서는 ‘인도적 체류’ 결정이라고 말해줬다. 옆에 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절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거나 흐느꼈다. 나는 인도적 체류를 받았으니 다행인 건가? NGO에서 들었던, 면접 조서 영상을 열람해 달라고 하다가 경찰에 끌려간 이야기, ID카드 연장을 제때 못해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안 되어서 다행인 건가?

초기에 도움을 받았던 NGO 활동가에게 물어보니 인도적 체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쫓겨나지 않고, 취업을 허가해주는 지위’라고 했다. 건강보험에 가입되느냐고 물었더니 안 되지만 최근 제도 개선이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 생계비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냐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다 안 된다면, 어떻게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냐’고 물었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벌써 8개월 이상 기다렸는데…. 그런데 인도적 체류자는 가족을 초청할 수 없다고 한다. 청천벽력이었다. 여권이 거의 만료되어 가는데 여권을 연장할 방법도 없고, 가족 초청도 안 된다니…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럼 한국 여권을 갖고 가족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법이 바뀌어서 인도적 체류자는 귀화 신청을 못 한단다. 더욱이 귀화 신청을 할 수 있어도 결과까지 2년 이상 걸리고 최소한 6,000만 원 이상의 자산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이 이야기는, 한국을 찾은 난민들 중, 구금되지 않은, 송환되지 않은, 난민 불인정의 가짜 난민이라는 시선과 법제도의 굴레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출입국 직원들을 피해 다니지 않는, 일터에서 손이 잘려나가지 않은, 길거리나 인터넷에서 ‘난민 꺼지라’는 폭력과 협박을 듣지 않은, 매우 매우 운이 좋아 쫓겨나지 않을 기회를 가진 이례적인 경우다. 당신에게 한국의 난민제도는 따뜻한 얼굴이었는가?

한국 난민제도의 구조와 문제점
전 세계 나라의 3분의 2가 그러하듯,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정상적인 일원으로 기능하는 대다수 나라가 그러하듯 한국은 1951년 난민협약에 가입하여 1994년부터 ‘난민 심사 제도’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독립된 이행법률’로서 난민법을 제정하여 2013년부터 시행했다고 알리고 있지만, 사실 난민제도는 매우 일천하다. 

한 국가의 난민 정책을 크게 나누어보면 4가지 분야에 관한 정책으로 논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난민 정책의 필수 4요소라고도 부를 수 있다. ‘1요소’는 난민 정책에 관한 기조와 장기적인 계획, ‘2요소’는 난민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절차에 관한 정책, ‘3요소’는 난민 신청자, 난민 인정자, 인도적 체류자와 같은 유관 체류자격 및 아동, 여성, 장애인과 같은 표지를 지닌 난민 그룹에 대한 처우 및 정착에 관한 정책, ‘4요소’는 혐오와 차별을 방지하고 공존하는 사회의 조건을 만드는 정책이 그것이다. 

한국의 난민제도에 관해 일반적으로 지적된 문제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위상에 심각하게 미달하는 미흡한 난민 보호의 현실과 중장기계획의 부재다. 난민 정책은 앞에서 보듯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난민 인정 절차를 소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전부다. 250만 체류 외국인 중 난민 신청자는 수십 년간 겨우 4만여 명,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고 한국에서 당분간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다 합쳐서 2,500여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별도로 난민 정책이란 게 존재할 수 없었다. 아무 정책이 없었다. 난민 신청을 하고 심사하는 제도 자체만 겨우 운용한 게 전부다. 보호가 필요함이 명백한 작년의 제주 피난 예멘 난민들이 집단적으로 노숙을 하게 된 위기 상황에서도 아무런 정책 수단이 없었다. 이는 급한 대로 선제적 취업 허가를 주어 난민들을 일터에 배치하여 숙소를 해결하도록 한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둘째, 난민 인정 절차의 공정성 및 인프라 부족 문제다. 난민 인정 절차를 통해서도 난민이 난민으로 확인되어 보호받기가 너무 어렵고, 이와 관련된 정부의 인프라가 극도로 부족하다. 엄격한 이민 정책을 자랑하는 미국의 경우도 적극적 난민 신청, 방어적 난민 신청을 합친 통계로는 난민 인정률이 40%에 이른다. 10명 중 4명은 난민으로 보호받는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2%에 불과하다. 100명 중 2명이다. 심지어 그 100명은 심사 기간 동안 속수무책이다. 이 시기 대다수의 난민들은 어떠한 정책적 지원도 없이 심사 절차의 굴레를 계속 돈다. 

셋째, 난민 신청자·난민 인정자·인도적 체류자·재정착 난민의 처우 문제다. 이미 생활 터전이 확보된 예를 제외하고 난민 신청자는 난민 인정 절차의 전체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심사를 대비하거나 한국 사회에 평화롭게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앞에서 얘기한 ‘A국 탈출’ 사고실험의 예에서 느꼈을 것이다. 체류 지위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인도적 체류자도, 난민 인정자에게도 아무런 지원이 없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경제적 지원이라도 존재하지만, 난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한국 사회에 서게 되더라도 충실하게 살기 어렵다. 

넷째, 혐오와 차별 방지에 대한 정책이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 및 외국인/난민 혐오·차별 방지를 위한 다양한 층위의 정책이 형식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제주 예멘 난민들의 이슈에서 가장 시급한 주제로 부각되었다. 이는 사실 난민 정책이 정책적 볼륨에 있어서 출입국 외국인 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민 정책의 큰 기조와 방향에 대해 역대 정부 모두 관심과 이해도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는 문제가 없는가?
한국의 난민제도는 난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극도로 냉엄한 얼굴이다. 난민 추방을 결연히 외치시는 분도 실은 굳이 그렇게까지 염려하실 필요 없다. 한국은 가장 가혹한 난민 인정 기준을 갖고 운영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을 거치면서 더욱 크게 부각된 문제는 제도의 문제보다 한국 사회의 문제였다. 제도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엉망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수많은 난민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유랑하며 쫓겨났다. 그런데 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잔인한 얼굴이 한국 정부의 얼굴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 즉 우리의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난민의 권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비단 난민 개인의 권리 구제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 내 인권 담론의 진지성을 성찰하는 계기이고, 한국 사회의 성원권에 대한 강력한 질문이며, ‘인종주의–차별과 혐오–타문화에 대한 편견’이라는 트라이앵글을 해체하는 가장 선두에선 작업이다. 한편,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난민들에게 투사하는 극우적 이념과 같은 궤에서, 한국교회는 교회 내의 문제와 위기 인식을 엉뚱하게 난민들에게 투사하며,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교회는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엄중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어떻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www.apil.or.kr) 소속 변호사로, 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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