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호 무브먼트 투게더] 청어람ARMC 〈사순절 채식 순례〉 후기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잘 먹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였다. 결정적인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처음 시작은 광주 양동시장의 모퉁이였다. 시장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공포에 질리게 하던 겹겹이 쌓아올린 닭장과 그 안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닭들. 그 옆에 모순처럼 말쑥하게 씻긴 채 가지런히 놓여있는 달걀들. 그때는 달걀조차 먹기를 거부하던 내게 몸에 좋은 거라며 조기(생선) 눈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려 먹기를 종용하던 이모부. 친척들이 모두 모인 보쌈집, 엄마가 억지로 싸준 배추쌈 안에서 물컹하고 씹히던 수육의 이물감. 울컥하고 밑에서 치밀어오르던 무언가로 입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뛰어갔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호되게 맞았던 기억.

선원이셨던 아버지는 해물을 주로 드셨지만, 엄마는 고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뭍사람이었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우리 식탁에는 늘 불고기와 달걀프라이가 올라왔다. 나는 당시에 책을 읽던 중, “선생님, 저는 고기가 너무 먹기 싫은데 어떡해요?”라는 내 또래 등장인물의 질문을 만났다. 그러나 곧 “선생님도 어릴 때는 고기를 안 먹었어요. 지금은 없어서 못 먹어요”라고 답변하는 내용이 실린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기 잘 먹는 어른이 된 내 모습은 전혀 상상해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강요된 육식 속에서 어렵사리 지켜온 나의 채식 시절이 지나갔다. 사회화와 함께 더 이상 혼자 밥을 먹을 수 없게 된 20~30대부터는 나의 기호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을 멈추게 되었다. 대신 약간의 반항심을 섞어 정육식당에 가서 혼자 육회를 뺀 비빔밥을 주문하거나 회식할 때 양꼬치집에 가면 청경채볶음만 먹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심하게 나의 채식 기호를 알렸다. 그나마도 채식 선호도를 편히 알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곳에서만 가능한 얘기였다.

독일 그리고 비건(vegan) 문화

해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오늘은 뭐 (해) 먹지’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끼니때는 빨리 돌아오고, 선택지는 언제나 한정적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식료품비가 엄청나게 저렴한 독일이지만 한식으로 식사를 준비하려면 비용이 배가 된다. 또, 야채나 과일보다는 고기가 충격적일 정도로 저렴하다.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나라 역사나 학문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문화를 배우는 일이기에 의식적으로 나는 채식 선호도를 양보하기로 했다.

사실 예전부터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프리카 가나와 잠비아에 머물렀던 두 달, 인도에 머물렀던 두 달, 코스타리카에서 머물렀던 한 달,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식습관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되면서 채식을 고집할 수 없었다. 특히 인도에서 브라만 계급들이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채식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달릿1) 친구들과 일부러 닭고기를 챙겨먹기도 했고, 한국에서 조류독감이 한창이던 시절 잠비아에 방문해 마당 뜰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암탉들이 낳는 달걀을 감사하며 먹었다. 열대과일 생산지인 중남미에서 실제로 파인애플과 바나나를 먹으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 시절들을 지나 도착한 곳이 바로 비건이 가장 유행하고 있는 유럽 국가, 독일이었다.

독일의 독특한 문화인 WG2) 형식의 기숙사에 살면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서로의 식사를 맛볼 기회가 많아졌다. 한식에 관심이 많은 독일 친구들은 어느 날 한식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한인 마트에 가서 단무지를 사고, 일반 마트에서 맛살과 야채를 사는데 친구들 얼굴에 조금씩 물음표가 떠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비건인 한 친구가 망설이더니 내게 김밥 속재료로 두부를 쓸 수 없는지 물었다. 김밥에 두부라니! 난생처음 만든 두부김밥의 오묘하고 고소한 식감은 한국인인 나에게도 비건 한식의 새로운 맛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반가움도 잠시, 다양한 독일의 육식 문화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청어람 그리고 사순절 채식 순례

하루 한 끼 채식 순례. 사순절 기간 동안 진행하는 청어람ARMC 채식 순례를 신청하고, 내심 목사가 너무 쉬운 방법으로 사순절을 보내려는 꼼수를 부린 것 같아 가슴이 찔렸다. 하루 세 끼도 아니고 한 끼라면 굳이 이런 챌린지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얀 곰팡이 가득한 고소한 링살라미와 버터에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정도만 양보하면, 어렵지 않게 완수할 수 있는 순례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채식 순례를 시작하고 다양한 분들과 채팅창으로 각자의 식사를 공유하면서 너무나 다양한 채식 조리법과 음식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다못해 아침 커피에 넣는 우유도 안 된다니! 카레가루에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있다니! 꼬마곰 젤리 ‘하리보’도 동물성 재료에서 나왔다니! 채식주의자들도 얼마나 분류법이 다양한지 수많은 용어 속에서 처음에는 길을 잃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시차 때문에 다른 분들이 일찍 시작한 아침이나 점심에 올린 사진들을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몬드유와 귀리유를 처음으로 저렴한 우유 대신 마트에서 집어들던 날. 함께 장을 보던 친구가 더 비싼 식재료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던 의아한 눈빛은 어릴 때 익숙하게 마주한 어른들의 그것이었다.

교차로의 ‘STOP’ 표지판 밑에 누군가 붙이고 간 ‘eating animal’이라는 스티커 (사진: 필자 제공)
교차로의 ‘STOP’ 표지판 밑에 누군가 붙이고 간 ‘eating animal’이라는 스티커. (사진: 필자 제공)

채식 순례를 시작하면서 보였지만 보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늘 거기에 있었던 수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차로의 ‘STOP’ 표지판 밑에 누군가 붙이고 간 ‘eating animal’이라는 스티커. 본(Bonn) 대학교 정원 나무 사이에 설치되어있는 박쥐 보호용 새집. 일반 마트에서 흔하게 팔리고 있는 꿀벌통. 수많은 식재료에 붙어 있는 V(비건) 라벨들. 식물성 주방 세제. 비누 형식의 샴푸와 린스바. 오늘날 유럽의 힙(hip)한 문화라며 젊은 비건들의 엘리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친구도 하릴없이 나의 사순절 채식 순례에 동참하면서, 정육점으로 직행하기보다 야채나 과일 칸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베이컨 코너 옆에 있는 콩고기 식품들을 함께 살펴보기 시작했다. 함께 순례하는 분들이 추천해주는 다채롭고 다양한 종류의 비건 식당 리스트를 적어두고, 새로운 비건 조리법을 배우면서 어느덧 사순절 40일의 시간을 마치게 되었다. 먹는 이야기에서 시작한 우리의 순례는 결국 환경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신앙인으로서 채식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말씀을 ‘식물성’으로 읽고 살아낸다는 것

신대원 입시를 준비하며 외웠던 필수 암송 구절 중에 요나서 4장 11절이 있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구제역으로 가축들의 소리 없는 죽음이 이어지던 시기였기에 암송하면서도 마음에 다시금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어느새 2021년 목사가 되어 사순절 채식 순례를 하니 성경, 특히 구약을 읽을 때마다 의외의 구절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욥의 순전함으로 대변되는 욥기 말씀이 하나님께서 욥을 대하며 하셨던 수많은 질문들로 치환되었다. ‘과연 너는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 산 염소가 새끼를 치고 암사슴이 새끼 낳는 때가 언제인지, 몇 달 만에 만삭이 되고 낳은 그 새끼들이 언제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는지, 타조가 그 알을 땅에 두고 흙에서 데우며 얼마나 새끼를 모질게 대하는지. 과연 나는 정말 알고 있을까. 오늘 마트에서 가볍게 집어드는 달걀은 어디에서 사육되는 닭이 어떤 사료를 먹고 낳은 것이며 어떻게 내 손에 온 것인지. 도시의 회색 빌딩 숲 사이로 날개를 퍼덕이며 살아가는 비둘기가 어디에서 먹고 자는지. 40일 채식 순례는 내가 신앙인으로서 말씀을 바라보는 방식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을 새롭게 벼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끼 식사가 내 앞에 펼쳐지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치열한 과정이 있었는지 생각하는 일은, 우리가 드는 숟가락 위에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과연 고스란히 놓여있는지 잠잠히 돌아보는 일이다. 사순절 채식 순례를 통해 채식으로의 먼 길을 돌아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신앙이 ‘식물성’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옮겨다니는 동적인 동물성이 아니라, 한 번 심겨진 곳에 꼼짝없이 붙박여 살지만 땅 속에서 치열하게 뿌리내리는 방식으로서의 식물성 신앙으로 호흡하는 삶을 꿈꾼다.

■ 각주

1) Dalit, 불가촉천민.

2) WG(Wohngemeinschaft), 혼성 셰어하우스 형태로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한다.


정희경
인권변호사가 되려던 20대를 지나 불모지에서 꽃피우는 꿈을 꾸며 신학을 시작해 목사가 되었다. 독일 본에서 에큐메니컬을 주제로 석사를 마치고, 마인츠에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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