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신학자의 말’] 제11회 예술신학콜로키움 특강 요약

※ 아래는 허호익 교수가 투고한 글입니다.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 허호익 지음 / 동연 펴냄 / 18,000원
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 허호익 지음 / 동연 펴냄 / 18,000원

1. 한국, 한국문화의 상징적 문양: 이태극과 삼태극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토착화 논쟁이 한창이었다. 그즈음 “나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또는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보편적 문양은 대한민국 국기인 박영효의 이태극기와 대한민국 행정부의 마크인 삼태극기로 대표되는 태극 문양이다.

왼쪽부터 ‘박영효 태극기’(1882), 서울올림픽 엠블럼, ‘한국 방문의 해’(2011) 관련 이미지, 대한민국 행정부 마크(2016). (사진: 필자 제공)
왼쪽부터 박영효 태극기(1882), 서울올림픽 엠블럼, 한국 방문의 해(2011) 관련 이미지, 대한민국 행정부 마크(2016). (사진: 필자 제공)

우실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태극은 남방의 이수분화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삼태극은 북방의 삼수분화의 세계관을 반영하는데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천지인 조화를 나타내는 삼수분화 세계관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하늘이 점지해주어야 한 인간이 잉태되고, 땅이 받아주어야 순산하여 갓난아이를 출생하고, 일곱 칠과 백일 및 첫돌이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람들이 잘 키우고 잘 가르쳐야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한국은 사철이 변화무상하고 땅이 척박한 가운데 벼농사 중심으로 살아가야 했다. 홍수와 한발이 생산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야 했고, 비좁고 천박한 농지마저 홍수나 산사태로 휩쓸려가지 않도록 땅이 도와야 했다. 더욱이 모심기와 벼 베기의 노동집약적 특성 때문에 이웃의 도움이 있어야 벼농사가 가능한 풍토였다. 따라서 하늘과 땅, 이웃이 도와야 농사를 지어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직관적인 세계관이 삼족오와 삼태극 문양으로 전승되고 단군신화로 기록되었다. 단군신화가 말하려 한 것은 단군이 바로 환웅(天子神)과 웅녀(地母神) 사이에서 태어난 인신(人神)으로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통치자이며 이상적인 인간(仙人)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천지인 조화론은 가장 시원적인 한국 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지난 5,000년 동안 다양한 문화 형태로 전승·발전되어 왔다. 삼국시대에도 천신, 지신, 인신을 섬긴 기록이 나온다. 신라 미추왕릉(262-284)의 금장보검과 감은사지(682년 창건) 기단석과 최근 발견된 백제 목각(538-660)을 비롯한 신라시대에 창건한 통도사(646년), 장안사(674), 법주사(736년), 상계사(854년) 등에도 무수한 이태극 및 삼태극 문양이 등장한다. 도교의 삼청각을 수용하여 불교 사원에서도 삼청각 또는 삼신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왼쪽부터 청동기시대 곡옥, 신라 미추왕릉 보검, 백제 목각, 신라 감은사 기단석. (사진: 필자 제공)
왼쪽부터 청동기시대 곡옥, 신라 미추왕릉 보검, 백제 목각, 신라 감은사 기단석. (사진: 필자 제공)

조선왕조의 건국을 설계한 정도전은 삼문론(天文, 地文, 人文)에 입각하여 궁전 좌우에 종묘와 사직(땅 社, 곡식 稷)을 배치해 각각 조상 신위와 지모신을 섬기도록 했다. 첨성단에서는 천신을 제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궁 정전과 침전의 계단석, 종묘 문지방, 왕릉의 홍살문, 4대문의 대창, 각종 왕실 악기의 삼태극 문양을 공식 문양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세종 대왕은 천지인 삼재를 한글의 모음(•  — │)과 자음( ○ □ △)으로 표기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아울러 근대 민족종교는 단군신앙을 되살려 천도교에서는 ‘천지인 삼경론(三經論)’을 통해 천지인 조화의 실천적인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단군교에서는 《천부경》 등을 통해 천지인 조화의 철학적·종교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민간인들도 생활용품에 태극 문양을 즐겨 사용하면서 이러한 천지인 조화를 삶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삼태극을 엠블럼으로 채택하였고, 2016년 대한민국 정부도 삼태극을 모든 정부 부처의 심벌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무수한 현대적 디자인에도 삼태극 문양이 응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조선왕조의 봉건주의, 일본의 제국주의 그리고 이념적 좌우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균권, 균부, 균학의 삼균주의를 국가의 이상으로 삼았다. 즉,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고 하늘을 잘 섬기기 위해 모든 사람이 균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제도화하여야 하고, 물질을 소수가 독점하거나 착취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를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하는 경제제도를 세워야 하며, 사람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모든 사람의 권리를 가능한 균등하게 하는 정치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삼균주의는 현재의 헌법 전문에도 반영되어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2. 태극과 우주의 궁극적 원리

소크라테스가 설파하고 칸트가 인식론적 체계로 확립한 것처럼 인간의 지식은 직관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으로 나뉜다. 태극도 직관적으로는 ‘태극이 태극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태극의 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대인들은 밤과 낮의 교차를 우주의 궁극적 원리로 여겨 이를 음(⚋)양(⚊)으로 기호화하였다. 이 음과 양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상징한 것이 태극도이다. 태극(太極)을 영어로는 ‘Ultimate Principle of Universe’(우주의 궁극적 원리)로 번역하는 이유이다.

직관적 상징으로 표현된 태극이라는 단어는 기원전 3세기 주나라 문왕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주역》 〈계사상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역에는 태극이 있어, 여기서 양의(음양)이 생겨나고, 양의에서 사상이 생겨나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겨났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고 하였다. 우주는 궁극적으로 대립되는 둘, 즉 음과 양의 분화로 삼라만상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주역을 전후로 여러 팔괘도를 거쳐 두 종류의 태극도가 등장하였으니 ‘대립대칭’(◑)의 태극도와 ‘순환대칭’(☯)의 태극도이다.

대립대칭 태극도의 개념적 이해를 시도한 것은 염계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태극도설》이다. 그는 《주역》의 태극 음양설과 오행설을 종합하여 만물 생성의 과정을 ‘무극 = 태극 → 음양 = 동정 → 오행 = 만물’로 전개된다고 하였다. 무극과 태극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음과 양 역시 일정(一靜) 일동(一動)에 따라 ‘둘이면서 하나’라는 음양동정관(陰陽動靜觀)을 내놓았다.

한대(漢代) 〈건착도〉(乾鑿度)는 순환대칭의 태극, 즉 역의 개념을 더욱 보충하여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역(簡易)이라 하였다. 만물은 변화한다(變易). 변화한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不易). 변화의 양상을 간단하니(簡易) “양의(陰陽, 靜動) → 4상(四象) → 8효(六爻) → 64괘(卦)”라는 것이다. 여기에 주희(朱熹, 1130-1200)가 교역(交易)을 추가하였다. 정동에 따라 음이 양이 되고 양이 다시 음이 되어 음양은 번갈아 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3. 동양의 태극론과 서양의 이데아론

동서 철학의 비교 자체가 광범위한 작업이지만,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에 견주어볼 때 “동양철학은 태극론의 주석”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등장한다. 동굴에 갇힌 사람은 동굴 밖 나무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나무의 그림자만 볼 수 있다. 동굴 밖 빛은 불변영원하고, 동굴 안 그림자는 변화무상하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전자는 이데아의 세계이고 후자는 현상세계이며, 둘은 본체론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이원론에 이르게 된다. 아울러 시간적으로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변화가 생겨나는 시원적 위계론에 귀결하였다.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일자 → Nous → Pshych → 물질)은 이러한 위계적 차별, 소외, 적대의 철학적 근거가 된다. 서양 사상사와 신학사에서 이러한 본체론과 시원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이데아론에 견주어 보면 태극론의 음양 비유에는 비본체론과 비시원론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태극은 음양, 즉 밤과 낮의 두 원리의 관계를 상징한다. 한 밤과 한 낮은 달라도 아주 다르다. 그러나 한 낮이 움직여 그 극에 달해 초저녁이 되고 초저녁에는 낮과 밤이 둘이면서 하나이다. 초저녁이 동하여 그 극에 달하면 한 밤이 되고 한 밤은 한 낮과 본체론적으로 달라 보인다. 그러나 한 밤이 다시 움직임에 따라 그 극에 달하여 새벽이 되면 밤과 낮은 둘이 둘이면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의 긍극적 원리를 상징한 것이 태극도이다. 이처럼 태극은 본체론적으로 음과 양은 둘이 둘이면서 하나라는 비본체론적 일원론과 생성론적으로 낮과 밤이 무시무종(無始無終) 번갈아 변화하는 시비원적 순환론을 함축하고 있다. 성리학의 이기론 논쟁, 양명학의 지행론 논쟁, 불교의 성속, 돈오점수 논쟁 등은 ‘공간적으로 둘이 둘이면서 하나인가 아닌가’ ‘시간적으로 둘 사이에 선후가 있는가’ 하는 논쟁으로 집약된다. ‘둘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둘 사이에 선후가 없다’는 태극의 원리를 적용하면 쉽게 해결될 논쟁이다.

화이트헤드는 《과정철학》에서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철학이라고 하였다. 그는 공간 이해에 있어서는 비본체론적 공재(togetherness)와 결합(nexus)의 유기체론을 주장하였고, 시간 이해에 있어서는 비시원적 합생(concrescence)과 추이(transition)의 과정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동양 사상의 주류인 태극론은 서양 사상의 비주류인 과정철학 또는 유기체철학과 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주염계의 이태극과 한국의 이태극의 차이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이태극도는 역동적 곡옥의 ‘회전 순환 대칭’(☯)이다. 음과 양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어 음과 양이 본체론적으로 비이원적이고(둘이 둘이면서 하나) 음양이 회전하며 순환하니 생성론적으로는 비시원적이다. 무시무종의 상징이다. 반면에 주염계의 이태극도는 정태적 삼원의 수직 ‘분할 대립 대칭’(◑)이기 때문에 음과 양의 좌우로 대립되어있어, 음과 양이 본체론적으로 이원론이며 생성론적으로 시원론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다.

왼쪽부터 박영효의 태극기 회전 순환 대칭, 주염계의 태극도 분할 대립 대칭. (사진: 필자 제공)
왼쪽부터 박영효의 태극기 회전 순환 대칭, 주염계의 태극도 분할 대립 대칭. (사진: 필자 제공)

이러한 분할 대립 대칭과 회전 순환 대칭의 차이는 분명하다. 양자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조화와 수직 분할적 대립의 차이며, 정태성과 역동성의 차이이며, 음양의 선후와 우열에 따르는 위계적 분화와 비시원성의 차이이다. 어쨌든 한국 태극기의 이태극도는 주염계의 태극도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현대는 모든 차별이 극대화된 사회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빈부차별, 문화차별 등으로 인해 세계가 분열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동식물을 차별하는 세계관은 인간의 생태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대립되는 둘의 관계가 ‘둘이면서 하나’라는 비본체론적 일원론과 이 둘 사이에는 선후와 우열이 없다는 비위계론적 비시원론을 함축하고 있는 태극론이 대안으로 요청되는 이유이다.

4. 한국의 삼태극과 천지인 조화론

한국문화는 삼족오와 단군신화, 삼태극으로 전승된 삼수분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천지인 조화론의 특징을 지닌다고 하였다. 삼태극이라는 단어 자체는 《주역》에 등장하지 않지만, 삼극(三極), 삼재, 천도·지도·인도, 그리고 삼재지도(三才之道)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주역》은 실제로 괘를 이루는 효(爻)를 셋(☰, ☷)으로 나누었다. 상효가 하늘, 중효가 인간, 하효가 땅을 나타낸다. 삼태극의 표상이다.

주염계가 《태극도설》에서 태극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해명한 이후, 이에 대한 후속 논의가 중국과 한국의 성리학자들 사이에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삼태극에 관한 논의는 주역 이후 공자와 맹자 등에 의해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다. 한국에서도 정도전, 이퇴계, 정약용 등이 단편적으로 언급한 삼태극이 단군교의 3대 경전에서 비로소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천부경》에는 “하나의 시작은 하나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쪼개보면 삼극이다. 다함이 없는 근본원리이다(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고 하였으니, 천지인 삼태극의 비본체론과 비시원성을 밝힌 것이다. 《삼일신고》는 천지인 삼태극의 상호 관계를 “하나를 취하면 셋이 포함되어 있고, 셋을 합하면 하나로 돌아간다(執一含三, 會三歸一)”고 했다. 셋이 셋이면서 하나라는 비본체성의 원리와 셋 사이에 우열과 선후와 위계가 없다는 비시원성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참전계경》(參佺戒經)은 환인, 환웅, 단군을 각각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로 원리를 설정하였는데, 조부자(祖父子)의 가부장적 체제의 영향으로 지모신 웅녀가 배제된 것 같다.

이처럼 천지인 조화론은 통시적으로 한국문화의 원형이고, 공시적으로 한국문화의 전승 모체이다. 나아가 기층문화와 표층문화를 통해 통전적으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면서 한국문화의 요체라고도 할 수 있다. 천지인 조화론을 통해 드러나는 ‘온전한 조화성(total harmony), 순환적 역동성(dynamic circulation), 자연친화성(natural affinity)’은 한국의 한옥, 한복, 한식이라는 의식주 문화를 통해서도 전승되어 왔으며, 이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케이 팝(K Pop)을 비롯한 한류의 문화적 기초라고 여겨진다. 서로 다른 복장을 하고, 따로따로 춤추고, 서로 다른 장르의 노래를 번갈아 부르는 ‘온전한 조화와 순환적 역동성’으로 인해 세계의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으로 《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에서 시도한 새로운 관점을 요약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서양의 이데아론과 동양의 태극론의 철학적 원리를 비교하면서, 양자의 차이를 본체론적 이원론과 비본체론적 일원론, 시원적 위계론과 비시원적 비위계론의 차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주염계의 《태극도설》의 ‘대립 대칭’과 한국 태극도의 ‘회전 대칭’을 비교하여 한국의 태극기가 훨씬 전진된 개념을 표상한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한국문화는 삼수분화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태극의 음양조화론와 삼태극의 천지인 조화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천지인 조화론의 문화전승사 개괄을 통해 제시하였다. 아울러 삼태극의 철학적·미학적 특징은 조화, 역동, 자연친화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무엇보다도 해월 최시형(1827-1898)의 삼경론(敬天, 敬人, 敬物)은 개인적·종교적 차원에서 천지인의 조화를 설파하였으나, 대한민국임시정부 강령의 삼균론(均富, 均權, 均學)은 사회적·제도적 차원에서 천지인의 조화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자세히 다루었다.

아울러 필자의 다른 저서, 천지인 조화를 해석학적 원리로 살펴본 《천지인신학 - 한국신학의 새로운 모색》도 언급해 둔다. 브루그만(W. Brueggemann)은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였고, 스텍(John H. Steck) 역시 “하나님, 인간, 땅의 셋은 성경의 위대한 삼중적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하벨(Norman Habel)의 말대로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과 사람과 땅은 서로 공생 관계(symbiosis)’를 지닌다고 했으니, 이는 천지인 조화론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호익
연세대학교에서 신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신학에 관심을 두고 한국 교계의 신학적 쟁점인 《단군신화와 기독교》 《안티기독교 뒤집기》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신학》  《동성애는 죄인가》  《한국의 이단기독교》  《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천지인신학》 등의 책을 썼다. 한국기독교학회 총무와 한국조직신학회 회장과 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본지 348호(2019년 11월)에 인터뷰가 실렸다.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