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에디터가 고른 책]

 

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 앤드류 울포드·아만다 네룬드 지음 / 김복기·고학준 옮김 / 대장간 펴냄 / 25,000원
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 앤드류 울포드·아만다 네룬드 지음 / 김복기·고학준 옮김 / 대장간 펴냄 / 25,000원

사법제도의 처벌 프레임을 넘어서 개인 회복과 공동체 치유에 무게 중심을 두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그러나 현실에서 ‘회복적 정의’는 누군가에겐 “사회의 중대한 불의에 작은 연고나 발라주는 역할”일 뿐이다. 국가 자원에 의존한 각종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들은 기껏해야 구조화된 불평등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귀결된다고 뼈아픈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회복적 정의를 한껏 옹호할 듯한 제목과 달리, 회복적 정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현실의 한계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특별히 저자들은 기울어진 정치적 맥락과 구조 안에 갇힌 ‘정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끊임없이 변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복적 정의의 실천을 단순히 불의를 드러내고, 그 치유책을 발견해내는 기본적인 방법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신, 회복적 정의는 새로운 불의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아낼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 실행을 성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책 자체가 그 변혁을 추구하는 실행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실적이다. 2009년의 원서 초판은 남성 저자인 앤드류 울포드의 단독 저서였으나, 2판에서는 여성 저자 아만다 네룬드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사회학 박사인 아만다 네룬드는 페미니스트 관점의 범죄학이 회복적 정의와 어떻게 교차·통합되는지를 연구해왔고 그 통찰을 책 전반에 녹여냈다.

범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이 책이 회복적 정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도, 폐기하지 않고 끝내 변혁을 도모하는 데까지 발전시키는 과정은 회복적 정의의 잠재력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가장 많   이 반복되는 ‘변혁’이라는 단어는 형사사법제도가 규정해온 여러 토대를 해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쯤에서 회복적 정의의 저력을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전달하면 좋을 텐데, 그 맥락과 문화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짧은 결론이 회복적 정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까 봐 조심스럽다. 사법제도 너머의 회복과 정의를 누리기 위해서는 오해를 좁히는 대화와 경험이 더 많이 쌓여야 한다. 기꺼이 그 기나긴 토론의 출발선에 서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완독을 권한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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