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무브먼트 투게더

   
▲ 발사대를 실은 미군 차량 진입 전엔 오전 7시 13분,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길 밖으로 밀려난 시민과 경찰(사진: 박정경수 제공)

2017년 9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강행했다. 대통령 취임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부는 굳이 ‘임시 배치’라고 설명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절차를 무시한 ‘긴급 배치’였다. 결과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임시’라는 단어가 몹시 거추장스러웠다. 정부는 북핵 실험 때문에 사드 배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배치를 결정했던 것은 6차 북핵 실험이 있기 전인 7월 말이었다.

한밤중에 무려 8,000여 명의 경찰이 작전에 동원되었고,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키던 주민과 시민 400여 명을 강제로 해산했다. 주민들은 경찰과 무려 18시간을 대치했는데, 강제로 들려 나가거나 대개 끌려 나갔다. 더러는 넘어지거나 깔리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은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야간 강제진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해 보였다. 결국 하루를 꼬박 새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경찰은 시민들을 길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오전 8시 발사대를 실은 미군 차량과 공사 장비가 주민들 앞을 지나갔다. 60여 명의 시민들이 실신하고 30여 명이 병원에 실려 간 뒤였다. 차량과 천막들이 모두 부서져 마을은 마치 폐허 같았다.

오열하는 사람도 있었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미군 차량을 향해 참외가 날아다녔다. 바닥을 보며 고개를 떨구는 사람도 있었다. 대개 누구보다 열심히 지난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런 강제 진압은 경험하지 못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배반당한 약속: 4월과 9월 사이에서
경찰의 진압을 지켜보며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나만은 아닐 거다. 지난 4월 26일, 대통령 선거 직전에도 박근혜 정부 하에서 사드 발사대와 레이더를 반입하기 위해 경찰 8,000여 명이 소성리에 투입되었다. 노인 120여 명이 사는 성주의 작은 마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원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예고도 없이 경찰은 인근 5km 근방 도로를 모두 통제했고, 새벽이 되자 작전을 시작했다. 갑작스런 경찰의 작전은 주민 60여 명을 진압하는 데 채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주민 차량의 유리를 무작위로 파손했고 차를 강제 견인했다. 주민 수십 명이 다쳤다. 꼭두새벽 부지불식간에 경찰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강제진압을 끝냈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는 “환경영향평가가 끝나기도 전에 주민 반대를 무시하고 장비부터 반입한 것은 사드 배치가 국민 합의는커녕 기본적 절차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긴급 발표했다. “충분한 공론화와 합의를 거치고, 국익과 한미동맹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걸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문재인도 충분한 공론화와 기본적인 절차 없이 사드 배치를 힘으로 밀어붙였다. 1년 이상 걸리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도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만 받아놓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3급 군사기밀로 지정해 열람도 할 수 없게 묶어놓았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주 부지에 사드 장비가 전격적으로 반입됐다. 이는 차기 정부의 정책적 판단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대선 전에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소위 ‘알박기’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 뒤에는 도리어 사드 ‘임시 배치’를 결정했다. 임시 배치는 공론화나 기본적인 절차 이전에 사드 배치를 확정짓는 결정이다. 다른 활동가의 말을 빌자면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사드 배치에는 사회적 합의가 적용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어버린 ‘전략적 모호함’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전략적 모호함’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강대국들의 냉혹한 외교 무대에서 모호한 태도는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게 필요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외교 무대에서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 모호함 때문에 스스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사드 문제에서 벌써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외교는 바깥의 나라들뿐 아니라 국민들도 함께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소성리에서 경찰의 진압을 눈으로 경험하면서 앞선 기대를 접기로 했다. 그동안 그가 했던 약속들이 어떻게 지켜질지 확신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 직후 기존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나머지 4기의 발사대가 이미 국내에 들어왔지만 청와대가 이를 보고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어떤 경위로 4기가 추가 반입된 것인지, 반입은 누가 결정한 것인지, 왜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새 정부에도 지금까지 보고를 누락한 것인지 등을 진상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지금껏 진상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고 4기의 발사대는 일방적으로 배치되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적인 태도 변화는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7월 28일에 이루어졌다. 그동안 국방부는 사드 배치를 앞당기기 위해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피해 단기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 실시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에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결정한 것이었다. 적어도 그가 후보자 시절 약속했던 기본적인 절차와 공론화의 시간이 마련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기대가 무너진 것은 단 하루만이었다. 다음날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발사대의 임시 배치를 지시했다. 28일 밤 북한이 기습적으로 강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가 성공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새 정부 들어 북한의 7번째 미사일 실험이었다. 김천이 지역구인 이철우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을 빌려 미국에서 사드 배치를 8월 30일까지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철우 의원은 7월 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이 사드 배치를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문재인 정부의 갈등 해결: 위임된 권력의 부재
진압은 한밤중에 벌어졌다. 통상 야간진압은 위험하기 때문에 경찰은 동이 틀 무렵 작전을 시작한다. 진압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용산참사 당시와 4월 사드 발사대 반입이 야간에 실시되었다. 다른 사례는 많지 않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도 야간진압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활동가들도 농성을 하며 경찰과 대치하면서 동이 틀 무렵 작전이 실시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자 대기하던 경찰들이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하고 진압 작전을 시작했다. 약속은 무기력했다.

왜 굳이 한밤중에 작전을 실시해야 했을까. 경찰과 주민들이 한창 대치중인 새벽 3시 무렵, 평택에서 사드 발사대를 실은 미군 차량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차량은 오전 8시 무렵 마을을 지났고, 경찰의 진압도 이 시간에 맞춰 시간대 별로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사드 배치가 확정되면 사람들이 금세 전날 밤의 일들은 잊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연행자가 없었던 것도 굳이 이 정부가 더 인권적이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당초 위험한 야간진압이 없어야 했다.) 연행자 석방과 법률 대응으로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예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소성리에서 주민과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한 그날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집회시위 자유 보장방안 권고안 및 부속방안’을 경찰이 수용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것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준비된 뉴스였을까.

나는 현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후에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박근혜와 다른 게 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간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이유로 오전 러시아로 출국한 상황이었다. 의도적으로 길지 않은 해외 일정에 맞춰 경찰의 진압이 실시되었다고 의심해 볼 만했다. 굳이 대통령이 없는 날에 맞춰 위험한 경찰의 야간진압이 실시되었어야 했을까? 명령을 받은 경찰들은 그들 나름으로 열심히 사람들을 해산했고, 시민들은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길을 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뒤엉켰고 발밑은 어두웠다. 현장에서 더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기대했는지 떠올려 보자. 그가 공권력 투입을 결정하기 전에 법률이 보장한 절차와 사회적 토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없었을까. 그가 러시아로 출국하는 대신 성주로 출발했다면 어땠을까. 8,000명의 경찰이 아니라 8,0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소성리를 방문해 소성리 주민들에게 먼저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시민들과 함께 국익이 무언지 안보가 무언지 토론하고, 사드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하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무기가 맞는지 이야기해볼 수는 없었을까.

나는 문재인 정부가 시작될 때 그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잘 행사해주길 기대했다. 그가 가진 권한을 최대한 사용해서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절차를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가 가진 권한이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과정’은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는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론조사가 아니라 성숙한 토론을 기대했다. 한밤중 무장한 폭력이 대답으로 돌아올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침묵했고 대통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사드 배치는 강행되었지만 주민들의 인권은 방치되었다.

 

박정경수
녹색당에서 일하며 코칭스태프가 된 거 같다고 말한다. 그래도 사람들과 함께 하나씩 만들어가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활동가들의 요청을 거절할 줄 몰라 애를 먹을 때가 많다. 틈틈이 평화단체를 돕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서 단순하게 살고 싶어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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