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호 올곧게 읽는 성경]

▲ 이미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 서울시민청에 마련된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 공간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투운동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말할 수 없었던/말하기 두려웠던 성추행, 성폭력의 경험이 ‘나도 있었다’며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사건은 2년 전인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었다. 사건 사흘 후인 5월 20일,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가 서울의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진행되었다. 인간이기에 앞서 ‘여자이기에’ 경험해야 했던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이야기들. 그러나 사소한 이야기로 취급되어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말할 공간조차 부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이날 ‘내가’ 주체가 되어 ‘나는’의 형식으로 말해지고 들려지고 기록되어 《거리에 선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멈추기 위한 8시간, 28,800초의 기록》**으로 출판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여성들의 ‘나’의 이야기는 대부분 여성들에게는 아마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여성혐오와 여성 폭력은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간베스트’(일베)의 여성 비하적인 표현과 발언을 비롯하여 ‘김치녀’ ‘된장녀’ 등 ‘◯◯녀’로 여성들을 범주화시켜 차별하고 공격하면서 여성혐오는 우리 사회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왔다.1

여성혐오(misogyny)를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의 타자화와 여성의 자기비하로 설명한다. 여성의 타자화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음으로 여성을 객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은 남성이 아닌 대상을 분리시켜 차별화하여 자신들의 경계를 명확히 함으로 정체성과 성적 주체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차별화, 범주화의 과정에서 “남성이 되지 못한 남자와 여자를 배제”한다.2 그러나 여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남성들에게도 어머니는 멸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모순에 빠지면서, 여성혐오는 여성 숭배의 양상과 함께 나타난다. 여성혐오와 여성숭배의 양면성은 여성의 성(sexuality)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평가함으로 상쇄된다. 여성은 성녀와 악녀, 어머니/아내와 성적으로 부도덕한 여성 등 두 집단으로 분리되면서 악녀의 범주에 속한 여성들은 타자화되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3

여성의 이분법화를 통한 여성혐오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2018년 오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이 부도덕한 여성의 범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해방 이후 1950년대 사회 재건이 시급한 상황에서 “입술을 빨갛게 칠한 여자”나 “껌을 씹고 다니는 여자”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여성의 기준으로 등장하기도 한다.4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형성된 ‘◯◯녀’ 담론은 거의 모든 여성들을 나쁜 여자로 범주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치녀’ ‘된장녀’는 경제적으로 과소비하는 여성을 비난하며 등장한 용어이다. 하지만 ‘김치녀’나 ‘된장녀’는 “여성을 견제하는 담론”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용어가 여성의 경제력 상승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주변부 노동자”로 존재했던 여성들이 90년대 이후 남성과 동등하게 노동시장에서 활약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독립으로 “소비 능력”을 갖춘 일부 여성들의 소비 형태는 김치녀나 된장녀 담론으로 비난받기 시작한다. 문제는 왜 여성의 소비나 소비 욕망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 여성의 소비 형태가 또한 마치 여성 전체의 모습인 듯 투사되면서,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일부 여성들의 삶은 사회에서 잊히거나 누락된다.5 이렇듯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진 나쁜/악한 여자의 이미지는 실제로 악한 여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참조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재생산되는 것이다.”6 그리고 사회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여성들이 내재화할 때, 치즈코가 논의한 여성혐오의 또 다른 모습인 여성의 자기비하가 나타난다. 여성은 이래야만 한다는 남성들의 기준, 사회적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여성의 자기멸시와 자기혐오가 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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