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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를 꿈꾼 메시아 공동체
[339호 제국과 하나님 나라: 바울 서신 읽기 02] 데살로니카의 공동체들 2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1:42:07 한수현 goscon@goscon.co.kr
   
▲ 데살로니카에서 설교하는 바울. (그림: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

2019년 1월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426일 동안 밤낮을 지내고 비로소 내려온 사람들이 있다. 이는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 기록이다.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넘기면서 세워지고 연장된 이 기록은 그 이전의 408일 기록을 깨고 수립된 것인데, 그 기록마저도 같은 공장의 다른 노동자가 세운 기록이다. 후세에 ‘파인텍 농성’이라고 기억될,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드러낸 이 가슴 아픈 사태의 결론은 다섯 명의 노동자들에게 최소 3년간 고용을 보장한다는 회사의 양보로 일단 끝이 났다. 최소 3년 동안 최저임금에서 조금 인상된 급여를 받으며 일할 권리를 얻기 위해 그 수많은 밤을 75미터 상공에서 보낸 이들에게 서울의 하늘과 땅은 어떻게 보였을까?

신문을 접어놓고 성서를 펴들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읽는다. 파인텍 노동자들을 기억하며, 이전에 수많은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위한 몸부림을 기억하며, 메시아와 그를 전한 바울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천막 노동자들의 메시아 공동체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살전 2:9b, 이하 새번역)

데살로니카에 도착한 바울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아마도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바울은 천막(텐트)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고 한다. 초기 선교활동에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로마의 도시에 도착하여 천막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찾아갔을 것이다. 당시 천막을 만드는 일은 한 사람이나 소위 가내수공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막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 구역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며 그곳의 우두머리나 담당관들을 찾아가 자신을 소개하고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소위 천막 공장에 딸린 집단 거주 구역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당시 헬라의 지혜교사나 철학자들과는 달리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전하는 학문과 지혜에 대해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바울 자신도 일하지 않고 선교할 수 있었음에도 바나바와 함께 자비량 선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고전 9:6).

당시 소아시아의 여러 헬라 도시들은 마케도니아 제국의 영광을 뒤로하고 로마 제국에 의해 재편되고 있었다. 주전 146년에 로마 제국에 편입된 마케도니아의 첫 수도였던 데살로니카는 로마의 번영과 함께 풍요의 땅으로 불리고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데살로니카는 경제활동과 무역 등이 활발했고 아름다운 신전들과 건물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나 그렇듯이 특히 고대의 제국에 완전한 번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번영 이면에는 그것을 떠받치는 착취와 압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 필요한 물자들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었던 헬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데살로니카의 항구에는 부를 축적하려는 로마의 관리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도시 외곽 곳곳에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구역들이 늘어났고 가내수공업이나 소규모로 행해지던 산업구조가 점점 대량생산체제로 바뀌고 있었다.

헬라의 도시에서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부딪힌 것은 힘든 노동과 착취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빛나는 눈과 심연의 지혜를 가진 인물로 보이는 바울에게 매료되었다. 아니 그들은 처음부터 바울을 자신들의 동료로 맞아주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울과 함께 밤낮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바울과 함께 메시아 공동체를 세웠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살전 1:9)

‘영접’의 원어인 εἴσοδος(에이소도스)는 ἔξοδος(엑소도스)의 반대 의미로 쓰이는 명사이다. 엑소도스는 구약성서 출애굽의 원어인데, 곧 ‘나감’ ‘탈출’을 의미한다. 반대로 에이소도스는 ‘들어감’ ‘영접’의 의미로,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한다는 뜻이다. 중동 문화에서 문을 열어준다는 것은 손님으로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살던 사람들의 문화에서 손님으로 맞는다는 것은 그를 적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며, 그의 적은 곧 나의 적이 됨을 뜻한다.

만약 그 손님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손님을 내어주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까? 아니다. 손님으로 맞은 순간 자신의 삶도 손님과 함께한다. 그래서 영접, 문을 열어주는 것은 바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환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데살로니카에서 바울을 만난 사람들이 바울과 동역자들이 메시아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들을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바울과 동역자들을 자신들의 손님으로 삶 가운데 받아들였다. 그래서 데살로니카에 세운 공동체가 바울이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살전 2:8) 공동체가 되었다. 그들은 바울과 밤낮 노동을 함께하던 노동자들이었다. 한 초기 메시아 공동체의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는 마치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이 그러하듯 슬픈 파국을 맞는다. 바울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그가 전하는 메시아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에 큰 고통과 시련이 찾아왔다.

고난 당하는 메시아 공동체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장차 우리가 환난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고,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살전 3:4)

바울은 메시아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환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난은 매우 즉각적으로 임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데살로니카 공동체 사람들에게 누차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시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카로 오기 전에 빌립보에서 메시아를 선포하다가 “심한 반대”와 “고난”과 “모욕”을 당했다(살전 2:2). 호기롭게 시작한 메시아 선포가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보통 바울의 선교에 대한 반대자는 사도행전에서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로 그려진다. 바울이 부활한 메시아로 믿은 예수는 거리에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로마의 질서를 파괴하는 정치범들이나 반란자들에게 부여하는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럼에도 서구 사회에서 예수를 죽인 것이 로마 제국이 아닌 유대인들로 기억되는 것은, 복음서가 예수의 죽음을 그렇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성서에서 최초로 예수의 죽음을 기록한 바울은 예수를 죽인 자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고전 2:8)

예수의 삶과 행적을 통해 당시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 초기 메시아 공동체의 신앙적 기초를 놓으려 한 복음서 저자들은 굳이 예수의 죽음의 원흉을 선명하게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을 결정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마지막까지 사형 언도를 망설이는 인물로 나온다. 아니 오히려 복음서는 예수의 사형 언도 자체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빌라도가 예수를 “넘겨”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를 새로운 세상의 지도자인 메시아로 그리는 위험성을 바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빌립보에서 메시아를 전했을 때, 바울의 선포는 즉각적으로 심각한 사태를 일으켰다. 복음서 중 하나인 누가복음을 기록한 이는 다음 저작인 사도행전에서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의 마케도니아 지역 전도는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의 꿈에 나타나 “우리를 도와달라”(행전 16:9)고 말한 데서 시작된다. 이미 오랫동안 로마의 영향권 아래에서 발달한 마케도니아의 도시들은 로마 제국의 수족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바울은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빌립보에서의 선포는 그 유명한 바울과 실라의 옥문이 열리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의 행적을 덧칠했음에도 빌립보에서의 바울의 선포는 투옥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 이유가 로마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했기 때문이라 전한다. 그리고 “치안관”들이 바울에게 떠나달라고 간청해서 당당하게 떠나는 사도행전 속 모습과는 달리 바울은 빌립보의 기억을 “모욕”으로 단정한다. 그 후 바울이 (비록 마케도니아 제국의 첫 수도였지만) 빌립보에 비하면 외곽 지역에 속하는 데살로니카로 간 것은 그가 그만큼 거센 정치적인 반대에 부딪쳤음을 의미한다. 결국 바울의 행로를 보면 데살로니카를 끝으로 마케도니아 지역을 떠나 아가야(Achaia)로 피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바울이 전하는 선포가 로마의 중심부에 가까워 질수록 위험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바울의 선포에서 어떤 면이 로마의 정치적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었을까?
 
유토피아 비전과 ‘하나님의 정의’

지난 호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마의 일인자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지붕 아래 사는 이들에게 평안과 안정을 약속하긴 했지만 그 약속을 믿고 따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꺾고 내전을 끝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평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믿었던 지도자인 카이사르가 허무하게 암살되고 그 암살자들과 카이사르의 친구 안토니우스가 다시 내전을 일으키자 그들은 절망했다. 안토니우스가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왔을 때 다시금 평화를 꿈꾸었던 이들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내전을 벌이자 다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죽고 폭군 칼리귤라가 등장하고 그를 꺾고 클라우디우스(BC 10-AD 54)가 평화와 번영을 다시 약속했지만, 이제 제국의 약속은 부도난 수표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족이 가족을 죽이고 어제의 친구에게 칼을 들어야 하는 혼란의 내전 시대에는 그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와 안전을 가져오는 지도자를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체제와 질서 자체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나서야 생겨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자본주의가 이끄는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조금 더 살기 좋은 정치사회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전복되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가장 팽배했던 사회가 바로 바울이 메시아를 전하던 로마 사회였다.

원래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유토피아(Utopia, οὐτοπία)는 그리스어로서 ‘U’(없음 또는 가장 좋은)와 ‘Topos’(장소)의 합성어이다. 보통 유토피아의 뜻을 그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없는 장소’ 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플라톤의 국가론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는 현실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좋은 장소라는 의미일 수 있다. 유토피아가 장소적인 의미라면 ‘에스카톤’(ἔσχᾰτον)은 시간적인 의미이다. 이는 ‘마지막 시간’ 또는 ‘최고 정점에 다다른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의 여러 문헌에서 이 두 단어는 시민들의 삶이 가장 최고조에 이른 상태, 즉 평화와 번영이 가득하여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현실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할 정도의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유토피아와 비슷한 비전을 우리는 주전 730년에 이사야에 의해 쓰인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사 11:6-9)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로니아로 이어지는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제국이 말하는 정치적 선동과 가치들을 보아왔던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번영과는 사뭇 다른 이상향을 꿈꾸었다.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화와 전쟁이 물적 풍요로움으로 인해 사라지는 사회가 아닌,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적대적 질서, 즉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 자체가 붕괴되는 사회, 바로 사자가 풀을 먹는 사회를 꿈꾼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채워짐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이를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정의’ 또는 ‘신적 정의’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회 유지를 위한 법적 정의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정의’에 대한 상상력은 당시 제국의 혼란기에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던 로마에는 없던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시대에 바울은 정의의 시대를 이끌 지도자, 또는 신의 메시아가 이미 왔다고 선포한 것이다. 메시아가 ‘올 것이다’와 ‘이미 왔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간극이 있다. 로마 제국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선전 밑바탕에는 다시 올 카이사르, 다시 나타날 아우구스투스라는 황제에 대한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예수는 이미 왔고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확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살전 1:3-4)

바울이 어떤 조화를 부렸는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시대는 누군가의 능력이나 천지를 준동할 지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 안에 역사하는 믿음과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데살로니카에 찾아간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집단 거주지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밤과 낮의 혹독한 노동을 견디며 그들에게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 주장했다. 그것이 초기 바울 공동체(에클레시아)의 시작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시작은 시련과 환난이었다. 도시를 장악한 로마의 권력은 스스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려는 집단을 의심하고 박해했다. 그러나 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서 다시 태동하던 메시아 공동체들의 모범이 되었다(살전 1:6-7). 결국 순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악과 폭력을 드러내는 일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높은 교육을 받은 로마 시민들은 보통 내세를 믿지 않았으며, 죽고 난 후에는 땅에 묻고 평소에 즐겨 외우던 시 한 소절이나 경구 하나를 묘비에 적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묘비를 로마로 들어가는 큰 길 주위에 세우곤 했다. 로마의 황제들은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축제를 베풀거나 위정자들에게 상을 내리곤 했는데, 신의 아들인 로마 황제의 행렬이 도시로 올 때 제일 먼저 맞이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이 행차를 고대에는 파루시아(Parousia)라고 불렀다. 중요한 인물이나 황제의 특사 등이 도시를 방문하는 일 또한 파루시아라고 불렀다. 이 그리스어를 바울은 예수의 재림을 뜻하는 단어로 쓴다. 그리고 그 파루시아의 때에 제일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들이 바로 먼저 순교의 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이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당시 로마 사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바울에게 이 부활은 폭력의 세계에 맞서 신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죽임당한 자가 신에 의해 복권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세상 불의의 근원인 악을 드러내기 위한 신의 방법이다. 신의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세상의 폭력과 악을 드러내려 한다. 이때 권력자는 그를 죽임으로 자신의 악을 덮으려 한다. 부활은 그렇게 묵살당한 정의가 신의 이름으로 다시 소환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의해 묻혀진 신의 지식과 말씀이 부활을 통해 다시 드러난 것과 같다. 바울에게 순교란 세계의 악과 폭력을 드러내는 믿음의 실천이자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보여주는 정결한 행위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살전 4:7)이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예수라는 새로운 정의의 지도자는 현실의 직접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약속으로 주어졌다. 달리 말하면 바울이 전하는 메시아는 변화를 이루는 자가 아니라 세계의 악을 드러내는 자이다. 우리는 파인텍 농성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고 악이 끝까지 숨기려 하는 것들을 드러내는 싸움은 믿음의 실천과 소망의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409일간의 고공 농성은 노동자에게는 당연한 일할 권리가 죽은 사회에서 그것을 부활시키기 위해 세상의 악을 드러내는 일이다.

바울이 만약 요즘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평안히 살다가 죽어서 부활하여 가는 천국’을 말했다면 왜 그토록 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바울과 그 공동체를 죽이려 했을까? 제국의 시대에 모든 죽음은 사회적 폭력에 의한 죽음이다. 인간으로서 꿈과 자유를 잃고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어 그 무거운 짐에 짓눌려 스스로 생명을 태우는 사람들의 죽음은 모두 사회적 살인에 의한 결과이다.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세상의 악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은 부활의 몸부림이다. 그런 이들에게 바울은 말한다.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마르크스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던 엥겔스는 바울의 공동체와 자신들이 꿈꾸는 노동자 공동체의 차이는, 바울 공동체가 이 세계 밖의 유토피아를 꿈꾼 반면 자신들은 세계 안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데 있다고 했다. 엥겔스가 말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의 방법은 매우 닮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제국의 시민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살전 5:6, 21-22)


한수현
감리교신학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Th.M.), 시카고 게렛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M.Div)한 뒤, 시카고신학교에서 바울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바울 서신, 복음서, 유대 묵시문학이며, 박사 논문은 고린도전서 15장의 ‘죽은 자의 부활’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 짓는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강사로 바울 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교회와 사회를 바울 서신과 바울 신학에 비추어 살펴보는 여러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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