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 엔도 슈사쿠 지음 / 김승철 옮김 / 동연 펴냄 / 13,000원

엔도 슈사쿠(1923~1996)가 자신의 대표 소설인 《침묵》(1966)의 집필 배경과 출판 후 소회 등을 밝힌 책. 그 자신도 고백하듯 소설가가 제 작품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굴욕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침묵》을 오독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원했던 제목은 ‘양지의 냄새’였다. 후미에를 밟아 그리스도를 배반한 후 기리시단(‘Christian’의 일본 음역) 주거지(사실상의 수용소)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던 페레이라가 추운 겨울 볕드는 양지에서 회한에 잠길 때 거기에는 양지의 냄새, 고독의 냄새가 있었을 것을 떠올린 제목이었다. ‘후미에’는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밟고 지나가게 했던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판이나 그림을 뜻한다. 엔도에게 후미에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를 철저하게 ‘배반’했다.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에게 배반당한 채 숨을 거두었다. 엔도가 《침묵》에서 순교자가 될 수 없었던 ‘약한’ 사람들, 콤플렉스 가득한 이들의 고독을 담고자 한 것은 자신의 고뇌 때문이었다. 그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순교자들처럼 당당하게 표현할 용기도 없는 이들’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후미진 기도실에 걸린 성모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배교자를 심판하는 ‘아버지’가 아닌,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고 말없이 안아주는 존재 ‘어머니’. 엔도는 거기에서 양지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스도를 안은 성모의 그림, … 이 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었다. … 그들은 이 어머니 그림을 향해서 마디가 굵은 손을 모아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181쪽)

참, 《침묵》을 읽었던 독자라면 이 책 끝에 수록된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를 꼭 읽어야 한다. 실제 역사 기록을 편역·발췌해 소설에 포함(‘부록’이 아니다!)한 것인데 한국 번역본에서는 그동안 빠진 채 출간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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