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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평화, DMZ평화도보순례
[333호 민통선 평화 특강]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1:17:05 정지석 goscon@goscon.co.kr

평화는 행동입니다. 평화 공부는 평화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평화는 행동으로 하는 실천의 일입니다. 국경선평화학교의 피스메이커 공부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평화를 중시합니다. 생활의 평화, 평화의 생활화, 평화를 몸의 습관이 되는 공부를 추구합니다. 피스메이커 공부 과정 중에 매년 여름 6·25 주간에 하는 ‘DMZ평화도보순례’는 남북한 분단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며 공부하는 ‘실천 평화학’입니다. 오늘은 몸으로 배우는 평화 공부로서 평화순례운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사진: 정지석 제공

DMZ평화도보순례
국경선평화학교 ‘DMZ평화도보순례’는 남북한 분단의 철책길을 걸으며 분단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평화통일의 신념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정입니다. 민간인 통제지역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남방한계선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가 있습니다. 남북한 내국경 지역의 민간인 마을길을 주로 걸으면서 종종 민통선 지역 안으로 들어가 DMZ 철책선까지 걷는 기회도 가집니다.

DMZ 철책선에서 보면 북녁 땅 군인 초소들과 마을이 가까이 보입니다. DMZ는 단어의 뜻 그대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비무장 상호 군사적 불가침 지역으로, 1953년 휴전협정 이래 분단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민간인들은 잘 가지 않는 이곳을 우리는 희망을 품고 걷습니다. 남북한 평화 통일의 축제 지역이 되리라는 희망, 후손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새기는 평화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와 희망을 안고 걷습니다. ‘DMZ평화도보순례’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남북한 내국경 마을의 도보길은 한국전쟁 중 격전지였습니다. 많은 남북한 청년들의 피가 뿌려진 땅이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군 청년들의 피로 물든 땅입니다. 분단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지뢰가 심어지고 군인들의 군화로 다져진 땅입니다. 군용차와 탱크, 장갑차들이 달리고 포격 훈련으로 화약 냄새가 배어든 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분단의 철책이 세워지고 병사들이 총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전쟁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던 땅에는 이제 푸르른 초목들이 울창합니다. 전쟁을 상기하기 어려울 만큼 생명력 넘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이유와 목적을 위해서건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란 신념을 다집니다. 우리 몸과 근육 속에 평화가 새겨집니다.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들은 3년에 걸쳐 동에서 서까지 분단의 길을 매년 나눠 걷습니다. 군사분계선의 길이는 155마일(약 250km)이지만 실제로 걷는 길은 450km입니다. 민통선 안과 밖의 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걷는 길이 대략 그 정도입니다. 우리는 3년의 첫 해는 철원에서 화천까지 걷고, 두 번째 해에는 화천에서 고성까지, 세 번째 해에는 철원에서 강화도까지 걷습니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 백령도까지 배를 타고 가서 걷습니다. ‘DMZ평화도보순례’ 전 과정은 이렇게 3년에 걸쳐 이뤄집니다.

여기서 올해 평화도보순례의 첫째 날 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날 일기
오늘 아침 8시 피스메이커들은 철원 노동당사 앞 분단의 시계 앞에서 ‘2018년 DMZ평화도보순례’를 출발하다.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 대광리, 신망리 길을 걸어 파주와 김포를 거쳐 강화군 교동도까지 가는 5박6일의 길이다. 최근 노동당사 앞에 분단의 시간을 알리는 분단시계가 세워졌다. 마을 시인의 아이디어를 살린 것이라 한다. 초단위로 흘러가는 분단의 시계탑 앞에서 평화도보순례길을 시작하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간이란 무엇인가란 철학적 질문도 잠깐, 아 지금 내가 사는 시간이 분단의 시간이라는 깨달음이 온 몸을 감싼다. 지금 우리는 분단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곧 평화 통일의 시간에 살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을 갖고 평화순례를 시작한다.

우리가 걷는 길은 한국전쟁의 격전지,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피를 쏟았던 전쟁의 땅이다. 땅에 쏟아진 아벨의 핏소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회개 기도의 길, 전쟁의 상처를 씻는 기도의 발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남북한 평화를 기원하며 걸을 것이다. 4·27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즐거운 평화의 기억이 계속 현실로 실현되기를 기도하며 걸을 것이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가? 나 자신 삶을 반성하며 걸어야 할 것이다.

노동당사를 출발하여 소이산을 돌아 벼가 자라는 논둑길을 따라 백마고지역으로 향한다. 옛 경원선 철도 길로 신탄리를 향해 걷는다.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넘어간다. 신탄리는 경기도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곳에는 이십여 년 넘게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회하는 윤은희 목사가 있다. 윤 목사는 3년 전 국경선평화학교에 입학하여 바쁜 목회 틈틈이 공부하는 피스메이커 동료이다.

점심식사 후에 윤 목사 교회로 가서 낮잠을 잔다. 점심 후 한 시간 낮잠은 6년 전 DMZ평화도보순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생긴 전통이다. 여름날의 가장 뜨거운 햇볕 시간을 피할 겸, 휴식 겸하여 쉬고 잔다. 오후 걷기 순례길이 한결 가볍고 즐겁다.

오후에 비무장지대 철책선에 세워진 열쇠전망대로 갔다. 연천 마을 민통선 안에 있다. 군사검문소를 통과하여 들어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비무장지대는 초록 생명으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DMZ 건너편 가까이 북한군 초소와 북녘 마을이 보인다. 비무장지대는 남북군사분계선에서 각각 2km 뒤로 물러나 철조망을 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폭 4km의 공간인데, 남북 군대가 조금씩 밀고 들어와서 지금은 서로 가까운 군인 초소 간의 거리가 수백 미터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열쇠전망대 아래로 보이는 비무장지대 안에도 남북 군인 초소들이 가깝게 붙어 있다. 남북녘 사람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풍경 속에 길게 늘어서 있는 철조망은 어색한 괴물이다. 어리석음이란 저런 것일까. 우리의 죄의 모습이리라. DMZ에서 분단의 실체를 보며 생각이 깊어진다. DMZ는 대대로 이어가며 남북한 민족의 평화교육 현장이 되어야 하리라. 

열쇠전망대를 나와 대광리역을 향해 걷는다. 경원선 기차역이다. 서울에서 정동수·고민영 두 원로 목사님들이 도보순례길에 참여하고자 왔다. 평화통일의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70대, 80대 청년들이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광리역에서 신망리역까지 마을길을 걷는다. 오후 햇볕이 뜨겁다. 논과 밭에는 식물이 자라고 순례자들의 몸은 땀으로 젖는다.

신망리역 앞에는 유일순대국밥집이 있다. 오래 전 식당을 시작했던 새댁은 지금 80대 할머니가 되어 있다. 지금은 아들 내외가 국밥을 판다. 분단의 시간은 과거를 집어 삼키며 흐르고 있지만 유일순대국밥집은 처음 모습 그대로 허술하다. 철원에서 연천땅까지 DMZ 철조망에 서 있던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허기를 채웠을 것이다. 이 변함없는 순대국밥집에서 오늘 평화 순례자들도 저녁 허기를 채운다.

평화순례 평화운동 
평화도보순례는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 걸으면 신체 건강에 좋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차를 타고 갈 때는 못 보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적인 안정에도 좋다.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던 친구는 평화도보순례를 하면서 매일 깊은 잠을 잤다. 종일 걸으면서 몸이 피곤해진 탓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푸르른 자연 속에서 하루 내내 걷다보면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명력이 몸 안 가득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에너지이다. 마음의 평화는 평화의 주요 요소이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나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마음병이 든 청소년들과 평화도보순례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청소년 평화교육은 교실에서 현장으로, 이론에서 몸으로 하는 체험 교육으로, 지식에서 자신의 깊음과 만나는 영성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평화순례를 하면서 마음에 새겨지는 깨달음이다.

평화순례는 모순의 삶을 사는 평화운동가들에게 좋다. 평화운동의 현장은 제각각 다른 이해관계와 생각이 부딪치는 곳이다. 좋은 일만 있는 곳이 아니다. 슬프고 화나는 일도 많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겪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준다. 평화를 추구하면서 평화를 잃어버리는 모순의 삶을 평화운동가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실감한다. 그러므로 평화운동가는 기도하는 순례자의 삶을 체득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평화운동가는 자기 신념을 실천하면서 다시 반성하는 선순환의 행로를 지켜갈 수 있다.

평화운동가는 종종 순례자가 되어 걷기를 바란다. 순례자가 되어 걷는 길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서 희미해진 평화의 신념을 회복한다. 순례는 기도의 여정이다. 기도는 회복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기도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의 만남이다. 기도하며 걷는 순례자의 길에서 일상은 다시 빛을 얻어 회복된다. 평화운동은 기도와 함께 가야 한다. 평화도보순례를 하면서 얻는 체험이요,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고백하는 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평화운동을 하는 힘을 찾고 있다면 평화도보순례를 시작하라.
 
평화는 실천으로 빛난다
평화의 행동과 실천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주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평화운동’ 하면 무언가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나 하는 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일로 여겨져왔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평화운동은 보통 사람 누구나 하는 일, 생활 속에서 안전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화는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평화요, 세상에서 즐거운 일로 일어나는 평화입니다.

촛불시민 운동은 즐겁고 신나는 평화운동이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노래하고,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즐거웠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바라는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매를 들지 않고 말로 타이르고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면 비폭력 평화는 실천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소통하면 직장의 평화는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난민을 받아들이고 피난처를 제공하면 국제 평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실천할 때 쉬워집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생각 속에 평화를 가둬두지 말고 행동함으로 살아있는 평화가 되게 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평화는 관념이요, 이상일 뿐입니다. 머리로만 하는 평화는 변화시키는 힘이 없습니다. 손과 발로, 몸으로 움직이는 평화가 될 때 머릿속의 평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평화의 이상은 현실이 됩니다. 이제 평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의 평화에서 실천의 평화로, 평화의 이상을 생활형 평화로 말입니다.

평화보도순례는 몸으로 행동하는 평화입니다. 쉽고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민간인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DMZ 현장을 걷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빈번해지면서 남북한 평화는 실감되고 체험될 것입니다. 군사마을은 평화마을로 변화될 것입니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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