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커버스토리]

   
▲ 60주년 기념 토크쇼에 참석한 손은정 전 총무, 신용협동조합 다람쥐회 이용희 회장, 서로살림농도소비자생활협동조합 임소희 조합원,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 이응철 씨, 서울노동권익센터 정경화 씨, 홍윤경 노동선교부장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60년간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가 노동자들과 함께한 세월을 모두 다 알 수는 없다. 그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빛바랜 사진에서 그 온기를 느낄 뿐이다. 엄혹했던 시절, 노동자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 산선은 늘 노동자 편이었고 특히나 여성 노동자들의 집이었다.

햇빛보다 찬란했던 그녀들은 이곳에 모여서 공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억압에서 벗어나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고, 요리와 꽃꽂이를 배웠고, 저금을 하며 꿈을 키웠다. 무엇보다 노동자라는 자각, 노동자가 누구보다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각,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과 삶을 열어주었다. 그 언니들의 숨결이 아직도 가득한 이곳, 그들이 쓸고 닦으며 가슴 벅차게 가꾸어 온 이곳에는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드나든다.

지난 4월 30일에는 총회 노동주일 기념예배 및 128주년 세계노동절 축하마당이 산선 3층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2부 순서로 진행된 “노동의 봄날” 순서를 채운 노동자들이었다. 2018년 현재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해고된 지 13년째를 맞은 KTX 승무원 해고 노동자들,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된 후 11년 동안 길거리에서 투쟁 중인 콜트콜텍 노동자들, 구미에서 408일의 고공농성을 벌여 복직했으나 노사합의 불이행으로 또다시 75미터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와 공연에는 눈물과 감동이 있었고, 무엇보다 희망이 있었다.

그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KTX 노동자들의 타결 소식이 들렸다. 토요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뒤늦게 서울역 기자회견장으로 뛰어갔다. 기자회견은 이미 끝났지만 아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부장과 몇몇 조합원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무더웠던 그날, 그녀들의 모습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눈부셨다. 그리고 한 달 후, ‘현장 심방’ 프로그램으로 기독청년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산선을 찾은 3명의 KTX 조합원, 그동안의 13년을 담담히 말하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1993년 이랜드노조를 만들기 직전, 산선에 처음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전년도에 노사협의회로 의기투합을 하던 우리는 회사 측이 대놓고 개입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포함해서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우리는 산선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읽고,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산선의 역사를 잘 몰랐던 20대 중반의 젊은 노동자에게 산선은 말 그대로 노동자의 집이었다. 편안하고 친근했던 이곳에서 노조 결성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힘들 때마다 찾아왔다. 세월이 한참 흘러 2007년, 비정규직 문제로 510일 파업을 했을 때, 모두의 주목을 받았던 100일 정도의 초기 투쟁 기간이 끝나고 지리한 파업이 이어지던 시기, 매주 한 번씩 조합원 총회를 진행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파업 장기화로 지치고 힘들었던 우리 조합원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로 치열하게 살아갈 때, 어려운 시기마다 친구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산선이 나의 일터가 된 것이다. 2011년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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