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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함께한 영등포산선 60년, 다시 길을 묻다
[337호 커버스토리]
[337호] 2018년 11월 27일 (화) 16:53:37 홍윤경 goscon@goscon.co.kr
   
▲ 60주년 기념 토크쇼에 참석한 손은정 전 총무, 신용협동조합 다람쥐회 이용희 회장, 서로살림농도소비자생활협동조합 임소희 조합원,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 이응철 씨, 서울노동권익센터 정경화 씨, 홍윤경 노동선교부장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60년간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가 노동자들과 함께한 세월을 모두 다 알 수는 없다. 그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빛바랜 사진에서 그 온기를 느낄 뿐이다. 엄혹했던 시절, 노동자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 산선은 늘 노동자 편이었고 특히나 여성 노동자들의 집이었다.

햇빛보다 찬란했던 그녀들은 이곳에 모여서 공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억압에서 벗어나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고, 요리와 꽃꽂이를 배웠고, 저금을 하며 꿈을 키웠다. 무엇보다 노동자라는 자각, 노동자가 누구보다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각,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과 삶을 열어주었다. 그 언니들의 숨결이 아직도 가득한 이곳, 그들이 쓸고 닦으며 가슴 벅차게 가꾸어 온 이곳에는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드나든다.

지난 4월 30일에는 총회 노동주일 기념예배 및 128주년 세계노동절 축하마당이 산선 3층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2부 순서로 진행된 “노동의 봄날” 순서를 채운 노동자들이었다. 2018년 현재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해고된 지 13년째를 맞은 KTX 승무원 해고 노동자들,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된 후 11년 동안 길거리에서 투쟁 중인 콜트콜텍 노동자들, 구미에서 408일의 고공농성을 벌여 복직했으나 노사합의 불이행으로 또다시 75미터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와 공연에는 눈물과 감동이 있었고, 무엇보다 희망이 있었다.

그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KTX 노동자들의 타결 소식이 들렸다. 토요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뒤늦게 서울역 기자회견장으로 뛰어갔다. 기자회견은 이미 끝났지만 아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부장과 몇몇 조합원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무더웠던 그날, 그녀들의 모습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눈부셨다. 그리고 한 달 후, ‘현장 심방’ 프로그램으로 기독청년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산선을 찾은 3명의 KTX 조합원, 그동안의 13년을 담담히 말하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1993년 이랜드노조를 만들기 직전, 산선에 처음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전년도에 노사협의회로 의기투합을 하던 우리는 회사 측이 대놓고 개입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포함해서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우리는 산선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읽고,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산선의 역사를 잘 몰랐던 20대 중반의 젊은 노동자에게 산선은 말 그대로 노동자의 집이었다. 편안하고 친근했던 이곳에서 노조 결성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힘들 때마다 찾아왔다. 세월이 한참 흘러 2007년, 비정규직 문제로 510일 파업을 했을 때, 모두의 주목을 받았던 100일 정도의 초기 투쟁 기간이 끝나고 지리한 파업이 이어지던 시기, 매주 한 번씩 조합원 총회를 진행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파업 장기화로 지치고 힘들었던 우리 조합원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로 치열하게 살아갈 때, 어려운 시기마다 친구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산선이 나의 일터가 된 것이다. 2011년 4월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고난받는 노동 현장
어떤 노동자가 말했다. “하나님이 내려오지 않으시니 노동자들이 자꾸만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고 말이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아니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으로, 고난받는 현장에 찾아가서 기도를 하는 것은 모든 기독인들의 소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각 현장으로 보내셨다. 우리도 땀과 눈물이 있는 현장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 애끓는 사연이 있는 곳으로, 오늘도 발걸음을 내디딘다.

현장에서 함께 기도를 하다 보면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올 때가 있다. 비바람과 폭염, 혹한 속에서 듣는 짧은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아 남모르게 눈물지을 때도 많다. 어두운 저녁 시간, 잘 보이지 않는 악보를 보며 떠듬떠듬 따라 부르는 찬송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참여한 기독인들보다 더 힘차게 투쟁 소식을 전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내게 힘을 주는지…, 바로 이곳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닌가!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 중 신앙인은 별로 없다. 그런데 조금 친해진 후에는 “전엔 교회에 열심히 다녔어요. 요즘은 못 가지만… 사실 저희 삼촌이 목사님이세요” 등의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어떻게 보면 치열한 투쟁 현장에서는 신앙생활조차 사치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앙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찾아가는 기도회’는 한 줄기 빛일 수 있다. 때로 따뜻하게, 때로 묵직하게, 때로 신선하게, 노동자들의 마음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현장과 함께하고자 하는 기독인들이 매주 지속적으로 기도회를 열어온 사업장은 재능교육, 동양시멘트(현재는 삼표시멘트), 쌍용자동차였고, 이들 사업장은 문제가 해결되어 기도회가 마무리되었다. (매주는 아니라도 간헐적으로 현장기도회를 했던 사업장은 물론 거의 모든 투쟁사업장이다) 현재는 파인텍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기도회를 매주 화요일에 하고 있다. 매주 기도회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기독단체와 기독인들이 함께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들과의 친밀감 확대, 일상적 연대, 다른 기독인들의 연대와 실천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기도회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노동자와 가족이 희생을 당한 가운데 얻은 복직 약속이었는데, 그렇게 죽음을 막아보고자 애를 썼는데, 또다시 무너지는 약속 앞에 30번째 희생자가 생기고야 말았다. 울분을 토하며 5년 만에 차려진 대한문 앞 분향소, 갈 때마다 눈물이 났다. 기독인들도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독교 연석회의’로 모여서 매주 목요일마다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연석회의 전체 주관이었고 내가 사회를 보고 있었다. 당일 낮에 처음으로 쌍용자동차 사장이 대한문 분향소에 찾아와 분향을 했고, 교섭이 진행 중이었다. 참석자들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마침내 기도회가 끝나기 전에 잠정합의 소식이 들려왔다.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 순간, 함께했던 노동자들의 눈망울, 함께 기도하던 기독인들의 벅찬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모든 사업장에서 정기적인 기도회를 할 순 없지만 간헐적인 기도회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록 적은 인원이 모일 때도 있고, 투쟁을 강력하게 외치는 노동자 집회보다 그 소리는 작을지언정 울림이 있는 시간이 되어왔다. 콜트콜텍, KTX, 유성기업, 하이디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통신사 비정규직(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기륭전자 등 수없이 많은 사업장에서 진행되었다.

긴급한 투쟁 현장에도 기도회가 빠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앰프가 들어가지 못할 때, 고공농성장에 밥과 물품이 올라가지 못할 때, 어떤 상황이든 어렵고 막힐 때, 기도와 목사님들의 출동은 때로 생명줄과 같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길거리 생활은 계속되고 있으며 새로운 투쟁사업장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양산과 정리해고는 여전히 만만한 일이고 노조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노동자들의 기본 인권을 외치며 60년을 달려온 산선의 입장에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산적한 것이다. 적폐청산을 외치며 출범한 새 정권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나도 투쟁사업장의 중심에 있어 보았지만 투쟁사업장 노동자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찾아오는 누군가는 언제나 반갑다. 특별히 우리 편이 확실할 것 같은 사람(예컨대 옆 사업장 노동자)이 아니라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예를 들어 종교인, 문화인 등)이라면 더욱 힘이 된다. 따라서 각종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기독교적인 연대란, 옆에 있어 주고, 약한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끝까지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보아 주는 것이 아닐까?

   
▲ '산선' 60주년 기념 토크쇼 ⓒ복음과상황 이범진

노동문제 상담 및 전문가 연계
임금체납, 산재 등 개별적 노동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찾아갈 곳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도 서울노동권익센터를 비롯하여 지자체 지원을 받으면서 무료노동상담 등을 진행하는 센터들이 아홉 군데나 된다. 민주노총과 산별 연맹들도 기본적인 노동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혹은 편한 공간이라는 이유로, 또는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누군가의 소개로, 산선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조직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런 개별 노동자들, 어쩌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환대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산선 고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산선은 이런 노동자들을 위한 1차 상담소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먼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판단한다. 법률 지원이 절실하면 자문위원 등 법률전문가를 연결해주고, 교육이나 자조모임이 필요하면 그런 쪽으로, 심리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이 우선이라고 생각되면 또 그쪽으로 연결한다. 이러한 사업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011년 11월에 설립한 것이 ‘비정규노동선교센터’다.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사회 핵심 문제가 된 시점에서 비정규직 노동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때로는 노동단체로서의 역할을, 때로는 선교단체로서의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노동자 “품” … 시작 배경과 참가자들의 육성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정리해고, 노조탄압,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투쟁에 내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마음건강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볼 마음의 여유도,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그런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돌보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이처럼 상처 받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해고자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감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노동자,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노동단체(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해 만든 치유/회복/의사소통 프로그램이 노동자 “품” 이다. 낡은 시설이지만 따뜻한 사랑방을 최대한 꾸미고, 최고의 간식을 준비하고, 베테랑 강사들을 섭외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불러 모으고 참여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내 마음 돌봄’ 이라는 것이 생소하기도 했고, 왠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불필요하게 나를 드러내야 할 것 같아서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자 조용하고 잔잔하게 노동자들에게 퍼져나갔고, 이제는 안착이 되었다.백말이 무슨 소용일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소통’과 ‘존중’을 몸으로 배우고,

-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경청할 수 있었다.

- 서로 존중받는 느낌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을 것 같다.

- 상대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소통이 굉장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동지들과 싸우고 난 후 상대방을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된다. 답답해서 먼저 말하곤 했었는데 이젠 조금 기다려준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얻었으며,

- 어렸을 때부터 대인기피증이 있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하면서 많이 극복된 듯 하다.

- 나를 위로하고 위안 받고 하니 힘이 난다.

 

갈등과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 다른 사람에 대한 포기, 배척, 무관심적 태도에서 좀 더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만들어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 ‘지도자’와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 볼 수 있었다.

-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는 법, 갈등과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 배워서 바로 현장에서 활용(교육)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이 (어제 그리지 못했던)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노동자 품 5기 마지막 1박2일 수련회 시간이었다. 가장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을 그림 또는 글로 표현하고 나누는 시간에 유일하게 기뻤던 순간을 빈 칸으로 두었던 노동자가 있었다. 어떤 마음인지가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다음 날 모든 순서를 마치고 수료식을 진행했다. 수료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 노동자가 말했다. “어제 가장 기뻤던 순간을 그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릴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 왔다. 한 노동자의 삶을 새롭게 만든 품 5기는 수료 후 5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월 1회 후속모임을 하고 있다.(현재까지 54번의 후속모임 진행)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배웠던 것을 복습하고, 강사 없이도 각자가 삶에서 적용했던 부분을 나누며 서로에게서 배운다.

 

“경청만 했더니 2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노동자 품 7기 두 번째 시간 주제는 경청이었다. 이 시간에는 아무런 말이나 질문, 판단도 없이 상대방의 얘기를 온전하게 경청하는 실습을 했다. 일주일 후 한 노동자가 앞으로 와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지난주에 경청만 했더니 2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어머! 정말요? 그냥 경청만 했는데요?” 그 옆에 있던 내가 더 놀라서 되물었다. 과연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중급 / 고급 / 강사양성 과정 노동자 “품 플러스”초급이라고 할 수 있는 6~10회기 노동자 품에 참여했던 분들에게서 중급/고급/강사과정에 대한 요구가 많이 있었다. 특히 지방에는 이러한 프로그램과 강사가 거의 전무한 지라 스스로 익혀서 현장에서 확산시키려는 노조나 연맹 간부들이 꽤 있었다. 그들을 위해 중급/고급/진행자과정인 “품 플러스”를 진행했다. 품 플러스 1기의 경우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하는 1박2일 과정을 한 달에 한 번씩 네 차례 진행했는데 지방에서 새벽 첫 자를 타고 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시 마지막 밤차를 타고 내려가는 강행군을 빠지지 않고 한 멤버가 서넛 있었다. 다음은 품 플러스 1기 수료생의 평가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 누군가 나를 귀히 여겨준다는 것, 스스로 고귀해짐을 느꼈다.

- 나 자신을 이토록 존중하고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나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 이기심과 오만에 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못마땅했던 식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

- 내 이야기 하기 바빴던 평소 태도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 상대에 대한 존중감, 가능성을 보게 하고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게 하였다.

-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수용하게 되었다.

 

다음은 품 플러스 1기 수료생에 대한 심층 인터뷰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노조 활동가들 중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은 많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다른 의견을 존중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에는 노조에서도 인성교육을 하기는 하나 대부분 단발성으로 그치는 아쉬움이 있다. 그저 수련회 때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쉬어가는 프로그램으로만 활용하려는 경향도 있다. 최소한의 연속성을 가지고, 부차적인 교육이 아닌 핵심 교육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들여다볼 시간과 여유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먼저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돕고, 의사소통 방식을 개선하여 신뢰가 돈독해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교육이라고 본다.

감정노동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감정노동’의 심각성과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하면서 감정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단체들이 꽤 생겼다. 이 중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요청으로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육성도 전달해 본다.

 

-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쳐 내일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음을 되찾게 되었다.

- 지치고 또 지쳤던 시기, 감정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을 때 참여하게 되었는데 감정의 느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 붙들고 연연했던 것들로부터 한 발짝 멀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부분이 젤 좋았다.

- 나의 마음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알아주게 되었다.

- 나에 대해, 그리고 주변에 대해 유연해지게 되었다.

 

어떤 참가자는 2년 연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참가하였다. 작년 프로그램에서 다소 변화는 있지만 70% 정도는 같은 내용으로 진행한다는 안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참여하여 전체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님! 저 프로그램 신청했습니다.

모든 강의가 다 의미 있고 좋았기에 같은 내용이어도 괜찮으니 혹시 재수강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같은 내용을 통해서도 그동안 저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저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좋은 시간이 될 거 같아요.

 

노동자들의 마음에 집중한 심리상담활동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추가적인 개인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였다. 사실 개인심리상담은 나로 하여금 오늘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힘이다. 장기 투쟁 기간에도 겉으로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투쟁사업장의 간부인지라 드러낼 수 없었고, 드러내기 싫었고,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꼭꼭 싸매 두었던 상처는 나도 모르게 속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마침 그때, 투쟁사업장 노동자라서 무료로 받게 된 개인상담은 놀랍고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처음으로 상처를 꺼내 보았고,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었으며 고름을 터뜨려 짜내자 어느 정도는 치유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이 경험은 내게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노동자들의 심리치유상담사업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만든 것이 ‘쉼힐링센터’다. 2016년 1월에 출발하여 올해 3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한 쉼힐링센터는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몸과 맘이 지쳐 있을 때 기댈 곳이 되어주고, 노동자 치유상담사업의 허브가 되고자 한다.
 

'쉼힐링센터' 설립
노동자들의 심리치유상담사업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만든 것이 '쉼힐링센터'다. 2016년 1월에 출발하여 올해 3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한 쉼힐링센터는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몸과 맘이 지쳐있을 때 기댈 곳이 되어주고, 노동자 치유상담사업의 허브가 되고자 한다.

어떤 노동자들에게도 열린 “노동자의 집”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동자들이 모일 곳이 없었을 때, 목소리를 크게 외칠 곳이 없었을 때, 산선이 거의 유일한 장소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둥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또 필요한 일인가,나 또한 93년에는 라면을 끓여먹고 모임을 하면서 이곳에 정을 붙였다. 97년에는 회사에서 노조를 없애려고 했을 때 투쟁을 결의하고 선포하는 장소가 되었다. 00년에는 비정규직 투쟁을 할 때 기독교 단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07~08년에는 일주일마다 진행된 조합원 총회의 터전이었다. 우리 얘기를 맘 놓고 할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2011년 이곳에 일하러 왔을 때 제일 처음 만난 것이 보조출연자노조였다. 당시 월례 조합원모임을 매우 좁은 노조사무실에서 하고 있다길래 큰사랑방에서 할 것을 제안했고, 그때부터 1년 정도 월례모임을 큰사랑방에서 진행했다. 그러면서 월례모임 때 조합원 교육도 같이 실시하게 되었는데, 위원장님과 함께 기획하여 내가 직접 진행하거나 강사를 초빙하기도 했던 조합원 교육은 보람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다.

KBS교향악단 노동자들도 찾아왔다. 몇 번의 모임과 조합원교육을 진행했다.14년 12월부터 15년 3월까지는 통신사 비정규직(LG U+, SK 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의 숙소(a.k.a 호텔)였다.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었지만 간접고용에다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노조 결성 후 얼마 되지 않아 힘겨운 투쟁을 했던 그 겨울, 지방의 노동자들이 돌아가면서 상경투쟁을 했는데 일부는 농성장에서 노숙을 했지만 일부는 하루종일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일 숙소가 필요했다. 낡은 건물이지만 보일러는 빵빵하게 잘 돌아갔다. 큰사랑방과 사랑3방 등에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칼잠을 자기도 했다.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손사래를 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다른 곳에 비하면 여기는 호텔이에요. 바닥도 따뜻하고 샤워실에 온수도 잘 나오는걸요~~

최근에도 누군가의 사무실, 샤워실이자 빨래터이며 정기적인 회의실이 되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겐 두려움이고 노동자에겐 힘이 되었던 도시산업선교회”

자본은 기업에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침투하면 그 기업은 도산된다고 언론에서 떠들었다. 6~70년대는 종교를 끼고서야 서슬 퍼런 군부독재와 투쟁할 수 있었다. 종교를 끼지 않으면 지하조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2018년,

나는 도시산업선교회를 사랑한다.

추운 날, 여의도 건물 안에 들어가 씻을 때 들킬까봐 불안했다.

항상 조마조마하면서 씻었다.

그런데 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가 열쇠를 준다. 언제 어느 때라도 들어와서 일 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도 생겼다. 새벽에 씻고 빨래하고, 이곳이 천국이다. 어느 날 밥을 해 먹으려고 1층 주방에서 달그락거렸다. 인기척 소리에 뒤돌아보니 생협 실무자가 흠칫 놀란 나를 보며 “괜찮아요. 내 집처럼 편하게 쓰세요." 잔잔한 감동이었다.

도시산업선교회는 투쟁을 통한 사랑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이곳은 억눌린 자. 소외 받은 자들의 투쟁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의 교회였다.

시간이 지나도록 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자존감을 찾게 해 준

도시산업선교회가 60주년을 맞는단다.

이제는 노동해방이 아니라 인간해방의 길을 생각한다.

투쟁도 사랑 속에서 나오는 힘!

그 힘 받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쓰러지지 않는다.

ㅡ 방종운 콜트지회장

 

노동계와 기독교계의 가교 역할과 교회 내 노동문제 인식 확산 활동
기독교계 내에서 노동문제 하면 예나 지금이나 산선이다.또 노동계 내에서도 기독교계에 연대와 협력을 요청하려 하면 그 또한 산선이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애를 쓸 때마다 한계 또한 온 몸으로 느낀다. 가교 역할이란 단순히 연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사련(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노동선교위원장이나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 위원, NCCK 정의평화위원 등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과제에 대해서는 뒷 부분에서 다시 논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대다수 교회들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인의 대다수는 노동자이며, 그 반이 비정규직인 것은 사회전반이나 교회 내에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노동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는 것이 시작이다. 그 다음으로 노동의 문제를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실천방안까지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산선은 그 동안 교회 내 노동문제 인식 확대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해 왔다. 물론 충분치는 않지만 그런 노력들이 밑바탕이 되어서 ‘총회노동주일’의 날짜도 변경되었고(3월 둘째주에서 5.1. 노동절 직전 주일로 변경됨) 노동주일 기념예배도 매년 드리고 있다.

노동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회 등도 수차례 진행했다. 비정규노동선교 핸드북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도 공들여 발간했다. 그러나 아직 지교회로 퍼져나가지 못했으며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서 뒷 부분에서 다시 논하겠다.

 

기독청년을 위한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라는 부제가 달린 현장 심방은 산선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벌써 10년이 되었다. 초기에는 아시아 활동가들과 함께 또는 아시아 활동가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2박3일로 운영된 적도 있으나 지금은 여름/겨울 방학 때마다 15명 이내의 기독청년들을 모아 3박4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번 여름이 20기였으니 연인원 200여 명이 다녀간 셈이다. 큰 홍보를 하지 않아도 참여했던 사람이 친구나 후배, 동생을 보내는 등 입소문과 소개로 매번 인원을 채우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 넘어까지(마지막 날은 새벽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이 되지만, 3~4번 반복해서 참여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여기서도 그 수료자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 우리들의 투쟁이 너무나 강력해져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노동자는 블루칼라가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 (KTX승무원) 노동조합 운동하는 모습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지혜와 용기를 발견했다.

- 사회적 연대는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이다.

- 결과적으로 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안고 왔다. 대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질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먼저 질문하며 고민했던 신앙 선배들을 만났고, 앞으로 함께 고민해갈 소중한 친구들도 만났다. 기대 이상의 뜻 깊은 경험이었다.


지난 8년간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지만 수많은 기독청년들을 만났던 것이 가장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일 중 하나였다. 구체적으로는 장신대, 감신대, 총신대, 한동대, IVF 세계관학교, IVF 산돌학교(대안대학), EYCK, KSCF, 한기연 등의 단체에 가서 강의를 하거나 함께 협력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다음은 한 참여자의 소감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노동’을 안다는 것은 가장 숭고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데 한국 사회 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 불안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각종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면하면서, 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나도 살아야 했기에 아픈 현실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것 같네요. 그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노동단체들과의 연대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노동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면 배우는 것이 많다. 어떤 문제로 고민이 있을 때 번뜩이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다양한 정보와 사업 방향 및 방식에 대한 나눔, 공동협력사업은 덤이다.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비없세(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서로넷(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에 가입하여 정기회의, 워크숍 등에 참여하며 교류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독보적인 노동선교단체로서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많은 도전이 되는 것을 느낀다.

순수하게 노동자들만의 힘으로 2년 넘게 준비하여 기적적으로 작년에 개소한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은 산선의 현대판 모습이다. 가까운 영등포구에 있기에 더욱더 친근하게 교류하고 있다. 각자의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시너지를 주고받으면서 협력할 필요가 많은 곳이다. 영등포공동행동, 영등포노동인권사업단 등 지역의 노동단체들과 함께 공동사업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서울 노동자들의 경우 한 개 단체의 힘만으로는 모으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으로도 힘을 모아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들을 구상하고 진행해야 한다.
 

노동자 치유상담사업의 확대, 연결과 재생산을 위한 활동
노동자 치유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고, 이후 보다 본격적인 치유사업을 준비할 때부터 네트워크를 결성하고자 했고 산선은 그 밑받침이 되고자 했다.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은 2015년 준비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산선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년을 준비하여 2016년 7월 1일 출범하였는데 이후 현재까지 사무국을 맡고 있다. <통통톡>의 수많은 사업을 다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올해 하반기에 진행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상근활동가 전원에 대한 마음건강검진사업은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마음돌봄 사업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정례화를 논한다는 것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통통톡이 생기고 조금씩 인식 변화를 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나도 벅차다. 이제 앞으로 구슬을 잘 꿰어나갈 수 있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작년부터 1년 이상 진행된 노동상담연구모임과 최근에 시작된(혹은 곧 시작될) 인턴쉽 과정(상담사/치유활동가 양성) 또한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서남권 감정노동자 치유상담사업 <마음과성장> 컨소시엄 활동 또한 앞으로 산선이 해 나갈 사업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향후 60년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활동에 주력해야 할까? 물론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이 모두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기에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선택과 집중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는 (가칭)영등포노동종합센터(이하 ‘노동센터’)의 설립이다. 회관 재건축과 함께 연동하여 재건축 후 이곳에 설립될 예정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지자체 지원 노동센터(대부분 근로자복지센터 혹은 노동복지센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들의 사업은 주요하게는 노동상담 및 법률 지원, 각종 교육사업,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실태조사, 시민홍보 및 캠페인, 문화사업, 연대사업 등이며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등의 사업이 추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산선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첫째, 기독교계와 노동계를 잇는 다리 역할 강화 및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아직 노동계에서는 종교계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바라기는 기독교계 내에서도 각 단체 간 역할 분담이 잘 되면 좋겠다. 노동 의제를 기독교계에 알리고 참여와 연대를 독려하는 연결고리 역할도 계속되어야 한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타 교단들과의 에큐메니컬적 협력이 잘 이루어져서 ‘노동’이라는 주제가 교회 내에서 더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고, 예배와 성경공부 속에서 이야기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전국의 교회가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노동자 마음치유사업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들의 삶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교회 곳곳에서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아예 기독교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 정책을 생산하면 어떨까?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형태를 가진 조직이나 공동체를 꿈꾸어 볼 수도 있겠다.

둘째, 기독청년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기독교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10년이 된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현장 심방’은 이미 산선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정착이 되었으므로 더 발전시켜야 한다. 현장 심방은 삶의 모양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기독청년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경험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참가자 중 몇 명은 이곳의 영향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한다. 현재 산선에서 일하고 있는 몇 명의 활동가들이 그렇고, 지역 노동인권센터의 사무국장 혹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 활동가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인데, 이들이 지속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고, 고비고비마다 함께 고민하며 길을 개척해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셋째, 투쟁 현장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센터는 직접적으로 투쟁 현장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깔고 선교 활동을 하는 산선은 훨씬 자유롭고 깊숙하게 투쟁사업장과 연대를 할 수 있다. 노동단체만큼의 힘을 가지지는 않지만 종교단체가 가지는 이점과 역할이 분명히 있다. 어떤 모양,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하는지는 사실 늘 고민이다. 다른 실무자들은 더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단순히 기도만 해서도 안 되고, 실제적인 투쟁에 도움이 되면서도, 일상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치유 사업이기도 하다.

넷째,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1차 상담소로서의 역할과 연결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도 없고, 의논할 동료도 찾기 힘들고, 영세한 사업장에 근무하기에 권리 주장 한 번 하기 어려운 노동자들,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길 가다가 잠시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곳, 때로는 하소연도 할 수 있는 곳, 그런 ‘노동자의 집’을 꿈꾼다. 전문가가 상주하지는 않아도 연계할 수 있는 허브와 같은 곳이 산선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쉼힐링센터가 감당하고 있는 노동자 심리치유상담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2011년부터 꾸준히 펼쳐 왔던 노동자 심리치유사업이 지속성과 연계성을 가지면서 점차 확대되어 온 것은 산선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이 중 일부 사업은 노동센터에서 감당할 수 있겠지만(현재도 많은 노동복지센터에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사회활동가 및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인 ‘통통톡’이 하고 있듯이 이러한 단체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사업은 산선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출범 2년을 조금 넘긴 통통톡에 대한 기대와 해야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올해 하반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업들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새로운 활동가들을 길러내기 위한 인턴십의 시작, 상담사뿐 아니라 종합적인 치유활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을 같이 시작한 일, 노동상담연구모임, 프로그램 운영팀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실제적이고도 내실 있는 사업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통통톡이 더욱 날개를 달고 활동 영역을 넓혀서 보다 많은 노동자와 사회활동가들의 마음치유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산선이 그 밑거름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산선에서 지난 8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간 개인적으로, 노동선교 분야에서, 또 산선 전체적으로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지만 지난 8년을 관통하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 바로 ‘정성스런 마음’이다.

산선은 20대의 젊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곳이었기에 여기서 일하는 것이 오랫동안 망설여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떤 활동으로 이 존경스런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을까, 1년 6개월을 고민하다가 여전히 자신감은 없지만 조심스럽게 실무자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 품’을 시작하면서, 그들이 마실 컵에 한 명 한 명 이름을 붙이면서 다짐했다.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든 누구에게 하든 정성을 다하겠노라고.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그 다짐을 기억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다짐은 성과의 질이나 양과는 상관없이 내게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산선 60주년을 맞아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왔는가? 부끄럽고 감사하게도 답은 ‘그렇다’이다. 실수나 착오도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할 때, 정성을 다했던 그 마음만은 소중히 가지고 가고 싶다.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바보들의 행진일 수도 있다.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산선을 찾는 노동자 한 명, 함께 일하는 실무자 한 명, 지역에서 마음을 나누는 그 누군가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만은 끝까지 부여잡고 가고자 한다.


홍윤경
본지 편집위원. 대표적인 기독교기업을 자처하는 이랜드에서 일하다가 노동조합 창립멤버로 참여한 후 위원장,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7~2008년 비정규직 해고 등의 문제로 진행된 510일의 파업 후 해고된 해고노동자이자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현재는 과거 자신처럼 상처 입은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작은 교회를 섬기는 집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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