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 홍윤경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장

   
▲ ⓒ복음과상황 오지은

홍윤경(47)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장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이다. 선교회 내 비정규노동선교센터의 사무국장을 겸하는 그녀는, 4년 전 ‘복상이 주목한 젊은 그리스도인’(시민사회)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2011년 9월호), 이랜드 일반노조를 이끌며 비정규직 대량 해고와 외주화 강행에 맞서 510일 넘게 투쟁했던 노조 간부이기도 했다. 6월 11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푯말이 걸린 영등포산업선교회 건물에서 그녀를 만나 최근 4년 동안 <노동자 품>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프로그램으로 노동운동의 맥을 이어온 이야기를 들었다.

― 영화 <카트> 어떠셨나요? 이랜드(홈에버)의 비정규직 해고 사태를 다룬 본인 이야기 였잖아요. (홍윤경 사무국장은 약 7년 전, 복상과의 인터뷰 “510일 이랜드 파업투쟁이 남긴 말”[2009년 1월호]에서 투쟁 후의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편집자)  
열 번 정도 봤을 걸요. 처음 볼 때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상영 시작하고 20분 지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상영 끝날 때까지 울었습니다. 당시의 일들,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생생하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영화였지만 장면 장면들이 실제와 비슷한 게 아주 많았어요. 촛불 켜고 농성하는 거나, 함께 밥 해먹던 거… 그때 기억이 나서 많이 울었네요. 

   
 

― 열 번씩이나 본 이유가 있나요?
이런 영화를 (노동운동가들 외에도) 일반 시민들이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 데리고 같이 가다 보니 여러 번 보게 됐죠.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들도 데려가서 함께 봤어요. 사람들한테 “내가 주인공인 영화니까 같이 보자”고 하면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영화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일대일로 대입되는 건 아니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이야기를 잘 담고 있었어요. 파업 노동자들 쪽에서 상영회 할 때 GV(Guest Visit) 요청이 오면 가서 또 보고. 보다 보면 또 눈물이 나와요. 요즘엔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먼저 <카트>를 보고 강의나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해요. 

― 투쟁이 장기화될 당시, 자녀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려는 각오로 버티면서도, 60일 구치소 생활 등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었는데요. 
노조 활동하면서 장기 파업을 세 번 정도 했어요. 이랜드 노조위원장 할 땐 큰애 8살, 작은애가 4살 때예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애들이 이젠 다 컸다’고 생각했어요. 파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죠. 투쟁이 마무리되고 2년 정도 쉬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작은애는 난독증이 있어 치료를 받고, 큰애도 놀이치료를 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았고요. 엄마의 부재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죠. 둘 다 딸인데 벌써 고2, 중1입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싸우게 되기도 하고.(웃음) 지금은 친구처럼 잘 지냅니다. 

― 자녀들도 <카트>를 봤나요? ‘부재중’이었던 엄마의 이야기였을 텐데요.
그럼요. 처음 영화를 볼 때 큰애랑 같이 봤어요. 제가 계속 울었는데 그래도 옆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딸이 있으니까 덜 창피하더라고요. 영화 끝나고 나니까 딸이 아무 말 없이 저를 안아주더라고요.  

― 부모님은 노조활동을 달갑지 않아 하셨을 것 같은데, 두 분에게는 어떤 딸인가요?
부모님은 제가 하는 노조활동에 대해서 늘 불안해하셨어요. 다 큰 자식이니 말릴 순 없고, 너무 과하게는 하지 않았으면 하셨죠. 근데 제가 ‘과하게’ 하다가 구속이 되었잖아요.(웃음) 많이 놀라셨죠. 친정아버지는 몇 십 년을 매일 <중앙일보> 1면부터 끝까지 정독하시는 분이었어요. 유치장 있을 때 면회를 오셨는데 폭삭 늙으셨더라고요. 걱정을 많이 하신 거죠. 어머니는 긍정적인 분이세요. 면회도 자주 오셨고, 성경책 넣어주시면서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고3 때부터니까 약 30년 동안 은혜와진리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계세요. 지금은 제가 영등포산업‘선교회’에 있다고 하니까 무척 좋아하셔요.(웃음) 어떤 곳인지 대강은 아시겠지만, 노조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 신앙 이력이 궁금해지네요.
10살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녔어요. 졸업 후에는 성결교회에 다녔었죠. 지금은 주일엔 감리교 교회에 가고요. 평일엔 이렇게 예장 통합(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지내요. 진정한 에큐메니컬을 추구하고 있는 거죠.(웃음)

― 보수적인 신앙 배경이 노조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았나요?
보수적인 신앙의 틀로 봐도 노조활동은 복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전태일의 죽음이 예수의 죽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요. 내 신앙 양심과 노동운동이 내적 갈등을 일으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오히려 보수적인 신앙인일수록 더욱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쉽다고 봐요. 노동조합의 원래 목적을 알고 나면 굉장히 성경적이거든요. 교계 내 잘못 씌워진 편견(노조=‘빨갱이’) 때문에 그렇지 노동자의 생존권과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농성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히 복음적인 활동이지요. 힘든 게 있었다면 농성하다가 수배되어서 주일에 교회에 가지 못한 것 정도? 당시 교인들이 주일예배를 교회에서 드리지 않고 저를 위해서 농성장에 와서 드린 적도 있었어요. 

― 노조활동이 복음적이다?
노동 현안들을 해결하는 게 오히려 노동자들에겐 복음이죠. 어용노조가 있다면 민주화하고자 돕는 게 하나님의 정의고요. 그랬을 때 노동 현장에 선교가 실현되는 거 아니겠어요? 이 과정에서 상처 당한 노동자들이 있다면 치유해주고 정의를 이루어 나가는 게 진짜 중요한 선교라고 생각해요. 

▲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엮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한국장로교출판사)는 비정규노동선교 메뉴얼 및 성경공부 교재다. (구매 문의: 02-2633-7972, 영등포산업선교회)

― 2011년 4월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면서 여전히 노동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어떤 방법으로 시작할지가 큰 고민이셨을 듯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는 노동자 교육을 많이 해왔어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70~80년대에는 노동자들 호소를 들어줄 곳이 여기 산업선교회밖에 없을 정도로 역사도 깊고 역할도 컸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조 총연맹이나 여러 기관, 단체에서 노동자 교육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의 산업선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일이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죠.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저에게 일을 함께해보자고 제안했던 목사님(손은정 전 총무)과 대화하면서 갈피를 잡았죠. 

― 긴 고민 끝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노동자 품>인가요?
맞아요. 간단히 말해서 치유·회복·의사소통 교육 프로그램인데요. 제 경험을 떠올려봤어요. ‘나 역시 파업 마무리 할 때쯤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어 상담을 많이 받지 않았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www.humanmed.org)의 지원을 통해 치료받으면서 노동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치유와 회복이 중요함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자, 생각했지요. 산업선교회로 오자마자 한 달 만에 시작한 일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상처를 갖고 있지만 숨기고 있잖아요. 그것을 다 드러내고 함께 치유하고 다시 해보자는 거죠. 

― 잘 진행되고 있나요? 
지금 8기까지 진행했고요. 이 프로그램의 강사 양성 프로그램도 작년에 1기가 진행되었어요. 주말에 1박2일 프로그램으로 총 8회 정도 진행하는데, 처음엔 참 힘들었어요. 재작년엔가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퍼지고 나서야 치유라는 말도 자연스러워 진 거예요. 그전에는 노동자들에게 ‘치유’라는 말을 꺼내면 “내가 무슨 정신병자야?”라며 거부반응부터 보였거든요. 우선으로는 해고자, 장기 투쟁자, 앞서서 싸워나가는 노동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했어요. 제가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이라 알아요. 많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거든요. 조금이라도 내면을 치유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지금까진 잘 진행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더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요.
 

   
▲ 현장심방 프로그램 현장 (사진: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 실질적인 변화를 목격하고 계신가요?
대상자에 따라서 교육 내용은 다 달라요. 어떤 노조 간부는 여기에서 배운 의사소통 프로그램 중 하나인 ‘경청’을 배우면서 “쉰 살 넘게 살면서 남의 말을 5분 이상 들어준 경험이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배운 것을 현장에 가서 그대로 했대요. 비노조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배운 대로 ‘경청’만 했다는데, 그때 대화했던 분들이 바로 노조에 가입하더래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노동자 품>은 이런 결과가 없더라도 노동자들에게 자기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데 의미가 커요. 우리 사회에는 ‘경청’을 한 번도 실천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그게 우리 현실이죠. 그러나 가능성도 그만큼 큰 겁니다. 개인적인 삶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좋아질 가능성 말이에요. 

― ‘장기 투쟁’에 돌입한 분들은 ‘피로감’도 높아져 있을 텐데요.
사실 오래 싸움하면서 노조 조합원들끼리 같이 있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어요. 특히 남자들은 더 심해요. 노조 사무실 가보면 서로 말도 안 하고 떨어져서 휴대전화만 만지고 있기도 하고요. 자기 모습과 진지하게 직면하는 게 싫은 분들도 많고요. 참여를 독려하기가 쉽지는 않죠. 처음엔 ○○선교회에서 왔다고 하면 시큰둥하다가도 “저도 이랜드 장기 파업했었어요” 하면 급반색을 하며 말을 들어줘요. 바로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시는 거죠. 그중 프로그램 이수하고 변하신 분들도 계시고, 지방에 내려가서 교육하는 분들도 생겼죠.

― 사실 우리는 거의 다 ‘노동자’인데요. 서로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 개념이 잘못 인식되어 있어서 그렇지요. 임금 받으며 일하는 사람은 실상 다 임노동자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 하느냐” 물으면 “회사원”이라고 말하잖아요. 비정규직의 경우는 자기가 비정규직인지도 잘 몰라요. ‘비정규직’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니까 자기가 비정규직인지도 인식을 못하는 현실이죠. 노동자들이 서로 노동자임을 깨닫고,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깨닫고 동질감을 느껴야 연대가 가능해지고 조합도 만들어지는 건데요. 그런 인식이 별로 없으니 사회적으로도 노동자의 지위가 계속 낮아지는 거지요. 그러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 착각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거고요. 

―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 ‘연대’하는 일에도 피로감을 느끼는 ‘약자’들이 늘어나는 듯한데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대다수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을까요?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약자들끼리의 연대가 어려운 이유가 있어요. 가난하게 자랐지만 추구하는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은 자아가 강하거든요. 자기 확신과 주장이 강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건 그 신념(목표)을 이루려면 혼자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과 손잡고 함께 가야 한다는 거죠. 우리 약한 사람들은 오로지 연대할 때에라야 힘이 생겨요. 이 중요한 걸 다들 간과하는 것 같아요.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 때문에 감정 상하고 일이 틀어져요. 기독교단체만 보더라도, 뜻이 있는 분들이 많지만 작은 규모로 나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노조도 마찬가지예요. 상근 간부들부터 먼저 이 사실을 자각하고 관계 개선에 애를 써야 해요.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결국은 가능하다고 봐요. 물론 중간에 상처받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고 자본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능하겠다 싶어요. 이것이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삶 아닐까요? 비록 약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포기하지 않고 한발씩 내딛는 것이요. 

― 투쟁 현장에도 자주 가는 것으로 아는데요. 현장에 계신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무엇인가요?
경제적인 것도, 몸도, 관계도 다 힘들지만, 가장 힘든 건 뚜렷한 전망이 없는 것이죠. 장기 투쟁도 언제 끝나는지 알면 몇 년이고 더 버틸 수 있어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힘들어하는 거죠. 불안한 가운데 계속 가야 하니까요. 어떤 분은 우리와 프로그램 이후 티타임 자리에서 “너무 좋은 음식을 혼자 먹어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소감을 밝혔어요. 그때 먹은 게 그다지 특별한 음식이 아니었거든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을 가족과 함께 통과하는 중인 거죠.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사실 투쟁이 장기화되면 사람들 기억에서도 점차 잊히고, ‘지루한 뉴스’ 정도로 전락하는 게 현실인데요.
3,000일을 싸우신 분께 어떻게 버티셨냐고 물어봤어요. 처음부터 3,000일 할 줄 알았으면 못했을 텐데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3,000일이 된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중 행복한 날 며칠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나날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관계가 힘들어서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이 고비를 넘기자’ 하고 버티다가 며칠 잠수도 타다 돌아오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른 거죠. 어떤 분들은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젠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 말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정말 본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이어야 해요. 중간에 그만둔다고 아무도 비난할 사람 없고, 끝까지 갈 결심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바라보며 연대하는 거죠. 지금 제 역할이 그거예요. 제가 경험자라고 해서 적극적인 조언을 하는 것도 안 되고, 행동에 대해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것 없이 그저 그 마음을 알아주고 지원하는 거죠. 

―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코오롱 등을 방문하는 현장심방 프로그램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도 진행하고 계신데요. 
2010년부터 해왔어요. 참가자는 주로 신학생들이고요. 현장에 가서 이야기 듣고 기도회 하고, 실천적 대안까지 토론해요. 3박4일 일정인데 개인적으로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서 확장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지금은 15명 내외로 신청받아서 소규모로 하고 있는데요. 다녀간 학생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해요. 적어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신학생들은 나중에 목회를 할 때 현장의 이야기를 기억하겠죠. 그들이 왜 그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목회하는 것과 모르고 목회하는 것은 천지 차이겠죠.  

― 선교회 내 비정규노동선교센터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구조적 상황을 봤을 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자본의 논리에 의하면 그렇죠. 그렇다고 자본을 뒤집어엎자고 할 수는 없고. 다 같이 좀 덜 먹고 덜 입으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 수는 있어요. 노동 시간도 줄이면서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은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게 문제이지요. 기울어진 걸 평평하게 해야죠. 그렇게 가는 과정에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선교가 순기능을 한다고 믿고 가는 거고요. 

― 지금 하시는 일에 힘이 되는 성경말씀이 있나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태복음 20장 말씀(1~16절)이 우리 선교센터(비정규노동선교센터) 만들 때 기본 바탕이었어요.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같은 일당을 챙겨주는 주인의 이야기를 어릴 때 읽었을 때는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노동운동하면서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어요. 새벽 인력시장에 나오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아무 일거리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하루를 공치면 먹을 것 자체가 없어요.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 기본소득 실현과 관련해 실천할 거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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