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번역으로 하나님 나라 일구어가는 전의우·박규태 번역가

   
▲ ⓒ복음과상황 이범진

번역가는 이국의 언어를 모국어로 새로이 직조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전문직업인으로서 그들은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 외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수도자처럼 스스로 택한 ‘글감옥살이’를 통해 텍스트의 재창조에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말한 그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역설이 적용되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생각보다 고단해 보인다. 

일본의 근대화가, 메이지 시대(1868~1912)의 번역 기관이자 외교자문 역할까지 했던 ‘번역국’에 힘입은 바가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5년, 우리나라 정부 차원의 번역 지원은 민망한 수준이다. 올해 번역 지원 예산이 10억 6,300만 원인데, 이는 이공계 연구 과제 1건에 지원되는 예산 수준이라고 한다.(<한겨레> 인터넷 판, 2015.3.4) 일본이나 중국, 유럽처럼 국가 차원의 전폭적 번역 사업 지원은 고사하고, 번역가 개인의 형편도 그다지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홀로 텍스트와 씨름하는 그들에게는 오프라인상의 만남과 대화조차 때로는 호사여서 SNS상의 만남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다. 하여 그들을 잠시 글감옥에서 이끌어내어 함께 수다 떠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한국 기독 출판계의 대표 번역가로 손꼽히는 전의우(사진 오른쪽)·박규태 목사를 만나 번역가의 삶과 일, 고충, 그리고 최근의 표절 논란에 이르기까지 두루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 더위가 절정이던 8월 초,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거의 3시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 번역 일을 얼마나 해왔나.
전 : 1993년부터 했으니까, 올해로 23년째다. 
박 : 전 목사님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2002년부터 시작했다. 

― 그 동안 번역한 책을 모두 기억하고 있나.
전 : 지금까지 작업한 번역 원고 파일과 목록을 비교적 꼼꼼히 정리해왔다. 출판된 것이 150권 남짓이고, 번역은 마쳤지만 나오지 못한 책이 10여 권이다. 번역에 뛰어든 초기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출판된 책도 여럿이고, 출판을 기다리는 책이 15권쯤 된다. 
박 : 나는 전 목사님처럼 목록을 정리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50권 가까이 번역했는데, 출판된 게 40여 권, 번역 끝나서 앞으로 나올 책이 2권, 출판 안 된 책이 5권 정도 된다. 출판 안 된 책들은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계약상 문제가 생겨서 다른 출판사로 넘어간 경우다. 
전 : 단순히 번역한 권수보다 원고 분량으로 따져봐야 한다. 박 목사님의 경우, 보통 내가 번역한 원고 분량의 5~7배 되는 책을 번역한다.

― 자신이 번역했지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일이 흔했나.
전 : 번역 일 시작하고 2~3년 정도는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가슴 아픈 일이다. 주로 교수님들 이름으로 나갔다. 내가 동의한 경우도 있지만, 번역 다 끝난 후에 갑자기 바뀐 경우도 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책들이 그분들 이름으로 계속 나오는 경우도 있다. 가슴 아프다. 

―  지금까지 번역한 총 원고량을 계산해본 적 있나.
전 : 매일 번역 일지를 쓰는데(2001년부터는 엑셀파일로), 번역한 원고 매수를 기록한다. 오전, 오후, 밤으로 나눠 기록한다. 요 근래에는 일을 많이 하지 않지만, 작년에는 1년간 200자 원고지로 9,600매 정도 했더라. 대체로 월 800~1000매 번역해 왔는데, 7, 8년 전 어느 달인가는 2,000매까지도 했다. 지난 22년간 평균 1년에 11,000~13,000매를 번역했고, 전체 분량은 못해도 20만 매는 넘을 것 같다. 알 만한 이들은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하겠지만, 프리랜서는 놀면 안 된다. 놀더라도 계획하고 놀아야 한다. 기준을 정해 놓고, 기준보다 많이 했다 싶을 때 놀고 기준에 못 미칠 때는 놀면 안 되는 거다. 이제 전처럼 월 1,000매는 무리인 것 같고 요즘은 700매 수준으로 한다.
박 : 하루에 원고지 40매 정도 한다. 
전 : 박 목사님은 나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원고를 번역하기 때문에 많은 분량을 하기 어렵다. 가정을 책임지려면 하루 70매 정도는 해야 하는데, 실제로 돈 안 되는 번역을 하고 계신 셈이다. 

― 지금까지 번역한 가장 두꺼운 책은?
박 : 고든 D. 피의 《성령》(상·하, 새물결플러스)이다. 원고 분량이 10,500매 정도였다. 단행본 10권 분량이다. 책의 난이도가 높은 신학서인데, 9개월 걸렸다. 나는 인생이 참 재미가 없다. 여행이나 놀러가거나 하지도 않고 취미도 없고…. 이메일 발신자명을 ‘방콕맨’이라고 쓴다. 그런 식으로 늘 틀어박혀서 일을 했다. 사실은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건상 만날 수가 없더라. 오히려 번역가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친구가 되었다. 《성령》과 달리, 원고지 400매짜리도 번역했었다. 가장 얇은 책이었다.

― 번역 기간이 길어지면 월수입은 줄어드는 거 아닌가.
박 : 번역자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번역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계비가 보장되면 좋겠다. 만약 2개월을 번역할 때 100만원이면, 3개월이면 150만 원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2개월을 하든, 3개월을 하든, 똑같이 100만 원인 거다. 그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한 권을 끝내고 나면, 다음 책 번역으로 곧장 들어가기 어렵지 않나.
박 : 새 책을 시작하게 되면 친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하다. 책 내용과 문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속도가 더딘데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전 : 나는 번역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우리말 단어들을 메모하고, 번역이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은 체크를 해둔다. 그런데 박 목사님이 번역한 두꺼운 책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거다. 한 차례 읽을 때와 번역하면서 받는 통찰이 달라서 새롭다. 
박 : 나는 처음부터 바로 번역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부작용이 있다. 《예수와 그 목격자들》(새물결플러스)이라는 책의 경우, 5분의 1 정도 번역했는데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한 적이 있다. 잘 번역해야 한다는 부담이 그만큼 컸다. 저자인 보컴 교수가 일본인과 친한 분인데, 그 책을 영국에서 유학한 신학자 아사노 아츠히로 교수가 번역해서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보컴 교수와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번역한 일본어판이 나와 있는 터라, 나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랬기에 꼼꼼하게 번역했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번역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100% 만족한 원고가 나오진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번역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재접근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책들을 번역할 때 그다지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다는 거다. 출판 사정상 번역 기한을 여유 있게 줄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늘 기한에 너무 쫓겨서 번역하는 아쉬움이 크다.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놀고 싶고 쉬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련이 늘 남으니까 책임을 잘 완수하고 싶어서. 시간에 쫓기는 처지인 게 안타깝다.

― 번역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경우도 있었나.
전 : 번역의 질이 굉장히 좋았다는 의미보다 그 번역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는 있다. 번역하기가 아주 어려운 책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번역에 몰두했다. 원제가 “Economy of Desire”(욕망의 경제)로, 아직 출판되진 않았다. 예외적으로 번역자 후기도 길게 써 보냈는데, 이 책 번역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벗어나 ‘자비의 일’(work of mercy, 책 속에 나오는 표현이다)을 했다고 썼다. 번역료를 10%쯤 자발적으로 깎았다. 원서 200페이지를 번역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굉장히 어려웠는데, 경제 분야의 책이라 더 그랬다. 인용한 책들 중 번역된 것들은 거의 다 찾아봤다. 인용문을 문맥에 맞게 번역했는지 관련 서적을 다 뒤져봐야 하는데다, 그 인용문이 또 원전의 어느 부분인지 찾는 것도 일이었다. 아직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장 정성스럽게 공들여 번역한 책이 아닐까 싶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번역료를 스스로 깎기까지 한 건 과한 거 아닌가.
전 : 일종의 오기였다. 번역을 의뢰받은 책을 번역하다가 도중에라도 내 깜냥을 넘어선다고 판단되면 자존심 내려놓고 그냥 돌려준다. 이 책도 내 능력을 넘어서는 책이라 번역을 포기하려 했는데 편집자를 설득하지 못해서 다시 떠안게 된 거다. ‘좋다, 어차피 붙들고 씨름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지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냐.’ 이런 오기로 끝까지 가게 된 책이다.  

― 현재 번역가들의 처우나 번역료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선되어야 할 점은 없나?
박 : 처우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번역을 정말 평생 사명으로 여겼는데 현실의 벽에 좌절해서 세상을 버리신 분도 있다. 주로 시장성은 없지만 꼭 나와야만 하는 책을 헌신적으로 번역해오신 분이었다. 가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 극단의 상황까지 몰리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 모순을 생각하게 되는데, 《번역과 번역가들》(열린책들)을 보면 옛소련은 아무리 시장성이 없는 책이라도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번역가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면서 그 일에만 매진하게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옛소련 체제 하의 번역가 처지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그런 체제로 갈 수는 없지만, 간극을 메울 수 있었으면 한다. 
전 : 번역으로 가장 노릇 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나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에게는 번역 일을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시장경제 논리로는 번역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선교 차원에서 접근한다. 번역가 자원은 계속 늘어나니까 제 몫의 파이는 계속 작아진다. 책은 많이 나오는 반면, 독자들의 선택은 줄어든다. 오히려 출판종수가 줄어들어야 출판되는 책들이 그나마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힘닿는 데까지 이 일하다가, 쓰이는 데까지 쓰임받다가 용도폐기되는 거 괜찮다고 생각한다.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딱히 불만은 없다.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불평하고 투덜거릴 거면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번역을 목회 사역 차원에서 하는 거다. 목사가 월급 적다고 사역 못 하겠다 할 수 있나? 20년 넘게 번역했는데도 내 1년 수입이 사회초년생인 아들 연봉보다 한참 적더라. 이거 받으면서 더는 못하겠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누가 강제로 떠민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 처우가 열악한 현실에서 가장 노릇하기 쉽지 않다고 했는데, 두 분은 형편이 어떠신가.
전 : 이제 그 문제는 웬만큼 초월했다. 많은 수입이 필요한 단계는 지났다. 적게 쓰는 데 익숙해진 것도 있다. 물론 아이들 교육비가 많이 든다거나 하면 어렵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나서 압박을 많이 받지 않는다. 시골에 사니까 지출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아내가 일정 부분 부담해주니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도 빚 안 지고 생활이 가능하다.
박 :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번역가에겐 작업(번역)량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난이도가 높아서 속도가 잘 안 나는 책은 종일 작업을 해도 많은 양을 할 수 없다. 아이러니한 건, 그런 책이 또 번역료는 높지 않다. 시장성이 별로 없는 책이어서 아무래도 독자들이 많이 안 찾을 것이기에 출판사로서는 경영 측면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수입이 적거나 없으면 쓰는 규모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늘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나? 집안에서 누가 크게 아프다든지,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처럼. 그럴 때는 참 막막하다. 어찌 보면 번역자도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사람인데, 그런 일을 당할 때면 현실을 감당하기 힘든 번역자의 삶이 참 고달프기만 하다.
전 : 난 그래서 도시를 떠났다. 원래는 서울에서 살다가 안양, 수원으로 옮겨가며 살았다. 그때는 우리 애들이 어렸는데도 도시에서 못 살겠더라. 도저히 생활이 안 되니까, 살아낼 재간이 없더라! 그래서 경상도 어느 시골로 갔다. 버스가 한두 시간마다 다니는 곳이었다. 딸내미가 여섯 살 때였는데,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도시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다. 번역자는 퇴직금이 없으니 노후 대책을 세울 수도 없다. 정말 믿음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웃음) 월용직 노동자여서, 일거리가 떨어지면 그 달로 실업자다. 3년 전쯤 일이 없어서 한 달을 놀았다. 그때 말고는 번역 감이 없어서 쉰 적은 없었다. 2000년 초, 번역을 시작한 지 7년차쯤 되었을 때, 번역 일이 계속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이 무작정 시골로 갔다. 인터넷도 안 들어와서 전화 모뎀으로 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때 우리 집 4인 가족 월 수입이 120~150만 원 정도였다. 
박 : 나도 시골 갈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또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족 의사를 존중해야 하니까. 우리 애들은 시골로 안 가려고 하더라. 

― 수입 낮은 번역 일 그만두고 다른 일 해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나.
박 : 있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이해를 해준 적도 있고, 낙심에 빠졌던 적도 있다. 물론 번역 그만두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애들이 아빠가 하는 일을 가치 없는 일로 여긴다는 건 아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너네 아빠 뭐하시냐?” 물어서 책 번역한다고 하면, 선생님이 “오~” 하며 놀라신다는 거다. 친구들이 “너는 그럼 영어학원 안 다녀도 되겠다. 너네 아빠한테 배우면 되잖아” 한다는 거다. 그럴 땐 아빠가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그 얘기 하면서 모처럼 웃기도 한다. 아이들이 크면서 조금씩 이해를 더 하는 것 같다. 자기들도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아빠도 나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찾으며 일하고 있구나 생각해주는 것 같다.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쁜 일 하는 거 아니니까 이해해주는 것 같다.

― 원래부터 번역을 하고 싶었나?
전 : 나는 딸을 번역가로 키우려 했다. 대를 잇게 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이 일에 애착이 간다. 할 줄 아는 게 이 일밖에 없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장애인으로서(나는 지체장애 2급인데 지금은 주로 휠체어를 탄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나? 없지 않나? 나는 번역하면서 정말 행복하다. 책 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번역도 책 쓰기 만큼이나 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번역가로 남는 것이 이 일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방법 같다. 
원래 중고등학교 다닐 때 글쓰기와 영어 두 가지를 좋아했다. 책은 없어서 거의 못 읽었다. 집이 워낙 가난했었기 때문에(아버지가 시골교회 전도사였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껏해야 동네에서 만화책 읽는 정도였다. 번역에 입문을 했는데 적성에 맞는 게, 이게 내 일이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번역을 했다. 물론 다른 길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현실성이 없더라. 내가 목사 될 때까지 세 번밖에 설교를 안 해봤다. 설교 세 번 하고 나니까 할 게 없더라. 그런데 시골 내려와 시내에 있는 제법 큰 교회를 1년 정도 목사 신분 숨기고 몰래(?) 다녔는데 목사님한테 들켜 반강제로 한 부서를 맡았고, 그렇게 번역과 겸해 7~8년간 교회 사역을 했다. 그때 내가 설교에 은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건강이 좋지 않아 둘 중 하나, 그러니까 번역에 집중하기로 하고 교회 사역을 내려놓았다. 물론 지금도 가정 같은 아주 작은 교회(‘개울이 흐르는 브솔교회’)에서 다른 목사님 한 분과 함께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기며 번역을 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번역을 70세까지 하고 은퇴하고 싶다. 
박 :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실은 작년부터 번역 일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만한 깜냥이 되는지도 회의가 들었고. 난 사실 번역은 생각조차 안 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주 간절히,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로 인해 20대 초반에 방황을 많이 했다. (전 : 실은 지금도 틈틈이 습작을 하신다.) 결국 작가가 되지는 못했는데, 지금 현실에선 글쓰기가 취미이면서 쉼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치료제이기도 하고. 번역은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다. 일의 특성상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도 없다. 특히 여성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스트레스 쌓일 때 지인들 만나서 수다 떨면서 얘기 나누다 보면 풀리지 않나. 나는 그게 쉽지 않은 여건이라 글을 쓴다. 혼자 종이에 쓰는 것이지만 종이를 상대로, 그리고 나 자신을 상대로 이야기를 쓰는 거다. 그걸 읽으면서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 잠시 위안을 받는 거다. 

―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했는데, 다른 일을 고민하신다는 건가.
박 : 늘 고민하는 문제다. 번역은 글을 만들어내는 작업인데 어느 순간 한계를 느낀다. 그런 때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다. 하루에 한 시간은 어떻게든 소설이나 논픽션을 읽어야겠다 결심했는데, 잘 안 되더라. 점점 고갈되는 느낌이랄까?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 그 빠져나가는 걸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번역이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박 : 번역은 일종의 추리다. 저자가 살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도 적지 않다. 저자는 글을 통해서 말하는데, 그가 쓴 한 단어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저자가 말하려 한 의미가 무엇인지 문맥을 통해 짐작을 해야 하는데, 번역자는 이게 늘 고민이다. 여러 의미 가운데 저자가 말하려 한 의미가 무엇일까 추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번역자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희열을 느낄 때보다는 고통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정말 힘들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였던 고 이윤기 선생님이 “30년 번역을 하니까 원문이 유려하게 완성된 한글로 들어오더라”라고 쓰신 글이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분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부러웠다. 그분이 번역한 《장미의 이름》에 보면 ‘불목하니’라고 번역한 우리말이 나온다. ‘수도원 살림살이를 맡은 사람’으로, 불가 용어를 아는 사람은 단박에 알 수 있는 단어다. 기독교식으로는 ‘사찰집사’쯤 된다. 
전 : 그런데 때로 멋들어져 보이는 우리말 단어가 일반 독자들에게 생경할 경우, 정작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게 맹점이다. 이윤기 선생님 정도는 아니어도 나도 영어 원문을 읽으면 바로 한글문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건 숙달이 되어서 머릿속에 쌓여 있는 우리말 어휘나 표현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재촉하다’ 대신 ‘재우치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자주 쓰면 내 단어가 된다(요즘은 조사나 어미를 통해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을 번역에 적용하려 노력한다). 그러니 영어보다는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번역 또한 잘한다고 본다.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는다. 한글 공부를 하듯이 읽는다. 좋은 표현들은 밑줄 치며 읽고, 표현이나 단어를 정리해서 써둔다. 몇 년 전에 《토지》를 그렇게 다 읽었고, 요즘은 《태백산맥》을 그렇게 읽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번역자의 번역과 그러지 않은 번역자의 번역은 차이가 크다. 책과 관련해 치열해야 하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저자나 번역자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번역가의 문체, 혹은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 번역가마다 다 자기 스타일이 있다. 글 쓰는 작가만 문체가 있는 게 아니라 번역가도 문체가 있다.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때 자기 문체가 나타난다. 그래서 번역가가 어떤 번역을 평가한다면 결국 자기 문체를 기준으로 본다는 의미가 된다. 어찌 보면, 번역은 사실 딱 부러진 정답이 없는 분야 아닌가? 원문의 문체를 살리는 안정효 선생님 번역과 원문을 완전히 우리말로 자기화하는 이윤기 선생님의 번역은 서로 상반된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서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번역 스타일이나 문체에 대해 독자들의 선호도도 다르다. 번역자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면이 있는데, 1년차 번역가와 10년차 번역가도 서로 다를 것이다. 번역가는 세월이 갈수록 문체도 더 정밀하고 아름답게 다듬어질 것이다. 
전 : 처음 번역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원문에 굉장히 매인다. 나도 처음엔 너무 원문에 충실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번역한 것을 자기가 교정한다는 게 힘든 일이다. 자꾸만 원문이 떠올라서 거기서 잘 못 벗어난다. 번역 다 끝내고 한 달쯤 뒤에 다시 봐야 겨우 교정이 가능해질까. 
박 : 번역 작업 자체가 남의 글을 읽고 옮기는 일이지 않나. 싫든 좋든 자기와 성향이 맞는 저자의 글을 옮길 때는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저자의 글을 옮길 때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럴 때는 나만의 글을 써보곤 한다. 그게 번역을 이어가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번역 하는 중에도 잠깐잠깐 연습장에 글을 쓴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짤막한 글을 쓰는 거다. ‘소설’까지는 아니고 ‘이야기’에 가깝다. 몇 편 쓴 걸 모으니까 원고지 530매 정도 되더라. 몇몇 분에게 보여드리고 평을 듣기도 했다. 책으로 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럴 생각은 없다. 그럴 만한 글도 못 되고. 그저 하나의 씨앗으로 간직하려 한다. 전 목사님 말씀 중에 편집자가 번역자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에게 글쓰는 자극을 준 사람들이 편집자들이었다. 그분들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고치려고 노력을 했다.

― 젊고 우수한 번역가들이 유입될 수 있는 출판 생태계가 가능할까.
전 : 번역가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번역가는 설 자리를 잃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는 유학파에다 통번역대학원 출신들도 상당히 많은데, 나 같은 번역가는 스펙에서 밀린다. 번역자가 부당하게 착취를 당한다면 문제지만, 관련 종사자들이 대다수 힘든 상황에서 번역자만 더 대우해 달라고 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출판사가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있지 않나.
박 : 계속해서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어야 한다. 지금은 독서가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처럼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책에 대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독자들이 많아질수록, 나와야 할 책들이 외면당하지 않고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오피니언 리더가 추천하는 책 위주로 독서하거나, 그 책을 꼭 읽어야 하는 부담을 가지는 우리 독서문화가 바뀌면 좋겠다. 그게 출판이나 독서를 획일화하는 측면이 있다. 안 읽으면 어떤가. 그보다는 자기 관심 분야를 스스로 찾고 개발하고 그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어도 좋지 않나. 그러면 자연히 독자들의 다양한 관심사에 맞춰 출판 목록도 다양해질 거라고 본다. 
흔히 출판 강국, 독서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인문서를 10만 부씩 찍었는데 다 나갔단다. 그러면 출판사가 박수를 쳐야 하는데, 식견 있는 편집자들은 오히려 미쳤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나라라 해도,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일본 사회가 우리처럼 체면문화, 집단문화가 강하지 않나. 그 책이 어려워서 싫다고 자기 의견을 말하면 묘하게 따돌림 당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는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거다.
 
― 기독 출판계에 제안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전 : 기독 출판사도 결국 기업이다. 이윤이 안 나면 생존 자체가 안 된다. 출판도 비즈니스인데, ‘상업’ 출판이라는 말을 별도로 붙이는 건 이상해 보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책이 나오고 많이 팔리기도 하지만, 많이 팔리는 책은 이유가 있다. 번역하다 보면 다른 책에서 가져온 인용문들이 나오는데, 그 인용문의 출처가 되는 책이 번역되었는지 찾아본다. 검색해보면 의외로 많이 번역되어 있더라. 기독 출판계가 여러 차원으로 교회를 설득해야 한다. 선교사 파송처럼, 해외 선교지 예배당 건립처럼 출판도 선교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1년에 한 번씩 주요 도서의 출판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한국교회 토양에서 가능할지 의문이긴 하다. 해외 선교지 후원해달라는 게 훨씬 쉬운 일일 테니까.  
박 : 전 목사님 의견에 동의한다. 교회가 기독 출판에서 큰 역할을 감당해주면 좋겠다. 출판을 후원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번역의 질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역의 연장선에서 선교 차원으로 접근하면 번역가들 지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출판사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야말로 일반 출판계보다 기독 출판계가 유리한 점 아닌가. 
그리고 기독 출판이라는 개념 자체를 넓게 생각하면 좋겠다. 기독교 교리를 다룬 내용, 성경을 다룬 내용, 신앙적 적용이 분명하게 들어가야만 꼭 기독 출판물일까? 그런 직접적인 용어가 없어도 복음 정신을 충분히 나타내는 그런 책, 예를 들면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같은 경우 충분히 기독 출판물이 될 수 있지 않나. 근래 공개된,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에 보면, 권정생 선생님이 동화를 하나 썼는데 가톨릭 출판사와 출판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기독 출판물’에 대한 개념 이해가 달라서 의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동화뿐 아니라 경제학 분야에서도 (복음 정신을 드러내는) 기독 출판물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올 들어 신학 도서를 중심으로 불거진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 :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이라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 번역과 관련해서 생각해본 표절 문제는 이런 거다. 어떤 책을 번역하는데 거기 나오는 인용문의 원서가 번역되어 있어서 그걸 그냥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표절이다. 그건 그 출판사가 비용을 지불하고 번역 출판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인용문 번역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한다. 저자나 작가에게 표절이라는 것은, 자기 노력의 문제이다. 번역가에게 표절은 성실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전에 나온 번역서를 원문과 이따금 대조해보면 정말 얼치기를 넘어 엉터리인 번역이 더러 있다. 해독이 어려운 번역문은 말할 것도 없고 오역이 숱한 책이 적지 않고, 원문을 정반대로 번역한 경우도 더러 있다. 간단한 문장구조도 파악 못한 번역도 많다. 심지어 해외 기독교 책 여러 권을 짜깁기로 번역해서 자기 이름을 붙여 저서로 낸 경우도 있다. 
시대마다 표절 기준이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의 출판물)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심정적으로 비판하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다. 과거 잘못을 청산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 표절 저자들 본인이 스스로 절필하지 않는 한, 누군가 이들을 심판한다는 게 가능할까? 이번 일을 좋은 계기로 삼아 본인이 시인하고 털고 갈 부분은 털고 가야 한다. 
박 : 무엇보다 고의성 여부가 중요하다. 성경도 죄에 대해 말할 때 고의성 여부에 따라 처벌의 경중을 달리 하지 않나. 고의로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순간적인 판단 실수나 부주의로 출처를 누락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상습적이냐 아니냐 하는 점도 중요하다. 남의 저작물을 계속해서 여러 차례 표절했다면, 그건 고의로 볼 증거가 되지 않겠나. 또 하나는, 마치 자신이 창안자인 양,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사람인 것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해외 저작물에 발표된 것인데, 이런 점들을 사실 국내 독자들은 잘 알 수 없다. 그렇게 창안자인 양 행세하는 표절은 아무래도 고의성이 짙다고 볼 수밖에 없다.

― 페이스북 ‘번역이네집’을 보면, 번역가들 사이에, 그리고 번역가와 독자들 사이에 소통이 오가는 것 같다. 번역가에게 SNS란?
전 : SNS가 생기면서 번역가와 저자는 무서워졌다. 숨을 데가 없다. 자신이 번역한 책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SNS 상에 번역이 이게 뭐냐는 비판 글이 올라오면, (비판의 타당성을 떠나서) 급격히 위축되고 기가 꺾인다. 이런 식으로 한두 번 기가 꺾이면 번역하기 어려워진다. 페이스북 페이지 ‘번역이네집’도 번역가들이 서로 정서적인 지원도 받고 때로 항변도 하려는 맥락으로 만들었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오프라인상으로 번역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잘 안 되다가, SNS에 만들어 놓으니까 폭발적으로 모이더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로 밤새 이야기도 하고, 원문 하나 놓고 서로 자기 번역 가져와서 토론하는 모임도 했으면 좋겠다. 
박 :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번역에 대해 평가하고 비평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릴 게 있다. 책으로 출판되어 나온 번역이 번역자의 ‘민낯’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편집자를 잘 만나면 문장이 더 예쁘게 단장이 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화장이 잘못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번역 비평을 하고자 한다면, 일단 출판사를 통해서, 편집자를 거쳐서 하면 좋겠다. 대뜸 SNS 상에 공개적으로 바로 올려서 번역이 이상하다고 해버리면, 그거 참…. 
전 : 번역을 하다 보면, 오역이 나오기도 한다. 그걸 모르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있다. 번역은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텍스트를 해석할 때, 번역자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번역 과정의 30~40%는 번역가의 재량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번역할 때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번역가의 판단이 개입된다. 그런데 이걸 무조건 오역이라고 하면서 SNS에 올리는 것,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번역에서 ‘원문 그대로’가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원문에서는 남편이 아내 얘기를 하면서 ‘She’라고 말할 때는 ‘아내’라고 옮겨야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원문 그대로’ 원칙을 고집해야 하나? 문맥상 ‘She’를 ‘아내’로 번역해놨더니, 편집자가 그걸 죄다 ‘그녀’로 바꿔놓은 경우가 있었다. 또 문단에 주어가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도, 편집자가 문장마다 죄다 주어를 다시 집어넣는 경우도 있었고.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 부분인데 경험이 짧은 편집자들의 경직된 부분이 아쉽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주로 홀로 작업하는 일의 성격상 만남과 소통의 갈증을 느끼지는 않나.
전 : 지방(경북 김천)에 살면서 번역을 하다 보니, 편집자를 비롯해서 출판인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수년 전에 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편집자를 최근에 만났을 정도다. 2년 전 페이스북 ‘번역이네집’ 그룹이 생기면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이 좀 생겼다. 
박 : 번역가들 소원 중 하나가 함께 늙어가는 편집자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꾸준히 파트너십을 쌓아가면서 고민의 기간이 비슷한, 번역자의 문체를 잘 알고 또 서로 문체가 비슷한 그런 편집자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오래 호흡을 맞추며 일하는 편집자가 있으면 좋겠다. 
전 : 편집자들을 보면, 대체로 20대 중후반에 입사해 경력이 좀 쌓이고 실력이 자리 잡힐만하면 결혼이나 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베테랑 편집자들이 출판사에 오래 남아 있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박 : 출판사에서 배려할 수 있다면, 번역가와 전담 편집자가 팀으로 일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도서출판 그린비는 편집자 교육할 때 그렇게 교육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절대 번역자와 저자 글을 자기글로 바꾸지 말라고 한다고 하더라.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고, 번역자가 바라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하는 편집자에게 많이 배우기 때문이다. 전혀 소통의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출판이 되었는데, 번역자가 독자에게 왜 ‘아내’를 ‘그녀’로 번역했느냐고 메일을 받으면 황당한 거다. 어떨 때는 눈물이 난다. 편집자를 못 믿는 게 아니라 그만큼 상호 간에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 : 누가 뭐래도 확실히 글은 편집자가 잘 다듬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책으로 출판되어 나온 글이 번역자의 민낯이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박 :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번역자와 편집자가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 성장해가면 정말 좋겠다.  

― 번역자로서 서로 어떻게 생각하나.
박 : 한마디로 ‘번역가 전의우’는 프로다. 철저히 자기관리를 한다는 면에서 특히 그렇다. 말이 쉽지 굉장히 힘든 부분이다. 번역가 중에 그렇게 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생활을 20년 넘게 성실히 감당하면서 많은 책을 번역했다는 것. 내 입장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후배들에게 굉장히 큰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분이다. 그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내게는 신대원 10년, 번역 10년 선배님이다. 나이도 10년 선배인 것처럼 격려를 얻는다. 이런 형님을 두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페이스북 ‘번역이네집’ 아이디어를 처음 내신 분이기도 하다. 
전 : 서로 알게 된 지는 2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번역가 박규태’는 내게 거울 같은 사람이다. 한마디 건네면 딱 통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하는 번역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다만 내가 경험이 좀 많을 뿐이다. 그런데 박목사님은 축적된 지식의 품이 정말 넓다. 독일어 같은 다른 외국어에도 관심이 많다. 음악에 관한 지식도 상당하다. 내가 주문받으면 뚝딱 물건을 만들어내는 ‘목수’라면, 박 목사님은 전체적인 모습을 묵묵히 완성해가는 ‘장인’이랄까? 그가 맡는 책들은 번역 난이도가 높기도 하지만, 그 역할 자체를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바닥에서 너무 막 쓰임당하는 사람 아닌가 한다. 정말 귀한 사람인데…. 굉장히 애정을 갖고 늘 생각하며 기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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