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희년 정신 실현하는 ‘공유공간’ 기획자 정수현 앤스페이스 대표

   
▲ 맨 위쪽이 정수현 대표 ⓒ복음과상황 이범진

공유공간 ‘스페이스 노아’(이하 ‘노아’)는 우리 사회에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전전하던 청년들에게 일종의 ‘커뮤니티’가 되었다. 그리고 노아의 공동대표였던 정수현(31) 씨는 지금 주식회사 앤스페이스로 한 발짝 더 나간 공유공간 실험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중이다. “N개의 공간을 잇겠다”는 꿈을 꾸면서. 그리하여 누구도 공간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뭇사람들이 땅의 권리를 누리는 세상, 바로 희년의 세상을 이 땅에서 구현하기를 열망한다. 앤스페이스가 현재 위탁 운영하는 청년 공간, 도심 속에 오렌지빛 콘테이너로 지어진 ‘무중력지대’(서울 대방동 소재)가 바로 그 걸음이다. 전국의 남는 공간을 필요한 이들에게 연결해주는 스페이스클라우드 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걷는 또 한 걸음이다.

다짜고짜 페이스북 메신저로 “인터뷰 해달라!” 요청한 게 즉시 수락되어, 섭씨 30도를 웃돌던 7월 초에 무중력지대에서 그녀를 만났다. 공유와 연결, 공동체자산화로 이 땅에서 토지 정의를 회복해 가는 공간운동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중력에 급속도로 빨려들고 있었다.

― 작년 초까진 청년 커뮤니티 성격의 공유공간인 노아의 공동대표였고, 지금은 주식회사 앤스페이스를 꾸려가고 있다. 공간이라는 주제를 더 확장시킨다는 느낌이다. 
지난 3년 정도, ‘공동체 공간 조성’을 주제로 공유공간 사업을 만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 첫 실험이 노아였다. 나 스스로 활동 공간이 필요했고, 청년들 몇몇을 알고 있어 팀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 게 사회적 흐름을 타면서 ‘공유공간 사업가’로 출발한 계기가 되었다. 1년 여 만에 자립 기반을 닦은 노아에서 나온 이후엔 앤스페이스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처음 사업 시작한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공유경제’(Sharing Economy) 붐이 일면서 공유공간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주목 받는다. 앤스페이스의 공간 작업들이 최초는 아니지만 시장과 문화에 영향을 준 프론티어 그룹인 건 분명하다. 빠르게 확산되는 공유공간들을 보면 주로 벤처 기반의 ‘코워킹 오피스’나, ‘허브’ ‘청년청’ ‘무중력지대’ 같은 청년세대 활동 지원 사업의 형식이 있다. 청년들의 사회적자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산업과 정책 분야에도 형성되어, 가장 먼저 ‘공간’(basecamp)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 공동체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업적 모델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열정과 패기로 20대에 뛰어든 공간 사업에선 (지금도 그렇지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좋은 가치를 좇으면서 공동 사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공유 자산화’는 역시 쉽지 않았다. 좋은 모양을 추구하는 투자자는 많지만, 그것을 실제 공동체와 지역에 지속가능한 모델로 ‘공유 자산화’하는 데선 한계가 많았다. 주로 공간 서비스를 만들고 회원제나 사업 모델을 만들어 활성화하는 덴 성공한 편이었는데, 지속가능성에서는 리스크를 늘 지고 간다. 공간주가 아니면 세입자와 임대인은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 급등 시 결국 떠나야 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화백화현상) 문제를 겪는다. 지속가능성 확보가 여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결국엔 어마어마하게 배운다. 최근 ‘소셜임팩트’나 ‘로컬임팩트’에 관심 있는 기관들이 우리 매뉴얼을 강의나 컨설팅의 형태로 많이 받아 가는데, 앤스페이스 팀은 무료로 매뉴얼을 배포하고 시간 쓰기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회투자기관들이 투자 제안을 해왔고, 다양한 사업 기획과 제안의 기회도 함께 열리고 있다.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는 청년기획자들과 자주 모이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스터디 하면서 역량을 쌓고 있다. 여기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앤스페이스가 서울시로부터 민간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중인데, 그동안의 노하우를 진탕 펼치고 있다.

― ‘공유 자산화’가 무슨 뜻인가.
토지는 애초에 공공재이고,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뭇 사람들의 다양한 협력과 얽힘 속에서 이뤄지므로 공공화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억지로 공공화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소유주들이 쉽게 자산을 공공화 하지는 않을 거니까), 여러 사람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새롭게 생각하고, 사실은 본질적 가치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앤스페이스의 사명이기도 하다. 소셜벤처 업계 표현을 빌리자면 ‘N개의 공간에서 만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슬로건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좋은 뜻을 가진 시민 공동체들을 직접 조직하여 공간을 개발하고 실제로 유통하는 상상까지 하고 있다.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땅과 공간은 공동 소유 또는 공유 모델로 공공화하고, 그 위에 다양한 콘텐츠나 사업을 가능하게 해서 ‘노력 소득’으로 땀의 기쁨을 찾는 지역사회가 되면 좋겠다. 동네 공유공간을 공동 운영한다거나, 생활시설을 관리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도 앤스페이스의 실천적 과제다. 애초에 토지는 공공재라는 문제의식에서 사업을 출발시켰고, 비영리단체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방법 면에서 비즈니스 형식을 택하게 됐다.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임대료나 권리금 등 다양한 ‘토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 속에서, 미래를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피부로 느낀다.

― 이미 구현된 게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조금씩 일구어가는 ‘꿈’이라는 건가.
맞다. 그래도 예전엔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아이디어인데 현실에 조금씩 구현되고 있어 즐겁다. 가령 일과 육아가 동시에 가능한 여성들의 코워킹 오피스가 동네마다 생긴다던지, 청년들이 임대료 걱정 없이 사용할 공간들이 지역마다 협의를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공간들의 가능성이 우리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꿈이 일부 실현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어미닭과 새끼가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병아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내부 역량과 외부 환경이 맞아야 함-편집자)라는 말처럼, 시대의 흐름을 시정에 반영하는 박원순, 이재명 시장 같은 리더십도 있고. 이런 유명인 말고도 지역마다 공공분야에서 고민하는 공무원들도 꽤 많이 만났다. 그들이 지금 고민하고 있으니 2~3년 안에는 토지나 공간은 공공이 책임지고, 운영과 콘텐츠 개발은 지역 주민들이 실행하도록 하는 앞선 상상들이 곳곳에서 실현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정보를 퍼 나르는 일만 남았다. 

― 한국사회에서 공간 문제를 깊이 들어가면 ‘부동산’이라는 암석을 만나게 되어 있다. 왜 이런 어려운 이슈에 매달리나.
앞서도 말했지만 앤스페이스 공간 사업의 시작은 토지 가치 공유라는, 엄밀히는 성경의 ‘희년정신’과 맞닿아 있다. 일반 매스컴과 인터뷰를 할 때도 사업 동기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성서의 가르침에서 왔다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희년의 경제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다. 땅은 그들을 위한 공간이자 삶을 연결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나는 창세기에서 만나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을 묵상할 때마다 큰 영감을 얻곤 한다. 생태계를 먼저 조성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지 않았나. 인류를 위해 환경을 마련하는 창조주의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공간 사업의 핵심은 공간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의 필요와 삶을 거드는 역할이라는 거다. 하나님이 왜, 땅을 ‘소유’가 아닌 ‘공유’의 원칙으로 운영하는 희년법을 주셨는지도 이해될 것 같다. 땅을 누군가 소유하고 독점하는 순간 그 룰이 깨질 테니까. 그래서 앤스페이스 사업의 근본적 동기가 바로 땅 소유와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슨 행위를 하든지 땅(토지)은 필수 요건이고, 질문의 “암석”이라는 표현대로 우리 사회가 망가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부동산 이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부동산 문제 해결’은 창조세계의 회복이기도 한데, 건물주나 땅 소유주의 재산권을 뺏어서 똑같이 나누자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폭력을 가져온다. 단지 땅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는 혼자 만든 가치가 아니니 뭇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이다. 땅의 소유주에게만 오롯이 그 경제적 사회적 부가가치가 돌아가는 지금의 시스템이 양극화와 빈곤을 낳은 주범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땅이라는 공동의 자산, 가장 가까운 현실에선 공동의 공간을 회복시키는 일을 내 미션으로 받아들였다. 공동체적 공유공간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지는 이제 3~4년 정도 됐다.

― 언제부터 그렇게 토지 문제, 공간의 문제에 꽂히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부동산 문제에 민감했다. 6살부터 지금까지 잠실에 살고 있는데, 우리 동네가 재개발 이슈와 시세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주소만 들어도 소득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아파트 좀 사둘걸, 상가 좀 확보할 걸’ 같은 이야기들을 부지기수로 들었다. 교회 권사님 3명만 모이면 부동산 자산력 자랑한다는 말이 우리 동네 교회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확보의 중요성을 알았다. 한동대학교 재학 때는 당시 친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경을 열렬히 사모하고 탐독했고, 뜨겁게 학생 기도운동에도 몰입했었다. 그런데 점점 이런 신앙 활동이 내가 살아가야 할 사회의 문제나 이웃의 고통과는 너무 괴리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라고 외치지만 신앙적 열심에 비해 사회를 향한 관계망이 없었고, 허무했다. 그러다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강연을 들으면서 ‘성경적 토지법’을 알게 됐다. 성경의 가르침이 사회 실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었다. 

― ‘성경적 토지 정의’ 강연을 통해 일종의 사회적 회심을 경험한 것 같다.
하나님의 경영이 가난의 세습과 빈곤을 막고,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지속가능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가르침이 성경에 녹아 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그 원리와 그 원칙이 우리 사회에도 통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실질적으로 다가왔던 순간들이었다. 지금 내 활동 반경에는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이런 가치를 진정성 있게 살아내는 분들이 수두룩하다. 마을의 깨진 관계를 회복하고, 흩어진 고독한 개인들을 이웃으로 엮어내고. 공유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사업을 혁신하는 실천적 지성인들을 보면서도 영감을 많이 얻는다. 공동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많은 분들이 수고롭게 터를 닦아왔다. 그걸 이어 가는 젊은이가 되고 싶다.

― 앞선 이들이 이미 구현한 모델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미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땅을 신탁 받거나 공동체 조직이 매입해서 지속가능한 마을 기업 모델로 운영하는 모델이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250개 정도 운영되는 CLT(community land trust network) 같은 것들이다. 한국에서도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이슈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야기 되는 주제고, 실천 과제다. 그래서 최근 공유자산을 만드는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만드는 팀이 늘고 있다. 대개 시유지나 공공기관의 땅을 한시적으로 위탁 받거나 개발하는 형태로 사업이 운영된다. (민간 토지 기여자가 일부 있긴 하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공유문화를 확산하면서 ‘동주민센터’를 공유공간으로 확장 전환하거나, 유휴공간이던 시설을 조금 개선하고 재생해서 ‘시민 공간’으로 서비스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청년들에게 20만 원대의 주거를 제공하는 ‘달팽이집’도 각광받고 있다. 역시 ‘쉐어하우스’다. 다양한 형태의 노력이 공유자산 혹은 공동체자산화 형태로 기획 운영된다. 앤스페이스도 공간 기획과 서비스 제공 면에서 다양한 팀들과 협업을 한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앤스페이스도 인터넷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 있는 것으로 안다.
‘스페이스클라우드’(www.spacecloud.kr)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700개 정도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고, 종류도 세미나실, 회의실, 엠티실, 공유 부엌, 코워킹오피스, 바비큐 파티장, 작은 웨딩이 가능한 홀 등 다양하다. 꼬꼬마 팀이라서 학습하기도 바쁘지만 공유자산을 ‘서비스’로 판매하는 일이다. 최근 ‘O2O’(Online to Offline)이나 ‘플랫폼 서비스’(여러 사람들 필요에 의해 상거래, 정보교환, 가치교환 하는 사이트) 등으로 공유자산을 형성하고 이용 판도를 넓히는 게 이슈인데, 비워두면 낭비되는 게 공간이다. 공실률 없이 적정가격에 공간을 유통하도록 가이드 하는 게 서비스 핵심이다. 교회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많은 협의를 했었고. 공간 낭비를 줄이고, 가격 조정 효과를 비롯해 좋은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좋게 평가되어 소셜벤처 인큐베이터(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창업과 자립에 필요한 모든 물적·지적 설비를 지원하는 일-편집자)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일부 받고 경영 코칭도 받고 있다. 조만간 ‘모임공간 앱’도 출시된다.

― 성경의 토지 정의 사상을 우리 사회 현실에 구현하기까지 어떤 노력과 전략이 있었나. 
무엇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은 종교 언어 안에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일종의 ‘번역 작업’을 한다. ‘사회혁신’ ‘공유자산’ ‘공동체 조성 사업’ ‘지역 재생’ ‘시민력 회복’ ‘소셜 임팩트’ 등은 행정과 공무원, 민간사업자 및 지역단체의 리더들에게 매우 영감 있게 통용되는 언어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콘텐츠 안에서 신앙적 동기들이 충분히 역동되고 소통될 수 있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다. 특히 생소하고 낯선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설명 자료를 20회도 넘게 공유하며 간담회를 갖고, 컨퍼런스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토론하며 열과 합을 맞췄던 시간들이 ‘번역 작업’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구현하고 싶은 어떤 가치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력을 쌓는 기본기를 갖추는 것 외에 다른 지름길이나 전략은 없는 거 같다. 진정성은 반드시 통한다. 수많은 기업과 단체의 영향력 있는 리더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궤도에 오르기 위해 정말 열정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일한다. 

― ‘공동체적 가치’가 각박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니 고무적이다.
한국사회가 특정 산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수출에 의존하여 고속성장을 이뤘지만 빠르게 저성장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내수 시장이 불안정한 현실이다. 결국엔 일본이나 북유럽 모델처럼 지역 자생력을 강화하고 공동체 경제로 전환하는 것만이 국가가 살 길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굴지의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사회공헌이나 사회투자를 위한 자기평가를 하면서 앞다퉈 관련 사업들을 만들고 있다. 결국 공동체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서비스를 효과 있고 생산적으로 조직해내는 쪽이 앞으로는 주도권을 가질 거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다시, ‘지역’(로컬)에서 답을 찾고 있다. 결국 자생력을 만들어가는 풀뿌리조직이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몬드라곤이나 볼로냐처럼 지역 생산조직 같은 자구책을 만들어야 세계 경제에도 휘둘리지 않는다고 학계에서도 입 모아 이야기한다.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소품종 다량생산, 유휴자원 유통의 시대가 되고 있는데, 그게 실제 구현 가능한 무대가 바로 지역이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나 시민 조직의 공공서비스 참여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거다. 한국도 ‘마을 만들기’나 ‘민관협력’ 사례가 늘고 있고, 정책 방향도 주도권을 주민과 시민에게 조금씩 옮기는 추세다.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식의 사업과 서비스가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 무중력지대 회원들이 예약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소셜벤처 인큐베이터들이 존재하고 그 지원을 앤스페이스 같은 작은 조직이 받는 것이 새로운 추세에 대한 방증인가? 나중에 수익 문제로 투자사와 갈등 생길 일은 없을까?
경제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사보다 인재를 키우거나 사회문제 해결에 기꺼이 사회투자를 하는 기관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사회적 기금’ ‘사회투자’ ‘소셜벤처’ ‘소셜임팩트’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정부, 재단, 기업에서 출자하고 조성한 투자 그룹들이 상당하고 국내외 라인업도 꽤 있다. 우리 회사에 투자한 소풍(Sopoong)이라는 회사도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대표가 설립했고, 현재 쏘카, 위즈돔, 카페슬로비, 농사펀드, 텀블벅처럼 공유경제나 사회혁신을 위한 서비스 기업들에 투자 및 경영지원을 적극 돕고 있다. 짐 월리스 목사님이 《하나님의 정치》에서 언급했듯, 정치인들은 (더 나아가서 투자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 부는 곳’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얻고 지향하는 바에 투자하고 거기서 형성되는 생태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사와 갈등”이라는 표현이 참 재밌는데, 투자자랑 경영자는 원래 늘 치고 받는 사이다. 사업은 시작 순간부터 매일 ‘성적표’(KPI, 핵심성과지표)를 달고 사는 운명을 맞이한다. 매출은 얼마, 지출은 얼마, 성장은 얼마 등…. 측정하고 전망하면서 한숨도 나오고 그러다 가끔 파라다이스가 되고….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 참 공감되더라. 그렇게 해야 좋은 성과도 나온다는 통계도 있고…. 하지만 진심으로 응원하고 많은 배움을 주는 멘토도 있다.

― 사업가 이전엔 청어람아카데미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앞서 설명한 새로운 생태계를 보는 눈과 어떤 연결성이 있었나.
지금은 ‘사업’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뜻을 이뤄가고 있지만, 20대의 시민활동 경험이 사회적 문제 해결의 아젠다 설정이라든지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에 크게 기여했다. 대학생들에게도 1년 정도 이상은 시민단체 활동을 해보기를 권하기도 한다.

특히 공간에 대한 운영관리 능력, 공간의 미디어 기능 서비스에 대한 감각은 명동 청어람(청어람아카데미)에서 일할 때 얻었다. 교회뿐 아니라 지역과 시민사회에 무료로 공간을 개방했었는데, 다양하고 좋은 콘텐츠를 가진 팀들이 청어람 공간을 사용하면서 하나의 대학 같은, 캠퍼스 같은 아카데미아가 형성됐었다. 그곳에서 일했던 4년의 경험이 너무 좋았고, 열매나눔재단 같은 사회투자 기관이 설립되는 과정도 옆에서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대한 식견이나 네트워크를 얻었다. 다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감사한 사회적 출발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실제적인 공간 관리와 스케줄링 일도 맡으면서 공간이 어떻게 콘텐츠가 되고 풀뿌리 조직들의 사회적 자본이 되는지 여실히 배웠다. 이런 운영 매뉴얼을 그대로 스페이스 노아에, 여기 무중력지대 대방동에 일부 적용해왔다. 사람을 위한 공간,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 사람들이 만드는 가치가 축적되는 공간으로.

청년이슈로 활동이 집중되면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이슈팀에서 1년 반 정도 일했는데 체감은 3년 정도 ‘빡세게’ 일한 것 같은 시절이었다.(웃음) 역시나 거기서의 인연으로 지금의 ‘하자센터’ ‘청년허브’ ‘정토회 청년열린 아카데미’ 등 곳곳의 청년단체들과 연결된 단체만 정리해보니 200~300개가 넘는다. 많은 배움과 인연을 얻었다. 활동가로서의 가장 큰 자산은 이런 분들과 신뢰를 쌓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동료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 범위가 무한한 연결 사업이지만, 현실에서 어느 정도 지속가능할까?
모든 사업의 숙명이 10년 뒤를 내다보지만 내일은 또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한다. 그냥 받아들이면서 때마다 주어지는 프로젝트 사업들과 현재 자산을 키우는 두 가지의 사업을 최선을 다해 만들고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우리는 뜻을 품고 최선을 다할 뿐이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아니겠는가.

다행히 좋은 팀원들이 프로젝트별로 붙어 현재 아홉 명이 함께 일한다. 팀원이 늘면 그만큼 리더십에 대한 위기감과 아쉬움이 계속 발견된다. 일은 많은데 성과는 미미할 때 가장 힘들다. 팀원들이 성장하는 것이 회사가 성장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수평적 관계를 그리고, 때마다 한계를 인정하며 소소하게 이어간다. 구체적인 수입은 위탁 사업들에서 일부 안정적으로 획득했고, 스페이스클라우드 자산을 키우면서 장기적인 사업 모델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은 성과 대비 투자 비율이 높다.

― 눈에 띄지 않는 어려움도 많겠다.
투자사 대표님이 사업이 혹시 잘 안되어도 이 사회문제(토지 문제)에 계속 뛰어들겠냐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곧 바로 “네, 그럴 건데요” 해버렸다.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서 되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취지에서였다. 늘 ‘너무 깊이 들어왔어…’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작년엔 1년간 수입이 없었다. 모아둔 돈으로 버티면서 뭔가 만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올해는 형편이 조금 나아졌고, 내년에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역량은 쌓이고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오글거리지만 진심이다.

― 젊고 건강한 다른 그룹들과 파트너십도 중요할 것 같다.
맞다. 우리는 대기업처럼 모든 전문역량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갖출 수 없는 형편이라서 콜라보레이션이나 컨소시엄 같이 연대, 협력 사업을 많이 추진한다. 최근 공유자산이나 공동체자산화 사업에 관심을 갖는 건축, 도시설계, 마을 활동가들이 곳곳에서 연결되어 〈작은 도시 기획자들〉이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앞으로 이런 네트워크 안에서 실질적인 사업이나 프로젝트 추진이 활발해질 거 같다. 함께 협력해서 공동선을 이루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 역시 큰 공유자산이 되리라 생각한다. 

― 앞서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도 했는데….
사회적 건축가들과 같이 동주민센터를 공유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들을 조직하고 있다. 기술 역량이 강한 팀이 설계와 시공을 맡고, 공유공간 운영 및 활성화 프로세스 경험이 많은 앤스페이스가 주민조직이나 운영 매뉴얼 작업을 한다. 유사한 사업들로는 대만 타이페이시 ‘도시재개발국’(URS, Urban Redevelopment Office)이나 일본 세타가야구 ‘지역공생의집’처럼 꽤 성공적인 사례가 많아서 충분히 가능한 실험 작업이 되리라고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템은 일본의 ‘해치코워크+키즈’(Hatch Cowork+KIDs) 같은 일과 육아가 가능한 공간이나 가족과 이웃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공간 사업 모델까지 포함해 설계하고 있다. 100퍼센트 다 잘 되면 너무 감사하겠지만, 시행착오도 각오하고 있다.

― 들으면서 그저 상상만 해도 재밌다!
정말이다. 이미 곳곳의 사람들에게 아이디어가 충분하다. 우리 같은 공유 기업가들은 그것을 모아 어떻게 실현가능한지, 사업화 하는 걸 돕는 일만으로도 역할 할 수 있다. 자율관리나 운영체계를 잡는 것까지 돕고, 활성화되도록 플랫폼을 활용하게 미디어 및 마케팅 교육도 해드린다. 공간만 있다고 저절로 뭐가 되진 않는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여 가치를 만들고 커뮤니티 사업을 해야 지속가능하면서도 공공성이 확보된다. 이러한 가치를 사업에 잘 녹이는 게 앤스페이스의 할 일이고, 그게 지금까지 제일 잘해왔던 일 아닐까 싶다. 

― 앞장 서서 가는 길이라 여정이 녹록치는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희망적이다. 5년 전만 해도 부동산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 “빨갱이”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혁신적인데?”라고 반응한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덕분에 스마트폰 세계가 열렸고, 소통이 원활해서 예전보다 비교적 민주적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시대를 잘 타고 난거라고 여긴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보람과 기쁨이 더 크다. 그러니까 3년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나. 비교적 수월한 환경이기도 하고. 혹 어떤 일이 안 풀려서 고민이 1주일째 넘어가면 하나님과 산책하는 시간을 갖는다.(웃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거라면 주님께 맡기는 게 맞다. 할 수 있는 일은 늘 최선을 다해 해내고. 그러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어 있다. ‘신기방기’하다. 작년엔 월급이 없던 때였는데 든든한 투자자를 만났고, 사업 방향을 모색하던 시간에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우리 팀 역량을 채워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면서 근육이 생길 거라 믿는다. 가끔 대학생들이나 취준생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멋지다고 말하면, 예전에 공간 사업하다가 투자자와 싸웠던 험난한 경험담을 실컷 속삭여준다. 95퍼센트 정도가 영웅담 정도로 생각하고 돌아가는데, 그래도 반해서 남는 5퍼센트의 남은 자들이 있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고, 인턴 친구들이다. 그들과 만드는 모든 것이 생산적이고 즐겁다. 간혹 허세를 부린다. 지금, 성장하는 로켓에 올라타라고!

― 어려울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일을 하게 되는 동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상상력이 유일한 동기다. 매일매일 ‘~라면 ~일텐데’ 식 소셜픽션을 한다. ‘이런 세상이 되었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준비되었으면…’ 이런 습관이 없었다면 현실의 벽 앞에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상상했을 때 방법을 찾게 되고, 일단 하면서 배운다는 심정으로 작은 무엇인가라도 한다. 그것들이 모여 또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 것을 조금 경험해본 것 같다. 성경적 경제를 이야기하고 토지 자유를 이야기하면 너무 먼 이상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원리를 가져와 내 빈 방을 공유하게 안내해보고,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을 같이 만들어 보는 경험을 쌓는 일은 꽤 실천적이면서도 다음 단계를 모색해보게 한다. 그렇게 N개의 공간을 만들고, 연결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지금은 우리 비전이고 미션이다.

― 앞으로의 각오가 있다면?
‘백 살 넘게 살아보자!’이다. 한 150세까지도…. 특출 난 매력이나 재능은 없지만 지구력과 실천력 하나는 평균 이상이어서 오래 살면 남는 장사일 것 같다. 백 세 넘어서까지도 건강하게 이런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거 같고, 정말 신날 거다. 백 살 넘은 할머니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누가 말 안들을 수가 있겠나? 의지가 그렇다는 거다.(웃음) 하나님께서 부디 이쁘게 봐주셔서 많은 인재를 보내주시고 회사도 잘 되고, 그래서 ‘N개의 공간이 가치 있게 연결되고 유통되는 세상’이라는 꿈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부동산 문제는 한 명의 영웅이 나와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과 마음을 모아내는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안에 ‘희년’이 먼저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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