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프로그래머’가 된 평화활동가 박정경수

   
▲ ⓒ복음과상황 오지은

2010년 ‘연중기획:복상이 주목한 젊은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이었던 박정경수 씨(34). 2006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지냈었다. 출소 후에는 평화 복무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작은 평화단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 들어갔다. 주한미군에서 비롯된 범죄와 환경오염, 기지촌 여성인권 문제는 물론 한미 SOFA 개정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지난 1월로 그만두기까지 약 6년이 넘는 시간을 거의 홀로 일했다. 그런데도 도움이 절실한 현장이 있으면, 내 일 남 일 가리지 않고 일손을 보탰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예수의 “항상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을, 어려움 겪는 주변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3월 그는 녹색당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새 직장에 자리를 잡은 지 2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서울 종로 녹색당 당사 근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평화활동가’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 <복음과상황> 2006년 7월호에 ‘개신교 첫 양심병역 거부자’로 첫 인터뷰가 나갔었다. 2010년엔 ‘복상이 주목한 젊은 그리스도인(시민사회 분야)’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번이 세 번째 인터뷰다.
복상에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나처럼 새롭지 않은 사람이 계속 나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9년 전 인터뷰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신교 첫~’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불편하다. 예수를 믿기 전부터 군대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종교적 선택’은 아니었다.

- 기독교인이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성인이 되고 20대 초반에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다.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처의 종교적인 문화나 유적지를 둘러보다가 예수라는 인물에 관해 관심이 많이 갔고,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을 거의 다 읽었다. 특히 안병무 선생님의 《갈릴래아의 예수》(한국신학연구소)를 읽고 큰 영감을 받았다.

-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이었나?
민중과 함께했던 예수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민중과 씨알의 존재가 남아 있다는 개념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교회가, 혹은 인간이 자기의 언어로 가두고 있는 진실에 대해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된 책이다. 실제 병역 거부로 감옥에 있을 때 신학서적 많이 읽었다. 신학자가 될까, 생각도 했다. 수감되기 전후로 신앙의 맛을 진하게 느꼈다.

- 평화활동가로서 운동을 이어가는 데 예수가 어떤 영향을 주었나?
실은 내가 좀 거만해서인지, 초창기 평화운동을 하면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겠더라. 저 사람은 저게 흠이고, 이 사람은 이게 흠이고. 자꾸 사람들의 흠만 보게 되더라.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상태일 때, 예수를 알게 되었다. 그의 행적과 배경을 살피면서 그를 본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더 겸손해졌다고 할까. 그때 이후로 사람들을 만나면 흠이 보이는 게 아니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 교회에는 출석하고 있나?
가끔 나가는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가나안 성도’라고 보면 된다.

- 6년 넘게 일했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주미본) 일을 그만두었다. 어떤 일이었는지 간략하게 얘기해 달라.
평화적 관점에서 주한미군과 그 기지로 인한 주민들의 인권침해와 환경적인 피해를 체계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곳이다. 한미 SOFA 개정, 미군 범죄, 주한미군에 따른 환경오염, 기지촌 여성인권 등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피해의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고, 해결책까지 논의했다.

- 주미본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라크 전쟁 때 우리나라가 파병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나라의 군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병역을 거부하게 된 큰 계기였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휴전 중인 나라에서 군사기지 문제로 피해당하는 주민들의 인권과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싶었다. 군사기지는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로 가장 힘없는 지역에 들어선다. ‘희생 시스템’이다. 이런 문제를 설명하고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이제 상근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가 계속해야 할 ‘일’이다.

-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겠다.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다. 아픔을 준 대통령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누구보다 나은 대통령이며, 나보다 훨씬 훌륭한 성품의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그의 결정은 나에게 큰 아픔으로 남았다. 정치란 결국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하느냐의 문제인데, 노 대통령은 많은 이들에게 아픈 기억을 주는 정치적 선택을 한 거다. 나처럼 이라크 파병의 아픈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 대통령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 같은 희망(또는 절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수씨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별로 영향받지 않을 것 같다.
맞다. 실상 고위 공무원들만 바뀌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서도 극단적으로 “미군 나가라”식으로 운동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 보통 주한미군 관련 ‘평화운동’이라고 하면, “미군 나가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을 좋아하는 분이나 싫어하는 분이나 인격체로 보는데, 옳지 않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도 미국 사회 안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기지촌도 마찬가지다. 미군 약자와 한국 약자, 그리고 이주여성들이 뒤섞여 사는 곳이다. 물론 그 안에서 다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지만, 충분히 시스템으로 풀어야 할 문제조차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나빠서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무능인 경우가 많다.

   
▲ 사진: 박정경수 페이스북

- 대척점 없이, 다시 말해 분노 유발 없이 운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운동하는 데 분노가 분명히 효과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분노로 인한 에너지는 오래가지 못하더라. 요즘은 시위를 해도 안 통하지 않나. 정부도, 보수 세력도 우리의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이제는 누가 더 질기게 달려드는가, 누가 한 문제를 진득하게 붙잡고 늘어질 것인가가 중요해진 시대가 아닐까. 앞서 말했듯,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만 바뀌어도 해결될 일들이 많다.

- 요즘 들어 가장 심각하게 보는 사안은 무엇인가?           
10년 동안 지속되고 반복되는 일로, 미군들이 오염시킨 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가령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가 2016년에 평택으로 이전하면, 용산기지 환경정화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정부 몫이 된다. 국토해양부는 용산기지의 정화비용으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책정했으나, 10배 정도는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원칙상 땅을 빌려 쓰면서 오염을 시킨 미군이 정화하고 돌려주는 게 맞다. 2001년 발생한 유류 오염사고에 대한 정화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군기지 내부에서 정화를 못하니 기지 밖에서 겨우 펌프로 퍼내는 수준이다. 이렇게 10년이다. 이태원역 아래에 발암물질이 흐르고 있다. 그 피해가 다 누구에게 가겠나. (2014년 녹사평역 일대 지하수에서 1급 발암 물질인 벤젠이 기준치의 570배가 넘게 검출됐고, 석유계총탄화수소[TPH]도 37배를 초과했다.-편집자)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시스템의 무능이다.

- 누군가는 해야 할 그 중요한 일을 왜 그만두었나?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3년 정도 할 생각이었다. 출소 후 (군복무를 대체하는) 평화복무 형식으로 작은 단체에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1년이 조금 넘어 혼자 일하게 되었다. 혼자서 선택하는 일도 힘들어지고, 일이 많아지면서 한계가 있었다.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일이 아니라서 힘든 부분도 있었다. ‘하나님이 날 시험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성격상 다른 활동가들의 도움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 못하고 다 받았다. 2년 전에 이미 경제적인 상황을 포함해 너무 정신이 없었다. 활동을 이어가기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에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오기가 생겨 2년을 더 끌어왔다.

- 일 끝나고 쉬는 동안 어떻게 지냈나?
1년은 쉬려고 했는데 한 달도 채 쉬지 못했다. 주로 친구들 만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원래 주변 사람들 잘 챙기는 성격인데 그동안 못 챙겼던 사람들 만났다. 10년 전에 친구들과 말하길, 10년 후에 우리는 결혼해서 애도 낳고 모일 거라 했는데 전도사 빼곤 결혼 안 한 사람이 대부분이더라.(웃음) 쉬면서 신앙의 성숙을 위해 다시 교회도 나가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다.

- 녹색당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지금까지의 평화활동들도 다른 형태로 꾸준히 이어갈 거라 했는데, 새 취업이 혹시  지속가능한 활동 기반을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나?
녹색당 취업은 나도 예상치 못한 거였다. 녹색당에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요청을 받았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내가 하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고민을 한 건 맞다. 나처럼 10년 정도 시민운동을 한 활동가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큰 단체 사무처장이 되기 위해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기반을 만들어가면서 활동할 것인가. 난 후자를 선택한 거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에 취업하면서도 활동 경험을 축적한 활동가가 얼마나 될까? 지속가능한 활동가로의 한 모델로 제시하기엔 나는 좀 특수한 케이스인 듯하다.

- 많은 시민단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현장 활동가로서 어떻게 보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로 들어오는 돈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적어도 물가상승률을 따라올 순 없다. 예전에 시민단체가 채워주던 시민들의 요구를 이제는 <뉴스타파> 등의 언론사에서 채워준다. 시민단체로의 후원이 더 줄어들 것이다. 상근자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시대적 요청이 사라진 단체나 조직은 해산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단체가 먼저가 아니고, 의제가 먼저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제를 시민단체가 잘 포착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의제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본다. 운동 방법의 변화를 모색할 때가 아닐까?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운동 방법의 변화라면 무엇인가?
시민단체들이 너무 ‘이슈’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이슈별로 고유 영역이 있는데, 가령 내가 미군기지 관련 활동을 하고 있으면 이 문제는 아무도 안 건드린다. 그런데 내가 운동하는 내용이 왜 사회적으로 설득이 안 될까 고민해보니, 바로 방법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나 싶었다. 주미본을 그만둔 이유도 방법에 대한 고민이 컸다. 확실한 것은, 시민단체의 위기가 시민운동의 위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 구체적으로 들려달라.
시민단체만 운동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훌륭한 개인들이 자꾸 늘어나는데, 단체들은 20년 동안 쌓아온 운동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다.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사회운동은 지속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운동권’이라는 말이 왜 있을까. ‘권’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경험을 공유하기에 다른 개인들을 의존적으로 만든다. 이젠 모든 개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의제를 고민하고 구현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운동 자산들을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내가 컴퓨터를 배운 이유도 테크놀로지 기반 없이는 소통과 조직화가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간의 평화운동 경험을 공유하는 ‘오픈소스운동’을 할 계획이다. 내 경험에서 말할 수 있는 평화운동을 문서화하려고 한다. 운동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모여야 할 수 있다.

-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을지도 모를, 기독시민단체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줌밖에 되지 않지만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기독교인이 있다. 여전히 착한 기독교인이 많고, 그들을 깨울 가능성이 있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깨울 힘이 있다. ‘권’(우리) 안에만 있다 보면 지친다. 안에만 있으면 똑같은 사람들과 있어서 지친다. 외연을 넓히면 좋겠다. 창조적인 에너지는 역시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인이 나쁜 목자들을 따라간다고 해서 그들이 무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단체 활동가들 보면서 나도 엄청난 상상력과 영감을 얻는다. 일반 운동 바닥에서 좋은 운동가가 나쁘게 마음 먹는 것을 자주 봐서인지 몰라도, 교회 안에서 말도 안 되게 착한 마음을 볼 때 많은 잠재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편견을 갖고 보던 복음주의 활동가나 보수적인 목사님들이 현장에서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하는 ‘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분들을 보며 창조적인 힘을 얻는다.

- 앞서 ‘오픈소스운동’을 말했는데, 뭔가 대단한 일 같다.
소박한 일이다. 블로그부터 시작하려 한다. 외국은 문서화가 잘되어 있어서 운동을 주도하던 사람이 활동을 접어도, 누군가가 열심히 이어갈 수 있다. 오픈소스운동과 관련 다양한 이론과 방법 등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 영어 자료 아닌가?
그래서 힘들다. 어쩌겠나. 외국에서 공부한 친구들과 공유하며 공부하고 있다. 영어로는 이렇게 자료가 많은데 우리는 왜 없을까 아쉽다. 현재 각 지방이 처한 당면 과제들은 서울 시민의 인적 물적 도움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 때문에, 풀뿌리운동이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 우리 동네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과 움직임을 문서화해서 공유하게 되면 좋겠다. 

- 다양한 아픔을 겪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노하우 공유는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철거민들 이야기 들어보면, 자신이 철거민이 될지 전혀 몰랐다고들 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알려야 하는데, 누군가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면 듣지도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려움에 처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지식은 노조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알려주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정보공개청구도 경험 없이는 이용하기 어렵다. 몇몇 시민단체들만 이용하는데, 개인이 다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교체 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 앞서 주한미군 문제가 한국 사회 시스템의 무능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결국, 민주시민으로서 기초체력을 다져야 이 사회가 바뀐다는 의미인가?
87년 민주주의가 왜 성공했을까? 당시의 독재정부가 너무 무능해서는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 운동을 잘해서였다면 시민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조금 나아진 정도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운동을 하지 않은 거다. 그저 ‘덜 나쁜 상태’로 되었다. 사람을 바꾸는 민주주의 운동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단체의 도제식 방법을 벗어나 옆에 있는 사람부터 바꾸는 운동이 필요한 때다.

- 혹시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몇몇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내 관심사 밖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을 확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선거도 이뤄지고, 독재정권도 무찌른 것 아닌가. 노무사가 되려고 고민한 적은 있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어울릴 때 운동이 된다고 생각한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답 없는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텐데, 어떻게 푸나?
자면서 푼다. 스트레스에 강한 편이고, 감정 기복이 없는 성격이다. 연애할 때 문제가 될 정도로.(웃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로 자면서 푼다. 활동가로 오래 일하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받아주다 보니, 감정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다. 교역자들도 그렇지만, 항상 내 감정을 누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펴야 해서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화를 못내는 사람이 된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화는 분명히 필요한 감정인데, 화를 막아두고 사는 것은 건강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강정마을에 가니까 또 욱하게 되더라.

- 감정 기복 없는 성격임에도,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들었다.
어느 순간, 집에서 혼자 멍때리면서 술 먹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의지적으로 마시지 않았다. 글쎄, 세월호 사건을 위해 내가 실제로 한 건 없다. 집단적 절망감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왔구나! 암담했다. 천안함, 쌍차, 강정마을, 밀양 등 재앙이 터질 때마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호는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암담했다.

- 예수의 말씀이나 가르침 중 좋아하는 것 있나. 앞서 예수를 본받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실현하며 살 수 있을까?
예수의 ‘말씀’보다는 그 ‘삶’이 더 멋지고 영감을 준다. 예수가 “항상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지 않나. 깨어 있다는 것은 준비되어 있다는 뜻 같다. 예수의 부름, 또는 내 주변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준비됨 말이다. 나는 어떻게 보면 ‘맥가이버칼’ 같은 사람이다. 뭔가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양하게 잡기가 많은. 맥가이버칼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도구는 아니지만, 분명 쓸모 있는 도구이지 않나.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항상 준비된 삶이 아닌가 한다. 
 

진행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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