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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
[341호 신학서 읽는 네 가지 시선]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새물결플러스, 2017)
[341호] 2019년 03월 29일 (금) 15:13:07 최경환 goscon@goscon.co.kr
   
   
   
 

1. 저자의 관심
기독교 인구가 고작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에 무슨 신학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타모리 가조의 영향력과 그의 신학을 알고 나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는 토종 일본 신학자로서 유학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도 일본의 신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천재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썼을 때 나이는 서른 살(1946)이지만, 그 모태가 되는 글은 이미 스무 살에 썼고, 그 내용은 책의 제9장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번역서도 제대로 없던 시절, 젊은 나이에 슐라이어마허, 리츨, 헤르만, 알트하우스, 니그렌, 바르트의 텍스트를 직접 읽고 씨름하며 자기만의 신학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신학은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몰트만이나 마이클슨을 비롯한 많은 서구 신학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기타모리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 독일의 신학적 분위기와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타모리가 자주 인용하는 칼 홀, 라인홀드 제베르크, 아돌프 하르낙 같은 신학자들은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이고, 이들을 비판하고 나온 칼 바르트는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으로 잘 알려진 신학자다. 기타모리는 이들의 신학 전통을 창조적으로 전유하면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그 중심에 놓고 신학의 얼개를 만들어 간다.

기타모리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칼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두 가지 이질적인 흐름을 역설적으로 결합한다.

죄인에게 죽음을 명령하셔야 할 하나님과 그 죄인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이 싸웠다. 이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아픔이다. (35쪽)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동시에 체현하는 곳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였던 것이다. 기타모리는 ‘아픔’이라는 언어적 매개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의 마음을 연결하고 구원의 신비를 연결한다. 심판과 구원이 연결되기에 신비이고, 진노와 사랑이 함께 공존하기에 역설이다. 이런 신비와 역설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언어가 가진 신비한 능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가 제시한 다양한 신학적 언어 가운데 단연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는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흔히 아픔을 외부에서 불현듯 엄습하는 불행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아픔은 외부 사건이 아니라 본래적 성품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픔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아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타모리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우리가 아픔에 완전히 패배하여 아픔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아픔을 우리의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닥치는 재해로 생각할 때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픔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는 한, 우리는 끝내 아픔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아픔을 이겨내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아픔을 우리 안에서 찾고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기에 이를 때이다. (159쪽)

하나님의 아픔이 하나님의 본성이듯, 우리도 아픔을 우리의 본래적 성품으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때에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 아픔을 사랑할 때, 오히려 아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아픔을 감싸 안으시는 분이시다.

2. 편집자의 선택
기타모리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은 이미 1987년에 양서각에서 기타모리에게 직접 배운 박석규가 번역한 바 있다. 오래전에 절판된 이 책을 새물결플러스에서 새롭게 번역(이원재)해서 완성도 높은 책으로 출간했다.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일본다우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본의 신학 서적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찬사와 추천은 대단하다. 20세기 신학사(특히 신론에 있어서)에 큰 전환점을 일으킨 책,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학, 서구의 신학자들이 참고하는 신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유명한 책들을 보면, 쇄를 거듭하면서 책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서문에 소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책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7편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의 상황을 배경으로 쓰였기 때문에,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상황에서 늘 새롭게 해석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듯이 이 책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에게도 국내 신학자의 손에 의해 쓰인 멋진 고전 한 권쯤 있었으면 좋겠다!)

예민한 번역자는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의 원고를 점검한다. 물론 편집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누구보다 꼼꼼하게 최종 원고를 체크한다. 번역자와 편집자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일치를 보는 부분도 있지만, 생각이 갈리는 부분이 생기면 미묘한 침묵의 시간을 견디면서 기 싸움을 하기도 한다. 시간과 돈이 넉넉하다면야 이 기 싸움을 계속 이어가며 원고의 질을 높일 수 있겠지만, 한국의 출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책의 출판 과정을 잘 알기에 그 팽팽한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 책은 그냥 출간 일정에 맞춰서 뚝딱 만들어진 번역서가 아니다. 번역자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가 정말 정성을 듬뿍 담아서 출판한 책이다. 모든 판본의 서문을 그대로 싣고, 번역어 선정에서 친절한 역주까지 그리고 마지막 역자 해제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탁월한(다른 말로 깐깐한) 번역자가 있었기에 이토록 완성도가 높은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또한 편집자의 인내와 끈기, 의사소통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낌없이 칭찬하고 싶은 책이다.

3. 비평가의 시선
모든 신학은 ‘보편적’ 신학이 아니라 ‘특수한’ 신학이다. 우리가 흔히 “정통신학”이라 부르는 신학도 특정한 지리적·사상적 전제 위에서 세워진 ‘지역적’ 신학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신학들도 성서를 통전적으로 아우르는 신학을 구축한 것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본문 말씀을 ‘기초 신념’(basic belief)으로 박아 놓고 그 위에 다른 여러 본문과 사유를 올려놓은 것이다. 우리가 ‘신학’이라는 명사 앞에 이러저러한 형용사를 붙여서 만든 신학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신학이다. 기초 신념과 그 위에 올려진 2차 신념과 증거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정밀하게 연결되어 있느냐가 그 신학의 단단함을 보증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소위 정통신학은 그 연결고리가 단단하고 정합성이 뛰어나기에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이고, 그 연결고리가 느슨하거나 한두 가지 이론이나 증거로 결합된 신학일 경우 특정한 이념을 지지하는 신학으로 전락한다.

기타모리 가조 역시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라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몇몇 성서 본문들로부터 시작한다. 기타모리가 자주 인용하는 본문은 렘 31:20, 히 2:10, 벧전 2:24 등이다. 그는 이런 성서 본문을 기초로 ‘하나님의 아픔’과 관련된 거대한 사상 체계를 세운다. 신학의 각 주제를 다루고, 역사를 다루고, 사상사를 다룬다. 본문 하나를 붙들고 묵상하면서 이처럼 거대한 신학체계를 세워나가는 모습이 경이롭고 신비롭다.

이 책이 여타의 상황신학과 다른 점은, 아마도 실천(praxis)을 통해 이론(theory)을 재구성하는 방법론을 채택하지 않고 전통적인 신학 서술 방법을 그대로 채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상황신학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신학 이론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기타모리는 이러한 귀납적인 방식으로 신학을 전개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내적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신학의 각 요소들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러 일본의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학을 증명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서구 신학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우슈비츠 이후 전통적인 신관에 대한 비판이 활발해지면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무감정성’(Divine Impassibility)이 강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감정과 격정은 처음에는 엘리 위젤과 아브라함 헤셸 같은 유대교 신학자들에 의해 논의가 촉발되다가 기타모리를 통해 신학화 작업이 이뤄졌으며, 몰트만을 통해 널리 대중화되었다. 최근에는 과정신학의 영향을 받은 열린 신학(Open Theism) 진영에서도 이런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파하시는 하나님’은 초대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았던 성부수난설의 새 버전이라고 비판받기도 하고, 전범국가인 일본이 하나님의 아픔과 인간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어려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충분히 숙고하면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간다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4. 독자의 취향
이 책이 출판된 시기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저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집필했는지를 살피면 훨씬 역동적인 독서가 되겠지만, 설령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책 자체가 뿜어내는 중량감에 충분히 묵직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을 선택하든 분명 각자의 상황에서 얻는 교훈은 강렬할 것이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짙게 깔린 신학책이 궁금해서 선택하든, 몰트만 신학의 뿌리를 탐구하려는 신학적인 동기에서 선택하든, 아니면 책을 통해 위로와 힐링을 받고자 선택하든 그 원하는 바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고통이나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기존의 신정론이 제시하는 대답과 다른 답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읽을 때는 어렵겠지만 신학자들의 논의를 헤쳐나가면 어느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뭉클한 감동을 선물 받을 것이다.

물론 다소 감성적인 제목에 낚여 이 책을 만만하게 보면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책 내용은 상당히 무겁고 어둡고 어려워서 읽는 내내 진짜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다.

사족. 이 책 249쪽에서 기타모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동시에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그가 만든 이 예화야말로 자신의 신학을 가장 잘 풀어낸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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