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338호 신학서 읽는 네 가지 시선] 앤터니 티슬턴의 《조직신학》 (IVP, 2018)

1. 저자의 관심
너무나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거나 스펙이 월등할 때, 주로 ‘사기캐’(사기 캐릭터)라는 말을 쓴다. 학자에게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앤터니 C. 티슬턴은 분명 ‘사기캐’다. 학술적인 연구 역량, 대학에서의 강의와 교육, 교회를 위한 실천적 섬김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엄청난 양의 논문과 저서를 쏟아내면서도 한결같이 ‘고퀄’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동의할 것이다.

그는 1937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82세의 노학자다. 티슬턴은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평생 영국 성공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토종 영국 신학자다. 런던 킹스 칼리지, 브리스톨 대학교, 셰필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이후에 더럼 대학교와 세인트존스 칼리지, 노팅엄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논문과 책들을 썼다. 1977년에 셰필드 대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은 나중에 그 유명한 《두 지평》(IVP)으로 출간되는데, 이 책으로 인해 그는 큰 명성을 얻는다. 특별히 티슬턴의 제자 사랑은 유별난데, 그는 자신의 책 곳곳에 제자들의 연구 업적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치하한다. ‘티슬턴 사단’이라고 할 만큼 그의 제자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티슬턴의 방법론과 신학을 적용하고 있다.

1992년 더럼 대학교에서 노팅엄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두 번째 대작 《해석의 새로운 지평》(SFC)을 출간한다. 《두 지평》이 하이데거, 가다머, 불트만, 비트겐슈타인의 해석학이 신약해석학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추적했다면, 《해석의 새로운 지평》은 20세기 중반 이후 최근의 해석학 논의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해석학과 성서해석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2011년 은퇴할 때까지 티슬턴은 수많은 논문과 책을 집필하면서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어나갔다. 

티슬턴은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으로 인해 시력이 상당히 안 좋아졌고, 이후에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한 시험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2007년에는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큰 수술을 받았다. 아마도 그의 아내 로즈메리 티슬턴의 헌신적인 도움이 아니었다면 책 출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티슬턴은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새물결플러스)이라는 대작을 출간하고,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꺼운 책들을 지금까지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티슬턴은 해석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과 성서해석학의 토대를 세우고 신학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 탁월한 공헌을 했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기여는 ‘화행론’(speech-act theory)이라는 언어철학을 통해 성서와 교리를 수용하는 공동체가 실천적이고 효과적인 인격과 신앙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석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서와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 어떻게 타자와 세계에 대해 스스로를 개방하고 변혁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티슬턴은 통합적인 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근대 이후 세분화된 신학의 분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한번은 그가 미국의 한 대학에 해석학을 강의하러 갔을 때, 학장으로부터 이런 전갈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당황스럽습니다. 이것이 신약 강의인가요 아니면 조직신학 강의인가요? 아니면 철학 강의인가요?”(36-37쪽) 결국 티슬턴은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다.

2. 편집자의 선택
이 책은 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재로 최적화된 책이다.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거의 동일한 분량으로 각각의 주제를 친절하고 정확하게 소개해준다. 티슬턴의 영어는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영국 영어 특유의 고풍스러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난삽한 표현이나 구문이 많아서 번역이 꽤나 어렵다. 그럼에도 오랜 번역 노하우와 경험이 있는 박규태 번역가의 수고로 가독성 높은 책이 나왔다.

티슬턴의 책은 편집도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그가 인용하는 학자나 책의 양이 상당히 많아서 꼼꼼히 체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티슬턴의 중요한 책들이 하나씩 소개되면서 이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신학적 해석학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특별히 IVP에서는 티슬턴의 《두 지평》을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그의 책을 내놓았다. 소위 견적은 많이 나오지만 그만큼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은 이런 학술서를 용기 있게 출판한 출판사가 고맙고, 이런 좋은 책을 알아보고 기획한 편집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의 신학대학교에서는 저마다 자신의 교단 배경이나 신학적 성향에 맞는 조직신학 교과서를 사용하겠지만, 감히 단언컨대 티슬턴의 《조직신학》은 교단적 배경과 성향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각 주제마다 성서 주해로부터 교부들의 이해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의 논의를 균형 있게 접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다. 티슬턴이 영국, 미국, 독일의 신학자들의 연구를 골고루 인용하고, 그 내용 또한 공교회적이기 때문에 신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이나 신학을 가르치는 선생들을 모두 만족시킬 책이다. 

3. 비평가의 시선
티슬턴이 자신의 해석학을 정리해서 펴낸 책이 《성서해석학》(새물결플러스)이라면, 이번에 나온 《조직신학》은 그동안 자신의 교리 해석학 프로젝트를 교과서적으로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내용이 편차 없이 고르게 균형을 잡고 있는데, 몇 가지 특징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직신학의 전체 얼개를 삼위일체의 틀로 설명하면서 특별히 성령론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에서 티슬턴은 자신의 해석학을 기독교 교리에 적용하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기독교 교리의 각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다소 편차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신론과 교회론에 대한 논의는 다소 적은 반면, 인간론과 기독론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현대 종교 철학의 논의를 충분히 활용해 신론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고, 인간론에 대한 설명에서도 좀 더 진일보한 논의가 첨가되었다. 이를테면, 인간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천사에 대한 설명이나 동물의 지위에 대한 논의는 피조 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기독론의 ‘부록’으로 다뤄지던 성령론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룸으로 삼위일체의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둘째, 티슬턴은 본인이 직접 성서를 주해하고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수정하고 보완한다. 그동안 성서학자와 조직신학자들의 반목과 날카로운 신경전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서학자는 조직신학자들의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교조적 태도를 비판하고, 조직신학자는 성서학자의 편협함과 성급한 일반화를 비판한다. 하지만 티슬턴에게는 이런 비판이 적용되질 않는다. 그는 제임스 던과 래리 허타도의 성서학적 접근을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판넨베르크와 몰트만의 조직신학적 접근을 교차적으로 서술한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 숨겨진 보석 같은 글을 끄집어내어 현대 성서학자들의 논의와 연결시키는가 하면, 반대로 신약학자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논쟁하는 단어 하나가 현대 조직신학자들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인간의 구성 요소에 대한 성서의 용어를 세세하게 다루고 그로부터 인간의 통전성과 사명을 설명한 부분은 성서에 정통한 학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226-242쪽).

셋째, 티슬턴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조직신학을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개방성,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내어줌, 공적 제자도의 사명을 강조한다. 타자를 향한 개방성은 티슬턴이 자신의 해석학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분이며(442쪽), 인간은 몸을 통해 공적 제자도를 이 세상에 실천하는 존재다(229쪽). 하나님의 영은 단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종교적 열망이 아니라, 창조 활동 속에서 역사하는 초월자요 타자다(420쪽).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인 교회는 세포처럼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이 세상에서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학적 실체다(487쪽).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공적으로 증언하고,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으로 억눌린 자들을 공적으로 회복시킨다(559쪽).

4. 독자의 취향
이 책은 평소 신학에 관심이 있거나 티슬턴 마니아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책이지만, 그 외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지루한 책이다. 교과서가 재미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업 교재가 아닌 이상 독자들은 이 책을 굳이 돈 주고 살 이유가 있는지 꼼꼼히 따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독자에게 이 책이 필요할까?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그 어떤 조직신학 책보다 영국 신학자들을 풍성하게 소개한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조직신학 책은 미국에서 나온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의 접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용성과 분량 면에서도 미국에서 사용된 조직신학 책들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인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새물결플러스)이 소개되고, 네덜란드의 개혁파 신학자인 바빙크와 판 헨더렌, 펠레마의 책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영국의 조직신학은 소개가 되질 않았다. 티슬턴의 《조직신학》에는 리처드 스윈번이나 존 힉과 같은 영국의 종교철학자부터 C. K. 배러트나 톰 라이트, 제임스 던과  같은 성서신학자 그리고 새라 코클리나 올리버 오도노반과 같은 학자들의 이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따라서 영국 특유의 신학적 학풍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대상은 바로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특별히 성서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추천하고 싶다. 이미 티슬턴이 훌륭한 성서신학자라는 사실은 잘 알겠지만, 그가 조직신학자로도 얼마나 성공적인 작업을 수행했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 하나를 가지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성서학자들은 티슬턴의 논의를 통해 자신들의 해석이 어떤 교의학적 결과를 가져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건방지게 한마디만 하자면) 신학기 교재로 이 책을 사용한다면,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성경해석학을 공부할 때마다 철학자들의 어려운 개념들 때문에 직접 가다머나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뒤적거렸던 독자들은 이제 티슬턴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런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또한 조직신학을 공부하려면 철학적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선뜻 철학 공부를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독자들도 티슬턴의 책을 통해 진정한 학제 간 연구의 깊은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내에도 티슬턴의 주요 저작들이 대부분 소개됐으니 본격적으로 그의 신학을 연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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