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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적인가, 친구인가?
[신학서 읽는 네 가지 시선] 맥스 스택하우스의 《세계화와 은총》(북코리아, 2013)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3:07:26 최경환 goscon@goscon.co.kr

1. 저자의 관심
요즘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기독교의 복음이 개인적이고 영적인 수준에 머무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면서 복음은 본래 공적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 이후 해방신학, 정치신학,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한때 유행을 하더니, 이제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분위기다. 아직까지는 그 정체가 모호하지만 이제는 그 필요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 그런데 책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이런 비평가들의 지적, 그리고 더 나가서 세계화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한 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경환

국내에 공공신학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맥스 L.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의 책들이 소개되면서부터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6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이자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공공신학의 대부이다. 생애 동안 25권의 책을 썼고, 미국신학회와 기독교윤리학회를 이끌었으며, 대표적인 기독교 잡지인 〈크리스천 센추리(Christian Century)〉의 편집자로서 많은 글을 썼다. 국내에는 오래전에 그의 대표작인 《대중신학과 정치경제학》(로고스, 1991)이 소개된 바 있고, 국내 학자들이 그의 신학을 소개한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북코리아, 2007)가 있다.

1991년에 스택하우스는 데니스 P. 맥캔(Dennis P. McCann)과 함께 〈크리스천 센추리〉에 ‘후기 공산주의자 선언’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거기서 그는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공공신학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복잡한 경제 문제를 전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윤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기독교가 더 이상 퇴행적이거나 사적인 신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영역에서 ‘거룩한 소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그는 개혁신학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기독교 사회윤리의 전통을 흡수하고 언약신학에 근거한 공공신학을 구축한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공공신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는 2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하나님과 세계화’(God and Globalization) 공동 연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총 3권의 책을 편집했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책 《세계화와 은총》을 통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다.

스택하우스는 기독교 윤리가 보편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이다. 공공신학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내용을 그 특징으로 하므로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복음을 보편적인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대중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변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사회학과 경제학, 법학, 정치학에 두루 관심을 두고서 간 학문적인 신학을 추구하고 일반 학문과 소통 가능한 신학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오늘날 공공신학에 기여한 것은 신학의 내용보다 학문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2. 편집자의 선택
그동안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회자됐지만 정작 공공신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소개해준 책은 없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신학의 성격과 규정에 대한 논란이 많다고 하니 교과서적인 책이 나오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실제로 공공신학의 발생 배경과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담은 책이 많지 않고, 내용에도 실천적인 성격이 강해 한국적인 맥락과 약간 동떨어진 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영미권에서 대표적인 공공신학 소개서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상훈 교수 역시 스택하우스에게 직접 사사한 제자라서 더욱 신뢰가 간다.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이 책은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1-3부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서 공공신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특별히 3부 ‘연구방법론: 공공신학’은 스택하우스의 중요한 논지가 담긴 이 책의 핵심이다. 최근 공공신학의 연구 동향과 흐름이 잘 소개되어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공공신학 소개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4-6부까지는 ‘창조’ ‘섭리’ ‘구원’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공신학의 성서적·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후예답게 기독교 세계관과 언약신학에 근거해 공공신학의 토대를 제시한다. 마치 머릿속에 담겨 있는 내용을 단번에 풀어낸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 책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세계관 공부를 오늘날의 신학적 트렌드와 세계화 맥락을 연결해 공부하고픈 독자에게는 의외로 귀한 통찰을 줄 것이다. 전반부 내용은 그동안 스택하우스가 여러 학술지에 기고했던 글을 정리한 것이라면, 후반부 내용은 자신의 신학을 총정리하는 심정으로 기술한 것 같다.

3. 비평가의 시선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처음에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읽었다. 그동안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만을 주로 접하다가, 반대로 세계화와 신앙의 상호작용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책을 접하니 왠지 찜찜했다. 세계화와 신학의 관계에 대한 책으로 널리 알려진 레베카 토드 피터스의 《좋은 세계화 나쁜 세계화》(새물결플러스)에서도 기존의 세계화 담론은 기독교가 저항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된다.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WCC)나 세계개혁교회협의회(WARC) 그리고 비판적인 신학자들은 대부분 세계화로 인한 폐해와 폭력적인 착취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런 맥락에서 장윤재 교수는 친기업적이고 신자유주의를 은근히 옹호하는 스택하우스를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기업의 신학으로서의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수많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사회적 계층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엄중한 세계에 대해 그의 인식은 불철저하다.
- 《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99-100쪽.

그런데 책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이런 비평가들의 지적, 그리고 더 나가서 세계화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한 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미로슬라브 볼프는 《인간의 번영》(IVP)에서 세계화를 기독교 신앙의 동반자로 묘사했다. 마찬가지로 스택하우스도 세계화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적 시각이나 흑백논리를 지양하고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고 제안한다. 근대화를 해석하는 관점에도 여러 가지가 있듯 세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나 해석도 하나일 필요가 없다. 스택하우스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세계화를 단지 경제적 효과로만 환원해서 설명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계화를 떠올릴 때 대부분의 이미지는 억압과 착취, 부자와 가난한 자, 자본과 기업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세계화는 이런 경제적 이미지로 모두 포괄될 수 없는 훨씬 영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이 있다는 게 스택하우스의 주장이다.

물론 스택하우스는 세계화에 문제가 많고 이것이 제국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화로부터 기독교가 분리되고 하나님의 의지가 세계화의 과정에서 뒤로 후퇴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그는 최근 미국 경영대학원의 교과 과정에서 윤리학이 빠졌는데,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의 일부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세계화의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꾸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공공신학의 책임 있는 소명이라고 말한다. 세계화에 기독교의 핵심적인 원리를 반영하자는 것이다. 기독교는 “특정 문화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어떤 에토스를 형성하고 독특한 공적 제도들을 육성하는 사회윤리를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38쪽). 자본주의, 기술문명,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개념의 근원적인 밑바탕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기에, 세계화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그 속에 내재된 기독교의 뿌리와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잘 선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스택하우스는 해방신학과 정치신학이 그동안 실제적인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고,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것처럼 과연 공공신학이 세계화를 잘 선용해서 민중 해방을 이뤄내고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공공신학은 해방신학의 의제를 끌어안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제국의 신학으로 전락할 위험에 늘 노출될 것이다.

4. 독자의 취향
책을 읽을 때, 저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주변 지인들의 추천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런 선입견이 독서를 방해하기도 한다. 저자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접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 독서의 즐거움일 테다. 스택하우스가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이고, ‘카이퍼 센터’의 초대 원장이니 전통 개혁파 신학에만 충실한 신학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다양한 신학의 자료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미국의 원조 사회복음주의자라 할 수 있는 월터 라우쉔부쉬로부터 시작해서 가톨릭교회의 사회윤리, 현대 복음주의 신학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늘날 현대신학의 논의를 수용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공공신학이 좋은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좋은 책이나 글이 있으면 남들에게 알려주거나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너무 좋은 책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괜히 아쉽거나 속상할 때도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물론 스택하우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그를 알고 있더라도 그의 주저가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결국 책은 누군가에 의해 소개되고 눈에 띄어야 한다. 발견되어야 한다. 자, 다들 맥스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 결정판인 이 책을 주목하기 바란다!

■ 후기: 이 글을 쓰고 뒤늦게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해 보니 ‘절판’으로 나온다. 좋은 책을 소개했는데 정작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다고 하니 약간 자괴감이 든다. 국내 학술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짠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출판사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나 같은 사람이 좋은 책을 열심히 소개하고,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책을 찾는다면 다시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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