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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논쟁, 식힐 것인가 데울 것인가?
[340호 신학서 읽는 네 가지 시선] 데이비드 노글의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CUP, 2018)
[340호] 2019년 02월 28일 (목) 14:33:22 최경환 goscon@goscon.co.kr
   
 

1. 저자의 관심
저자인 데이비드 노글의 반려견 이름은 ‘카이퍼’(Kuyper)다. 네덜란드의 신칼빈주의 신학자로 잘 알려진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노글의 열정을 볼 수 있는 한 부분이다. 그는 세대주의 신학으로 잘 알려진 달라스 신학교에서 ‘C. H. 다드의 실현된 종말론에 대한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자신은 더 이상 세대주의자가 아니라 개혁파 신학과 언약신학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는 자신이 신칼빈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칼빈주의 5대 교리보다는 알미니안의 신학을 따른다고 말한다. 생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가 세계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에게 《창조, 타락, 구속》(IVP)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알버트 월터스 때문이다. 노글은 월터스가 세계관의 개념사에 대해 쓴 아티클을 읽고서 자료를 넘겨받아 그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1998년에 텍사스 대학교에서 600쪽이 넘는 방대한 학위 논문을 쓴다. 이 논문을 토대로 2002년에 《Worldview: The History of a Concept》를 쓰고, 이 책은 다음 해에 〈Christianity Today〉 신학과 윤리 분야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 책의 저술 동기를, 그동안 복음주의 개신교에서 세계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그 의미와 개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나아가 단순히 성경적인 세계관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안목과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기독교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와 학생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좋은 안내자다. 

2. 편집자의 선택
1919년 유럽에서는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가 자유주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었다면, 한국 복음주의에서는 2002년 2월 〈복음과상황〉에 실린 박총의 글 “기독교 세계관 확 뜯어고쳐라”가 그 역할을 했다. 그 글이 기폭제가 되어 이후에 수많은 논객들이 세계관 논쟁에 뛰어들었다. 〈복음과상황〉은 연속해서 세계관 논쟁을 중요하게 다뤘고, 그 열기는 한동안 지속됐다. 그때 논쟁은 내용상으로도 훌륭했지만 어쩌면 한국 복음주의 담론에 새로운 계기를 만든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전에는 기독교 신학의 지적 담론과 생태계는 대학교수들이 만들어 내는 줄 알았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가장 최신의 이론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세계관 논쟁이 시작되고 보니,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재야의 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글의 내용과 스타일도 신선했다.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된 논객들이 세계관 운동의 폐부를 찔렀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뜨거웠다.)

세계관 관련 책들은 그 이후에도 꾸준하게 출판되고 논의도 더욱 다양하게 전개됐다. 아나뱁티스트 신학자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한 세계관 논의도 소개됐다. 성서 내러티브를 통해 세계관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세계관은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 여전히 인기 있는 주제이고 꾸준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중요한 책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는데, 바로 데이비드 노글의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이다.

이 책은 근대 이후로 신학,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발전했는지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전개 방식이 독특한데, 먼저 1장과 2장에서는 개신교 복음주의권 세계관 논의와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세계관 논의를 다룬다. 그런 다음 3장부터 8장까지는 시간을 거슬러 이들이 사용했던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처음 발흥했던 곳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임마누엘 칸트로부터 시작해 헤겔과 딜타이, 니체를 거쳐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푸코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세계관 논의를 심도 있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9장부터 11장까지는 앞에서 다룬 논의를 정리하면서 저자의 신학 관점을 듬뿍 쏟아낸 총평을 기술한다.

전문 철학 개념들이 많이 등장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을 정확하고 유려한 문체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번역 덕분이다. 게다가 기독교 세계관을 보급하고 확산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온 출판사의 노력이 노글의 책을 통해 열매를 맺은 것 같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3. 비평가의 시선
노글은 칸트 이후로 여러 철학자들이 세계관을 어떤 방식으로 개념화했는지를 성실하게 소개한다. 헤겔, 키에르케고어, 딜타이, 니체에게서 적절하게 세계관의 개념을 뽑아내고, 그것이 어떻게 기독교와 만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 모든 인간은 사물을 비스듬히”(207쪽) 바라보기 때문에 비판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교조주의와 회의주의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별히 딜타이와 하이데거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인 통찰력을 많이 제공한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 이후 ‘주체’와 ‘객체’를 구분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존재와의 만남을 방해했다고 말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근대적 관계는 그 결정적 발전에 있어서 세계관의 대결이 되고 만다.”(260쪽) 기독교 세계관이 만약 이런 근대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면, 이원론적 관점을 수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피조물을 공격적이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피조물의 성례전적 성격과 선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간과하게 만든다(265쪽). 노글은 근대성을 비판한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논의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들의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기독교와의 접촉점을 만들려는 노력이 곳곳에 드러난다.

흔히 세계관을 설명할 때, 안경에 비유하곤 한다.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안경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감각이나 인지 능력을 무시하고 ‘시각’에만 의존해서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은 다분히 근대적인 접근 방식이다. 우주를 탈신성화하고 인간 중심적인 시각으로 실재를 바라보는 인식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글은 세계관의 개념사를 설명하면서 오히려 탈근대적인 설명에 무게 중심을 둔다. 특별히 저자의 관점이 강하게 드러나는 9장 ‘세계관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서는 근대적 혹은 포스트모던적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442쪽). 세계관을 형성하는 자리는 인간의 ‘마음’이고, 그 마음은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양육 받는다. 세계관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의 관계 혹은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전망을 획득한다. 따라서 그 마음은 속성상 다층적이고 삶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층위에서 작동한다(462-463쪽). 마음의 본성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움직이는 일련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며, 그 이야기의 물길을 따라 이성이 흐른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형성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잘 패인 생각의 홈”을 형성한다(548쪽). 세계관에 대한 노글의 통찰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보통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창조, 타락, 구속의 선형적 구도를 말한다. 노글이 타락을 어떻게 언급하는지 궁금했는데, 아뿔싸! 여기서 노글은 ‘세계관 전쟁’을 언급한다. 죄와 영적 전쟁이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다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주의, 세속적 인본주의, 실존주의, 허무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자연주의 세계관”을 위험한 급류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범신론과 만유재신론 사상이 역시 많은 이들이 탄 배를 전복”시킨다고 말한다(478-479쪽).

이렇게 이원론적으로 ‘기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해서 설명하면, 앞에서 열심히 소개하고 분석했던 철학자들의 ‘세계관’ 개념이 도루묵이 되고 만다.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그들’을 경계의 눈빛으로 봐야만 할까? 현대 이념과 사상 속에 담긴 타락의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쌍심지를 켜기보다는, 내 안에 숨겨진 탐욕과 죄를 발견하고, 타자 안에 감추어진 선한 의지를 발견하는 것이 오히려 더 기독교 세계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4. 독자의 취향
최근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성민의 《세계관적 설교》(성서유니온, 2018)와 양희송의 《세계관 수업》(복있는사람, 2018)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20년 전 치열했던 논쟁의 결과물이 하나씩 소개되고 있는 듯하다. 혹시 지난 논의가 궁금한 독자는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면 그 옛날 전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확실한 흔적은 물론 2002년 어간에 출간된 〈복음과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는 세계관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대철학의 산물이고, 특별히 명제적인 방식으로 정형화된 기독교 세계관이야말로 가장 근대적인 가치를 반영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노글의 책으로 인해 그런 비판은 처음부터 다시 논쟁에 붙일 수 있게 됐다. 그는 그동안 기독교 신학자들이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상사적으로 치밀하게 소개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옹호하는 진영이나 이를 비판하는 진영에게도 좋은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다시, 본격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논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마련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체성과 개념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이론적인 논쟁은 그만하고 이제는 실천을 하자는 목소리도 잘 경청해야 하지만, 더욱더 가열차게 담론 투쟁은 이어져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또 다른 실천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 이후 세계관을 둘러싼 철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의 생각과 영향사를 배우고 익히기 좋은 교과서다. 제임스 사이어는 《코끼리 이름 짓기》(IVP, 2007)에서 이 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분량이 부담스러운 독자는 사이어의 책을 먼저 읽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때 그 시절 〈복음과상황〉의 세계관 논쟁을 통해 젊은 논객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듯, 이 책을 통해서도 새로운 논객들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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