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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불이익 원천을 먼저 보라
[342호 평화를 읽다]
[342호] 2019년 04월 29일 (월) 14:02:02 윤환철 goscon@goscon.co.kr

평양의 말글살이
자기들도 열심히 딜을 하다가 그 딜을 만들어준 남쪽에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건 무슨 경우인가. 그러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 “실천적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은 또 뭔가.

알아서 해석해주길 바라는 속셈은 읽힌다. 움직임을 이르는 말만 골라놓으면 ‘… 되라’ ‘옹호(하라)…’ ‘실천적 행동…’  ‘… 용단을 내려’ 달라니, 이건 뭔가 부탁하는 판이다. 그러면서 짐짓 남쪽에 일침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지랖’에 대해 못 들은 척한 것은, 그걸 거창하게 ‘노 딜’을 안아 온 수령의 면을 좀 세워보려는 내부용 포장지로 간파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이쪽이 알아서 속내를 파악해준다고 해도 평양이 말과 글 버릇을 안 고쳐도 되는 건 아니다. 이전 정권까지 쓰던 ‘역적 패당’이나, ‘잠자코 앉아 뒈질 날이나 기다리’라는 유의 거친 언사를 멈춘 것은 진전된 태도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북측이 국제사회에서 ‘존엄’을 인정받으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알아서 속내를 짚어주는 분석가들보다 자유주의 세계의 주권자인 대중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말과 글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오랜 적대 관계와 극렬한 군사적 대결에서 나온 거친 언사들은 혐오를 생산해 내고, 그걸 부추기는 정치꾼들이 득실거리는 기형적 정치가 고통의 시간을 길게 늘이고 있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 어긋난 말 한마디가 대통령 임기 단위로 세월을 날려 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쪽의 고통이 더 크고 길어질 수 있다.

‘노 딜’ 뿐인 ‘바텀’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자인 남·북·미 모두 지금의 국면이 상의 하달식(‘톱다운’top-down) 구도라는 판단에 일치하고,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 않는다. 통상 하위 관료들 간의 실무회의로부터 합의 구도가 짜여 단계적으로 정상 간의 합의까지 도달하는 국제관계, 이른바 ‘바텀 업’ 경로가 일반적이고 안정적이지만, 그러한 방식이 오랜 세월 실패해 왔다는 인식,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배경과 정권의 성격이 이 국면을 톱 다운 구도로 규정짓는 것으로 보인다. ‘바텀’이 없는 것 같은 북한 정권의 기본 구조나 치명적 안보 문제인 핵 무력이라는 의제도 톱다운에 묶어두는 이유 같지만, 2003~2007년까지 있었던 6자회담이 2급 관료인 국장급에서 실장, 차관, 장관, 정상에 이르는 바텀 업 구도를 가졌던 역사는 의제나 북한 정권의 성격보다는 미국의 정권과 경험이 핵심 변수임을 알려준다.

미국 발 톱다운 접근은 남·북·미 모두에게, 어쩌면 전 세계에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르내리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 롤러코스터 정세는 북·미 간 진전이라는 본질과는 별도로 미국과 한국의 관료, 정파, 언론들이 자기들의 성격과 입장을 토설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가 2017년 9월 제72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totally destroy)할 수 있다고 위협하여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자, “워싱턴포스트(WP)는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김 위원장을 대상으로 했다면 ‘완전 파괴’ 는 북한 정권과 2,500만 명의 주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가장 많이 나간 표현”이라며 우려했고, 주요 싱크탱크와 관료들은 원래 갖고 있었던 정책이라며 발언의 충격을 애써 외면했다. 불과 1년 후인 2018년 9월 제73차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표하며 6월 싱가포르 회담과 성과를 자랑했다. 2019년 2월 하노이의 ‘노 딜’까지 북미 관계는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미국의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은 부정적 입장이 절대다수였다. 트럼프가 중간선거의 목표를 공화당 장악에 둘 만큼 민주, 공화 할 것 없이 주류 정치인들로부터 미움받는 현실과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과의 정상회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현실이 겹쳐 있었다.

   
▲ 백악관 기념품점이 발매한 싱가포르 회담 기념주화, 뒷면 둘레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화와 번영, 한반도 통일을 위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다(S. Korea President Moon Jae-in & N Korea Leader Kim Jung-Un signed the Panmunjeom Declaration for Peace Prosperity &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pril 27th, 2018.)’라고 새겨져 있다. www.whitehousegiftshop.com


‘비관적 현상 유지’라는 덫
소수의 양심적 기고가와 정치인들은 트럼프는 밉지만, 그가 도전하는 역사적 혁신까지 반대해서는 안 된다며 ‘전향’을 하고 있지만, 주류 언론, 학자, 관료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알려진 미사일 기지 등을 새로 발견한 것인 양 호도하며 관계의 진전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를 보여왔다. 코언 청문회 등 국내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에게는 북미 회담에서 뭔가 성과를 가져가야 했는데 공화·민주 양 당과 언론이 한목소리로  ‘노 딜’을 ‘성과’로 인정했고, 노 딜의 반대편엔 ‘배드 딜’만 있다는 분위기였다. ‘빅 딜’은 어디 갔을까? 그런 딜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도 이 점을 알고 있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핵무기를 해체하는데도 십수 년이 걸린다는 걸 미국 최고의 핵 전문가 시그프리트 해커(Siegfried S. Hecker) 박사가 알려줬다. 그런 판에 무엇을 한 판으로 해결한다는 말인가. 그건 오바마 때의 ‘전략적 인내’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자”의 참신한 표현에 불과하다.

트럼프식 롤러코스터는 미국의 ‘바텀’들이 대북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도, 어떠한 협상도 싫어한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필자가 미국의 유학생 집회에서 북한을 상대해서 협상하고 평화를 얻어내야 한다는 취지로 강연했을 때, 클래스마다 두어 명의 학생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나름 한반도 문제에 도움이 되고자 유학길에 나섰지만, 미국의 정치학 교수들 머릿속에는 현상 유지만 있다고 했다. 미국이 세계의 단극 정상인 현재가 가장 좋고, 북한 같은 세계의 비난을 받는 적이 있어서 아시아에서 일정한 지위를 누리는 상황을 지속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거기서 논문을 쓰는 것은 한반도에 영원한 고통이 지속하리라는 절망을 확인하는 작업일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들을 빼먹거나 자기 논리에 두들겨 맞추는 반 학문적 요소들도 필수였다. 간혹 한두 사람이 나름 힌트를 얻어 좋은 논문을 완성했다며 찾아올 땐 기쁨도 있었다. (이것만 생각하면 나는 1인당 3백만 원쯤 지출을 한 셈이었다.)

이미 한국의 정치권과 학계에는 그렇게 미국 주류의 세례를 받고 들어온 브레인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강대국의 논리에 충실하면서, 정작 북한에 관한 연구 경험이나 적대 관계의 해소와 군축에 대한 지식은 대단히 빈약한데도 남북 관계를 좌지우지할 지위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집권세력의 권력 강화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권 기간은 강경한 태도로 북을 자극하다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별안간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널뛰기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민족의 리익’을 원한다면
집단의 이익은 대부분이 구성원의 합의로 형성되지만, 합의에는 깊은 숙고가 동반돼야 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사회 문제의 절반쯤은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약점이 많아 금과옥조로 삼을 것은 못 된다. 이 사상의 근본 문제는 다수의 사람으로 이뤄진 집단의 욕구를 한 가지, 즉 무한한 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한한 축적을 위해 소수의 요구는 그것이 매우 절박한 필요일지라도 무시될 수 있다는 통념을 형성한다.

글 쓰는 오늘은 세월호 5주기다. 긴박한 재난의 국면에서 주류 언론들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할퀴듯 내뱉은 말들이 ‘비용’ ‘보상금’ ‘혜택’이었다. 이는 어떠한 ‘통념’에 아부하면서, 사고를 모면한 다수들에게 최소 비용으로 소수의 희생을 무마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숙고 없는 합의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무서운 통념은 북한의 이념과 체제에도 깃들어 있고, 집단의 욕망 체계를 1인화 한다는 면에서는 남한보다 더 철저하게 공리주의를 신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체제는 아직 그렇게 깊은 논의를 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민족의 불이익’을 찾아 제거해야 할 국면이고, 소소한 것들은 이미 경험하고 있다. DMZ에서 총을 내리자 긴장과 사고가 줄어들고 생명권에서 재산권에 이르기까지 접경지대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 서로 지나친 적대 관계와 그것을 전제로 한 군사적 대치가 명백한 불이익이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로 규정될 만큼 군사력의 상수인 미국의 조야에 ‘노 딜’밖에 없다는 사실이 또한 불이익의 원천이다. 지난 4월 11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버니 샌더스가 포함된 민주당 내 진보적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진보코커스(CPC)’의 제1 부의장을 맡고 있는 로 칸나 의원(Ro Khanna, 실리콘 밸리, 인도계)이 한국의 남북 경협 추진 노력에 대한 미 정부의 지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낸 것은 이러한 원천이 변화될 수 있다는 하나의 조짐이다. 칸나 의원이 현실적 접근법으로 과거 클린턴 정부의 ‘페리 프로세스’를 주장했는데 이는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특보가 만든 정책이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자신들의 ‘이익’이라고 판단하게 만들려면 미국 대중을 움직여야 한다.

미국뿐 아니라 남한의 냉전 유지 세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견을 가진 이들을 없애버리는 것 또한 집단 이익과 거리가 멀다. 평화는 끊임없는 설득이다. 배제하려는 자들조차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자들의 숙명이다.

남북 당국은 미국의 논리든 힘의 논리든, 반평화의 논리에 찌든 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언젠가 민족의 이익을 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절망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 평양의 자극적이고 무례한 언사는 그 절망을 확신하게 만들고 반평화적 권력의 기반이 되라고 부추기는 셈이다. 안팎의 상황이 지금까지 그런 불이익을 자초하게 했다면 이제는 버려야 한다. 따로 비용 드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칭찬하고 미담과 덕담을 나눠야 한다. 트럼프식의 미끌미끌한 협상용 상찬은 비위가 안 맞지만 우리는 우리 말과 멋스러운 표현법을 풍부하게 갖고 있지 않은가.

 

윤환철
시민사회운동가이다. <복음과상황>, 남북나눔운동, 한반도평화연구원(KPI)에서 일했다. 북한과 경제협력,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실무차 평양, 신의주, 개성 등지를 왕래했다. 성공회대에서 NGO를, 연세대에서 통일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으로 탈북민 장학, 취업 창업 지원과 대북인도적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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