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우종학 교수의 과신문답]

 

창조와 진화를 대립 개념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창조란 즉각적이고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신학 분야 교수님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제가 자주 받는 질문을 꺼내 놓았습니다.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은 뭘 하셨나요?” 그랬더니 모두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뭘 하긴 뭘 해요. 진화를 사용하셨지요.”

창조·진화에 관한 오해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무신론), ‘신이 존재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신론), ‘신이 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창조과학)과 다르게 기독교 유신론은 신의 창조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진화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이 직접 만들어야 진짜 창조라는 ‘신학적 오해’ 때문입니다. 둘째,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듯 느껴지는 ‘심리적 장벽’ 때문입니다.

우선, 신의 창조 방법을 두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에서 유로 만들어야 신의 창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제빵사가 오븐에 구워 빵을 만들었습니다. 오븐이 빵을 만든 걸까요? 아니면 제빵사가 빵을 만든 걸까요? 오븐은 도구일 뿐입니다. 제빵사가 오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지나칩니다. 오븐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야 진정한 빵 만들기일까요? 심지어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무에서 빵을 만들어내야 제빵이라고 주장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창조도 비슷합니다.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과학적 발견은 인간의 출현 과정을 밝힐 뿐입니다. 진화를 신이 사용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과학으로 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에게 진화는 오븐 같은 도구일 뿐입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이 밝혀졌으니 창조된 게 아니라는 주장은,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과정이 밝혀졌으니 제빵사는 필요 없다는 주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진화는 무신론의 근거가 아니며, 인간이 뚝딱 만들어져야만 신의 창조라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습니다.

무에서 유로의 창조나 즉각적 창조처럼 창조 방법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없다고 오해합니다. 뭔가 신비하고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방법으로 창조되어야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오해는 많은 경우 심리적 거부감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같게 되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창조 방법에 따라 영적 지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창조의 방법이 창조물의 지위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즉각적으로 창조되면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되고, 진화의 과정을 거쳐 창조되면 존엄성이 없는 걸까요? 오븐에서 구워진 빵은 밀가루가 순식간에 변해서 기적으로 만들어진 빵에 비해 질이 낮거나 맛이 없는 빵일까요? 인간의 존엄성은 창조의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만일 인간을 기적적으로 창조해야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갖지 못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븐에 구워 빵을 만들듯, 우리는 자궁에서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고 단세포가 세포분열을 하는 자연적 과정을 거쳐 탄생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빵이 오븐에 구워졌다면 진정한 빵이 아니라는 주장과 별 다르지 않으며, 자궁에서 세포분열을 거쳐 태아가 되어 출생한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과 같습니다. 오븐에서 화학적 과정을 거쳤든, 자궁에서 세포분열을 거쳤든, 자연선택과 유전자 변이로 진화과정을 거쳤든, 그 방법에 따라 창조물의 영적 지위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창조의 방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아담이 진화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기적적인 방법으로 창조된 아담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되고, 단세포에서 세포분열을 거쳐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갖지 못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일단 아담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창조되면 그 후손인 우리는 기적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연적 과정을 거쳐 창조되어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있다는 걸까요? 어느 쪽이 되었든 이는 아담과 우리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셈입니다.

혹은 아담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유전자’를 우리가 물려받았으니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라는 걸까요? 하나님의 형상은 그런 생물학적 방법으로 유전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그도 아니면, 하나님이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셨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아담을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하신 후에 영적이고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삼으셨다는 얘기와 결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창조의 방법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이 결정된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제한하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형상이 주어진 것일까
그래도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인간이 진화했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언제 인간에게 주신 걸까요? 긴 시간의 진화 과정으로 인간이 출현했다면 언제부터 인간이 된 걸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서도 역시 우리 자신이 창조된 과정을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로부터 나온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단세포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DNA 정보에 따라 단세포가 2개, 4개, 8개, 16개, 32개로 점점 분열합니다. 심장과 허파가 만들어지고 팔다리가 생기고, 10개월쯤 되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로 태어납니다. 이 과정 중에 도대체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신 걸까요? 이 과정 중 여러분은 어느 시점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되었나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인가요? 착상 후 2주가 지난 시점일까요? 심장이 뛰기 시작한 시점일까요? 아기로 태어나는 출생의 시점? 오븐에서 구워지는 빵은 언제부터 빵의 지위를 갖게 되는 걸까요?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생명이며 언제부터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피임, 인공수정, 배아 실험, 낙태 등 다양한 이슈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뚜렷하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수정에서 출산까지 그 모든 과정을 과학으로 면밀히 들여다봐도 하나님의 형상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생물학적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라, 신 앞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은, 언제 하나님의 형상이 부여되었는지 대답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진화는 창조주의 도구일 뿐
인류의 창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만 년 전에 진화해서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는 인류가 창조된 생물학적 과정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서는 신의 창조는 여전히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인간이었는지, 어느 시점에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되었는지 답하기 어렵듯이, 진화로 창조된 인류가 어느 시점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되었는지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때문에 이미 알려진 내용까지 함께 폐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화의 과정에 관해 과학과 신학으로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알려진 진화의 역사를 통째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빵사가 오븐에 구워 빵을 만들 듯, 하나님은 단세포에서 복잡한 생명체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생명으로 만드셨고, 수십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류를 창조하셨습니다. 오븐이 제빵사의 도구이듯, 세포분열이나 진화는 창조주의 도구일 뿐입니다.

오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빵은 맛있게 구워져 나왔습니다. 단세포에서 아기로 출생하는 과정 중에 언제 하나님의 형상이 부여되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인류의 진화 과정을 구구단처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진화를 사용하여 인류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에 대한 믿음입니다.

 

 

■ 더 읽기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리처드 마우·제임스 스미스 외 지음 / 안시열 옮김 / IVP 펴냄
진화와 창조에 관한 기독 지성인들의 이해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창조 아니면 진화’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거부하고 진화 과학과 신앙의 통합을 제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며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등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대중을 위한 과학 강연과 저술에도 적극적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새롭게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블로그 ‘별아저씨의 집’을 운영 중이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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