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에디터가 고른 책]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지음 / 김영사 펴냄 / 44,000원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지음 / 김영사 펴냄 / 44,000원

18세기 서학과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조선사회의 지축을 뒤흔들었는지 담아낸 역사서. 치밀한 연구로 서학과 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그려낸다.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의 ‘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뜻한다. 이 역시 한국 기독교의 역사임에도 현실에서는 “성당”에 가느냐, “교회”에 가느냐는 질문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곤 하니, 천주교의 역사를 다룬 이 책에 ‘한국 교회사’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찍이 한국 개신교 역사를 쓴 학자들은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매우 비중 있게 다뤘다. 특별히 한국 개신교 역사의 교과서라 할 만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 1》(1989)은 전체 분량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70쪽가량을 천주교의 전래와 수난 역사로 채웠다. 이를 쓴 한국기독교사연구회는 “천주교회사와 개신교회사를 단절이 아닌 대화와 연결”(12쪽)로 보고, “천주교회의 수난과 발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개신교 선교가 이루어졌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21쪽)고 밝혔다. 그럼에도 30여 년이 흐른 지금, 두 교회의 연결점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부제의 ‘교회’를 연결고리 삼아 이 책을 펼쳤다. 8백여 쪽의 분량이 부담돼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가며 읽다가 사료 비평을 다룬 마지막 챕터에서 뜻밖의 내용을 발견했다. 초기 천주교회의 성전(聖典)으로 여겨지던 이승훈의 문집 《만천유고》가 20세기 초반에 짜깁기된 가짜라는 주장. 그 안에 수록된 이벽의 《성교요지》 역시 가짜라는 것. 저자는 이에 대한 차고 넘치는 근거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2014)를 인용하는데, 이를 쓴 윤민구 신부는 《성교요지》가 개신교 성경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초를 발견했다. 거짓을 밝혀내는 데는 개신교 연구자들(김현우·김석주)이 2019년에 발표한 논문이 “결정적 한 방”이었다. 이 논문은 불후의 명저 《성교요지》가 이벽이 지은 것이 아니라, 중국 선교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미국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 목사가 만든 책을 주석까지 통째로 베꼈음을 밝혀냈다.

그러자 이제는 마틴 목사가 이벽의 저술을 베낀 거라는 해괴한 주장이 가톨릭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디에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잘못 기록된 역사를 고쳐 쓰기 위해서라도 두 교회의 대화와 연결이 시급하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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