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에디터가 고른 책]
책을 한 페이지 넘기자마자 웃음이 픽 나왔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드라마 보기’라는 말을 들으면 눈빛이 흔들리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국내 드라마에 대한 (주로 신데렐라형 로맨스를 다룬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 꽤 달라졌다. 유튜브 클립 영상을 통해서라도 ‘핫한’ 드라마는 보려고 노력하고, 챙겨보는 드라마도 생겼다. 이러한 변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준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본지에 오랫동안 글을 써온 저자는 마지막 연재 ‘편애하는 리뷰’에서 다양한 국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평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드라마는 물론 드라마 비평에 재미를 느꼈다. 글과 영화도 그렇지만 드라마가 동시대적인 이슈들을 적극적이고 반향 있게 다룰 수 있는 텍스트임을 알게 됐다.
그런 저자가 펴낸 첫 단독 저서가 이 책이다. 드라마 속 대사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는데, 한 편 한 편이 짧아 마치 드라마를 보고 쓴 하루치 일기 같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 〈비밀의 숲〉 〈옷소매 붉은 끝동〉 〈시멘틱 에러〉 〈눈이 부시게〉라는 거울에 비추어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 불의한 권력, 여성들의 연대, 성소수자 이슈, 늙음·질병·장애 문제를 읽어낸다. 그렇다고 웰메이드 드라마만 조명한 책은 아니다. ‘정상가족’ 중심의 전형성을 가진 주말 드라마를 보고 가족 해체 등 사회 변화 흐름을 포착한다.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는 사회적 이유도 살핀다.
책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났다. 어린 시절 한 번이라도 스치듯 본 적 있는 드라마를 책 속에서 발견하고 나서다. 〈대장금〉(2003) 〈환상의 커플〉(2006)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추노〉(2010)…. ‘그때 그 시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