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호 커버스토리]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사회학자 장 지글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던지는 자문자답이다. 지구촌 인구의 두 배를 먹일 식량이 있음에도 연간 8억 5천만 명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역설의 현장들을 목격하며 ‘샬롬의 희망’을 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뿐이랴. 지난 1월에 나온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의 1%가 세계 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동교동삼거리에서” 참고).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깊어지는 세상에서 샬롬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다. 복음과상황(이하 ‘복상’) 2월호에 실린 이종록 한일장신대 교수의 진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건.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모든 것을 고르게 나누며 동고동락하(려)는 삶이 바로 샬롬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 해 벽두부터 샬롬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삶이 거기서 대단히 멀기 때문이다. …나중에 더 많이 나눌 수 있다는 미명하에 아직도 파이 키우기에 급급한다. 모두가 고르게 누리기보다는 극단적 경쟁을 통해 어느 한쪽으로 부를 편중시키면, 낙수 효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허황한 믿음을 강요하는 통에 경제적으로 허약한 자들은 지금, 질식하기 직전이다. 주님을 따른다는 자들도 실상은 홀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신흥 맘몬교도들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샬롬에서 점점 멀어진다.”

복상이 ‘샬롬의 적들’(2월호)에 이어, ‘샬롬을 위한 새로운 상상’으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을 떠올린 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 1인당 동등하게 지급되는 현금이나 현물, 서비스’를 말하는 개념으로, 자격 심사나 노동(직업) 여부를 따지지 않는 ‘무조건성’과 ‘보편성’이 핵심이다. ‘Basic Income’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경제학자 조지 콜(1889-1959)이 최초로 썼다는데, 1980년대에 국제적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강남훈 한신대 교수,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만들어져서 활동중이며 2012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17번째 회원단체가 되었다.

그러면 기본소득은 샬롬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두 편의 영상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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