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마틴 스코시즈의 〈사일런스〉(2016)

마틴 스코시즈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남자 사람’ 예수를 등장시킨 당대 최고의 문제작이었습니다. 1988년 제작되어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격렬한 반대로 2002년에야 정식으로 개봉했지요. 반면 그의 최근작 〈사일런스〉(2016)는 일본의 초기 천주교 박해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틴 스코시즈에게 지난 28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가 혹시 회심한 걸까요? 스코시즈는 〈사일런스〉가 자신에게 순례와도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답니다. 속죄와 구원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와 같다고도 했지요.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쿠의 1966년작 소설 《침묵》이 원작입니다.

침묵 끝에 들려온 음성, “배교하라!”
영화 〈사일런스〉는 예수회 소속 포르투갈 주교인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의 편지로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기독교 박해가 한창이던 1633년에 쓴 것으로, 신부들과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처형 소식이 담긴 편지였어요. 한편 다른 경로로 들어온 최근 소식은 바로 그 페레이라가 배교하고 일본인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페레이라의 제자였던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는 그를 직접 만나봐야겠다며 일본으로 떠납니다. 〈사일런스〉는 이들이 한때 ‘기리시탄’(기독교인)이었던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의 안내를 받아 일본 땅에 도착해서 겪는 박해와 신앙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신부는 묻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사흘 밤낮 매달려 파도에 깎이는 고통을 당할 때, 유황온천수에 살갗을 데일 때, 거꾸로 매달려 자신의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는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곱씹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고통의 현장에서 침묵하신 하나님에 대한 집요한 질문 끝에 영화는 ‘신은 침묵하지 않았다’고 답합니다. 함께 고통당하고 있었을 뿐. “어서 해라. 밟아도 괜찮다. 네 고통을 내가 잘 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졌다.” 긴 침묵을 깨고 배교 직전 들려온 음성은 모든 배교(背敎)가 다 배신(背神)은 아니라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쉽게 ‘버려질’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깊이의 선언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신정론을 둘러싼 영화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료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인물들의 태도와 심경의 변화는 단순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더군요. 영화 〈사일런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점, 즉 인간의 복잡함과 믿음의 역설에 대한 관찰이었습니다. 마침 최근 한 인터뷰에서 스코시즈가 이렇게 말했군요.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젊은 날 스코시즈는 신부가 되기 위해 예비신학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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