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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라다!"와 "이게 나라인가!"
[316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프랭크 카프라와 임순례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7:31:40 최은 영화연구가 goscon@goscon.co.kr
   
 

스미스 씨가 부패에 맞서는 법
프랭크 카프라의 1939년 영화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에는 얼떨결에 미국의 상원의원이 된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잭슨시의 상원의원이 사망해서 궐석이 생기자, 거부 짐 테일러(에드워드 아놀드)와 그가 후원하는 정치인 조셉 페인(클로드 레인스)은 자신들의 댐 건설 계획에 방해가 되지 않을 허수아비 의원 후보를 물색합니다. 그러다 발탁된 인물이 바로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제퍼슨 스미스(제임스 스튜어트)였지요.

미합중국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보이스카우트 특유의 애국심으로 무장한 스미스 씨는 하지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시골뜨기 ‘거수기’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조롱하는 기자들에 분노해서 그는 당장 아이들을 위한 캠핑장 건설 법안을 제출합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제안한 캠핑장 후보지는 페인과 테일러 일당이 미리 사들인 댐 건설 부지였습니다. 테일러에게 백악관행을 보장받고 이 일에 20년 정치 인생을 걸었던 페인에게는 비상사태였겠지요.

변호사 출신인 페인 의원에게는 언론인이었던 스미스의 아버지와 함께 젊은 날 정의를 위해 투신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부친의 친구이자 존경했던 정치인에 대한 스미스의 실망과 배신감이 대단했어요. 하지만 페인은 상원의원 자리에서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기 위해 타협을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늘리는 일에 자신이 얼마나 힘써왔는지 설파하면서요. “그렇게 나라는 만들어진 거야. 알겠나?”

반면 스미스에게 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져도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미스는 묻습니다. “간교한 사람들 앞에 모두가 굴복해버리면 나라는 누가 지키지요?” 페인의 모함에 빠진 스미스는 링컨 기념관에서 흐느끼다가 성구만큼 유명한 문장을 되새깁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서 산더스(진 아서)의 도움과 격려에 힘입어 스미스는 의회에서의 마지막 발언에 사력을 다합니다. 24시간 동안의 의사진행 지연(필리버스터)이었습니다.


지난해(2016년 2월) 대한민국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로 똘똘 뭉쳐 테러방지법 직권상정과 표결에 저항했을 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회자되곤 했지요. 프랭크 카프라는 가장 미국적인 이상을 창조해낸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부패에 맞서고 사회정화에 기여하는 소시민의 능력과 선한 의지를 신봉하는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물론 철저하게 위대한 미국, 즉 국가라는 조직과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했지요. 그가 이탈리아 태생 이민자인 점을 상기하면 요즘 같아선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헬조선의 외침, “나 오늘부터 국민 안 할래!”
프랭크 카프라가 비선 실세에 의한 정경유착을 끊어내고 부당한 댐 건설을 막기 위해 한 남자를 국회로 보냈다면, 임순례 감독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등쳐먹는 리조트 개발사업을 막기 위해 한 가족을 섬으로 보냅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2005) 이야기입니다. 2007년 일본에서 먼저 영화화한 이 작품을 임순례 감독이 동명 제작해서 2013년 2월에 개봉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찾아온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 아이를 둔 가장인 최해갑(김윤석)은 한때 학생운동가로 유명했던 영화감독입니다. 지문 날인에 반대하는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로 해외에서 수상했고, ‘최 게바라’로 불리며 팬클럽까지 거느린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국정원의 감시와 사찰의 대상입니다. 대대로 불순분자로 낙인찍힌 가문의 후손이면서 화려한 운동 전력과 불같은 성격으로 늘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지라, 여차하면 정치적으로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먹잇감이었거든요. 한편 해갑의 아내 안봉희(오연수)는 대학시절 별명이 ‘안다르크’였답니다. 

최해갑은 순박하고 반듯한 모범시민이면서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던 스미스 씨와는 출발점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을 내기 싫어서 “나 국민 안할래!” 선언하고, 전기요금을 거부하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체제 순응적인 국민을 양산하기 위한 의무교육 따위는 필요 없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학교 급식과 캠프 비용과 관련한 비리에 항의하느라 학교에 찾아가 자꾸 소란을 피웁니다. 초등학생 아들 딸은 아빠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마침내 서울에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오자 해갑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 동경하던 남쪽 섬으로 떠납니다. 세상 평화로운 들섬에서 이 가족은 이곳 출신 4선 국회의원 김하수(이도경)의 비리와 계략에 맞서는 더 큰 투쟁에 직면하게 됩니다.

원작에서 이치루의 고향 이리오모테는 오키나와의 한 섬이었습니다. 본토 일본과 언어와 습관이 다른 독립적인 왕국 ‘류큐’였던 오키나와의 역사가 언급이 되는데요. 오키나와는 한때 미국령으로 주어졌다가 1972년에야 반환되었고 지금도 미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시위가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이치루가 오키나와 출신이었기에 가능한 저항의 성격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임순례 감독의 들섬이 경상남도 남해가 아니라 제주도나 전라도 어디쯤이어도 좋았겠네요.

   
▲ 영화 <남쪽으로 튀어> 스틸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과 일본 영화 버전에 비해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가 한국의 정치사회 이슈들을 훨씬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학력 차별과 학교 비리 같은 교육문제와 정경유착, 무분별한 국토개발, 철거민과 용역업체, 민간인 사찰, 문화예술 통제 등이 영화 속에 깨알같이 녹아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레지스탕스와 아나키스트로서 해갑의 활약이 부각됩니다. 다만 원작에서 강조되었던 남쪽 섬의 유토피아적인 성격과 상징성이 조금 더 드러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치루 가족이 이리오모테 섬에서 경험한 것은 굳이 국가나 제도, 공권력이나 심지어 화폐가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이웃끼리 나눔과 베풂이 풍성한 공동체였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무정부주의는 해체나 저항이 아니라 적극적인 건설과 돌봄, 환대의 의미였던 거지요. ‘이런 국가 따위 필요 없어!’가 아니라 국가와 국경이 의미 없는 곳이었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디아스포라 유태인이면서 캐나다 국적을 지닌 ‘베니’가 결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 역할을 민간인 사찰을 전담했던 국정원 요원들(주진모, 정문성)에게 맡겼습니다. 그가 보기에 우리에게 상상 가능한 화합의 최대치는 국가, 즉 공권력과의 화해였던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게 대한민국 현실에 관한 가장 냉정한 관찰이기도 하겠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국가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대한민국 국민 안 할 거라고 큰소리치는 남자가 아이들 이름은 민주, 나라, 나래라고 지었더군요. 스미스 씨나 최해갑 씨에게 나라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나라다’와 ‘이게 나라인가’는 그렇게 뜻밖의 곳에서 만납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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