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호 무브먼트 투게더]

   
▲ 필자 송수영 씨(좌) (사진: 송수영 제공)

10월 24일 화요일, 김하나 목사 청빙안 노회 통과
운동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명성교회 진짜 하네”라는 말이 어깨 너머로 들렸다.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해 무슨 일 터졌나 싶어 살펴보니 〈뉴스앤조이〉 속보가 떴다.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안, 노회 통과.” 명성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노회원들이 퇴장하고 남아 있는 회원들이 새롭게 임원회, 정치부, 헌의부를 구성하여 명성교회의 청빙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기자들이 “이전 헌의부가 반려한 안이 어떻게 이번 회기 정치부로 넘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노회원들은 “그냥 그렇게 됐다”고 답했고,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저녁 7시 40분경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안은 통과되었다.
기사를 보고 한동안 “그냥 그렇게 됐다”는 말에 잠겨 있었다. 남아 있던 자들은 ‘그냥 그렇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절차적 문제가 부끄럽지는 않았을까. 과정에 떳떳하지 못한 청빙안의 위태로움이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그렇게 됐다’는 말 뒤에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불의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묘하게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급하게 내일 채플 전에 피켓 시위를 위한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구성원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피켓 문구들을 제안하면서 명성교회 사태에 대한 공감대를 서로 확인했다. 각자의 문구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세습은 옳지 않다는 같은 뜻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다. 피켓 문구 디자인과 인쇄, 음향 시설 준비, 순서 정리와 진행 등 최소한의 작업들도 자발적으로 지원해주신 분들로 인해 문제없이 분배되었다. 카톡방에서도, 학내 ‘명성관’ 501호에서도 이 사태를 놓고 늦은 밤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11월 13일 월요일, 명성교회 위임식 다음 날
“이 위임식은 무효입니다! 명성교회는 총회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훈희 형은 11월 12일 저녁 7시에 열린 명성교회 위임식 자리에 가서 외치고 왔다. 좌석별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남선교회 회원들이 형의 입을 틀어막고, 머리채를 휘어잡아 형을 예배당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들은 예배당 밖에서도 “세습은 옳지 않다”라고 외치는 형을 욕하고 조롱했다. 형은 결국 예배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같은 날 나는 교회 사역을 마치고 그날 해야 하는 발제를 핑계 삼아 곧장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명성교회 위임식에 대한 기사를 찾아 읽으며 욕이나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저 손가락이나 바삐 놀리는 게 전부였다. 훈희 형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다리를 이끌고 그곳에서 혼자 싸우던 그 순간에 말이다.

아침에 형의 페이스북 글을 읽으며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훈희 형은 오늘 나와 같이 발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형은 그럼에도 그곳에 있었고, 나는 그럼에도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서 세습의 부당성에 대해 외치기는커녕, 그 자리에 가게 만들지도 못하는 분노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이긴 했을까 싶었다. … 하지만, 뻔뻔해도 그저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는 것으로만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핑계들을 그만 대고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오늘의 부끄러운 감정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14일 화요일, 명성교회 세습 반대 기도의 날
오늘 저녁 7시에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생 대표 기구들이 주관하는 명성교회 세습 반대 기도회가 있었다. 미리 준비한 500장의 순서지가 다 떨어진 이후에도 문의한 사람들이 많았고, 700명 정도가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최 측의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기도회는 장신대 학우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청년들도, 선배 목사님들도 함께했다. 그리고 총장님과 몇몇 교수님들도 함께 두 손을 모으셨다. 장신대 미스바 광장에서 진행하는 기도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명성교회 세습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주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며 정의가 살 것이라고 함께 노래했다. 신대원 학우회장과 총학생회장, 그리고 훈희 형은 발언을 통해 명성교회 세습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며 총회의 응답을 촉구했다. 김동호 목사님은 설교에서 명성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교회와 명성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노회와 총회를 위해서 뜨겁게 공동기도문을 올렸는데, “아멘” 대신,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가 피값 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다.

기도회가 끝나고 ‘명성관’ 310호에 모여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아무도, 기도회 참석으로 우리가 할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과 점심마다 피켓팅을 해야겠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명성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해서 현장을 경험해보자는 얘기도 나왔다. 또한 시험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매주 한 번은 미스바 광장에 함께 모여 기도하기로 정했고, 학우회와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명성교회 세습 사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의 이해를 확인하고, 각자 은사에 맞게 역할을 분배했다. 우리가 처음 모인 이유는 폭행을 당한 동기 형의 일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모인 이유는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미스바 광장 기도회 (사진: 송수영 제공)

11월 21일 화요일,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작하다
아침 8시부터 남문과 서문, 그리고 강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소양관 입구에서 피켓팅을 했다. 영하 4도의 날씨에도 10명의 학우들이 함께하며, 명성교회 세습 철회와 총회의 응답을 바란다고 외쳤다. 채플 전과 후에도 한경직기념관 입구에서 피켓팅을 하며 서명운동 부스를 운영했다. 대부분이 학내 활동을 해본 적도 없고 시위나 피켓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우리는 웃으며 해야 오래 간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즐겁게 일을 꾸려갔다.

명성교회 세습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 나 자신의 실존은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시작이 반’이라는 구태의연한 말 안에 담긴 지혜를 확인했다. 시간을 나누고 곁을 나누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작은 노력들은 결코 사장되지 않고 축적되어 거대한 불의에 균열을 일으키리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무모해 보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시작’했다.

11월 22일 수요일, 명성교회 수요기도회에 두 번째 참석
지난주 참석한 명성교회 수요기도회는 참 충격적이었다. 김삼환 목사는 특송 하러 나온 권사님들에게 토크쇼를 진행하듯 일일이 “언제부터 우리 교회 나오셨어요?” 물었다. 예전의 무의미함도 충격적이었지만, 간증의 내용과 끝 인사는 더 심각했다. 권사님들의 간증은 김삼환 목사에 대한 찬양으로 요약될 수 있었고, 그분들은 간증이 끝난 후 인사로 “목사님과 교회에 충성!”이라고 외쳤다. 그날의 설교 제목은 〈바로와의 만남〉이었으나 바로에 대한 언급과 그 만남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초반에 잠깐 본문의 지리적 배경을 언급했을 뿐, 그 이외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만 했을 뿐이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그의 원맨쇼에 우렁찬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날, 명성교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오늘은 김하나 목사가 설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명성교회를 다시 찾았다. 주보를 보니 감사하게도(?) 김하나 목사가 설교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김하나 목사는 김삼환 목사와는 달리 본문에 집중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본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설교만 보자면 꽤나 수준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설교 중간마다 이번 세습 사태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계속 귀에 거슬렸다. 그가 명성교회 성도들에게 극복해야할 ‘세상’으로 언급하는 대상은 세습 반대의 목소리였다. 명성교회가 현 시국에 세운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습 반대의 목소리를 세상과 동일시한다는 건 그만큼 명성교회가 얼마나 개교회만을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세습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정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명성교회 교인들 얼굴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나도 모르게 명성교회의 세습 사태에 대한 분노가 명성교회 전체를 악마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교인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분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였고,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참 좋은 집사님, 권사님들이었다. 명성교회에 계신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목사님이 헌금하라고 하면 헌금하는 게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분들을 보니 그분들을 잘못 인도한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가 더욱 더 미워졌다. 교회의 대형화가 문제의 본질이며, 담임목사 한 명에게 집중된 권력이 진짜 문제이다. 교회의 세습은 이러한 문제가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 기도회에서 보았던 기도문이 떠올라 그 기도문으로 기도했다. “명성교회를 사랑으로 섬기고 그 안에서 신앙의 꽃을 피운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신앙의 터전이 끔찍하게도 ‘자식 사랑’의 둥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어서 이 시련을 이겨내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회를 통해 명성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기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 28일 화요일, 신학생 긴급 좌담회
명성교회 세습 반대 활동은 신대원 1학년 B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훈희 형 때문에 우리들이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을 계획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우리는 대부분 이런 활동을 처음 해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모임 구조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만의’ 모임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한 주간의 활동을 통해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어 자원해주셨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이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주면 마치게 될 학내 활동 이후를 고민하게 되었고, 임희국 교수님(역사신학)과 장신근 교수님(기독교교육학), 그리고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님과 조병길 명성교회 집사님을 모시고 신학생 긴급 좌담회를 열게 되었다.

임희국 교수님과 장신근 교수님은 명성교회의 세습이 왜 문제가 되는지 말씀해주셨고, 양희송 대표님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시위를 예로 들며 세습 반대 활동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 주셨다. 특히, 조병길 집사님은 명성교회 내부 사정들을 얘기하시면서 명성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신학생들은 신학생답게 순수하게 활동해달라고 당부의 말씀을 더해주셨다. 네 분의 말씀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선배 목사님들이 지지를 해주시거나 앞으로의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좌담회는 당초 계획보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되어 밤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났다.

학내 활동에만 전념하다 보니 외부 활동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우리만 몰랐을 뿐 이미 외부에서도 활발하게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좌담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더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특히 방학 이후의 활동도 그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12월 8일 금요일, 2학기 종강일
오늘로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학내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피켓팅을 하면서, 한국교회의 회복에 대한 갈망을 마음에 새겼다. 장로교 통합 측 산하 7개 신학교 신대원의 공동 성명서를 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170여 명이 함께했던 두 번의 미스바 기도회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발견했고, 좌담회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우리로부터 시작된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은 이미 교계와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장신대 게시판과 SNS에는 61개 기수 2,420명이 참여한 성명서가 올라와 있으며, 통합측 선배 목사님들과 7개 신학교 교수님들 또한 성명서를 작성하여 명성교회와 총회에 전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기독교 언론과 JTBC를 통해 연일 보도되었다.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신학함’은 몸으로 하는 것임을, 아는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님을 말이다. 우리의 몸에 새겨진 이 기억들은 ‘신학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신학생이자 시대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의 활동은 끝이 났지만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교회 세습은 결코 예수를 주로 삼은 교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종교개혁의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앞으로도 부단히 외칠 것이다.

 

송수영
말하기와 쓰기, 읽기를 좋아하지만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철학을 전공했고 신학 공부를 평생의 업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장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이며, 높은뜻정의교회 고등부에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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