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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화교육 운동이 중요한가
[334호 민통선 평화 특강]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5:18:12 정지석 goscon@goscon.co.kr
   
▲ 한국 미국 독일 3개국 청소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국경선평화학교의 2018 국제청소년평화교육 캠프에서 'DMZ평화도보순례'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평화교육 무용론
평화는 교육으로 실현 가능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회의론이 우세했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은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것이기에, 교육으로 그 본성을 바꿀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으로 폭력 본능을 어느 정도 순화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우세했습니다. 이런 회의론이 우세한 까닭에 인간은 숙명적으로 전쟁과 폭력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길은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는 것이고 이를 위해 쓰는 막대한 비용은 정당화되었습니다. 누구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한 사회 상황을 고치려는 노력도 소극적이었습니다. 평화교육은 발붙일 자리가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강하고, 더 큰 힘을 가져야 한다는 교육이 장려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안보평화론이 지배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침략과 고통을 당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종교적 믿음 이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단적 생존 욕구에 반하는 평화교육은 비난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는 평화를 교육 과목으로 둘 수 없었습니다. 대학에서도 평화를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평화는 교육 활동에서 관심 밖의 일로 밀려났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 시대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집단의식은 평화교육을 거부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이기는 교육’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만이 권장되었습니다.

국제연합(UN) 교육과학문화 기구인 유네스코(UNESCO)는 회원 국가들에게 평화교육 운동을 전개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국가는 많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아직 학교교육에서 평화교육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자 특별활동으로 갈등 해결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활발한 것은 아닙니다. 남북한 분단과 갈등이란 거대 폭력 상황에 놓여 있는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소망한다면 우리나라처럼 평화교육이 긴요한 곳도 없습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유네스코가 권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평화를 향한 평화교육 운동이 발전될 적소는 한반도라고 저는 믿습니다. 한반도 평화교육의 모델이 나와서 전 세계 분쟁 지역에 평화의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폭력 본성론’과 원죄 신앙
결국 중요한 건 인간관입니다. 인간을 전쟁과 폭력의 인간으로 이해할 때 세상은 군사력 경쟁과 전쟁, 난무하는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전쟁과 폭력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인간은 선천적으로 전쟁의 본성을 안고 태어난 존재인가? 전쟁과 폭력은 운명적인 일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폭력 본능이 뿌리박혀 있는 것인가? 왜 사람들은 이것을 아주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인정하는가? 아마도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경험상 인간 사회에서 전쟁과 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폭력 본성론은 원죄 신앙과 맥이 통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죄성을 안고 태어난 존재이므로 폭력성도 마찬가지이며, 이 모든 것이 원죄에 속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의 전쟁과 폭력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소극적인 것은 폭력과 전쟁을 원죄 신앙과 연관 지어 믿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믿음으로 원죄에서 해방될 수 있을 뿐이라고 믿으면서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하고 참된 평화는 오직 하늘 나라에서 실현된다는 어거스틴 신학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전쟁 본성론, 폭력 본성론은 경험적 근거에다가 신앙적 뒷받침까지 받아서 굳건한 진리처럼 인간 의식을 점령해왔습니다. 기독교에서 평화교육은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수준에 머물고 사회의 평화, 전쟁을 막는 평화운동으로까지 갈 수 없는 것은 이런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폭력 본성론의 과학적 근거로 많이 인용되는 것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 대변되는 진화생물학입니다. 이 생물학적 논리가 인간에게 적용되면 전쟁과 폭력은 생물학적 정당성을 얻습니다. 이 또한 인간 사회에서 경험적으로 체험되는 것이니 더욱 확고한 신념체계처럼 굳어진 것입니다. 강해지지 못하면 잡아먹힌다는 생물학적 논리가 사람들 의식을 점령했습니다. 그 결과 평화교육은 사람을 나약하게 하는 교육으로 배척받게 됩니다.

인간의 심층 심리에 폭력 본능이 있음을 주창한 사람은 현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프로이트입니다. 그는 당대 세계 최고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과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화의 다리를 놓은 곳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국제연합의 전신)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1920년대 전 세계인들 사이에 인도주의 평화 사상이 정신적 각성운동으로 널리 일어났고 이때 국제평화 단체로 만들어진 곳이 국제연맹입니다. 국제연맹은 당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최고 지성인었던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를 선정해 ‘인간은 전쟁의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주선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로서 세상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힘의 움직임에 대한 석학이고, 프로이트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인간의 심층 심리에 관한 최고의 학자였으니 두 사람이 무언가 전쟁과 폭력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편지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전쟁은 물리적 현상이지만 발생 원인은 인간 내부에 있지 않나 질문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답신에서 폭력은 인간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 폭력 본능이 전쟁의 원인이라면 인간은 전쟁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폭력 본능의 반대편에 에로스(사랑)의 본능도 있어서 평화의 희망을 포기할 것은 아닙니다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인간 사회에서 우세한 본능은 폭력 본능이라는 우울한 결론을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이런 결론이라면 평화교육 운동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비야 선언
유네스코는 인간의 전쟁과 폭력 본성론을 재검토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인간 행위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 인류학자, 사회학자, 동물행동학자, 신경생리학자 등 20여 명의 학자들이 스페인의 작은 마을 세비야(Seville)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던 다수의 근거 없는 생물학적 연구결과에 도전’했고, 검토 결과를 5개의 명제로 담아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The Seville Statement on Violence)을 발표했습니다.

요점은 인간의 폭력 본성론은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전쟁은 유전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 문화의 산물이다. 둘째, 전쟁과 폭력 행위는 본성이 아니다. 셋째, 폭력 유전자는 없다. 넷째, 인간은 ‘폭력적 두뇌’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행동 양식은 그가 어떻게 조건 지어지고 사회화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적 영향에 좌우된다. 다섯째, 전쟁은 본능 때문에 일어난다기보다 이념과 제도, 준비와 계획을 포함한 복합적인 인간적 요인들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은 기존의 생물학적 논리에 근거해 잘못 주장되었던 인간의 전쟁과 폭력 본성론을 과학적으로 시정하는 데 기여했고, 유네스코의 평화교육 운동의 이론적 근거이자 촉진제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과 폭력이 선천적인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생긴 문화적 산물이라면,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비야 선언은 1989년 11월 16일 제25차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되었고, 유네스코 회원국가들에게 평화교육 운동을 권장할 수 있는 이론적 정신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헌장은 전 세계 국가들이 평화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교육 운동
남북한 전쟁과 분단,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중무장한 군사력이 대치하면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한반도는 평화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곳입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시민단체에서, 교회와 종교단체에서 평화교육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평화교육 운동은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를 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평화교육 운동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평화의 신념이 마음속에 심겨지면 전쟁과 폭력이 깃들 여지가 없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평화교육 운동을 통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려고 세워진 학교로, 남북한 분단과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공동체운동을 촉진하는 평화운동가를 육성합니다. 평화운동가(피스메이커) 정규과정은 3년 기간으로 공부합니다. 남북한 평화학을 비롯해 평화교육과 평화운동가 영어(읽기 쓰기 말하기), 해외 평화와 갈등 지역 방문 및 국내 DMZ평화도보순례 등 체험교육, 유기농 실습 등 실기교육, 평화마을 디자인, 매일 소이산 평화기도순례 등 평화영성 수련을 합니다. 주어진 과정을 모두 이수하면 졸업 준비를 합니다. 졸업 후 일 할 평화운동 실천에 관한 책을 쓰며, 평화운동가로 인정하는 1백 명의 인정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정규 평화교육 3년 기간 동안 자신을 평화운동가로서 인정하는 1백 명의 사람을 만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은 평화교육이 단순히 지식 전달 교육이 아니라 그 자체로 평화운동임을 늘 자각하는 것이요 평화의 인적 영역을 넓히는 일입니다.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여 살고자 결심하고 준비하는 기간이 최소 3년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기간 동안 서로 뜻을 맞추고 단점과 약점을 서로 이해하고 보완하는 동지가 됩니다. 예수의 제자 교육 기간 역시 3년이었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의 평화교육 운동은 우리나라 모든 학교에서 평화교육을 하자는 호소입니다. 교회에서 평화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외침입니다.  

3년 과정의 정규 과정 외에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단기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평화교육은 현장성이 중요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남북 분단의 철조망 장벽과 DMZ 현장에서 많은 것을 체험합니다. 이것이 국경선평화학교가 철원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여름 국경선평화학교는 국제청소년평화교육 캠프를 열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한국 청소년들과 미국 교포 청소년들로 했는데 2017년 독일 청소년들이 함께하여 3개국 청소년들이 함께 평화를 배우는 여름학교가 되었습니다. 이 국제청소년 평화교육 역시 현장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철원의 분단 현장에서, 평화교육 운동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캠프는 진행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언어적 소통을 넘어서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희망에 공감했습니다. 이들은 철원에서 파주를 거쳐 김포를 걸어 강화도까지 갔습니다. 연천에서는 군인 검문소를 통과하여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남북의 DMZ를 지켜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국 청소년도 미국 교포 청소년들도 독일 청소년들도 공감되는 배움이 있었습니다. 독일 청소년들의 입에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기도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은, 자신들이 직접 현장에서 현장이 주는 메시지를 가슴에 느끼고 담은 것입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서는 비록 전쟁에서 싸우는 적일지라도 그 시신을 존중하는 것이 사람다운 일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표현하자면 현장은 하나님의 뜻이 사건으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평화교육은 이렇듯 하나님의 사건을 체험하는 교육입니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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