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송지훈이 만난 활동가] 토지 정의의 길 10년, 희년함께 대표 이성영

모든 기독운동은 이상을 향하면서도 현실을 바꾸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는 우리가 가늠하기 힘든 간격이 존재합니다. 활동가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때때로 표류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 딜레마는 여전히 우리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이 터전 속에서 오롯이 한길을 걷고 있는 활동가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고 정리했습니다. (사실 활동가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죠. 오늘도 분투하는 모든 기독인의 삶에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 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희년함게 상임대표 겸 토지정의센터장을 맡고 있고요. 활동가로는 2008년부터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에서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거제도에서 자라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라는 공간은 저에게 피난처 같았어요.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 분위기가 몹시 폭력적이었거든요. 교회에 가면 그래도 학교와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따뜻함이 있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어요. 교회는 저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었지만, 이런 학교 폭력의 문제 앞에서 학생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거예요. 학교 폭력은 하나의 시스템이기도 하잖아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대다수의 방관자가 있기 마련인데 저도 일종의 방관자로 사는 게 불편했거든요. 교회가 실제적인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쌓여 나중에 희년함께 활동을 결심하게 됐어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복음과상황 이범진

- 희년과 토지 정의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때는 언제였나요?

제 전공이 도시공학 쪽이었는데요. 대학교에 가서 고민했던 것이 내 전공과 신앙을 어떻게 연결해서 살아갈까였어요. 그러다가 대천덕 신부님을 처음 알게 됐어요. 아마 군대에 있을 때였을 거예요. 전역 후에 예수원을 방문했고 거기서 처음 토지문제를 접하면서 내 전공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으면서 확실히 토지문제가 우리 사회 양극화와 가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전공과의 접점도 찾으셨는데, 굳이 활동가로 살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토지 정의를 위한 운동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들었어요. 그때 문득 학교 폭력의 방관자로 살았던 때가 떠올랐어요. 그 이후로 어떤 문제가 와도 방관자로는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그 다짐이 계속 마음에 부담이 되는 거죠. 복음서의 ‘사마리아인 비유’를 묵상하며 더욱 그런 마음이 커졌습니다. 내가 직접 뛰어들지 않는다면 나 또한 방관하며 떠나간 제사장, 레위인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더는 피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2005년 여름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성토모 지부 모임을 열었습니다. 막상 시작하니까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던 친구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 보수적인 배경에서 신앙생활을 해와서 토지 정의가 신앙과 신학적으로 연결이 잘 안 된 상태였는데요. 2005년 성서한국 전국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면서 김회권 교수님의 여호수아 강해를 듣고, 그때 하나님 나라 신학을 접하면서 신학적인 고민도 하나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 잘 모르는 분을 위해 ‘희년함께’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희년함께는 구약성경, 구체적으로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법과 희년 정신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성경의 기본적인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성경의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보는데요. 이런 희년 정신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고 희년 정신에 기초한 원칙 ―부채 탕감, 노예 해방, 토지 반환, 안식년 등― 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면서 실천 방안들을 함께 찾아가며 제시하고 있는 기독교 시민단체입니다.

- 다소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활동인데요. 활동하면서 뿌듯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활동을 10년 넘게 해왔는데요. 어떤 특별한 순간을 꼽기는 어렵네요. 예전에는 사실 토지 정의와 희년 정신은 지금보다 더 변방의 목소리였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을 통해 1984년에 처음 헨리조지협회로 시작된 이후로 40년 가까이 지나오면서, 이제는 토지문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정도로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됐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 같아요. 이 활동의 과정과 현장에 함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와 보람이 가득한 일입니다.

- 물론, 그런 과정에서 어려운 일도 있으셨겠죠?

그럼요. 토지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별로 중요한 이슈로 다루지 않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어요. 정치적 이벤트에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운동이 지속적인 힘을 받으려면 시민들 일상에 뿌리를 내려야 하잖아요. 당장 제도가 바뀌지 않아도 교회가 희년 정신에 기초해서 작은 실천을 하는 과정들이 안착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그런 활동들은 많이 약한 것 같습니다.

희년함께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사진: 희년함께 제공)
희년함께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사진: 희년함께 제공)

- 희년함께의 활동을 보면 창조적이면서 실제적인 차원의 시도들이 돋보입니다. ‘두 개의 세상’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보급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두 개의 세상’은 희년 정신과 토지 가치 공유 사상들을 더 많이 알리고 대중과 교회 사이에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에서 나왔던 건데요. 저희가 새롭게 창조해낸 보드게임은 아니고요. 100여 년 전에 나왔던 게임을 복원한 것입니다. 1904년에 엘리자베스 맥기 여사가 처음 만들었어요. 그분도 헨리 조지 사상에 공감을 많이 해서 이것을 게임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토지를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세상과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세상을 비교해보라는 취지로 보드판 한쪽에는 지금의 부루마블과 같은 모노폴리 게임을 만들어놓고, 반대편에는 토지를 공유하는 버전의 게임을 만든 거죠.

- 이건 몰랐던 이야기네요.

모노폴리 버전만 흥행한 거죠. 아무래도 게임적으로는 사람들 욕망을 자극하는 모노폴리가 더 짜릿하고 재밌긴 하잖아요.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버전의 게임은 자연스레 빠진 거예요. 아무튼 저희는 이 게임이 헨리 조지 사상을 알리는 데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서 복원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 제작하고 출시했는데요. 다행히 700부 정도는 판매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팔리고 공유가 되어야 의미가 있겠죠.

- 교육 현장에서 반응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해 몇 군데에서 교보재로 문의가 오고 반응이 있습니다. 저희 희년함께의 김덕영 센터장이 고민을 많이 하면서 홍보하고 여러모로 수고하고 있어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부루마블보다 재미는 없지만, 수업 대신 하기에는 재밌는 거죠. 다양한 교육 활동에 널리 쓰였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이렇게 사회에서는 반응이 오는데 교회에서는 거의 문의가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 희년함께는 몇 년 전부터 희년은행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데요. 처음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희년함께를 떠올리면 토지문제를 가장 크게 연상하시겠지만 ‘부채 탕감’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어요. 세미나도 하고 스터디도 하면서 아이디어가 모이고, 전문가 자문을 받으면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에 출범했는데요. 무이자로 희년은행에 저축하면 그 저축을 통해 고금리 부채를 가진 청년들에게 대출해주거나 청년 주거 문제에 도움을 주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취지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그래도 많이 계셔서 저축을 순환하며 운영하다 보니 현재는 출자금 6억 원 정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복음과상황 이범진

- 언제나 부동산은 뜨거운 이슈지만 최근 몇 년 한국 사회는 유독 부동산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토지 정의를 위해 일하는 희년함께에도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희년 정신에 입각해서 부동산 이슈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기존의 사회경제 제도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제일 간단한 방법은 땅을 투자 상품이 아니라 정말 사용할 사람만 사용하게끔 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소비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땅은 다릅니다. 땅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잖아요. 땅의 속성에서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가치를 계산해서 공공이 환수해낸다면 누구도 땅을 투기하려 하지 않겠죠. 땅의 가치가 오르기를 기대해서 미리 사두는 행위도 거의 발생하지 않을 거고요. 그렇게 환수해서 사회복지나 기본소득을 위한 공적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요.

- 기존 제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볼 때, 가장 설득력 있는 방향이나 정책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현실은 단순하지 않죠. 토지 가치만 환수하면 된다고 하기에는 금융의 문제도 걸려있고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건데요. 기존의 종합부동산세가 그나마 이런 취지를 살린 제도이지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순식간에 없어지곤 하니까 불안정한 측면이 큽니다. 그래서 토지보유세를 신설하자는 제안을 했는데요. 자세한 설명을 여기서 다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희가 제시하는 토지보유세를 적용하면 아주 고가의 토지와 집,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전 국민의 90% 가까이 혜택을 보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래서 정책으로서도 호응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 이 토지보유세 정책을 채택한 정당이 있었나요?

대선 때 민주당에서 공약으로 채택이 되긴 했어요. 다만 대선 국면에서 크게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정치권이 부동산값 폭등 때문에 화가 난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선거 국면이 되면 늘 되풀이해왔던 공급 이야기만 부각하는 흐름이 안타깝더라고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복음과상황 이범진

- 앞으로 구상하시는 희년함께 활동에서 새로운 시도나 계획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희년은행은 최근 1년 정도 정체기가 왔는데요. 어떻게 하면 저축을 더 늘리고 공신력을 확보해서 사회취약계층에 연결하는 작업을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는 집과 땅은 투자 상품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인식을 전환해가는 일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폭등하는 전세금과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주거 불안이 점점 커지는 환경이 바뀌지 않고 단순히 캠페인으로만 머물러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생각할 때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 중 하나는 공동체 주택인 것 같아요.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함께 살 수 있는 안전한 이웃들을 고려한다면 그래도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게 가장 최적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거죠. 이미 몇몇 사례들이 있고요. 실제로도 여러 사례 중 종교 베이스를 가진 공동체 주택이 가장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소개하고 관심 있는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종의 안내서를 정리하는 작업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 건축비가 너무 상승해서 전보다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단체 활동의 차원에서 청년들 활동 공간을 더 많이 열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희년함께 활동가들도 이제 다들 40대가 되었거든요. 청년 그룹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접점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희년의 삶으로 초대하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하시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성찰하는 영성, 응답(반응)하는 삶’입니다. 10년 넘게 이 활동을 해오면서 내 힘으로 하려다 보면 고갈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계속 채워갈 것인가 고민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잘 분별하고 성찰하면서 내게 주신 은총에 지속해서 응답하는 삶을 계속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나 혼자만 누리는 데 그치지 말아야겠죠. 사회선교 운동뿐 아니라 교회와 사회에서도 ‘희년의 삶을 나도 살아보고 싶다’는 도전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진행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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