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호 송지훈이 만난 활동가] ‘복음적 사회선교’의 길 걷는 새벽이슬 대표간사 김영민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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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 번째 인터뷰에서는 대학생선교단체 ‘새벽이슬’의 김영민 대표간사님을 만났습니다. 선교단체 간사로 일하는 동시에 음악인으로서, 대학 채플과 연합 찬양팀 사역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민 간사님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간사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6월 7일, 그의 개인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복음적 사회선교를 위한 새벽이슬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영민 간사라고 합니다.

- ‘복음적 사회선교를 위한’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은 대다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거나 사회 현장 방문을 직접 기획해서 추진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새벽이슬은 다른 선교단체보다 사회참여에 더 적극적인데요. 새벽이슬의 이런 정체성을 잘 모르고 왔다가 사회참여에 눈을 뜨게 된 학생들도 있나요?

사실 제가 그런 케이스입니다.(웃음) 저는 1학년 때 세미나를 통해서 로잔언약을 공부하기도 했거든요. 당시는 복음적인 신앙과 사회참여를 분리해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긴 했죠. 지금 세대들은 예전보다 사회선교라는 개념에 훨씬 더 친숙해진 것 같아요. 물론 사회참여라는 게 꼭 진보만의 것은 아니기도 하죠. 보수적인 사회참여를 하는 기독 청년들도 많거든요. 그러면서 젊은 세대에게 사회참여의 당위성은 좀 줄어든 것 같아요.

- 새벽이슬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새벽이슬을 만난 것도 참 신기해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학생신앙운동’(SFC)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 가서도 똑같이 SFC에 가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제가 아는 형님이 자기도 이제 서울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한번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분이 새벽이슬 활동을 위해 서울에 오신 거였어요. 밥 먹는 자리에서 다짜고짜 새벽이슬에 가입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선교단체 가입이란…. 늘 그런 식이죠.(웃음)

네, 아주 직접적이셨죠. 1학년 때 여러 다른 동아리도 둘러봤는데 새벽이슬이 제일 재미가 있었어요. 그때 선배들이 참 따뜻하고 유쾌했어요. 간사님도 너무 좋으셨고요. 새벽이슬의 분위기가 예배 때는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평소에는 정말 즐거웠어요. 이런 것들에 끌려 새벽이슬에 정착했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딱 20년이 되었네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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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이 흘러 지금은 새벽이슬 대표간사로 계신데, 요즘은 어떻게 사역하시나요? 최근 2년간 코로나로 선교단체들이 타격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새벽이슬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달 김희석 국장님 인터뷰에도 소개가 되었죠. 초창기에는 기독 총학 운동으로 시작해서 복음적 사회선교를 위한 청년운동, 〈새벽이슬〉 신문을 필두로 하는 언론 운동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캠퍼스 선교단체로서 기틀을 잡고 운영되었죠. 저는 캠퍼스 모임이 정형화되던 당시에 들어와 활동했던 거죠. 저희끼리 수련회도 하고 리더십 훈련도 하고 ‘개혁과부흥 컨퍼런스’ 같은 행사도 주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언젠가부터 규모가 좀 줄어들게 되었어요. 코로나 시기에 선교단체들이 학생 규모가 줄어들면서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는데, 저희는 그전부터 어려워졌기 때문에 코로나로 타격을 입었다고는 차마 말을 못 하겠네요.(웃음) 이미 코로나 전부터 저희는 내부적으로 좀 더 탄력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코로나 때도 그냥 저희가 해오던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왔습니다.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캠퍼스 예배 모임을 갖고 있고, 간사와 리더와 학생이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줌으로 만나거나 오프라인에서는 일대일로 만나서 신앙교육 등을 진행했어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을 때는 금요 철야 모임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긴 좀 어려워서 금요일 아침 7시 30분에 줌으로 모여서 시편을 묵상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회가 될 때 고난받는 이들의 현장에 함께 찾아가기도 하고요.

- 저는 인원과 규모와 상관없이 새벽이슬 같은 대학생 선교단체의 활동과 열매가 재발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활동을 했습니다만,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선교단체는 개인 영성에 치중하는 내향성의 공동체가 다수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신앙 훈련과 사회참여를 동시에 이루어가는 새벽이슬의 모습이 좋게 보여요. 물론 여러 어려움도 있겠지만요. 오랫동안 캠퍼스에서 활동해오신 입장에서 현재 청년·대학 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선교단체 사역은 갈수록 더 어려워질 거라고 많이들 이야기해 왔지만, 정작 선교단체 당사자들은 그런 우려를 좀 외면하고 회피해온 것 같아요. 말로는 어렵다고 했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어려움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이번에 팬데믹으로 다들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 것 같아요. 올해 5월이 되어서 다시 조금씩 대면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저희 캠퍼스에 있는 다른 선교단체 간사들과 학생들도 이전보다 너무 인원이 줄어서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단체가 특정 사역을 하는 목적이 사역 그 자체가 아니라 규모 유지를 위해 기획되고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가 있어요. 선교단체에 소속된 학생, 특히 리더들은 응당 강도 높은 신앙훈련을 받으면서 사역을 위해 무리하게 움직이게 되곤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번아웃이 오는 학생들도 생기게 되고요. 사실 새벽이슬도 그런 어려움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친 학생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면서 전체적인 인원과 규모가 이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한때는 간사가 3명인데 학생이 1명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각오를 다지고, 규모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가 만날 수 있는 친구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분명 새벽이슬의 역동성이나 확장성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안에서 지체들과의 만족도는 아주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규모는 줄고 코로나도 왔지만, 저희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작은 규모로 모임을 계속하고 있어요.

- 전체적으로 학생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겠죠.

맞습니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하면 대학생 선교단체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진행하는 사역이 있는지 성찰하고, 그랬다면 돌아설 필요가 있어요. 과감하게 체제를 재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역의 규모에 대한 강박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면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신앙적으로 훈련받고 성숙해지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될 때 느껴지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분명 있어요. 예전에는 학생들이 당위에 의해서 훈련받고 현장에도 나갔다면 이제는 자기들끼리 자연스럽게 현장을 찾더라고요.

- 공감합니다. 저도 성서한국에서 일하기 전에 모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일했지만, 간사들에게는 (부흥이라는 명목으로) 캠퍼스 모임 규모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진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간사들도 많죠. 어쨌든 그런 규모에 집중하는 간사들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간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예전에는 개인 경건에 집중하는 학생들에게 현장을 더 강조했는데, 요즘에는 현장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개인 영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이 경계에 서있는 애매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지금의 새벽이슬이 가지는 독특한 색깔인 것 같고, 새벽이슬만이 할 수 있는 청년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모임이 유지될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지금처럼 청년들과 함께 신앙 훈련도 열심히 하면서 사회참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캠퍼스의 선교단체들을 모두 비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눈물겹게 사역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좋은 열매 맺으면 좋겠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교회는 어렸을 때부터 다니셨나요? 저는 이런 인터뷰 때 항상 과거 이야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고향이 부산이거든요. 부산에서 자라났고 대학에 가면서 서울에서 지내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는 다녔어요. 어머니께서 아주 열심히 다니셨고요. 교회 다니는 게 너무 재미있고, 예배드리는 일이 참 즐거웠어요. 거의 교회에서 살았어요. 제가 다녔던 교회에는 중고등부 찬양대가 있어서 주일 저녁 예배에 중고등부 찬양대가 서기도 했어요.

- 음악에 관한 관심은 그때 시작된 건가요?

청소년 시절에 수련회 한 번 다녀오면, 나머지 방학은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했어요. 그러면서 평생 찬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음악 전공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거죠. 처음에는 CCM이나 실용음악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해 찬양 사역자로 훈련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을 도저히 설득할 수 없었어요. 부모님 보시기에 좀 불안했던 모양이죠. 그래서 클래식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교회음악과를 가기 위해 고3 때 뒤늦게 입시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도 합격했습니다. 처음에는 합창지휘 전공으로 공부하다가 2학년 때 성악 전공으로 바꾸면서 그 이후에는 성악하는 정체성이 짙어졌어요. 그러면서 찬양 인도, 특송, 공연, 찬양대 지휘 등 교회의 예배 안에서 할 수 있는 음악적인 활동은 거의 다 하게 된 듯해요.

- 현재 안산시립합창단 소속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합창단은 이제 5년 차인데요. 서른다섯 나이로 뒤늦게 입사했습니다. 결혼하고 간사로 풀타임 사역을 했지만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아내가 너무 희생하며 수고하기도 했고, 이제는 정체성을 좀 바꿔서 직장을 갖고 사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합창단에 합격해 감사했죠.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사역을 하는 사이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굉장히 잘하신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역을 해봐서인지 그 시간의 힘겨움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금은 가늠이 됩니다. 현장 기도회에서도 종종 바리톤 음성으로 특송을 해주시잖아요. 그 음성이 많은 분께 울림과 위로를 준다고 느낍니다. 현장에서 노래 부를 때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요.

제가 맨 처음 거리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던 때가 2002년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이라크 반전 평화 기도회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었어요. 당시 새벽이슬에 특송 요청이 와서 제가 가서 불렀는데,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연주회장보다 이렇게 거리와 현장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오히려 내가 진짜 노래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 이후로 한동안은 현장에 못 나갔어요. 기회가 많지 않기도 했고, 특별한 절기 때는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았으니까요. 사실은, 이상하게 현장에 나갈 용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다른 분은 설교하시거나 연대 구호를 외치는 식으로 자기 역할이 분명해 보이는데 저는 뭔가 설교나 기도 같은 것에는 크게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위축되었던 모양이에요. 세월호 이후에 다시 좀 용기를 내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을 꾸준히 지키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가끔 가서 노래를 부르는 입장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노래를 통해 함께 연대하고 싶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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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대한 막연한 부담이 있는 기독인들이 클래식한 노래를 듣고 마음을 여는 것 같아 너무 좋더라고요. 늘 그럴 수 없겠지만 종종 현장 기도회를 복음주의 회중의 찬양 예배처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 분위기와는 이질감도 있겠지만, 이런 시도가 오히려 많은 기독인을 참여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현장에 익숙하지 않은 기독인들은 현장의 구호 하나에도 움찔하니까요. 기존 방식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더 많은 분이 함께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아서요.

네, 그런 시도들이 필요해요. 가끔 현장에 대학생들이 와서 직접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아주 밝은 에너지를 내뿜어요. 그 모습이 참 멋지더라고요. 그러면 현장의 해고 노동자분들도 너무 좋아하세요. 우리 스스로 잘할 수 있는 방식들이 그저 익숙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안에 또 다른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지요.

- 새벽이슬 간사와 합창단 활동뿐만 아니라 연세대 채플 사역과 연합찬양팀 사역도 오랫동안 해오고 계시죠. 이걸… 어떻게 다 하죠?

연세대에서 하는 사역은 사실 학생 때 경험했던 공동체들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모임인데요. 교목실에서 감사하게도 작년부터 저를 교목실 겸임교수로 세워주셨어요. 주로 대학 채플의 음악과 찬양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5년 정도 연세대기독인학생연합(연기연) 찬양팀을 해왔거든요. 그동안 교목실과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오늘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코로나 시기에는 대면 채플이 어려워서 예배 영상을 제작해야 했는데요. 바쁘고 힘들었지만 뿌듯함도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위로와 도전이 될 수 있도록 40분 정도 분량으로 노래와 이야기를 구성하여 콘텐츠로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주위에서도 힘들지 않으냐고 자주 물어보시긴 합니다.(웃음) 그런데 언젠가부터 채플 사역에 사명감 같은 게 생긴 듯해요. 대학 채플은 비기독인에게 참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잖아요. (가끔 차별적 언어를 만나 실망하기도 하고요.) 채플은 기독인에게도 힘든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이 대학 채플이 뻔하고 고루하게 드려지지 않고 건강한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 복음이 잘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플에 오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좀 더 고민하고 그들을 더 넓게 품을 수 있는 찬양을 하는 역할이 아직은 더 필요한 듯해요. 물론, 많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건강관리가 우선되어야겠죠.  올해는 체중도 줄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영민 간사님은 그저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볼 때는 다른 어떤 전임 청년 사역자보다 훨씬 멋지게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는 분으로 여겨집니다. 청년 사역은 여러모로 열악해서 많은 사역자가 그저 ‘거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청년 사역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역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사역을 이루어가는 청년 사역자는 참 드물고 귀합니다. 앞으로도 김영민 간사님이 더 건강하고 넉넉하게 사역하시길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진행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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