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송지훈이 만난 활동가] 선교한국에서 31년, 운동가 이대행
얼마 전 성서한국에서 이대행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선교 분야에서 선교한국의 역할이 성서한국과 비슷한 측면이 많기에 오랫동안 선교한국에서 사역한 이대행 선교사님의 조언을 듣는 자리가 마련되어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31년간 한곳에서 운동가로 살아온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자주 언급하셨기에 이번 인터뷰의 취지에 맞게 운동가로 살아온 선교사님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 안녕하세요. 선교사님 반갑습니다. 이 인터뷰가 공개될 9월에는 현재의 직함(선교한국 사무총장)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선교사님으로 호칭해 봤습니다. ‘선교사’로 불리시는 것도 익숙하시죠?
제가 2010년부터 선교사라는 명칭으로 불렸어요. 한국이 또 워낙 호칭 문화이기도 하고요. 목사도 아니라서 선교사라는 호칭이 현재까지는 좀 익숙합니다. 이제는 반납해야겠네요.
- 선교한국에서의 긴 시간을 마무리하시는데요. 짧은 말로 압축하기 어려우시겠지만 31년 사역에 대한 소회를 나눠주시겠어요?
한마디로 저는 ‘가문의 영광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선교한국과 함께했는데요. 이 시간들을 정리하고 소화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을 하며 사역했는가 돌아보면,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특권의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늘 인터뷰는 선교한국에서의 사역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운동가 이대행’이라는 사람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이던 1998년 부천에서 열렸던 ‘선교한국 대회’에 참석했었는데요. 그때 처음 선교사님을 먼발치에서 뵈었고요. 2012년에는 제가 일하던 선교단체가 대회를 주관하면서 저도 선교사 라운지 운영 책임을 맡았었는데 그때 선교사님을 비교적 가까운 데서 뵈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기억납니다. 당시에 멘토 관련한 포럼도 준비하셨고, 그때 멘토를 경험한 사람의 가상 편지도 만들어 읽으셨던 것도 기억나네요. 재미있었어요.
- 당시 선교사님을 뵙고 굉장히 단단한 내공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해볼 때, 연합단체 사무국이 감당해야 할 수많은 조율과 기획, 실무를 장악한 사람이 가진 단단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운동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이나 기준 같은 것은 어떤 것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대체로 외부에서 저를 그렇게 보는 경향이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선교한국 간사님들이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웃으시지 않을까 싶어요. 외견상 요구되는 부분에는 어느 정도 잘 훈련된 형태로 보이는 것 같아요. 내면의 단단함이라기보다는 역할이 주어지면 그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강한 타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선교한국에서 실행총무로 일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저와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은 주로 40대 남성들이었죠. 그래서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위축도 되었죠. 40대 남성 사역자들과 20대 여성 사역자인 저의 경험과 시각이 아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리더들이 실무를 경험한 케이스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좀 생겼던 것 같아요.
- 선교한국 대회 같은 큰 이벤트를 진행하다 보면 별별 상황이 다 생길 텐데 평정심을 잘 지키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컨트롤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앞의 질문을 드렸던 것이고요.
저에게 숨겨진 면을 잘 못 보셔서 그랬을 수 있어요.(웃음) 연합단체가 가지고 있는, 숙명적으로 요구되는 태도가 있다고 봅니다. 저로서는 어떤 일에 대해 진취적으로 끌고 가며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저항이 있기 마련이죠. 오해도 생길 수 있고요. 그런 상황들에서 저는 가장 느린 템포로 오해와 갈등을 조정하며 기다림과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공격을 받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분노해봤자 저에게도, 모두에게도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요.
- 어떻게 한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사역하실 수 있는지 묻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긴 합니다. 다른 동료 운동가들을 대신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타입이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인 것 같습니다. 선교한국에 처음 들어오게 됐을 때의 동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는다는 개념이었어요. 당시에 선교라면 거의 대다수 사람이 해외로 나가는 선교를 생각했죠. 국내에서는 선교라는 이름이 붙은 단체의 사역은 별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선교를 둘러싼 시스템이 탄탄하지 않으면 선교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나잖아요. 저는 행정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선교한국에서 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것 같아요. 물론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할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내가 왜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사인을 주셨어요.
-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동료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인데 특히 젊은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의 관점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다들 소명의 차원에서 고민은 기본적으로 하지만요. 젊은 활동가들에게 소명과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일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방향인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용 가운데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고요. 그 하나님의 허용 가운데 있는 수많은 기회 중에서 저는 처음에 타 문화권 선교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잘 매칭되면 가장 좋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쭉 알아보니까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거예요. 그중에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 있고 낮은 것이 있었고요. 선호도가 낮아도 정말 중요한 일이고 그게 내 의사와 맞는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면 그건 내가 하겠다. 이렇게 선택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일이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낙관적인 기질도 영향이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저는 꼭 신뢰할 만한 분들께 조언을 얻습니다. 단체나 조직을 위한 결정 과정은 물론 개인적인 고민까지 멘토들에게 깊은 조언을 듣습니다. 때때로 그분들께 제가 멘토가 되기도 하고요.
-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모든 운동가, 실무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 드는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에 있어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요? 운동가로서 선교사님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성과는 어떤 것이었나요?
항상 성과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선교한국은 목표가 매우 뚜렷한 성향이 있는 조직이에요. 예를 들면 선교한국 대회에 몇 명 왔느냐 같은 게 어떤 성과로 측정이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성과에 대한 찬사와 질책이 다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수적인 성과에 생각보다 많이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선교한국 대회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우리가 성공한 것이며, 적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계량적인 성과도 중요합니다. 1990년대 선교한국 대회 때 참석 인원이 6천 명을 넘은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사무국 스태프가 여성 3명이었어요. 우리가 오롯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일까요? 그 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회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스태프가 동원됐는데 참석 인원은 그때보다 줄어들었어요. 그러면 실패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옳다고 하는 일을 옳은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했는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비교적 건강하고 정직하게 운동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동의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면 저는 그것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성서한국 전국대회를 진행해온 입장에서 너무 공감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유형의 성과에 대해 우리가 잘못하면 깎아내릴 수 있는데, 그것도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유·무형의 성과를 해석할 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요. 이를 위해서는 분명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고요. 물론 유형의 성과들을 헤아리는 이유는 우리의 전략 때문이 아니라, 타 문화권 선교지의 소외된 사람들을 우리에게 인식시키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고 봐요. 그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일했을 때 거기서 나오는 성과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허용 가운데 있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 운동가는 또한 팀워크를 잘 이뤄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선교사님은 수많은 팀워크를 경험하셨을 텐데요. 팀워크를 잘 이루기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팀워크에서 제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르겠지만 핵심 단어는 역지사지라고 생각합니다. 팀워크는 항상 스트레스를 동반하는데요. 그것을 잘 극복하는 중요한 가치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거였어요. 함께하는 동료들이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위해 감내해야 할 노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팀워크를 잘 다지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교한국 대회의 경우 사무국과 수많은 조직과 지원자들을 연결해서 일해야 합니다. 다 각자의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도 있고 때때로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이 잘 안되더라도 이걸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넘어가자는 낙관성이 필요해요.
- 2년마다 매번 다른 선교단체와 일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단체마다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가 다 다르잖아요.
쉽지 않았지만, 아주 좋은 기회였어요. 단체마다 다르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이게 다 종합적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각 단체의 좋은 점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2년마다 한 번씩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우려도 없진 않지만, 이번에는 또 새로운 것이 쌓이겠지 하는 기대가 매번 있었고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도 그냥 소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창조의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한국의 주요 선교단체들과 거의 다 일해봤는데 누가 이런 특권을 쉽게 얻을 수 있겠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흔치 않은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동가의 자세에 대해 ‘헌신’을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헌신이란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할 테지만 사실 기독교의 운동과 사역에서 그동안 헌신이라는 명목 아래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공고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운동과 사역도 사회적인 ‘직업’의 관점에서 더 진보해야 할 텐데요.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독교의 단체와 교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이것이 시대의 변화로 인한 세대 간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제가 1990년대에 일할 때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까지 일하고…. 또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봉사를 했는데 그것 자체를 희생이라고 여기진 않았어요. 이에 대해서 희생이라 생각하고 피해 의식이 생긴다면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희생에 관한 생각이 요즘 시대의 가치관과 다를 순 있어요. 하지만 자신을 비워 남을 섬기는 일은 세상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기독교의 가치거든요. 물론 사람의 헌신과 수고를 악용하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죠. 그것은 굉장히 죄 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니어들에게 흔하게 듣는 이야기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선교 헌신도 안 하고 자기를 헌신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염려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렇게 이야기해요.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우리가 잘하면 된다고요. 그들은 그들의 몫을 그들의 방법으로 할 거라고 말해줘요. 옛날에 했던 희생을 지금도 똑같이 말하면 안 되죠. 지금은 또 다른 세대이고 사역을 구현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교한국에서의 오랜 시간을 마무리하시는데 휴식의 시기를 좀 가지시나요?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복상 독자들께 마무리 인사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제 인생에 있어 이제 세 번째 페이지인 것 같아요. 첫 번째 페이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지나갔고, 두 번째 페이지가 선교한국에서 30여 년을 지나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산전수전, 공중전, 심지어 코로나전까지 다 거치고 이제는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어서 휴식이 필요한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저는 휴식이라는 개념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일을 생각하고 다른 환경에 놓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휴식한다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지는 않잖아요.(웃음) 선교사들도 안식년을 가지는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생각하며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진정한 리프레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안식을 겸해서 인생의 세 번째 페이지를 바로 준비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30대부터 50대 사이의 활동가들이 고민이 많은데요. 이분들이 혼자서 책임지고 결단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이분들이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고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런 분들을 네트워킹하고, 코칭이나 컨설팅을 통해 전문가들에게 선명한 가이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그룹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분들을 뒷받침해 주려고 해요. 아마 선교, 교회, 비즈니스가 묶이는 새로운 장이 될 것 같습니다. 선교한국에서 배웠던 수많은 경험과 자원을 최적화하여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 운동에 쓰임 받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9월부터는 복상 사무실 옆에 둥지를 트게 되었는데요. 복상과도 좋은 협업을 기대하고요. 독자님들도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에 뿌리박은 온전한 기독교 공동체를 꿈꾸면서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진행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