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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성범죄로 인한 교회 내 갈등 이해와 예방
[328호 커버스토리]
[328호] 2018년 02월 26일 (월) 15:23:57 김복기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총무 goscon@goscon.co.kr

2017년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뜨겁게 기념했다. 교단을 막론하고 관련 행사를 열고, 특집 기사를 다루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간 이스라엘을 성지로 규정하고 순례를 떠난 여행객들은 그 행선지를 이스라엘에서 바울의 전도 여행지로 넓혀 왔다. 그러다가 2017년에는 독일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순례 행보를 더 넓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획하는 팀들과 교회들은 2017년이 바쁠 것이라 여기고 미리 다녀오기도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2017년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낸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교회에 별다른 개혁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뿐 아니라 어떤 종교든지 저마다 추구하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교회의 규모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르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후대의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감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지 못한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후대에는 기억조차 못하거나 아예 부패한 종교로 기억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사람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분을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란 그 무엇보다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시 85:10)와 같은 인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기리고 드높이는 행위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능을 상당히 많이 잃었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사회적 기능으로 작동하기보다는 마음의 평화, 수련, 개인의 성공을 빌어주는 기복신앙, 개인 구원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짐 월리스를 비롯하여 공공의 신학을 외치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복음은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사적이지는 않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통전성과 일관성을 잃은 이러한 사적인 복음은 공공의 신학은커녕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기능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회가 사회적 기능 혹은 사회적 구원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모습과 더불어 그렇게 강조해왔던 개인적인 차원에서조차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내면의 갈등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깨뜨리는 큰 해악을 낳고 있다. 이러한 예들 중에 대표적인 갈등의 모습이 과소비, 게임중독,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포르노중독, 마약, 자살, 가정폭력이며,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는 고스란히 강남역 화장실 살인, 송파 세 모녀 자살, 부산 여중생 집단폭력, 층간소음, 주차장 갈등 등의 사회적 갈등 이슈로 얼굴로 바꿔가며 곳곳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들 중에 교회가 제대로 다루지 않는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리더에 의한 성범죄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의 이해와 예방’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실제로 현 한국교회는 교회 내의 이념갈등, 종북 논리, 종교의 다원성과 연관된 이슬람 논쟁, 동성애 논쟁, 교회 세습 및 종교인과세 문제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이슈들을 잔뜩 안고 있다. 복음은 성격상 세상과 분리될지언정 내부적으로는 갈라지지 않고 나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나 많은 이슈로 갈라져 있다.

교회 내에 여러 가지 이슈들 중에도 이 글이 목회자의 성추행 및 성범죄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Too) 운동이 우리의 페이스북과 여러 SNS에도 수없이 오르내렸건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운동에 공감을 하면서도 직접 참여한 사람은 많지 않다. 2006년에 타라나 벌키(Tarana Burke)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젊은 여성 특히 저소득층의 유색인종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생존자들이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도록 돕기 위해 시작되었다. “공감”을 통해 서로 능력을 부여하고 연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실제로 성폭력의 치유 과정에 있는 생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 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북미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지난 40-50년간, 특히 2013년 이후로 성추행 관련 이슈로 모진 내홍과 외환을 동시에 겪었다. 한국에서 겪는 양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성추행의 핵심은 인간의 죄, 욕망, 폭력, 권위의 남용, 교회의 실패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존 하워드 요더의 사례를 통해 교회 내 권력 남용과 성추행 및 성폭행의 실상을 살펴보고, 메노나이트 교회가 보여준 반응을 통해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1.갈등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 2.교회 내 갈등 문제로 작용하는 목사를 비롯한 교회 리더의 성폭행 현실 3.존 하워드 요더의 사례 4.이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 5.예방책을 포함한 대책 및 한국교회에 적용하기의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갈등 원인 및 유형 이해
갈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칡덩굴과 등나무덩굴이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견해, 주장, 이해 등이 뒤엉킨 복잡한 관계”이자 “정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욕구가 충돌하는 상태”(〈두산동아사전〉)를 말한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한 불일치나 논쟁을 말하기도, 결정을 내리기 힘든 마음의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사람 대 사람, 그룹 대 그룹, 혹은 나라 대 나라 간의 싸움이나 전쟁을 일컫기도 하며, 둘 혹은 그 이상의 서로 다른 신념·사상·관심사 사이에 존재하는 극심한 차이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통해 미루어 볼 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위와 같이 갈등을 정의하고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이해한다 할지라도, 갈등을 반가이 맞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든지 갈등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태초에 갈등이 있었느니라’고 농담을 해도 좋으리만큼 갈등은 원초적이며, 갈등 없는 세상은 없기에 사람들은 가능한 갈등을 빨리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갈등을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몸이 아프거나 질병이 발생할 때, 질병의 원인을 규명해야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있듯이 갈등 해결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갈등해결 프로그램 전문가이자 교육가로 활동했던 로버트 해리스 박사는 갈등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① 상충된 목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경우와 다른 사람이 나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의 차이
②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의 차이 
③ 한정된 자원
④ 불공정한 통제 및 소유,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불합리한 힘과 권력
⑤ 위협적인 행동이나 폭력의 파괴적인 주기
⑥ 신앙·신념체계·행동·확신·가치·세계관의 차이, 특정 이슈에 대한 다른 의견과 관점
⑦ 다른 정보, 정보의 왜곡, 정보 부족 그리고 주어진 정보나 중요한 관련정보에 대한 다른 해석
⑧ 위협적이거나 공격적인 대화 방식, 부적절한 대화나 오해를 일으키는 대화 및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⑨ 체면 등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위엄, 자존심을 지키려는 태도
⑩ 좌절감이나 상황에 대한 조절 능력 부족, 두려움·후회·배신감 등의 감정
⑪ 의견·인식·관점·믿음·가치·세계관 등의 다양한 문화적 차이
⑫ 고정관념·편견 등 잘못된 가정이나 과장된 일반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부정적 태도, (성·인종·민족·종교·사회계층 등)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불평등한 대우 등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갈등은 그리 단순하지 않지만, 위의 어느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규모와 차원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해리스 박사는 갈등 유형을 ❶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Intrapersonal conflict) ❷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Interpersonal conflict) ❸그룹 내 갈등(Intragroup conflict) ❹둘 이상 그룹간의 갈등(Intergroup conflict) ❺단체의 갈등(Organizational conflict) ❻사람 간의 차이(성별·민족색·종교·사회계층 등)에 의해 일어나는 한 사회 안의 갈등(Societal conflict) ❼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 한 국가 안에서 일어나는 국가 차원의 갈등(National conflict) ❽국가 간에 일어나는 국제적 갈등(International conflict) ❾전 세계적인 환경문제나 핵무기 사용, 원격통신 기술 등과 같은 생존권에 관한 세계적 갈등(Global conflict)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했다.

2.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의 현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은 여러 갈등 중 ④ ⑤ ⑩ 의 원인이 ❸의 유형으로 나타난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재 한국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은 주제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 무엇보다 성폭력 관련 사안은 다루기가 가장 껄끄러운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성폭력은 비교적 피해 정도가 극심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비로소 폭로된 사례들로 이해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미디어에 오르내리지 않는 사건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미국 고용평등위원회가 규정한 정의에 따르면 성추행은 키스, 포옹, 압박, 토닥토닥 두드리기, 어루만지기, 신체의 부분 잡기, 보행 가로막기, 추파 등과 같은 신체적인 면은 물론, 구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쓴 언어적인 면과 직접적인 요청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은 이보다는 좀 더 상습적이며, 목회자의 신뢰도를 이용하여 자행하는 의도적 폭력에 해당한다.

최근 성폭력에 대한 이해 및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주제들 중에 ‘청소년 성범죄 및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에 대한 내용들이 있는데, 이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습적 성폭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2017년 11월 7일 탁틴내일연구소(소장 김미랑)가 주최한 그루밍에 대한 발제 내용은 그 대상을 아동·청소년을 주된 대상으로 상정하고 발표했다. 이 발제를 통해 탁틴내일연구소는 “성폭력이라는 맥락에서 그루밍을 감정적, 정서적 의미로서 잠재적 학대자들이 아동들로 하여금 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전략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연구소는 그루밍의 공통점으로 “(1)다양한 조종적, 통제적 기술을 사용하여 (2)취약한 대상에게 (3)대인관계 및 사회적 배경 속에서 (4)신뢰를 쌓거나 성적으로 유해한 행동을 정상화하기 위해 (5)착취를 원활히 하고 폭로를 막으려는 전반적인 목적을 갖는다”고 밝힌다.

비록 이 발표는 아동·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하나, 실제 상황에서는 이러한 성적 착취를 위한 그루밍이 연령에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 학교, 직장, 교회, 기관 등 수직적인 구조 속에서 권력을 기반으로 형성된 신뢰 관계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히 종교라는 맥락에서 성직자-교인이라는 신뢰 관계 내에서 성인조차도 그루밍의 대상이 될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나 선교단체에서 발생하는 성추행과 성폭력 양상은 취약한 대상에게 다양한 통제적 기술을 사용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용되는 관계 및 심리적 기제는 권력의 남용과 신뢰의 오용이다.

그동안 교회 내 성폭력이 발생하여 사회 이슈로 제기되어도 건강한 과정을 밟아가며 처리하기 힘들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다른 피해와는 달리 성폭력은 성이라는 주제 자체가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내용이자 은밀한 사생활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수치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 및 종교적 맥락에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해도 이를 공개하기란 쉽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 및 트라우마 회복 전문 정신과 치료사인 캐롤린 홀더리드 헤겐 박사는 《기독교 가정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저자로서 성폭력 피해자 및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공동체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국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교회가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는 피해자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여도,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기보다는 도리어 교회가 피해자를 정죄하고, 교회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가해자를 보호하고 두둔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최악의 경우는 가해자가 보호를 받는 동안, 피해자는 자신이 평생 몸담아 왔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기까지 한다. 이는 비단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회사, 단체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성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2010년 이래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교회 및 선교단체에서 일어난 성폭력 관련 기사 및 처리 과정만 보더라도 큰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폭력 관련 목회자를 추종하거나, 성범죄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사건을 묵인하거나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교회 및 교단의 대책이 얼마나 부실하며 구조적 재발의 빌미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더의 사례를 살펴볼 때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 세계적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성범죄와 권력남용 및 이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응을 연구한 조사 보고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한국어판

3. 존 하워드 요더의 사례
존 하워드 요더는 1927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성장했다. 1947년 고센 대학을 졸업한 후, 1949년 유럽에서 8년간의 삶을 시작하면서 구호 기관인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를 통해 봉사활동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1952년 암스테르담에서 “Concern”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가지면서 진지한 신학적 토론을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1955년 신학자들의 신학 대화 모임인 ‘퓌두 컨퍼런스’(Puidoux conference)에 참여했고, 윤리와 교회론을 주제로 에큐메니칼운동에 적극 가담했으며, 1962년에 바젤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부터 메노나이트 연합성경대학원(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ies)에서 교수로 가르치기 시작한 그는, 1970-1973년에는 고센 성경대학원 학장으로 있었으며,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와 교단의 초청 강사로 활동했다. 1961년부터 1993년까지 메노나이트 계간지인 <MQR>(Mennonite Quarterly Review)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그의 대표 저서로 알려진 《예수의 정치학》(The Politics of Jesus, IVP 역간)이 1972년에 출간되면서 기독교 평화주의의 예언자적 목소리로 자리하게 되었다.

20세기의 마지막 25년 여 동안, 요더는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신학자이자 저명인사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역사가, 윤리학자, 선교사가, 신학 논객, 신학자, 에큐메니스트로 알려진 그의 방대한 저술과 영향력은 최근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20세기 기독교 윤리학자, 평화학자, 메노나이트 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 사건은 한마디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요더 사후 5년 뒤인 2002년 3월 7-9일에 열린 신자들의 교회 컨퍼런스에서 그의 삶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의 성추행에 대한 보고가 공개적으로 발표될 만큼 그의 성추행 사건은 제법 잘 알려진 세기의 사건이며, 한국의 독자들을 몹시 곤혹스럽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더의 성추행은 참으로 복잡하다. 그의 사례가 다른 여타의 성폭력 사건들과 달리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한 것은, 한 사람의 천재 신학자가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과 신학적 이론을 동원하여 성추행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곤경에 빠뜨리고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의 성추행이 근 2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피해 여성이 수십 명에서 100여 명에 이르고, 그의 명성과 영향력이 다다랐던 여러 대륙에서 보고되었을 만큼 광범위한 피해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성추행의 시작이 신학적 실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이러한 피해 사례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쉽게 막지 못했다는 것, 신학교, 지방회, 교단 차원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치리의 과정조차 “정리되지 않은 과제”(unfinished task)로 오랜 기간 다양한 해석을 낳아왔다는 특이점에 있다.

요더는 생전에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 간의 친교라는 주제로 성적 실험을 감행함으로 그가 가르치던 신학교와 방문했던 여러 단체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성폭력을 행사하였다. 끊임없이 보고되는 피해 여성들의 고소·고발에 따라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부분적으로 교단 치리를 받았지만 교단의 치리가 피해 여성 혹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2013년부터 메노나이트 연합성경대학원과 미국 메노나이트교회가 ‘분별’의 과정을 재개하였다.

4. 요더의 성범죄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응
미국 메노나이트교회와 AMBS 분별 그룹의 요청으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과 권력남용에 대한 메노나이트의 반응〉이라는 연구조사를 시행한 레이첼 왈트너 구센은 요더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보고서에서 요더의 실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중반,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는 그가 ‘자매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선정한 주제로 지침서를 만든 뒤 인간의 성에 관한 실험을 착수했다.” 요더는 성서의 여인들과 예수의 관계, 바울의 서신들과 예수의 삶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포함하고 있는 신학적 전제를 다루면서 성 관련 부분에 대해 이론을 전개했다. 이를 방법론으로 사용하여 요더는 자신이 관계한 여성들과 성적인 행동을 설명함에 있어 신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은폐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성서주의가 이 문제의 결정적인 뼈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실험에 따른 내용들을 제안한 뒤, 공개적으로 여성들에게 실험에 참여할 의사를 물었다. 그 결과 그의 공적인 명성과 교수로서의 신학적 실험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피해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런 맥락에서 실제로 실험에 참여한 여성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보고 받고, 꽤 많은 메노나이트 리더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피해 여성들을 구제하는 대신 기관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강화하게 되었다. 요더가 최고의 메노나이트 신학자라는 지위를 갖고 있었고, 요더가 성윤리 실험이라는 형태로서 자신의 행동을 개념화했기 때문이다. AMBS 제이미 피츠 교수는 이를 가부장적 지배 작동 원리에 근거한 “존 하워드 요더의 잘못 인식된 성의 정치학”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메노나이트교회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상호 책임의 의무를 유기했고, 마땅히 치리해야 할 권위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요더를 알고 있던 수많은 개인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일곱 개나 되는 서로 다른 상호 책임 그룹, 다양한 교회 기관들이 관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요더의 행동과 관련하여 비밀 보장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속임을 당한 것이든 스스로 택한 것이든, 정보를 통제하려던 이러한 노력들은 요더의 성범죄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고, 피해자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교회 기관이나 제도가 평판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부분을 밝히고자 왈트너 구센은 피해 여성들은 물론 요더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이들과 직접 면담을 하고, 묵혀 있던 자료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조사 연구를 담당했다. 결과적으로 구센의 연구는 이전에 메노나이트 교회가 시행한 적이 없던 모습의 성폭력 연구보고서로 나오게 되었다. 2015년까지 2년 동안 그의 성추행에 관한 전 과정을 재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2015년 1월 MQR에 발표하였다. 그렇게 70여 쪽이 넘는 일지 형식의 보고서와 이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 내외의 반응을 통해 메노나이트 교회의 공식 입장이 정리되었다. 또한 이러한 과정 중에 고민거리였던 그의 사후 출판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책머리에 따라다니게 되었다.

존 하워드 요더(1927–1997)는 20세기에 가장 잘 알려진 메노나이트 신학자이다. 기독교 윤리학에 있어 그의 업적은 메노나이트 교회 전통 밖에 있는 독자들에게 아나뱁티스트운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요더는 오랫동안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학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헤럴드출판사는 화해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빚어진 일과 관련된 복잡한 긴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그가 권력과 지위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요더와 그의 업적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요더가 이러한 성적 탈선행위의 장본인이었음을 독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요더의 글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복잡한 이슈들을 모른 채 하지 않으며, 개인, 학자, 교회의 유산으로서 그의 업적을 보다 온전한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평가하고, 씨름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출판한다. 

또한 이러한 메노나이트 출판사 및 교회의 반응뿐 아니라, 2015년 3월 21-22일 AMBS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성추행이 주로 행해진 AMBS 캠퍼스에서 요더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과 가족들을 초청하여 애도, 고백, 그리고 헌신을 주제로 드린 예배였다.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 희생자들에 대한 AMBS의 반응” 이라는 내용으로 치러진 이 예배에서 신학대학원 총장의 고백과 사죄에 대한 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요더 당시 실험에 참여하기를 제안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여성이 희생자를 위해 쓴 애도의 시편이 기도로 드려졌다. 또한 AMBS 교육위원회가 작성한 안전한 장소로 학생과 직원과 희생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 메노나이트교회는 2015년 연례 총회에서 요더의 성적 탈선에 대한 이슈와 관련된 그간의 일들을 의제로 다루었다.

   
▲ 메노나이트의 'CoSa 프로그램' 소개 영상 갈무리


이러한 메노나이트교회와 AMBS의 반응은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 할지라도 교회가 잘못한 일을 단순히 역사 속 과거사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현재 교회가 감당하고 처리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다는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추상적인 토론과 논의로 그치지 않고 큰 아픔이 일어난 장소 즉 그의 연구실, 강의실 등 역사의 현장을 다시 방문하여 회개, 기도, 애도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요더의 성추행과 관련된 끝나지 않은 과제를 잊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요더의 성추행과 권력 남용 사례는 비록 메노나이트라는 작은 교단 내에서 일어난 문제지만, 권위를 가진 목사요 신학자인 한 사람이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그리고 공동체가 얼마나 아파하고 큰 혼돈을 겪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라도 요더의 성추행과 권력 남용에 대해 메노나이트 교회가 보여준 용기 있는 반응은 다른 교회 및 교단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배워야 할 내용들이다.

저명한 한 신학자가 여성들을 성추행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하는 일과, 그런 악행을 행한 신학자요 목회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범죄를 저질렀는지 제대로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라고 부르는 교회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되게 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성폭력 사안을 다룰 때 진상을 밝히고자 가해자의 행위에 집중한 나머지 피해자들이 소외되거나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진상 규명과 대책 수립 과정에서 피해자와 생존자 및 그들의 가족 차원에서 사안을 이해하고 진행해 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또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신학과 권력 구조를 벗어난 새로운 관점으로 성폭력 사례를 이해하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와 생존자 그리고 그들 가족 입장에서 돌봄과 치유의 과정이 이뤄지도록 항상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요더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특별보고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한국교회에 적용하기
그렇다면 과연 한국교회는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까? 성추행과 같은 예민한 주제로 갈등이 발생할 때, 교회가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성추행 및 이와 관련된 규율은 어떻게 제정해야 할까? 믿음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성에 대한 긍정적 측면과 폭력적 측면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공통의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 만약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하고,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을 어떻게 치유하며, 용서의 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에 관련된 충실한 교육이 시행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성에 대한 건강한 교육을 준비하여 자녀들은 물론 어른들도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를 증진하고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성에 대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는 1986년, 1987년, 1992년, 1997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총회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모든 교인들이 이를 잘 숙지하도록 한다. 사후약방문으로 대처하지 않으려면 교회는 커리큘럼이나 교육을 통해 인간의 성에 대한 이해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따라야 할 지침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남녀 성평등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현시대에 큰 이슈로 작용하고 있는 동성애 이슈를 다룰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캐나다 메노나이트교회는 2016년 사스카툰 총회에서 동성애 이슈를 가결하기까지 약 10년에 걸쳐 교단 차원에서 분명한 입장을 마련하고자 일련의 과정을 밟았다. 성경해석, 신학적 준비, 지방회 및 교단 차원의 위원회 구성, 실제적인 그룹 토론을 진행하며 각 교회가 공부해야 할 분변의 과정을 마련하였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인간의 성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셋째, 특별히 성추행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신중을 기해 교회 공동체가 시행할 최소한의 규율, 상호 책임 지침, 치유의 여정에 대해 교회 리더십을 위한 교육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재 우리 교회, 우리 지방회 혹은 노회, 총회가 갖고 있는 성추행 관련 문서를 찾아보고, 이와 관련하여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준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넷째, 성 폭력 관련 트라우마에 대해 교회가 대처해야 할 내용들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평화 교회로서 메노나이트 교회는 폭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특별히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는, 성경적 원리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 ‘CoSA(Circles of Support and Accountability, 후원 및 상호책임 서클) 프로그램’을 운용해오고 있다. 이렇듯 메노나이트 교회에는 작은 성폭력 사건이라도 언제든지 부모, 교회 리더, 교단으로 연결되어 신속하게 다룰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다섯째, 생존자들의 경험을 자주 공론화하고, 가해자의 구체적인 신상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이들의 슬픔을 함께 애도하며, 가해자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궁극적인 치유가 일어나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메노나이트교회는 위에 언급한 요더 사례를 통해 사건의 예방뿐 아니라 궁극적인 치유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들을 갖추게 되었는데, 한국교회도 이를 잘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더 나아가 치유의 여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교회가 기꺼이 감당하고 충분히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의 회중은 물론, 지방회와 교단 차원의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필요하며 관련 비용을 전체 교회가 예산으로 미리 편성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 상황과 성폭력의 내용은 저마다 구체적인 맥락이 있다. 그러나 그 전후 사정이 어떻든 성폭력에 대해 믿음의 공동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지적인 차원과 대화의 차원에서 다루고 넘길 것이 아니라, 피부로 와닿는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2013년 AMBS의 사라 웽어 생크 총장이 이전의 요더 사건 전말을 미완의 숙제(unfinished task)로 규정하고 다시 철저하게 조사한 것처럼, 메노나이트교회가 시행해온 것처럼, 이제 한국교회가 교회 내 성폭력과 성범죄 이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는 그 어떤 연구 조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재정이 부족한 것도, 이를 수행할 인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고 성령의 살아계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교회는 교회 내 갈등과 성폭력에 대한 사안들에도 충분히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존재하는 성폭력 관련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교회 내에 분명한 성폭력 근절 지침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한다면 앞으로 피해자가 줄어들 것이며,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여정은 물론 건강한 교회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한 가지, 이러한 모든 대안과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진정으로 묻고 답할 질문이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이러한 성폭력·성범죄 관련 갈등을 진지하게 다룰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은 개교회가 되었든, 지방회나 노회, 총회가 되었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체와 리더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김복기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총무로 일한다. 강원대와 캐나다 메노나이트 성경대학을 나와, 미국 메노나이트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샬롬아도나이 교회를 섬겼으며,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다른 터는 없나니》 《아나뱁티즘》 《교회, 그 몸의 정치》 《아나뱁티스트 역사》 《정의프로젝트》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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