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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난민 현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343호 커버스토리]
[343호] 2019년 05월 27일 (월) 16:37:43 한경준 goscon@goscon.co.kr
   
▲ [도표 1] 전 세계 난민의 수 (출처: 유엔난민기구)

작년 여름에 제주도로 들어온 약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은, 한국도 전 세계적인 난민 현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인종주의, 민족주의, 이슬람 혐오 등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한국 사회에 던져졌을 때 어떠한 반응들이 나올 수 있는지를 엿보게 되는 기회였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 ‘사회문제’로서의 난민 현상은 잦아들었지만, 인류 역사 속에 항상 존재해왔던 난민 현상에 대해서는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생했던 난민 현상의 원인과 특성에 대해 국제정치적 관점 및 비교정치적 입장에서 살피고자 한다.

난민 현상의 과거: 갈등을 증폭시킨 국제정치 질서
‘난민’(refugee)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의 다양한 개념과 분류 기준이 존재하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의 기본 정의에 의하면 ‘(정치적·종교적) 갈등과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을 의미한다. 인류사에서 이러한 난민의 역사는 길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역사 역시 (이를 구속사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집트 정치 권력을 피해 400년 동안 살던 거처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난민의 사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헤롯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쳐 살아야 했던 어린 아기로서 예수님 가족 역시 난민 생활을 경험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로 좁힌다면, 1970-1980년대에는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식민지들의 독립 등으로 수많은 신생 국가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인종적·종교적 갈등에 기반한 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냉전 종식과 함께 특히 발칸 반도에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여 이들 중 대부분이 서유럽 국가들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난민 현상이 이 국가들에서 처음으로 주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제정치 상황이 다소 안정되면서 난민의 숫자는 대폭 감소하였으나,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의 난민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그 뿌리가 깊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난민 발생의 근본 원인은 난민을 발생시키는 그 국가들보다 다른 국가들, 특히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과거 행위와 정책에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노예무역의 관행, 식민지배의 역사, 그리고 냉전시대의 국제·국내 정치 행위들이 지난 수십 년간 발생했던 난민 현상들을 발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현대의 난민 현상은 대부분 인종·민족·종교 갈등으로 인해 발생했다. 1994년 약 2백만 명의 난민을 유발한 르완다 사태의 경우 두 부족(후투족·투치족) 사이의 내전과 대학살이 원인이었다. 1991년과 1998년에 각각 발칸 지역에서 일어나 수백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되게 만들어 유럽에 소위 ‘1차 난민 위기’를 일으킨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 역시 이 지역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인종적·종교적 배경을 가진 집단들(세르비아정교회 중심의 세르비아, 로마가톨릭 중심의 크로아티아, 무슬림이 다수 존재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사이의 분쟁과 갈등이 원인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유럽에 소위 ‘2차 난민 위기’를 가져온 시리아 내전의 경우도,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라는 정치적 성격과 함께 이슬람교의 서로 다른 종파(수니파·시아파) 사이의 분쟁과 갈등이라는 종교적 성격도 존재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종·민족·종교 사이의 갈등들은 비록 각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대다수 노예무역, 식민주의, 그리고 냉전 국제정치를 거치면서 더 증폭되고 공고화되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타깃 삼은 노예무역의 경우 영국 등 노예무역을 행하던 국가들은 아프리카 토착민들을 전면에 내세워 노예들을 동원하였다. 따라서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의 지인, 친구, 심지어 가족에 의해 속아서 노예로 팔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관행은 아프리카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 다른 종족이나 부족에 속한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마저 불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불신의 문화는 그들의 문화적·사회적 규범과 가치, 관행에 뿌리를 깊게 내렸으며, 이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들 사회의 ‘사회적 신뢰도’(social trust)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음이 많은 역사적·통계적 연구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사회적 신뢰도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공고화하고,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발견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정과 갈등, 분쟁의 주범은 그 땅에서 노예무역을 행한 유럽과 미주의 국가들이다.

식민주의는 어떠한가? 1994년 일어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잔인한 대학살로 1백만 명의 사망자와 2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르완다의 사례를 살펴보자. 르완다는 투치족이 19세기 말까지 우월한 권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다양한 부족이 공존하며 살아가던 사회였다. 하지만 독일과 벨기에가 식민지배하는 동안 부족 간의 차별적 관계가 더 강화되고 제도화되어 굳어졌다. 1962년 독립 이후에도 유럽의 암묵적 지원을 받은 독재정권은 부족 간 차별 정책을 이어갔고, 이는 결국 1994년 내전과 대학살로 이어지게 된다. 유럽 국가들은 필요에 의해 때로는 자국민들을 식민지에 이주시켜 자국의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그대로 이식한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식민지의 기존 체제와 사회계층 구조를 그대로 이용해 경제적 자원을 추출하고 약탈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럴 경우 식민정책은 이전에 존재하던 사회적 갈등 구조를 완화하기보다는 이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향(예를 들어 남미 대농장의 주인과 노동자들 사이의 착취 구조)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된 시리아 내전의 경우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오랜 분쟁, 독재정권을 향한 반정부 시위 등의 정치적 갈등이 원인이긴 하지만, 냉전시기 때부터 미국과 구소련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슬람의 종파 갈등이나 정치세력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도 시리아 내전은 어떤 면에서는 정부군을 후원하는 러시아와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 사이의 힘겨루기 혹은 대리전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양국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고, 심지어 미-러 양국 병력 사이에 직접적인 교전이 있었다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 역시 ‘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난민 현상의 현재 : 1990년대 서유럽과 2010년대 대한민국
난민 이슈는 크게 보아 ‘이주’(migration) 문제의 한 갈래이다. 이주 문제가 산업화된 민주국가들(industrialized democracies) 사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근래의 일은 아니다. 20세기 이후로 시야를 좁힐 때, 미국의 경우는 20세기 초부터 유입되는 이주자들의 문화적 배경이 다양화되고, 또한 대공황 등 경제적 위기를 맞으면서 특히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오는 이주자들을 막으려는 정책들을 도입하였다. 서유럽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해 터키(→독일)와 북아프리카(→프랑스) 등에서 많은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였으나 1970년대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그 수를 크게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 이주는 주요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이슈는 아니었고, 특히 유럽의 경우 경제적 논리에 따라 그 문을 여닫기를 반복했다.

서유럽의 맥락에서 이주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배경에는 1990년대 초의 난민 문제가 있다. 1991년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내전이 발생하면서 1백만 명이 넘는 난민이 서유럽으로 유입되었다. 그 결과, 1989년 서유럽으로 유입된 전체 이주민 중 난민 비율이 23%였으나, 불과 3년 뒤인 1992년에는 54%까지 치솟았다. 난민 수가 이주 노동자 등 다른 이주민보다 더 많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사회적 이슈이자 이주 문제로서 ‘난민’이 다른 형태의 ‘이주’(예를 들어 ‘이주 노동자’ 문제)보다 더 어려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위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다. 노동 이주의 경우에는 그 당위와 현실의 간극이 그렇게 크지 않다.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당위가 경제적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이 좋아서 전반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하거나 경제구조와 노동구조의 불일치 때문에 특정 산업에 노동자들이 필요한 경우, 이러한 경제 현실이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당위’가 된다. 거꾸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오히려 노동이 과다 공급될 경우, 이러한 경제적 현실이 이주 노동자들의 숫자를 줄이는 ‘당위’가 된다. 따라서 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든, 아니면 그 문을 더 좁히는 것이든 그 정책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다. 

특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용자들이고, 이들은 주로 우파 정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우파 정당조차 자연스럽게 노동 이주의 문을 넓히는 정책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 문제의 경우 그 당위성은 위험에 처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고, 현실은 너무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기에 힘든 쪽으로 치우칠 수 있기에, 이 둘 사이에 간극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 당위성이 1951년 난민 협약 등 국제적인 약속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비록 법적 강제성은 없다 해도 국가는 정치적·윤리적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게 된다.

둘째, 노동이주의 경우 정책적으로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고(예를 들어 노동비자의 발급 조절), 경제적으로 자기 조절적이며(그 나라의 경제가 안 좋으면 자연스럽게 이주 노동자 수가 감소), 유입되는 이주 노동자 수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난민의 경우 정책적인 통제가 더 힘들고, 자기 조절 기제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난민 발생국의 상황에 따라 난민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예상치 못하게, 또 급격하게 늘어난 숫자로 유입되는 난민의 존재는, 이들을 임시로 수용하고 이들의 난민 지위 신청을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뿐 아니라, 이들에게 생필품을 보급하며 의료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떠안긴다. 그에 더해 문화적·언어적·종교적 거리가 먼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는 문화적 부담을 난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에 지우게 된다.

셋째로, 서유럽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난민은 다른 형태의 이주민에 비해 그들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경제적·문화적으로 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노동 시장 측면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 노동 이주의 경우는 자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이주의 기회를 열고 닫으면서 조절하지만, 난민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에 노동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이들이 노동 시장에 흡수되지 않으면 사회 안전망을 통해 재정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초 유럽의 ‘1차 난민 위기’ 때 많은 서유럽 국가로 유입된 난민에게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의 수혜 자격이 있었는데, 이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난민들에 대해 제한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도입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인종·민족·문화·종교·언어에 대해서 거리감을 느끼는데, 거리감이 큰 문화권에서 온 난민일수록 받아들이는 국가의 국민은 정서적으로 준비되어 있기 어렵고 이러한 문화적 거리감이나 반발심리가 난민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기 쉽다. 

작년 여름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켰던 예멘 난민 현상도 이러한 각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여론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당위)과, 난민을 받아들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우려(현실)로 크게 갈렸다. 비록 500명이 안 되는 난민 수는 지금도 수십만 명, 심지어 수백만 명을 받아들이는 나라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이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난민이 일시에 유입된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실 어느 정도 급격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 예멘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핵심은 생활 지원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보다도 이슬람권에 대한 반발이었다. 오해든 편견이든, 아니면 그저 문화적 이질감이든, 난민에 대한 거리감과 생소함이 반대 여론의 핵심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작년 예멘 난민의 제주도 유입이 우리 사회에 일으켰던 현상들은, 1990년대 이후 난민 혹은 이주와 관련해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것인지를 시험할 수 있었던 리트머스 종이와 같았고, 시간대는 다르지만 두 사회 속에서 많은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 난민 현상은 세계사적 상흔이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소규모 난민 유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행정적인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사진: maxpixel.net)

난민 현상의 미래: 우리 사회에 던지는 도전
앞서 살펴본 난민 현상의 과거와 현재는,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난민 현상을 경험할지 모르는 우리 사회에 어떠한 도전을 던지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작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현상이 서유럽 사회에서 30년 전에 발생했던 현상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면, 거꾸로 지난 30년 동안 서유럽 사회가 경험했던 일들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어떠한 함의를 주는가?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난민 현상은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세계 역사의 흐름이 남긴 상흔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우리나라가 그 특정 지역이나 국가와 밀접한 관계가 없더라도, 또한 난민 발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도, 세계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돕고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노예무역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식민지 피지배 경험을 했고, 냉전체제로 인해 아직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등 ‘피해자’로서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고속 성장은 분명 세계 경제체제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냉전체제상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특혜를 누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강대국 중심의 세계 정치 역사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수혜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 지위에 비해 국제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그 일원으로서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단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다. 2017년 우리나라의 ODA는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대비 0.14%로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같은 해 OECD 평균 0.3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OECD 35개국 중 28위에 머물렀다. 

국제사회에서, 특히 앞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난민 현상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일정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기가 발생하는 지역과 국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서유럽 국가들에는 시리아 외에도 중동,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 등으로부터 온 난민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시리아 이외 지역 출신 난민들은 “그나마 (같은 나라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은 나은 편”이라고 한다. 시리아 내전과 난민 현상이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져서 서유럽 시민들은 시리아의 상황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편이고, 이로 인해 시리아 출신 난민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혹은 지식)와 관심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반복해서 기술했듯 대부분의 난민 현상은 지난 세계사적 사건들의 직간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큰 틀을 이해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난민 현상과 그 국가들에 대해 조금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얼마나 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받아들인 난민들을 어떻게 지원할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제는 ‘이주에 대한 정책’(policy regarding migration)을 ‘이주 정책’(migration policy)과 ‘이주민 정책’(migrants policy)으로 구분하여 따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주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국민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이념 등에 따라 두 정책 분야들에 따라 상당히 다른 입장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한, 특히 사회민주당 등 주류 좌파 정당들은 악화되는 여론으로 인해 그들이 선호하는 개방적 이주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힘들어지자, 이주 정책은 다소 제한적으로 바꾸면서도 이주민 정책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정책을 계속 유지해 나가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즉, 많은 숫자의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 반발이 너무 커서 힘들지만, 이미 거주하는 이주민들에 대해 필요한 혜택을 충분히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반발이 상대적으로 약하니 그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좌파 정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재 마크롱의 프랑스 우파 정부 역시 정부 지원의 자발적 시민 봉사 활동을 통해 난민들이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고 통합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육지로 이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현재 난민 현상이 주로 일어나는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규모 난민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작년 예멘 난민 현상에서 경험했듯이 소규모의 난민 유입에도 우리 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비록 난민 현상이 우리의 일상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행정적 준비(예를 들어, 난민 신청 처리, 대기자들의 수용과 지원 등)를 적극적으로 해놓을 필요가 있다. 또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불안정의 요소를 늘 갖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의 난민 발생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지리적·행정적 요인들로 인해 난민들은 한 국가 내에서도 특정한 지역으로 집중되어 유입하는 경향이 있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공조와 협력에 대한 계획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한경준
미국 UCLA에서 정치학(석·박사)을 공부했고, 현재 테네시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친다. 서유럽의 이민·난민 이슈와 극우 정당의 연관성, 소득불평등을 주제로 16년 넘게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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